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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201007092474
일제시기 조선 자치운동의 논리
paper
이 논문은 조선자치운동 연구에 있어 선행연구가 상대적으로 소홀히 해온 자치운동의 ‘논리’에 주목함으로써 왜 조선의 경우 자치운동이 다른 식민지와 달리 독립운동이 되지 못하고 제국주의 협력운동이 되었는가를 밝히고자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본 논문은 기존 논문이 따로 분리시켜 개별적으로 연구하거나 때로는 혼동해왔던 독립, 자치, 참정이란 개념을 구분하고 그 관계를 보고자 한다. 즉 ‘독립-자치-참정’이라고 하는 스펙트럼 내에서 자치가 어떻게 위치지워지는가를 보았으며 시간적으로 어떻게 변화되어갔는가를 주목하였다. 또한 다른 식민지 특히 인도의 경우와 어떻게 다른가를 봄으로써 조선의 자치운동은 협력운동이었다는 점을 결론지었다. 인도의 자치 개념은 조선의 자치 개념이 아닌 독립 개념과 같은 위상을 갖는 것이었으며 조선에서는 타협운동이었던 점과 달리 저항운동이었고 결국 독립요구에로 나아갔다. 반면 조선의 경우 자치는 독립과 전혀 다른 개념으로 독립을 포기한 것으로 간주되어 많은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도 다른 식민지의 경우 더 격렬한 독립운동으로 강화시켜 갔다면, 조선의 경우는 당시 거세게 일어나고 있는 독립운동의 기운을 오히려 약화시키고 민족운동을 분열시키는 역할을 하였으며 궁극적으로는 일제 동화운동으로 나아갔다.
[ "본고는 조선자치운동의 논리에 주목함여 다른 식민지와달리 조선의 자치운동은 왜 제국주의 협력운동이 되었는가를 규명하고자 한다. 다른 식민지 인도의 자치 개념은 독립 개념과 같은 위상을 갖고, 독립요구로 나아간 반면 조선의 경우 독립운동을 약화시키고, 민죽운동을 분열하는 역할로 독립과 전혀 다른 개념으로 독립을 포기한 것으로 간주되었다.", "이 논문은 일제시기 조선 자치운동의 논리를 분석해보고자 하는 것이다. 이 시기 정치적 행위의 논리는 크게 독립운동론, 참정권론, 자치론으로 구분할 수 있다. 당시에도 신채호는 정치운동가들을 내정독립운동자, 참정권론자, 자치론자로 분류하였다. 이 중, 참정권론과 자치론은 식민 통치에의 ‘참여’ 논리인 반면, 독립운동론은 이에 대한 저항’의 논리라고 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 ‘참여 탄 기존체제를 인정하는 범위 내에서의 행위이기 때문이다. 대략적인 내용만 들자면, 참정권 주장은 조선인도 일본 의회에 참여할 선거권꾀 선거권을 달라고 하는 것이며 자치론은 조선의 독자적 의회를 설치하고 내정문제는 조선인에게 맡길 것을 주장하는 것이다. 이러한 조선인의 자치론을 분석함으로써 이 연구가 목적하는 바는, 왜 일제시대 자치론이 다른 식민지의 경우와 달리 저항의 논리가 아닌 협력의 논리가 되었으며, 또한 오늘날 이를 어떻게 평가해야 하는가 재논의하는 것이다. 식민지 조선인의 자치운동에 대한 선행 연구를 살펴보면 자치론이 등장한 당시부터 연구되기 시작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논문은 일제시기 조선 자치운동의 논리를 분석해보고자 한다. 이 연구가 목적하는 바는, 왜 일제시대 자치론이 다른 식민지의 경우와 달리 협력의 논리가 되었으며, 오늘날 이를 어떻게 평가해야 하는가 재논의하는 것이다." ]
A201007092477
라틴어 대사전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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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라틴어 대사전에 대한 보고문이다. 보고문은 크게 두 사항을 중심으로 기술되었다. 하나는 라틴어 대사전 탄생 배경의 추적이고, 다른 하나는 라틴어 대사전의 사전 구성과 표제어 편제에 있어서 방법론적 특징에 대한 고찰이다. 라틴어 대사전의 탄생 배경은 다음과 같다. 고전 문헌 편집이 본격적으로 진행되자 초급 수준의 라틴어 학습용 사전들은 고전 문헌학자들의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하게 되었다. 해서 고전 문헌학자들은 학문 연구용의 본격적인 사전 집필을 꿈꾸었는데, 이 꿈의 실현체가 바로 라틴어 대사전이다. 라틴어 대사전은 우리가 흔히 접하는 일반 학습용 사전이 아니고, 일종의 도서관이다. 여기에는 기원 후 6세기까지 라틴어로 기술된 모든 문장들이 수집 분석-정리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문장들은 시대 순으로 정리-편제되어 있는데, 이 편제는 각 시대별로 다르게 나타나는 개별 단어의 의미를 포착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해서 라틴어 대사전은 서구 유럽인의 과거와 현재를 비추어 주는 거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표제어 구성의 방법론적 특성과 관련해서 언급해야 할 사항은 다음과 같다. 라틴어 대사전의 개별 표제어는 한 단어가 자기만 가지고 있는 고유 의미 스펙트럼을 제시하고, 그 안에서 상이한 여러 의미 분류 기준들을 제공하는데, 이것들은 이용자가 의미 값을 스스로 측정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장치들이다. 즉 각 개별 항목들은 자체가 일종의 저울(pondus verbi)이다. 이런 기술 방식은 분명히 뜻풀이 혹은 2개어 비교 사전류의 학습용 사전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특징이다. 사전 기술사적 관점에서 볼 때, 이는 사전 기술 방식을 한 단계 상승시킨 것이라 할 수 있다.
[ "본고는 라틴어 대사전 탄생 배경의 추적과 라틴어 대사전의 사전 구성과 표제어 편제에 있어서 방법론적 특징에 대한 연구이다. 고전 문헌학자들의 학문 연구용으로 라틴어 대사전을 집필했다. 기원 후 6세기까지 라틴어로 기술된 모든 문장들이 시대 순으로 정리, 편제 되었다. 라틴어 대사전의 개별 표제어는 한 단어가 자기만 가지고 있는 고유 의미 스펙트럼을 제시하고, 여러 의미 분류 기준들을 제공하여 이용자가 의미 값을 측정할 수 있게 해주는 장치였다.", "본 고가 겨냥하는 독자(Adressat)층은 두 부류입니다. 한 부류는 서양 고전 문헌학에 직접적으로 종사하지 않은 인문학자와 정보 통신 관련 종사자들 그리고 사전학자와 자연언어처리 및 문헌자료 디지털 작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입니다. 다른 한 부류는 서양 고전 문헌학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일을 하는 분들입니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전자는 이 글의 수신자가 아닙니다. 그럼에도 그들을 이 글의 수신자로 삼는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인문학의 디지털화 혹은 콘텐츠 사업은 ‘자연언어처리(Natural Language Processing)’ 기술에 그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그런데 자연 언어 데이터를 처리함에 있어서 그 기본 단위는 개별 단어입니다. 따라서 이 개별 단어를 어떻게 처리하느냐가 인문학 디지털 콘텐츠 구축 사업의 핵심 사항이라 할 수 있습니다. 즉 개별 단어의 통사 구현 양상과 이에 따른 의미 구분 그리고 개별 단어의 언어적 변화를 추적하는 작업이 선행되었을 때, 인문학의 디지털화 혹은 콘텐츠화 작업도 본격적으로 진행될 수 있고 힘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소위 인터넷의 포탈 사이트들이 기본적으로 검색 지원을 함에 있어서 전자사전 기능을 기본 서비스로 제공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자연 언어 데이터를 처리함에 있어 그 기본 단위는 개별 단어이다. 따라서 개별 단어를 어떻게 처리하느냐가 인문학 디지털 콘텐츠 구축 사업의 핵심 사항이다. 이는 포탈 사이트들이 기본적으로 검색 지원을 함에 있어 전자사전 기능을 기본 서비스로 제공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확인된다." ]
A201007092481
Spirulina platensis의 배양 및 추출조건에 따른 항암활성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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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수 혹은 해수에서 배양한 S. platensis의 추출조건에 따른 수율을 비교하기 위해 60℃와 100℃에서 물과 에탄올을 이용하여 추출하여 추출 수율을 비교한 결과 해수 S.platensis가 약 3% 정도 높은 추출 수율을 나타내었다. 그리고 각 추출물의 정상세포에 대한 세포 독성을 살펴보기 위하여 인간 정상 신장 세포(HEK293)를 이용하였으며, 모든시료에서 1.0 mg/ml의 농도에서 26%이하의 비교적 낮은 세포독성을 나타내었고, 그 중 해수 S. platensis가 담수 S. platensis보다 약 5% 정도 낮은 세포독성을 나타내었다. 그리고 암세포에 대한 암세포 생육 억제 활성을 측정한 결과 4가지 암세포 주인 폐암세포(A459)와 위암세포(AGS), 유방암세포(MCF-7)와 간암세포(Hep3B)에 대해 모든 추출물에 대해 1.0 mg/ml의 농도에서 70% 이상의 높은 암세포 생육억제 효과를 나타내었고, 그 중 해수 S. platensis의 60℃ 물추출물에서 80% 이상으로 가장 높은 암세포 생육 억제 효과를 나타내었다. 선택적 사멸도는 모든 암세포에서 1.5 이상으로 나타나 암세포에 대해 선택적으로 사멸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담수 혹은 해수를 사용하여 배양한 경우 해수 S. platensis가 추출 수율뿐만 아니라 정상세포에 대한 세포독성 및 암세포 생육 억제 활성에서 높은 효과를 나타내었다. 인간 전골수세포인 HL-60세포를 이용한 세포분화도를 측정한 결과 60℃에서 물을 이용하여 추출한 해수 S. platensis에서 담수 S. platensis보다 5일째 약 20% 정도의 높은 세포 분화 활성을 나타내었다.
[ "담수 또는 해수에서 배양한 S. platensis의 추출조건에 따른 수율 비교를 위해 60℃와 100℃에서 물과 에탄올을 사용하여 추출 수율을 비교한 결과, 해수 S.platensis가 약 3% 정도 높은 추출 수율로 나타났다. 각 추출물의 정상세포에 대한 세포 독성을 살피고자 인간 정상 신장 세포를 사용했으며, 1.0 mg/ml의 농도에서 26%이하의 낮은 세포독성이 나타났고, 그 중 해수 S. platensis가 낮은 세포독성을 나타냈다.", "Spirulina는 주로 열대 지방의 염호에서 서식하며 길이 300~500μm, 직경 8μm인 미세조류이다. 35억 년 전에 지구상에 나타났으며 그 모양이 나선형(spiral)이어서 Spirulina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섬유소가 없어 세포막으로 인해 체내에서 소화와 흡수가 빠르고, 100g당 498Kcal의 열량을 가지고 있다. 현재 35종 정도가 밝혀져 있으며 온대지방과 한대지방에도 분포되어 있으나 식량으로 이용되는 것은 대형이며 증식력이 강한 아프리카와 중남미의 열대 및 아열대 지방의 호수에서 성장한다. 그 중 산업용으로 배양 생산되고 있는 Spirulina는 Arthrospira maxima와 Arthrospira platensis이다. 여러 연구에서 S. platensis의 성분 중 carotinoid 색소와 Phycocyanin, Ca-SP(Calcium spirulan), α-Tocopherol, Novel sulfated polysaccharide 등이 잠재적인 항암 효과 및 항 노화, 색소 및 종양 전이 억제, 항산화와 염증 방지에 대한 효과를 제시하였으며 기능성식품으로의 그 기능성이 밝혀지고 있다.", "Spirulina는 주로 열대 지방의 염호에서 서식하며 35억 년 전에 지구상에 나타났다. 항암 효과 및 항 노화, 색소 및 종양 전이 억제, 항산화와 염증 방지에 대한 효과가 있어 기능성식품으로 밝혀지고 있다." ]
A201007092483
지체장애인 운동선수의 정신력 조사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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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의 목적은 지체장애인 운동선수의 정신력요인을 조사하고 분석하여 효율적이고 체계적인 정신력 강화 훈련프로그램 개발의 기초자료를 제공하는데 있다. 연구대상은 2005년 국제 휠체어테니스 대회와 2006년 전국좌식배구에 참여한 총 60명의 정신장애가 없는 지체장애인 운동선수로 구성되어졌다. 연구에 사용된 설문지는 Loehr(1982)가 개발하고 신동성(1999)이 번안한 Mental Toughness Test(MTT)였으며 자신감, 각성조절, 집중력조절, 시각 및 이미지조절, 동기수준, 긍정적 에너지, 그리고 태도조절의 7개 하위요인별 6문항으로 총 42문항으로 5점 척도에 의해 평가받도록 구성되어졌다. MTT설문지는 연구에 사용되기 전 전문가집단에 의해 내용타당도를 검사하였으며 신뢰도 역시 Cronbach's 값(.836)를 통해 문항들의 내적 일치성에 대해 검증을 받았다. 수집된 자료분석을 위해 기술통계(평균, 표준편차, 빈도)와 MANOVA를 실시하였다. 정신력 요인별 평균 결과를 살펴보면, 동기수준, 긍정적 에너지, 태도조절, 시각 및 이미지조절, 그리고 자신감이 각성조절과 집중력조절보다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났다. MANOVA 결과에서는 연령에 따른 정신력, 특히 시각 및 이미지조절에서 유의한 차이가 났으며 운동경력에 따른 정신력은 자신감에서 유의한 차이를 보였다. 본 연구결과로 알 수 있는 사실은 지체장애인 운동선수와 정신력관련 문헌에 기록된 비장애인 운동선수의 정신력 수준에는 별 차이가 없으며 지체장애인 운동선수의 경우, 나이가 어릴수록 정신훈련이 더 필요하며 경기력 향상을 위해서는 많은 스포츠경쟁과 다양한 훈련경험을 통한 효율적인 정신훈련으로 정신력 강화에 힘써야 할 것이다.
[ "본고는 지체장애인 운동선수의 정신력요인을 탐색하여 효율적이고 체계적인 정신력 강화 훈련프로그램 개발의 기초자료를 제공하고자 한다. 문헌에 기록 된 지체장애인 운동선수 정신력과 비장애인 운동선수의 정신력 수준에는 별다른 차이가 없고, 지체장애인 운동선수의 경우, 어린 나이일수록 정신훈련이 더 필요하고, 많은 스포츠경쟁으로 경기력을 향상시키고, 다양한 훈련경험을 통해 정신력 강화가 필요할 것이다.", "정신력은 스포츠경쟁에서 운동선수들이 성공적으로 운동수행을 하는데 매우 중요한 심리적 요인으로 여겨지고 있다. 정신력은 운동선수로 하여금 이상적인 심리상태를 유지하여 경기 중에 겪게 되는 어려운 상황에서의 고통을 감소시킬 뿐만 아니라 승리에 대한 욕망을 증대시킬 수 있다. 또한 이러한 정신력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훈련을 통해 습득되는 것이므로 경기력 향상을 위해서는 선수 개개인의 체력 및 운동기능 훈련과 마찬가지로 정신훈련도 강조되어야만 한다. 스포츠에서의 정신력관련 연구는 Loehr(1982)가 운동선수의 정신력측정을 위해 자신감 (self-confidence), 각성조절(arousal control), 집중력조절(attention control), 시각 및 이미지 조절(visualization and imagery control), 동기수준(motivation), 긍정적 에너지(positive energy), 태도조절(attitude control) 등 7개의 하위요인으로 구성된 Mental Toughness Test(MTT)라는 설문지를 개발한 이래로 최근까지 다양한 운동종목에서의 정신력연구가 지속적으로 진행되어 왔다.", "정신력은 운동선수들이 성공적으로 운동수행을 하는데 매우 중요한 심리적 요인이다. 경기력 향상을 위해서는 선수 개개인의 체력 및 운동기능 훈련과 함께 정신훈련도 강조되어야만 한다. 이에 다양한 운동종목에서의 정신력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
A201007092486
草衣意恂의 茶詩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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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의 주된 목적은 초의의순의 茶詩가 가진 예술적, 사상적 의미를 밝히는 것이다. 초의의순은 그가 가진 문학적 재능과 茶道를 통한 선수행을 茶詩의 형식을 통해 구현하였다. 茶詩란 차를 소재나 주제로 사용하는 시 전반을 지칭하는 용어로 작가가 자신의 茶精神과 茶生活을 시 양식 속에 담아 낸 것을 말한다. 한국 茶詩는 일정한 계보를 가질 만큼 중세 지성인에게 익숙한 존재였다. 그 중에서도 초의의순의 다시가 주목되는 이유는 그의 茶道가 수행법의 하나로 인정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절대지에 도달하기 위한 방편으로 차를 제시하였다. 飮茶의 행위가 깨달음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철저한 이론적 근거와 그 현장성을 담보해야 했다. 그는 茶論을 수립하고 그것을 선사상과 이어줌으로써 茶禪一如의 한 체계를 이루었다. 구체적으로 그는 「茶神傳」과 「東茶頌」의 저술을 통해 다도의 이론적인 체재를 갖추었으며, 「초의집」 곳곳에서 그것을 문학적으로 구체화시키는 데 성공하였다. 즉, 그의 茶詩는 茶道 수행을 통해 깨달음을 추구하는 내용과 茶具를 비롯하여 생활 속에서 飮茶風을 묘사한 것, 그리고 차를 통해 당대 지성인들과의 만남을 노래한 것으로 나눌 수 있었다. 결국 그의 茶詩는 茶禪一如 사상이 문학적으로 형상화 된 것에 다름이 아니었다.
[ "본고는 초의의순의 茶詩가 가진 예술적, 사상적 의미를 규명하고자 한다. 그는 절대지 도달을 위한 방법으로 차를 제안하고, 그의 茶詩는 茶道 수행을 통해 깨달음와 茶具, 생활 속에서 飮茶風을 묘사하고 차를 통해 당대 지성인들과의 만남을 노래한다. 茶詩는 茶禪一如 사상이 문학적으로 형상화된것과 다름 없었다.", "草衣意拘은 조선후기 대표적인 선승의 하나로 꼽히는 인물이다. 조선조 억불의 기조 아래 대외적으로 알려진 승려는 특히 조선후기로 가면 손가락에 꼽을 정도이다. 실제 한국불교사에서 조선시대, 특히 후기로 가면 사상적 쟁점이나 그에 따른 연구가 취약한 것이 사실이다. 가장 큰 이유로 자료의 부족을 꼽을 수 있다. 반면 불가 한문학 부분에 있어서는 상황이 달라진다. 虛應普雨의 『虛應堂集』을 시작으로 應雲空如의 『應雲空如遺忘錄』에 이르기까지 총92종의 문집이 현존하고 있다. 시 조선 불교계에 대한 史科가 턱없이 부족한 상황에서 불가 문집은 조선불교사 연구에서 중요한 자료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초의의순은 이런 상황에서도 불교계는 물론 문화계 전반에 걸쳐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그것은 바로 그가 조선후기 불교계를 대표하는 禪僧이 자 詩僧이란 점 외에도, 한국 차의 중홍조로서 茶聖이라 불리는 데서 기인한다. 초의의순은 승려로서의 본분을 지키는 와중에서도 문학과 미술 등 예술 다방면에서 탁월한 능력을 보여주었으며, 차라고 하는 독특한 정신문화 영역을 개척하였다. 그리고 이런 모습들은 중세 지성인이라는 큰 범주 내에서 유불을 뛰어넘은 다양한 인연을 생산해 낼 수 있었다.", "초의의순은 조선후기 대표적인 선승이다. 시 조선 불교계에 대한 史科가 턱없이 부족한 상황에서 불가 문집은 조선불교사 연구에서 중요한 자료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이에 초의의순은 이런 상황에서도 불교계는 물론 문화계 전반에 걸쳐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
A201007092490
신작 구소설 에 그려진 피난자의 형상과 현실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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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진사전>은 19세기 말의 병인양요(1866년)와 임오군란(1882년)의 사건을 시대적 배경으로 하여 한 가족의 피난기를 서사화한, 국문 필사본 형태의 신작 구소설이다. 1910년대를 전후하여 형성된 작품으로 여겨진다. <서진사전>은 병인양요와 임오군란과 같은 당대의 문제를 소설의 배경으로 끌어들여, 2대에 걸쳐 한 가족이 피난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작가는 서참판 부자가 각기 피난하는 중에 일어난 에피소드를 재미있게 소설화하였다. 그러면서 급변하는 역사적 상황 속에서 당대인의 현실인식과 삶의 지향을 포착하여 형상화하였다. 특히 현실 안분의 태도와 가족애의 양상은 주목할 만하다. 나라의 안위를 걱정하며 몸을 던지는 우국지사 형이 아닌, 자신과 가족만을 지키려 하는 서참판, 서진사 부자의 형상은 이색적이다. 작가는 평온한 삶이 위협받는 위기의 시대에서 현실안분과 소시민적 가족애를 통하여 극복할 수 있다는 삶의 태도를 드러내었다. <서진사전>은 또한 전대 판소리계 소설의 골계의 다양한 기법과 미학을 잘 활용하고 있어 소설 창작수법의 면에서도 흥미로운 점이 많다. 이렇듯 <서진사전>은 신작 구소설 중에서도 개성이 분명한 작품이다.
[ "19세기 말의 병인양요와 임오군란의 사건을 시대적 배경으로 한 가족의 피난기를 서사화한 서진사전은 전대 판소리계소설이 골계의 다양한 기법과 미학을 활용한 국문 필사본 형태의 신작 구소설이다. 작가는 급변하는 역사적 상황 속에서 현실안분과 가족애를 통해 극복하는 삶의 태도를 보여주는 개성이 뚜렷한 작품이다.", "현상적으로만 이해하면 고소설은 조선 왕조가 끝나면서 본래적 의미의 수명을 다했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조선 왕조의 뒤를 이어 1897년 대한제국기가 시작되고, 이른바 신문학기의 시대가 열린 뒤에도 고소설 작품은 193-40년대 에 이르기까지 필사본‧방각본‧구활자본‧세책본 등 더욱 다양한 방식으로 유통되며 생명을 유지하였다. 또한 이뿐 아니라 이 기간 동안 적지 않은 작품이 새롭게 창작되어 이 작품들의 성격 및 소설사적 의미에 대한 연구자들의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다. 이른바 신작 구소설ᅵ이라고 하는 신‧구문학의 접점에 놓인 고소설사의 마지막 작품들은 <형산백옥>‧<쌍미기봉>‧<부용상사곡>‧<김진옥전>‧<채봉감별곡>‧<미인도>‧<청년회심곡>‧<봉래신설> 등 34편에 이른다. 이 논문에서 분석하는 <서진사전>은 19세기 말의 병인양요(1866년)와 임오군란(1882년)의 사건을 시대적 배경으로 하여 한 가족의 피난기를 서사화한, 국문 필사본 형태의 신작 구소설이다. 이 작품은 최근 필자가 학계에 보고한 새로운 작품이며,필자가 소개하는 필사본이 유일본으로 여겨진다. ", "신문학기의 시대가 열린 뒤에도 고소설 작품은 193-40년대 에 이르기까지 필사본‧방각본‧구활자본‧세책본 등 더욱 방식으로 생명을 유지하였다. 또한 이 기간에 적지 않은 작품이 새롭게 창작되어 이 작품들의 성격 및 소설사적 의미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다." ]
A201007092494
하이데거 사유에서 ‘시간성(Zeitlichkeit)’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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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하이데거의 사유에서 ‘시간성’(Zeitlichkeit)의 의미에 대해 다루고 있다. 흔히 우리가 ‘시간’이라고 부르는 것은 통속적인 시간개념으로 세계 또는 세계 내의 대상, 심지어는 인식하는 주체와 인식되는 객체 사이의 관련까지도 일컫는 말이다. 그렇지만 하이데거의 ‘시간성’은 현존재의 실존을 가리키는 말이다. 즉 현존재의 존재를 ‘마음씀’(Sorge)으로 간주하면서, 마음씀의 존재론적 의미를 ‘시간성’으로 규정한다. 그러므로 통속적이고 객관적인 것으로서의 시간은 바로 이 ‘시간성’에 기반을 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토대로 하여, 본 논문에서는 먼저 현존재와 시간성의 의미에 대해 살펴본 다음, 현존재의 존재를 마음씀(Sorge)으로 간주하는 이유와 마음씀의 의미가 왜 ‘시간성’인지에 대해 검토하고자 한다. 특히 여기서는 마음씀의 세 가지 계기를 통해 하이데거가 주장하는 근원적이고 실존론적인 시간성의 의미를 밝히고자 한다. 그리고 나서 이렇게 해명된 시간성 개념을 다시 세 가지 탈자태, 즉 장래, 기재, 현재의 양태를 현존재의 본래성과 비본래성의 차이에 따라 검토하고자 한다. 끝으로, 퇴락한 현존재의 시간성인 세계시간과 통속적인 시간에 대해서도 살펴봄으로써, 이러한 시간개념도 현존재의 일상적인 존재양식임을 대비적으로 보여주고자 한다.
[ "본고는 하이데거의 현존재와 시간성의 의미를 살피고, 현존재의 존재가 마음씀인 이유와, 마음씀의 의미가 왜 시간성인지 고찰한다. 특히 마음씀의 세 가지 계기를 통하여 그가 주장하는 근원적, 실존론적의 시간성의 의미를 밝히고 퇴락한 현존재의 시간성인 세계시간과 통속적 시간에 대해 살피고, 이런 시간개념도 현존재의 일상적 존재양식임을 대비적으로 보여준다.", "하이데거 철학에 있어서 ‘시간’개념은 그의 존재 개념과 더불어 가장 근본적이고 중요한 주제로 간주된다. 하이데거의 주저 존재와 시간 에서도 드러나듯이, ‘존재’는 근본적으로 ‘시간’과 관련되어 있는 상호 공속관계에 있을 뿐만 아니라, 이 책의 서두를 “모든 존재 이해 일반을 가능하게 하는 지평으로서 시간을 해석하는 것이 이하 논술의 우선적인 목표”라고 밝히기도 하였다. 또한 “시간은 모든 존재 이해 및 모든 존재해석의 지평으로서 밝혀져야 하고 순수하게 개념파악 되어야 한다.”거나 “존재는 시간으로부터 개념파악 되어져야 하며, 또 존재의 갖가지 양태나 파생태도 그것들의 변양과 파생에 있어서는 사실상 시간을 주시함으로 해서 이해가능하게 된다.”고 하였다. 이처럼 그의 사유에서 시간은 존재 개념과 함께 별개로 다루어질 수 없는 불가분적인 개념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시간개념에 대한 연구는 다른 주제에 비해 그렇게 활발하게 전개되지 못한 면이 있다. 그 이유 중에서 가장 근본적인 것은 하이데거의 저서 속에 함축된 시간개념에 관한 내용을 체계적으로 해석해 내는 일이 그 만큼 어려웠기 때문일 것이다.", "하이데거 철학에 있어서 ‘시간’은 존재 개념과 더불어 가장 중요한 주제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시간개념에 대한 연구는 활발하게 전개되지 못했다. 근본적인 이유는 하이데거의 저서 속에 함축된 시간개념에 관한 내용을 체계적으로 해석해 내는 일이 그 만큼 어려웠기 때문이다." ]
A201007092498
현대사회 성 모랄을 위한 마르쿠제 ‘에로스’ 이론의 적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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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쿠제는 1960년대 미국의 진보된 산업사회의 파괴적인 속성에 반발하여 좀 더 자유롭고 에로틱한 사회와 존재를 갈망했다. 그는 인류문명 발전의 원동력을 ‘에로스’ 개념으로 규정하고서 신플라톤주의의 유토피아 사회의 구현을 동경했다. 그것은 서구의 근대 이후에 이데아나 신과 대체되었던 인간의 이성이 이룩해낸 과도한 자본주의 사회의 병폐를 치유하고자 진보된 문명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에로스’를 상실하게 만드는 모든 근원들에 대한 ‘위대한 거부’를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그의 ‘에로스’ 이론의 핵심은 인간의 마음이 영혼으로, 그리고 마침내 이데아의 수준으로 올라가도록 하는 것이어서 지나치게 감각적인 성행위만을 강조하는 현대사회를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마르쿠제의 ‘에로스’ 이론은 우리의 현대사회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므로 필자도 그의 견해에 공감하여 첫째, 이성과 감성의 균형을 유지하는 목적으로서 성적 교육뿐만 아니라 도덕성의 교육도 강화해야 한다는 점, 둘째, 21세기의 도래와 더불어 새로운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미학적 패러다임을 구축하는 것이 절실하다는 점, 그리고 셋째, 우리의 모더니즘 사회와 포스트모더니즘 사회 사이의 판이한 이데올로기들을 중재함으로써 합에 이르려고 노력해야만 한다는 점을 제시하였다.
[ "본고는 필자가 마르쿠제의 에로스 이론에 공감하여, 이성과 감성의 균형 유지의 목적으로서 성적 교육과 도덕성의 교육 강화와, 21세기의 도래와 더불어 새로운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미학적 패러다임을 구축, 그리고 우리의 모더니즘 사회와 포스트모더니즘 사회 사이의 판이한 이데올로기들을 중재로 합을 이루도록 노력해야할 점을 제안한다.", "독일 프랑크푸르트학파(Frankfurter Schule)의 핵심적인 멤버였던 마르쿠제는 마르크스주의, 훗설과 하이데거의 현상학을 융합시켰던 초기로부터 프로이드 정신분석학을 원용했던 후기에 이르기까지의 지식을 종합하여, 『에로스와 문명』과, 『1차원적인 인간』 등을 저술하게 되었다. 또한 그는 1937년 사회연구소(Social Research)가 헤겔식 마르크스주의의 독특한 해석으로 채택하게 된 철학, 사회비평, 급진적인 사회변화의 경향들을 종합한 ‘비판이론(Critical theory)’의 맥락 속에서 그는 발전적인 산업사회의 파괴적인 속성에서 벗어나 좀 더 자유롭고 에로틱한 사회를 열망했으며, 그러한 사고는 1960년대 미국 학생들에게 큰 반향을 가져왔다. 그 ‘비판이론’의 기원은 헤겔과 마르크스의 사상에 있으며, 체계화는 프랑크 푸르트 사회연구소의 호크하이머 등이 사용했던 메타포에 있다. 그 ‘이론’은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19세기의 미성숙한 낙관주의(Optimism)의 흔적을 갖고 있으며, 역사적인 그룹에 적절하게 위치해 있을 때 세계를 변형할 수 있다는 이성의 도구이다. 철학자들은 항상 세계를 해석했으며, 요점은 그것을 변화시키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마르쿠제의 ‘비판이론’의 기원은 헤겔과 마르크스의 사상에 있으며, 체계화는 호크하이머 등이 사용했던 메타포에 있다. 그 ‘이론’은 19세기의 미성숙한 낙관주의의 흔적을 갖고 있으며, 역사적인 그룹에 적절하게 위치할 때 세계를 변형할 수 있다는 이성의 도구이다. " ]
A201007092501
“배우고 묻기(學問)”로서의 배움에 관한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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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움은 숨쉬기와 유사하다. 모든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숨을 쉰다. 숨이 끊어져야만 하나의 주체로서의 삶이 마감되는 것이다. 배움이란 이렇듯 인간이 탄생의 순간부터 죽음을 맞이하는 시간 동안 끊임없이 계속되는 평생에 걸친 과정인 것이다. 이러한 배움 본성을 드러내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지만, 궁극적으로 배움이 추구하는 것은 개인의 깨달음에 있다. 이 연구에서는 인간의 배움 본성을 드러내는 동시에, 이를 통해 깨달음에 이르기 위한 방법으로서 학문(學問)으로서의 배움을 제시하였다. 가르침을 강요하는 문답(問答)과 가르침에 우선하는 학문, 타자(他者)와의 관계 맺기를 통한 배움, 몰입(沒入)을 통한 무아(無我)의 경지에서의 배움 등을 정리해봄으로써 평생학습의 주체로서 호모 에루디티오들이 지녀야 할 깨달음의 비전에 대해 살펴보았다.
[ "본고는 학문으로서의 배움을 제안한다. 문답과 타자와의 관계 맺기를 통한 배움과 몰입을 통한 무아의 경지에서의 배움 등을 정리하여 평생학습의 주체로서 호모 에루디티오들이 지녀야 할 깨달음의 비전을 살펴본다.", "인간 본성으로서의 배움이 추구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자신이 누구인지,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고 있는지에 대한 깨달음을 얻는 것이다. 감춰져 있는 자신의 잠재력과 능력, 가능성을 하나하나 발견해내고 지금보다는 좀 더 바람직한 방향으로 성장해 나가기 위해 배우는 것이다. 깨달음을 지향하는 배움의 실천방법은 숨쉬기와 유사하다 물 속이나 높은 산에 올라갔을 때와 같이 공기가 부족한 상황에서의 숨쉬는 방법이 다를 수 있겠지만 이는 특별한 경우에 해당하는 것이고, 기본적으로 모든 인간의 숨쉬기는 동일하다. 모든 인간은 코와 입을 통해 숨쉬기를 한다. 모든 인간이 동일하게 숨을 쉰다고 해서, 인간마다 숨쉬는 시간마저 똑같은 것은 아니다. 모두가 동일한 시간차를 두고 들숨과 날숨을 쉬는 것은 아니다. 각자가 서로 숨을 맞추는 일은 여럿이 어울려 기대한 결과를 얻었을 때 이를 보고 ‘서로 호흡이 잘 맞았다’고 이야기하는 것처럼 그렇게 용이한 일이 아니다. 다시 말해서, 숨쉬기의 본질은 동일하지만 그 시간과 방법에는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인간 본성으로서의 배움이 추구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자신이 누구인지, 어디서 왔고 어디고 가고 있는지에 대한 깨달음이다. 즉, 자신의 잠재력과 능력과 가능성을 발견해내고 좀 더 바람직한 방향으로 성장하기 위해 배우는 것이다. " ]
A201007092504
페미니즘 미학의 기본 개념과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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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 미학은 학문의 가장 강력한 상징인 ‘방법’에 ‘여성’과 ‘우리’가 배제되어 있어 기존의 미학이론이 학문적 정당성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가정에서 출발한다. 인식론적 근본학문으로서의 페미니즘 미학은 서양미학사의 기본 전제였던 개념과 방법, 즉 보편성, 객관성의 개념들 뿐 아니라 미적 반영 및 재현의 문제, 미적 가치의 문제 등과 관련하여 학문적 정당성의 측면에서 이의를 제기한다. 페미니즘 미학에서 보편성은 절대적이거나 선험적이지 않으며, ‘맥락적’으로 구성되는 ‘상황적 보편성’이다. 상황적 보편성이란 실재에 대한 ‘대응’ 개념이라기보다 공동체에서의 ‘합의’ 개념이며, 객관성은 주관성이 상호매개된 ‘관계주의적 객관성’이다. 페미니즘 미학은 젠더 차이를 보존하면서 개별성이 상황적 보편성과 상호매개되어 특수성으로 지양되고, 관계주의적 객관성 속에 주관성이 고려되는 ‘구성과 발견의 변증법’이다. 페미니즘 미학의 범주로서의 특수성은 여성 젠더라는 차이를 고려하는 개별성과 ‘우리’를 전제로 구성되는 상황적 보편성을 맥락적으로 구성하며, 이들의 통일을 구현하여 제3의 것으로 정립시킨다. 미적 반영의 문제에 있어서도, 각 개별자의 개인적 실행인 시선은 개별적이면서도 상황적 보편성을 매개한다. 개별자의 시선은 실재를 변형하는 이데올로기적 속성을 갖고 있다. 소위 ‘보편’ 미학에 대한 페미니즘 미학의 비판적 지점 중 하나인 ‘인식주체’도 다시 규명되었다. 페미니즘 미학은 주체와 대상의 이분법적 분리를 거부하며, 대상에게도 행위자로서의 지위를 부여한다. 또한 페미니즘 미학은 재현의 젠더에 따라 소설의 미적 가치가 달라지며, ‘보편’ 미학이 남성 중심적 미(문)학의 이론에 입각해 소설 형식의 젠더화를 드러낸다는 점도 밝혀내었다. 페미니즘 미학의 방법론은 맥락과 관점에 의해 구성되는 해석적 실행으로서, 여성 중심주의 미학을 넘어서는 새로운 미학의 길을 열어 준다.
[ "페미니즘 미학은 학문의 방법에 여성과 우리가 배제되어 학문적 정당성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측면에 이의를 제언한다. 페미니즘 미학의 범주로 특수성은 여성 젠더 차이를 고려하는 개별성과 우리를 전제로 구성하는 상황적 보편성을 구성하여 제3의 것으로 정립하고, 주체와 대상의 이분법적 분리 거부와, 대상에게 행위자로서의 지위를 부여한다. 페미니즘 미학의 방법론은 해석적 실행을 위해 맥락과 관점으로 구성하고, 여성 중심주의 미학을 넘어서는 새로운 미학의 길을 열어 줄 것이다.", "학문의 가장 강력한 상징은 ‘방법’이다. 방법은 ‘개념’에 토대해 자신을 구성하며, 학문적 정당성의 이름으로 ‘방법에 의한 지배’를 관철 한다. 무엇이 세계에 대한 합리적 설명으로 간주될 수 있는가 하는 물음은 학문적 방법, 보는 방법에 대한 투쟁 관계를 형성한다. 헤겔의 미학이론은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모든 예술의 목적은 물질적 외양과 형태 안에 정신에 의해 산출된 정체성을 부여하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의 지각과 마음과 상상에 노출된 진리와 영원함과 신성함이다.” 여기서 드러나는 정신, 정체성, 지각, 진리,재현 등의 개념은 미적 이성, 보편적 판단 등의 남성 중심적 인간 본질에 대한 개념을 전제로 하고 있다. 이렇듯 여성이 미적 합리성을 행사할 수 없으며, 미적 판단의 주체로 결여되어 있다는 것이 서양미학사의 기본 전제였다. 젠더 중립적인 것처럼 보이는 방법, 이론, 실천에는 ‘여성’뿐 아니라 ‘우리’도 소거되어 있다. 기존 페미니즘 이론가들은 여성만 제거되어 있다고 보았는데, ‘우리’의 소거는 인간 및 인간의 행위를 연구하는 모든 이론의 정합성을 거부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더 위험하다. ", "여성이 미적 합리성을 행사할 수 없으며, 미적 판단의 주체로 결여되었다는 것이 서양미학사의 기본 전제다. 이는 인간의 행위를 연구하는 모든 이론의 정합성을 거부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더 위험하다. " ]
A201007092506
「배비장전」의 성적 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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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실전 혹은 실창 판소리의 하나로 알려져 있으며, 배비장전 연구의 주요 대본이 되는 1916년 신구서림본 배비장전의 의미에 대해 고찰하였다. 20세기 이전 배비장타령의 기록은 배비장전과 동일하지 않고, 신구서림본보다 시기적으로 앞선 이본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20세기 이전 배비장전의 존재 형식에 대해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이 논문은 기존의 접근 방식을 탈피하여 배비장전이 20세기 극장의 성립, 판소리 산정 소설의 출판 등의 조건을 문화적 배경으로 하여 형성된 텍스트일 가능성을 도모해 보았다. 구체적으로 이 텍스트가 판소리의 유명한 대목들을 차용하여 서사의 공간을 구성하였다는 점과 춘향전의 해석적 지평에 기대어 모티프를 서술하고 있다는 점을 들어, 현존 서사의 형성 시기가 20세기 초반일 수 있음을 논증한 것이다. 이 소설은 성적 쾌락을 꿈꾸는 남성들의 판타지였다. 연기와 포즈로 성적 쾌락을 극대화하는 판타지로서의 이해는 기존 풍자소설로서의 설명과 일정한 거리를 둔다. 이러한 관점에서, 전대 기생 인물에 비해 주체적 여성상으로 논의되었던 애랑이 여성의 자의식 확대 현상을 기반으로 등장한 인물이라고 논의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가 제기된다. 분석의 결과, 애랑은 ‘유혹’만으로 정체화된 불균형적 인물이어서, 그의 주도성은 남성 향유층이 서사에 공감하며 쾌락을 추구하면서도 그에 따른 도덕적 부담감마저 전가시키려는 욕구가 전략적으로 반영된 결과로 해석될 수 있었다.
[ "본고는 실전 또는 실창 판소리의 하나로 알려진 배비장전의 의미를 고찰하기 위하여 선행의 접근 방식에서 탈피한 20세기 극장의 성립, 판소리 산정 소설의 출판 등의 조건을 문화적 배경으로 형성된 텍스트일 가능성을 도모한다. 판소리의 유명한 대목들을 빌려 서사의 공간을 구성하고 춘향전의 해석적 지평에 기대어 모티프를 서술하는 점으로, 현존 서사의 형성 시기가 20세기 초반일 수 있음을 밝힌다.", "「배비장전」의 가장 이른 시기 대본은 1916년 신구서림 본이다. 그러나 기존 「배비장전」 연구 는 이 작품이 19세기 즈음에 형성 되었다는 것을 전제한다. 이들은 문헌 기록들에 ‘배비장’ 이나타나는 시기와 배경이 되는 사회의 모습, 유사한 모티프 소설의 존재 등을 근거로 제시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소설 「배비장전」이 기록에 나타난 ‘배비장’들과 다른 텍스트일 수 있다는 가능성 또한 제기되었다. 「배비장전」은 또한 ‘실전(失傅)’ 혹은 ‘실창(失唱’ 판소리로서 다루어졌다. 실전 혹은 실창의 경계는 대개 19세기 말이다. 그러나 20세기 초반 창으로 불렸고 창극의 레파토리로 각광을 받았던 작품과 그 실체를 알 수 없는 작품을 같은 범주에서 논의 하 는 것은 문제가 있다. 이들이 ‘골계성’ ‘향유층’ ‘작품성’ 등 동일한 요인 때문에 같은 운명을 겪게 되었다는 것은 실상을 단순화 시킨 논의라고 하겠다. 여기에서 ‘실전’과 ‘실창’의 시기 경계를 짓는 일에 앞서 각 텍스트가 흥성했던 문화적 배경과 존재양식을 밝히는 작업의 필요성이 제기된다.", "20세기 초반 창으로 불렸고 창극의 레파토리로 각광을 받았던 작품과 그렇지 않은 작품을 같은 범주에서 논의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이들이 ‘골계성’ ‘향유층’ ‘작품성’ 등 동일한 요인 으로 같은 운명을 겪게 되었단 사실은 실상을 단순화 시킨 논의라고 하겠다." ]
A201007092507
『동아일보 스타일북』에 대한 국어학적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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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스타일북」은 동아일보사가 기사 작성에 참고할 수 있도록 1년여 동안 기획, 정리, 출판 작업을 한 끝에 2004년 10월에 발간한 실무 중심 지침서이다. 그동안 어문 규정의 개정 및 폐지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았던 점을 감안할 때 비록 국어학계의 성과는 아니지만 관련 실무자들이 중심이 되어 일정한 연구 성과를 내놓았다는 점은 주목할 만한 일이다. 이 책은 고유 명사 및 전문 용어에 작은 따옴표를 사용하고 ‘해, 섬, 강, 산’ 등을 외래어 뒤에 붙여 쓸 수 있도록 하고 다양한 문장부호를 추가하고 외래어 표기법을 보완하고 일부 부적절한 어휘 사용을 바로잡는 등 기존의 규정을 개정하는데 참고할 만한 여러 정보를 제공하고 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자체적으로 많은 문제점들을 내포하고 있다. 여러 맞춤법 오류, 모순된 내용, 일관성 없는 표기, 비문, 외래어 남용 등이 바로 이에 해당하는데, 본고는 이 둘을 잘 종합하여 어문 규정의 개정에 조금이라도 기여할 수 있는 방향으로 연구를 진행하였다.
[ "동아일보 스타일북은 실무 중심 지침서로, 기존의 규정 개정에 참고할 만한 정보를 제공하면서도 많은 문제점들을 가지고 있어, 이를 잘 종합하여 어문 규정의 개정에 기여할 수 있는 연구를 수행한다.", "현행 어문규정은 1988년 전후로 고시되어 지금까지 근 20여년 가까이 시행되어 오고 있다. 그동안 다양한 문제점이 드러나면서 여러 학자 및 전문가가 어문규정의 부분적인 개정이나 폐지를 주장하였지만 전체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데까지는 이르지 못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동아일보사가 기사 작성에 참고할 수 있도록 실무 중심 지침서로 내놓은 『동아일보 스타일북』은 어문규정 관련 연구에서 주목할 만한 가치를 지닌다. 비록 이 책에 수록되어 있는 어문규정 관련 내용이 일부분에 지나지 않지만, 수십 년 동안 글을 써 온 기자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기사 작성 전반에 대한 새로운 지침서가 탄생했다는 점은 연구자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필자는 이 책이 어문규정의 개정에 좋은 실마리를 제공해 줄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내용 검토를 진행하였다. 그러나 이 책의 도움을 받아 어문규정 전반에 대한 개선책을 모색하려던 처음의 계획을 도중에 수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예상과는 달리 어문규정 관련 내용이 소략하고 짜임새가 부족한 데다가 이 책의 전체적인 체계와 내용 면에서 문제점들이 많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동아일보사가 기사 작성에 참고되는 실무 중심 지침서인 『동아일보 스타일북』은 어문규정 관련 연구에서 주목할 만한 가치를 지닌다.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어문규정 관련 내용이 소략하고 짜임새가 부족한 데다가 문제점들이 많이 발견되었다." ]
A201007092509
漢語學習으로 본 소설 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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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중국과의 사대외교를 통해 동아시아의 일원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이러한 국제적 정황은 외교를 위한 ‘通事’ 즉 역관 양상을 필수적으로 요구하였다. 따라서 역관 양성을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했고, 한어학습을 위한 역학서가 절실하였다. 고려시기 「老乞大」·「朴通事」, 조선의 「訓世評話」·「伍倫全備」는 그 대표적 예이다. 여기서 이들 譯學書의 성립에는 시대적 요구에 따른 변천과 함께 일정한 연관 관계가 감지된다. 특히 역학서에 소설이 연계되고 있어 소설사의 측면에서 주목할 만하다. 「박통사」와 「훈세평화」에는 각각 「西遊記」와 「剪燈新話」의 한 대목이, 「오륜전비」는 희곡 그 자체로 수용된 때문이다. 역학서는 생활 언어 습득이라는 특성상 일상의 상황을 설정해야 했으며, 「박통사」는 이점에서 오랜 기간 학습서로 애호되었다. 이때 소설은 ‘일상성’과 ‘구어체’가 활용되어 역학서의 성격에 부합한 것이다. 하지만 조선의 경우에는 이를 인정하면서도 교화적 성격을 중시하였다. 「훈세평화」는 바로 이점이 감안된 교재이며, 당시 「전등신화」의 「愛卿傳」 또한 ‘대중성’과 ‘교훈성’을 인정받았다. 여기서 「오륜전비」는 오륜전·오륜비 형제의 효성을 다룬 ‘교훈성’과 함께 일상 생활언어인 白話로 구성된 완결된 이야기 구조가 갖춰져 ‘서사성’에의 긍정을 이루었다. 이처럼 역학서는 역관 양성의 필요성, 국가 차원의 요구, 중국 사회에 익숙한 역관 등이 이룬 결과물이며, 소설은 이에 부응해 그 한 몫을 차지한 것이다.
[ "우리나라는 중국과의 외교를 위한 通事, 즉 역관 양상을 필수적으로 요구되어 이를 위한 제도적 장치와 한어학습을 위한 역학서가 절실했다. 역학서는 생활 언어 습득이라는 특성상 일상의 상황 설정이 필요했고, 이때 소설은 일상성과 구어체가 이용되어 역학서의 성격에 부합했다. 역학서는 역관 양성의 필요성, 국가 차원의 요구, 중국 사회에 익숙한 역관 등이 이루어낸 결과물이며, 소설은 이에 부응한 것이였다.", "오랜 기간 동아시아는 중국을 중심으로 주변국과의 간단없는 관계를 맺어왔다. 이점에서 ‘車同就, 書同文.’은 그 역사적 정황을 간명하게 함축한 말이다. ‘수레’와 '문자'는 단순한 문자적 의미를 넘어 제도와 사상을 포괄하고 있는 것이다. 그만큼 주변국은 정치•경제•사회•문화의 제 방면에서 중국과 관련 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과정에서 주변국들은 漢文 차용에 따른 文語와 口語의 불일치라는 문제가 야기되었다. 우리의 경우 이 문제는 한글 창제 이후로도 지속되었다. 한문이 동아시아 공용문자였던 때문이다. 이때 사대부 관료 문인이 외교관계에 직접 관여했지만 실무를 전담할 순 없었으며, 국내의 관공문서 작성에도 한문을 구사할 수 있는 담당 인력의 확보가 필요하였다. 따라서 한문 교양을 갖춘 吏育의 양성은 중요한 문제였다. 재미있는 점은 이 과정에 한문소설이 교재로 이용된다는 것이다. 吏文學官이었던 林昔(?~1592)의 소설 註解書인 『勢燈新話句解』는 대표적인 예다. 『설공찬전』 파동과 같은 소설배격이 버젓했던 시대에 『전등신화』의 주해서를 편찬했으니 특이한 일이라 하겠다. ", "漢文 차용에 따른 文語와 口語의 불일치라는 문제는 한글 창제 이후로도 지속되었다. 한문이 동아시아 공용문자여서다. 또한 사대부 관료 문인이 외교관계에 직접 관여했지만 실무를 전담못해서, 국내의 관공문서 작성에도 한문을 구사할 수 있는 담당 인력의 확보가 필요했다." ]
A201007092513
수용자의 생활조건과 권리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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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컨대 개정안 제6조 두 개의 조문으로 나누어 첫 번째 조문에서는 ‘교정시설의 수용규모’라는 제목 아래 모든 교정시설의 수용기준을 500명으로 한정하는 강행규정을 두어야 할 것이며, 두 번째 조문에서는 ‘교정시설의 설비기준’이라는 제하에 제1항에 개정안 제6조 제2항의 내용을 담고, 제2항을 신설하여 교정시설의 설비에 관한 법무부령 또는 대통령령의 근거규정을 마련하여야 할 것이다.
[ "개정안 제6조 조문을 두개로 나누어 첫 번째 조문에는 강행규정과 두 번째 조문에는 제 6조 제2항의 내용을 담아야 한다.", "1950년에 제정된 현행 행형법은 그동안 여덟 차례에 걸쳐 개정되었지만 이번 제9차 개정은 부분적 개정에 그치는 것이 아니고 법률의 명칭부터 거의 모든 것을 고치는 ‘전부개정’이라는 데서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앞으로 상당한 기간 내에 이러한 전면적 개정이 다시 가능하리라 기대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이번 개정안은 장기적 관점에서 행형이 나아갈 방향을 선도하는 역할을 수행하여야 한다. 현재의 상황에 맞추는 개정이 아니라 현재의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버팀돌과 지렛대가 되는 개정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중요한 것은 수용자의 생활조건과 권리구제에 대한 관심이다. 그동안 수용자의 인권에 대한 논의에서 중심이 된 것은 국가공권력으로부터 ‘침해받지 않을 권리’의 문제였다. 즉, 개인의 기본적 권리가 국가권력으로부터 부당하게 침해받지 아니할 소극적‧방어적 기본권인 ‘자유권적 기본권’을 확보하고 지키는 일에 주력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법치주의와 민주주의가 어느 정도 성장한 최근 이후의 상황을 고려하면 행형의 영역에서도 이제 단지 국가로부터 침해당하지 않을 권리를 보장받는 것만으로 수용자의 인권문제가 해결되었다고 할 수는 없게 되었다.", "1950년에 제정된 현행 행형법은 거의 모든 것을 고치는 ‘전부개정’이라는 데서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앞으로 상당한 기간 내에 이러한 전면적 개정이 다시 가능하리라 기대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이번 개정안은 장기 관점에서 나아갈 방향을 선도하는 역할을 수행하여야 한다." ]
A201007092517
수사학과 변증법의 위상변화에 관한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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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학과 변증법은 과학적인 탐구대상에 대한 오래된 논증이론이다. 수사학이 주제의 논증이론으로 제시될 때 변증법은 사실관찰의 방법론적 도구로 활용되었고, 변증론이 주제형성의 논증이론으로 정립될 때 수사학은 사실기술의 합리적 도구로 이용되었다. 이 글은 진리탐구의 주제 제시와 주제논증의 방법론에 관한 수사학과 변증법의 관계적인 위상변화를 고찰하는 것이 목적이다. 고전수사학은 진리에 대한 사유체계의 추론으로 변증론의 논리를 수용하였다. 플라톤은 진리의 주제의식을 전제로 하는 수사학은 인정하였으나 선하지 않은 행위합리화를 논의하는 변증적인 수사학은 거부한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는 주제제기의 수사학과 논증의 방법으로서의 변증론을 동일시하여 변증론을 수사학의 상대적 대응물로 간주하였다. 한편 고전수사학의 한 부류인 소피스트 수사가들은 진리가치의 추구보다는 설득과 수사적 언술을 구사하는 현실의 상황적 행위를 정당화하는 것을 강조하였다. 이러한 전통은 수사학을 본래의 주제가치의 창조성보다는 행위의 당위적 합리화에 이용되는 문예적 장식물로 그 위상을 격하시켰다. 수사학의 위상은 19세기 이후 변증법의 부활과 더불어 새로운 전기를 갖게 되었다. 그동안의 철학적 인식론에 풍미하던 형식논리학에 대한 칸트의 비판은 사유인식과 존재의 규명에 논리적 모순이 있음을 논증하였다. 그러나 칸트의 변증론은 형식논리상의 완전성에 대한 존재론적 증명이 내포하는 모순점을 해명하지 못하였다. 헤겔은 개별자의 인식수준에서 정신 현상학의 변증법적 논증으로 칸트의 모순을 극복하였고, 마르크스는 헤겔의 사유인식에서 작용하는 운동역할을 개인수준에서 집단과 계급수준으로 차원을 확대 적용하여 사회구조의 계급변화를 설명하는 역사발전의 변증론을 제시하였다. 헤겔과 마르크스의 변증론적 논증은 20세기의 철학사상과 논증이론에 큰 영향을 주었다. 그 결과 그동안 망각되었던 아리스토텔레스의 고전수사학과 변증이론이 재조명되어, 오늘날의 신수사학이라는 새로운 논증이론으로 제시되어 있다. 신수사학의 변증논리는 주제가치의 실존성에 대한 논증을 경험적 실증주의 보다는 수사학적 상황에 따른 정신현상의 인식작용으로 입증한다. 페렐만이 수용하는 변증법은 개인과 집단의 가치갈등과 행위모순을 극복하는 이념적 가치성향 때문에 과학적인 실증주의만큼 신뢰를 받지 못하고 있다. 아직 수사학과 변증법의 관계위상에 대한 논의는 지속되고 있다. 그러나 대체로 현대의 수사학 연구들은 수사학과 변증법을 상호보완적인 개념으로 주제의식의 문제제기는 수사학 그리고 제기된 문제의 논증은 변증론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일반적이다.
[ "본고는 수사학과 변증법의 관계적인 위상변화를 살펴본다. 고전 수사학의 전통은 수사학의 당위적 합리화에 이용되는 문예적 장식물로 그 위상을 격하시켰고 19세기 이후 변증법의 부활과 더불어 새로운 전기를 가지게 되었다. 헤겔은 변증법적 논증으로 칸트의 모순을 극복하고, 마르크스는 헤겔의 사유인식에서 작용하는 운동역할을 집단과 계급수준으로 확대 적용하여 역사발전의 변증론을 제시하고 이들의 논증은 20세기의 철학사상과 논증이론에 큰 영향을 끼쳤다. 그 결과 그간 잊었던 아리스토텔레스의 고전수사학과 변증이론이 다시 조명되어, 신수사학이라는 새 논증이론으로 나타났다. 이 새로운 변증논리는 주체가치의 실존성에 대한 논증을 수사적 상황에 따른 정신현상의 인식작용으로 증명한다.", "자연현상과 인간의 사유관념에 대한 과학적 탐구는 진리의 규명을 전제로 한다. 과학도들의 진리 탐구는 드러난 현상에 대한 진실의 값을 밝히고자 한다. 어떤 것에 대한 진실의 값은 그것을 이루고 있는 개체의 총체적인 값이다. 전체는 낱개의 합으로 개체의 입장에서 전체를 납득하기 어렵다. 개별자가 자신이 속하는 전체의 참값을 아는 길은 사유를 통한 추론으로 가능할 뿐이다. 과학도의 사유는 대상에 대한 논리적 이론의 설정과 이론적 맥락에 따른 관찰의 과정으로 대별된다. 사유대상의 참값에 대한 논리적 추론은 인간의 오관을 통한 감각적 경험을 표현하는 상호 간의 의사소통이 가능한 언어개념으로 나타낸다. 대상에 대한 감각적 인지의 조합은 의사소통을 위한 언어의 개념적 속성을 부여한다.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 간에 서로 의사소통을 하기위해서는 그들이 함께 인식하는 대상의 성격에 대한 이해를 공유하고, 상호 공유하는 개념간의 관계에 작용하는 법칙을 서로 믿고 신뢰해야한다. 대상의 속성을 이해하고 대상개념간의 관계 작용을 언어구조로 나타내는 이론은 논리적 추론이다. ", "자연현상과 인간의 사유관념에 대한 과학적 탐구는 진리의 규명을 전제로 한다. 또한 사람들 간에 서로 의사소통을 하기 위해서는 그들이 함께 인식하는 대상의 성격에 대한 이해를 공유해야 하고 대상의 속성을 이해해야 한다" ]
A201007092521
松堂 朴英 시에 나타난 정신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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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조선 시대 중기의 무인이면서 학자인 송당(松堂) 박영(朴英, 1471-1540)의 삶과 그의 시에 나타난 정신세계에 대한 고찰이다. 송당의 품성은 첫째 사심이 없다. 둘째 학문 수준이 높다. 셋째 생활이 검소하다. 넷째 심성이 어질다. 따라서 송당은 된 사람이요, 든 사람이요, 난 사람이라 할 수 있다. 송당(松堂)은 겉모습보다는 속마음을 중시했다. 시작(詩作)에 있어서도 형의(形意)보다는 전신(傳神)을 우위에 두었다. 송당은 비록 벼슬살이를 하였지만, 그의 마음은 언제나 위기지학을 추구하였다. 그는 이러한 학문 자세를 바탕으로 자신을 성찰하고 있다. 송당은 그 자신이 무인(武人)이다. 그러나 그의 시에는 무인의 곧은 기운과 학자의 청렴(淸廉)한 정신이 그대로 녹아 있다. 그러나 무인의 호방하거나 강건한 기상은 그다지 보이지 않는다. 그의 시는 대단히 철리적(哲理的)이다. 그의 시에는, 직설법을 쓴 것이 아니라 비유법을 써서 많은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송당 시에 나타난 수사(修辭)의 가장 큰 특징은 유(有)와 무(無), 시(是)와 비(非)의 혼용이다. ‘유(有)’도 아니요, ‘무(無)’도 아닌 중도(中道), 보편(普遍)을 지향하고 있다. 이러한 수사(修辭)가 나온 배경은 그가 살아오면서 숫한 시련을 겪었지만 세상을 부정적으로 본 것이 아니라 긍정적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그는 학문의 참맛을 안 선비였다. 그의 시의 풍격은 충담(淡) 소산(蕭散)하다. 욕심 없는 선비의 담담한 심정을 시에 나타내었기 때문에 이러한 풍격이 나오게 되었다. 그의 시 에는 청일(淸逸)하거나 고졸(古拙)한 풍격(風格)도 가끔씩 보인다. 본고를 통해, 그동안 간과했던 학자이면서 시인인 송당 박영의 일면을 알 수 있다. 이와 함께 종래의 무인(武人)은 글을 못한다는 편견을 바로잡았으면 한다.
[ "본고는 조선 시대 중기의 무인이자 학자인 송당 박영의 삶과 그의 시에 나타난 정신세계에 대하여 살펴본다. 송당의 품성은 된 사람이요, 든 사람이요, 난 사람이며, 겉모습보다는 속마음을 중시했다. 위기지학을 추구하여 이를 토대로 자신을 성찰하고 있다. 그의 시에는 무인의 곧은 기운과 학자의 청렴한 정신이 그대로 녹아 있으나 무인의 호방하거나 강건한 기상은 보이지 않고, 대단히 철리적이다. 비유법을 사용했고, 욕심 없는 선비의 담담한 심정을 시에 나타내 그의 시는 충담 소산했다.", "선산 출신 가운데 학문으로 유명한 분은 고려대에는 야은(治隱) 길재(吉再, 1353-1419)가 있고, 조선 시대에 들어와서는 신당(新堂) 정붕(鄭鵬, 467-1512), 송당(松堂) 박영(朴英), 인재(說齋), 최현(崔晛, 1563-1640) 두드러졌다. 이 가운데 본 고에서 다루고자 하는 사람은 송당(松堂) 박영(休英, 1471-1540)이다. 송당은 조선 중기의 명신(名臣)이다. 그는 무관(武官)이면서 훌륭한 학자였다. 그의 본관은 밀양(密陽)이며, 자는 자실(子實)호가 송당이다. 이조참판을 지낸 수종(壽宗)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양녕대군(讓奉大君) 제(提)의 따님이다. 그는 어릴 때부터 무예에 뛰어나 담 너머 물건을 쏘아도 반드시 맞히므로, 아버지가 기이하게 여겨 이름을 영 (歎)이라 하였다. 1487년(성종18) 이세필(李世弼) 막하(幕下)에 있을 때 명나라에 다녀왔으며, 1491년 원수(元師) 이극균(李吏均)을 따라 건주(建州W)를 정벌하였다. 이듬해 돌아와서 겸사복(兼司懷)이 되고, 9월에 무과에 급제한 뒤 선전관(宣傅官)이 되었다 항상 자신이 무인으로서 유식한 군자가 되지 못한 것을 한탄하였는데, 1494년 성종이 별세하자 가솔(家率)을 거느리고 고향인 선산으로 돌아왔다. 낙동강 가에 집을 짓고 송당(松堂)이라 편액을 걸고, 정붕(鄭臟)‧ 박경(朴耕) 등을 사우로 삼아 『대학』과 다른 경전을 배워 격물치지(格物致知)에 힘써 깨닫는 바가 많았다.", "본 고에서 다루고자 하는 사람은 송당(松堂) 박영(休英)이다. 송당은 조선 중기의 명신(名臣)이자 무관(武官)이면서 훌륭한 학자였다. 그의 본관은 밀양(密陽)이며, 자는 자실(子實)호가 송당이다. 송당은 『대학』과 다른 경전을 배워 격물치지(格物致知)에 힘쓴 인물이다." ]
A201007092525
송암 권호문의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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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는 송암이 <독락팔곡>에서 사용하고 있는 독락(獨樂)의 의미를 세밀히 밝히고, 이 독락(獨樂)의 개념을 바탕으로 ‘마음의 득실을 잊고 그 뜻을 즐긴다.’ 것의 의미와 <독락팔곡>에서의 그 구체적인 실현 양상을 살펴보고자 했으며, 아울러 <독락팔곡>이 송암의 관유온유(寬裕溫厚)함 속에서 이루어졌음을 살폈다. 우선 송암의 <독락팔곡>에 쓰인 독락(獨樂)의 의미는 ‘가슴 속에 얻은 것은 물(物)에 따라 변하지 않고 언제나 호연하게 그대로 있어, 안으로 돌이켜보아도 거리낌이 없고 위로 하늘을 우러러보거나 아래로 땅을 굽어보아도 부끄러움이 없는 것’이며 이것은 독선을 통하여 “가슴 속의 즐거움으로부터 미루어 물에 미침에 이른다면 곧 천지 만물이 모두 나와 일체이니, 어느 하나도 나의 즐거움 속에 있지 않는 것이 없다.”의 즐거움이다. 이때 독락(獨樂)의 그 즐거움은 그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 속에서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송암이 독락(獨樂)하는 것은 그 뜻으로 그것은 ‘마음의 득실을 잊는 것’이며, 그 뜻을 즐긴다는 것은 ‘마음의 득실을 잊도록 하는 그 뜻’을 즐긴다는 것이다. 마음의 득실을 잊는다는 것은 세상살이에서 득실을 따지는 마음 곧 기심을 잊는다는 것으로 송암에게는 활로에 대한 마음을 잊는 것이다. 송암은 <독락팔곡>에서 학문연구를 통해 인의를 추구하며 이를 통해 마음의 자득을 얻어 마음의 득실을 잊고 그 뜻을 즐기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송암의 <독락팔곡>은 관유온유(寬裕溫厚)함을 드러내고 있는데, 이는 퇴계의 온유돈후를 계승한 것으로 송암이 실제 생활 속에서 실천하는 것이다. 송암은 관유온유(온유돈후)를 바탕으로 하기에 편안하지 못한 마음을 노래로 만들면서도 그 희로애락의 마음이 적절함을 얻어 그것이 노래에 나타날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 적절함이란 송암이 <독락팔곡병서>에서 말한 ‘말 가운데 뜻이 있고 뜻 속에 아름다움이 있다’고 했을 때의 그 아름다움인 것이다. 송암은 이러한 <독락팔곡>을 불러, 그 속에 들어 있는 뜻을 펴서 성정을 기르고자 했던 것이다.
[ "본고는 송암이 독락팔곡에서 사용하고 있는 독락의 의미를 자세히 밝히고, 이 개념을 토대로 마음의 득실을 잊고 그 뜻을 즐긴다는 것의 의미와 그 구체적인 실현 양상을 알아보고, 독락팔곡이 송암의 관유온유함 속에서 이루어짐을 살펴보았다. 송암은 독락팔곡에서 학문연구를 통해 인의를 추구하고 이것을 통해 마음의 자득을 얻어 마음의 득실을 잊고 그 뜻을 즐기는 모습을 보여준다. 송암의 독락팔곡은 관유온유함을 나타내는데, 이는 퇴계의 온유돈후를 계승하여 실제 생활에서 실천하기에 그 희로애락의 마음이 적절함을 얻어 노래에 나타날 수 있었다.", "앞 항목에서 살펴보았듯이, 독락(獨樂)이란 가슴 속[胸中]에 자득(自得)한 즐거움이 가득한 후에 그 즐거움이 만물에 미침[及物]에 이르러 나와 천지의 만물이 일체가 되는 것’이며 ‘가슴 속에 얻은 것은 물(物)에 따라 변하지 않고 언제나 호연(治然)하게 그대로 있어, 안으로 돌이켜 보아도[內省] 거리낌이 없고 위로 하늘을 우러러보거나 아래로 땅을 굽어 보아도 부끄러움이 없는 것’이다. 나아가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권근은 군자의 즐거움에 근본과 말단[本未]이 있다고 하면서 가슴 속[胸中]에서 얻은 것은 근본이고 물[物]에 미침에[及物] 나타난 것은 말단이라고 하면서, 가슴 속[心中]의 즐거움으로부터 미루어 물(幼)에 미침〔及物〕에 이른다면 곧 천지 만물이 모두 나와 일체이니, 어느 하나도 나의 즐거움 속에 있지 않는 것이 없다고 하였다. 송암이 <독락팔곡병서>에서 “마음의 득실을 잊고 그 뜻을 즐기면서 원사(原思)의 가난함을 달게 여기고 자장(子張)의 녹에 침 뱉으며 희황(皇)의 북창(北窓)에 기대고 화서(華西)의 고침(高沈)을 즐기니 부귀(富貴)로 어찌 혼란케 할 수 있으며 위무(威武)로 빼앗을 수가 없다”고 했을 때, 그 즐기는 뜻[志]’은 무엇이고, ‘마음의 득실을 잊고 그 뜻을 즐긴다.’고 했을 때 그 뜻을 즐기는 방법은 어떠하며, 그것이 <독락팔곡>에 어떻게 형상화되었는가? 송암은 <독락팔곡병서>에서 그 즐김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독락이란 가슴 속에 자득한 즐거움이 가득한 후 그 즐거움이 만물에 미침에 이르러 나와 천지의 만물이 일체가 되는 것’이며 ‘가슴 속에 얻은 것은 물(物)에 따라 변하지 않고 언제나 호연하게 그대로 있어, 내면에도 거리낌이 없고 위로 하늘을 보거나 아래로 땅을 보아도 부끄러움이 없는 것’이다. " ]
A201007092530
고등학교 국사 교과서 분석 ? 백제사를 중심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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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2006년 3월 1일 발행한 고등학교 국사교과서 내용 중 백제사에 대하여 분석 연구한 것이다. 이 교과서에 처음 보이는 백제사 서술은 한강유역의 백제 선주민이 남긴 빗살무늬토기에 관한 것이다. 내용은 평양 남경, 김해 수가리 유적과 같이 한강유역인 암사동 유역에 빗살무늬토기가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연구한 결과 역사 용어로써 사용하기에 ‘빗살무늬토기’가 부적절하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빗살무늬 토기는 일제강점기 ‘즐목문토기’에서 번역한 용어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빗살무늬토기에 이어 보이는 백제사는 마한의 부족연맹국의 하나인 백제국에 관한 것이다. 백제국이 자리잡은 곳은 몽촌토성이나 광주 풍납리토성이라는 설명이 교과서에 없다. 또한 같은 지명을 두고 중학교 교과서에서는 위례성, 고등학교 교과서에서는 하남위례성이라고 다르게 표기된 것이 발견되고 있다. 무원칙적인 고유명사 남용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이는 중고교 연계교육이 잘 안되고 있는 장면이기도 하다. 또한 연대 표기가 음력식이다. 학문의 국제화를 추구하는 시대적 추이에 비추어 볼 때, 이것은 학문의 후진성을 스스로 노정하는 것이다. 교과서에 서술된 백제사의 많은 사실 중에도 유독 많은 관심을 가질만한 것은 근초고왕의 업적이나 백제고분에 관한 것이다. 한국사에서 근초고왕의 대해양국 건설은 고구려 전성기의 제국 건설에 비정할 만큼 위대하기 때문이다. 또한 석촌동고분이나 방이동고분 등 백제고분은 백제문화의 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교과서는 그 어디에도 이같은 위대성이나 꽃에 대한 기술을 찾을 수 없다. 그 외 웅진 시대, 사비 시대를 비롯하여 백제사에 관련된 교과서 내용을 살펴 보았으나 부족한 설명이 허다하다. 예를 들면 한성시대에서 웅진시대로의 이행 과정, 웅진시대의 나제관계, 사비시대의 삼국관계 등등에 대한 소상한 설명이 부족하다. 이 교과서는 분류사로 편제하여 놓았다. 나이 어린 학생의 경우 분류사는 지식의 종합화에 많은 부담을 안게 된다. 문화 중심의 통사체로 편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 "본고는 2006년 3월 1일 발행된 고등학교 국사교과서 내용 중 백제사에 대하여 고찰한다. 한강유역의 백제 선주민이 남긴 빗살무늬토기는 일제강점기 용어를 번역한 그대로 사용하기에 역사 용어로써 부적절하다. 백제국으로 자리잡은 곳의 지명에 대한 설명이 없고, 중,고교 교과서에 다르게 표기되어 연계교육이 잘 되지 않고, 무원칙적인 고유명사 남용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학문의 국제화를 추구하는 시대로 연대 표기가 음력식인것은 학문의 후진성을 드러냈으며, 교과서 그 어디에도 위대성이나 백제고분에 대한 서술을 찾을 수 없었다.", "교과서에서 백제 선주민에 대한 서술은 빗살무늬 토기인의 생활에서 처음 시도하고 있다. 문제는 일제 잔재의 청산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일인들이 역사용어로 사용한 즐목문토기를 우리나라 말로 직역한 빗살무늬 토기를 역사용어로써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는데 있다. 선주민인 백제인은 마한의 54국 중의 하나인 백제국 사람들이 살았던 나라는 목지국과 더불어 맹주에 해당하는 큰 나라라고 서술하여야 한다. 백제는 철기문화와 농경문화가 발달한 한강유역의 토착세력과 북방 유이민 세력의 연합으로 건국된 나라라고 서술하고 있는 것은 좋으나, 온조설에 대한 설명을 곁들여야 한다. 백제 건국년인 18년은 ‘1895년전 연대표기는 음력을 택하여 기록한다’는 교과서 편찬 방침에 따라 표기한 것처럼 보이는데, 학문의 세계화 추세에 비추어 볼 때 이는 있을 수 없는 것이다. 고유명사 표기에 있어서 산둥 요서지방 규수 등과 같이 원칙 없는 표기법은 지양하여야 한다. 이 같은 표기로 피해를 보는 사람은 학생이다. 학습에 있어서 혼란이 야기되기 때문에 그러하다.", "백제는 철기문화와 농경문화가 발달한 한강유역의 토착세력과 북방 유이민 세력의 연합으로 건국된 나라라고 서술하고 있는 것은 좋으나, 온조설에 대한 설명을 곁들여야 한다. 이 같은 표기로 피해를 보는 사람은 학생이고 학습에 있어서 혼란이 야기되기 때문에 그러하다." ]
A201007092540
어려운 국악, 절반의 책임은 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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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운서로서 서양 고전음악 프로그램과 우리의 전통음악 프로그램을 모두 다년간 진행했다. 청취자나 진행자들이 모두 우리의 전통음악을 서양음악보다 어렵게 느끼는데, 그 까닭은 우리 전통음악 속의 한자나 한문, 역사 속의 유행이나 풍속 등을 알지 못해서 그런 것이다. 기악곡조차도 우리의 전통음악의 선율이 서양 고전음악의 선율보다 낯설게 느껴진다. 이 낯설음을 친숙하게 만들 수 있는 문화적 맥락을 알려주는 해설원고가 필요하다. 그것은 한문학 전공자들이 가장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국악 대중화의 어려움을 해소하고 창작국악이 견고한 뿌리를 바탕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국악에 대한 전반적인 연구가 이루어져야 하는데 이를 풀어내는 열쇠는 한문학이라고 생각한다.
[ "한문학은 국악 대중화의 어려움을 해결하고 창작국악이 견고한 뿌리를 바탕으로 발전하기 위해 국악의 연구를 이루고자 하는데 이를 풀어내는 열쇠가 될 것이다. ", "저는 아나운서로 주로 음악방송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KBS 1FM에서 서양 고전음악 프로그램을 약 10년간 진행 했으며, 지금은 국악방송에서 ‘우리마음 우리음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오늘 이 자리는 그동안 음악프로그램을 진행하며 겪었던 자잘한 단상들을 체계화하고 그간의 어려움을 털어놓는 자리가 될 것 같습니다. 서양음악 프로그램은 대략 10년 가까이 진행했으나 중간에 쉬는 시기도 있어서 실 진행기간은 약 6〜7년 정도이고 국악 프로그램은 이제 진행한 지 4년이 넘었습니다만 국악 프로그램은 아직도 자신이 없고 모르는 것이 너무 많아서 진행할 때 스스로 부족한 점이 많다고 느낍니다. 때로는 제작자나 국악 전공자에 게 물어도 궁금증이 해소되지 않는 부분이 많은데 이것은 저만의 어려움이 아니라 국악을 접하는 대중의 어려움이기도 합니다. 그러면 왜 이렇게 국악은 어렵기만 한 것인가 의문이 생겼습니다. 국악은 어려우니 무관심하게 되고 관심이 없으니 계속 어려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음악인데 왜 어렵다고 느껴지는 것인지 까닭을 자세히 살펴보니 국악은 많은 부분이 어려운 한자로 이루어져 있어 이 시대의 한국 사람에게는 영어보다 어렵고, 내용도 한문학 등을 기반으로 하고 있으며, 역사 속의 유행이나 풍속 등도 한문을 모르면 알 길이 없어 우리음악인데도 과거 속의 음악에만 머무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국악은 어렵기만 한 이유는 어려우니 무관심하게 되고 관심이 없으니 계속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그 까닭은 국악은 많은 부분이 어려운 한자로 이루어져 있고 내용도 한문학 등을 기반으로 하고 있으며, 한문을 모르면 알 길이 없어 과거 속의 음악에만 머물기 때문이다." ]
A201007092544
역사 다큐멘터리와 한문학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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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문학과 역사 다큐멘터리가 만나는 지점은 어디인가? 왜 이미 만났어야 할 두 분야가 아직도 제대로 만나지 못하고 있는가를 점검하였다. 「역사스페셜」의 경우를 예로 들어 그 기획의도와 제작과정을 설명하고, 한문학이 이런 다큐프로그램에 대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기대되는 역할은 왜 할 수 없는지를 간단히 살펴보았다. 역사 다큐멘터리가 역사 전공자도 아니면서 한문학에도 거리가 먼 사람들에 의해서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 현실을 감안할 때 두 가지가 긴요한 과제이다. 첫째는 한문으로 된 자료를 모두 번역되어야 한다는 것, 둘째는 이 번역된 자료들은 접근하기 쉽게 체계적으로 데이터베이스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 "한문학과 역사 다큐멘터리가 만나는 지점은 어디인지, 왜 아직만나지 못했는지 역사스페셜을 통해 고찰한다. 한문 자료를 모두 번역하고, 이 자료들은 체계적으로 데이터베이스화해야한다.", "역사는 TV 프로그램의 매력있는 소재이다. 역사는 한 사회의 구성원들이 공유하는 기억이며 상식이다. 시청자에게 쉽게 다가가는데 이보다 더 유리한 소재는 없을 것이다. 역사적 사실에 픽션을 가미한 역사 드라마 즉 사극이 우리 방송사의 주요 편성시간에 꾸준히 편성되는 인기 프로그램인 것이 이를 잘 말해준다. 역사는 TV 프로그램의 의미있는 소재이다. 역사는 한 사회의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고 미래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는 중요한 문화적 공론의 장이다. 방송사의 공영성을 담보하는 소재이다. KBS가 역사 다큐멘터리를 중요한 시간 대에 항시 편성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다큐멘터리에 대한 가장 일반적인 정의는 현실의 창조적 처리 이다.어떤 사안의 ‘진실’을 규명하기 위해 실제 있었던 ‘사실’을 재구성하는 하는 것이(창조적 처리) 다큐멘터리이다. TV 역사 다큐멘터리는 과거 실제 있었던 사실’ 즉 기록, 유물 유적 등을 바탕으로 증언이나 전문가의 분석을 덧붙여 역사적 해석을 위해 재구성하는 것이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대부분이 한자로 되어있는 각종 기록이다.", "어떤 사안의 ‘진실’을 규명하기 위해 실제 ‘사실’을 재구성하는 하는 것이 다큐멘터리다. TV 역사 다큐멘터리는 과거의 기록, 유물 유적 등을 바탕으로 증언이나 전문가의 분석을 통해 역사적 해석을 위해 재구성하는 것이다." ]
A201007092548
열하일기, 그 ‘매끄러운 공간’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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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의 경계를 넘어 탈근대적 비전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동아시아 지성사의 교해(敎海)와 마주쳤다. 그 과정에서 만난 텍스트가 열하일기다. 열하일기의 미적 특질을 한마디로 규정한다면, ‘범람하는 유머, 열정의 패러독스’라고 할 수 있다. 동영상 가운데서도 특히 애니메이션이라는 표현형식을 만나야 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애니메이션의 특성은 경계를 넘나들 수 있다는 데에 있다. 리얼한 것과 환타스틱한 것 사이를 종횡무진 누빌 수 있고, 감각들 사이를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는 것이야말로 애니메이션의 미덕이다. 이런 관점에서 열하일기의 주요 캐릭터와 스토리라인을 구성해 보았다. 애니메이션이라는 형식을 통해 열하일기가 진정 ‘오래된 미래’로 자리 잡게 되기를 희망한다.
[ "열하일기는 범람하는 유머, 열정의 패러독스로 애니메이션의 표현형식을 만나야하는 관점에서 주요 캐릭터와 스토리라인을 구성하고, 애니메이션이라는 형식을 통하여 진정 오래된 미래로 자리 잡기를 희망한다.", "푸코의 『말과 사물』은 보르헤스가 던지는 웃음과 당혹으로부터 시작한다. 문제의 텍스트는 중국의 한 백과사전을 인용하고 있다. “동물은 다음과 같이 분류된다. a)황제에 속하는 동물 b)향료로 처리하여 방부보존된 동물 c)사육동물 d)젖을 빠는 돼지 e)인어(人魚) f)전설상의 동물 g)주인 없는 개 h)이 분류에 포함되는 동물 i)광폭한 동물 j) 기타 때물주전자를 깨뜨리는 동물 n)멀리서 볼 때 파리같이 보이는 동물” 푸코가 이 원문을 보고 웃음을 참지 못했던 것은 사물들이 전혀 다른 ‘장소’에 들어서 ‘위치되고’ ‘배열되며’, 장소의 이질성에 의해 그 사물들 모두의 거처, 즉 그들 모두의 ‘공통장소’를 규정하기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푸코는 이것을 유토피아에 대비되는 ‘헤테로토피아(Heterotopia)’로 규정한다. “헤테로토피아는 혼란스럽다. 왜냐하면 그것은 비밀리에 언어를 침식해 들어가며, 이것과 저것을 명명할 수 없게 하며, 공통명칭을 분쇄하거나 혼란시키며, 우리가 문장을 구성하는 통사법뿐만 아니라 말과 사물들을 ‘결합시키는’ 상대적으로 덜 명확한 통사법까지 붕괴시키기 때문이다.”", "중국의 한 백과사전의 동물분류를 보고 푸코는 웃음을 참지못했다. 사물들이 전혀 다른 ‘장소’에 들어서 ‘위치되고’ ‘배열되며’, 장소의 이질성에 의해 그들 모두의 ‘공통장소’를 규정하기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푸코는 이를 유토피아에 대비되는 ‘헤테로토피아(Heterotopia)’라 했다." ]
A201007092556
한문의 서사전통과 근대계몽기 신문의 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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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근대계몽기 신문에 보이는 서사와 한문학의 서사양식과의 관련성을 밝힌 글이다. 근대 계몽기 논설과 잡보란에 보이는 근대적 서사는 근대계몽시기에 생성된 것이라기보다, 한문의 서사 전통을 받아들여 이를 적절하게 활용한 점을 논하였다. 예컨대 독자와 신문이 만나는 것, 신문의 기사의 단편성, 그리고 발화방식과 표기방식은 한문 서사의 전통에서도 찾을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근대적 서사의 글쓰기는 근대소설의 기원으로 근대소설 형성의 매신저로 역할을 하였다. 이러한 점에서 한문의 서사전통은 근대에 이월되었고, 한문 서사 전통의 자양분은 근대 단편 문학의 성립에도 계기적으로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 "본고는 근대계몽기 신문에 보이는 서사와 한문학의 서사양식과의 연관성을 규명한다. 한문의 서사전통은 신문에서 적절하게 활용 되었고, 근대 단편 문학의 성립에도 영향을 끼친것으로 보인다.", "내가 한국한문학회 30주년 기념 논제의 과제로 부여받은 것은 ‘근대’다. 아마도 한문학에서 근대적 변모를 밝혀보라는 주문일 듯싶다. 사실 ‘근대’라는 주제 자체도 버겁거니와, 이를 한문학과 연관하여 논의하는 것은 더욱 난감하다. 본디 주문생산이란 주문자가 요구하는 틀에 맞추어야 제격이다. 하지만 여러 가지 사정상 요구하는 주문에 따라 신제품을 제출하기보다 평소의 생각을 단순히 제기하는 것으로 맡은바 소임을 다하고자 한다. 한문의 서사는 근대계몽기의 신문매체를 통해 새로운 모습으로 재생할 소지와 가능성을 충분히 지닌 것으로 보인다.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 오면 한문학은 물론 한문학에서의 서사 역시 역사 속으로 퇴장할 운명에 직면한다. 모든 문화 현상이 그렇듯, 한문학의 서사 역시 판 쓰리 하듯이 한꺼번에 \r\n사라지지 않는다. 기왕의 전통은 새로운 양식의 자양분으로 혹은 스스로 이전과 전혀 다른 모습으로 면모하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한문 서사의 계기적 관계에 우선 주목하고, 한문 서사의 계승론적 면모를 파악할 필요가 있다.", "한문의 서사는 근대계몽기 신문매체를 통해 새로운 모습으로 재생할 소지와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한문학은 역시 역사 속으로 퇴장할 운명에 직면한다. 그러나모든 문화 현상이 그렇듯, 한문학의 서사는 한꺼번에 사라지지 않을것이다." ]
A201007092560
2005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의 문화텍스트적 의미와 한국의 문화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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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크푸르트 알게마이네 짜이퉁 19일자 1면 사설에 실린 이 기사는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 즈음하여, “떠오르는(부상하는) 한국”의 총체적 위상을 정치, 문화, 사회, 경제, 스포츠, 교육 등의 전 분야에 걸쳐 소개 및 검증해 보이고 있다. 특히 이 기사에서 사용되는 형용사와 명사의 유형들은, 지금 현시점에서의 ‘한국이라는 현상‘을 진단하고, 나아가 한국이 갖는 대외적 국가이미지의 현주소를 확인할 수 있는 유용한 좌표점을 제공해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 "프랑크푸르트의 알게마이네 짜이퉁의 기사에 실린 떠오르는 한국의 총체적 위상을 전 분야에 걸쳐 소개하고 검증하고 있다.", "현대는 적극적인 문화소통방식을 추구하는 국제교류, 협력의 시대이다. 따라서 세계 여러 국가들과 문화적 교류를 어떻게 전개할 것인가가 중요쟁점으로 부각되고 있다. 이러한 세계적 흐름 속에서 지난 2005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 한국이 주빈국으로 선정되었다는 것은 바로 우리가 지금까지의 수동적 문화수용자의 입장에서 참여적이고 적극적인 대화 주체로서 세계를 향해 문화텍스트를 형성하는 발신자가 되었다는 의미이다. 문화올림픽이라 불리는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은 세계출판시장의 가장 영향력 있는 교류의 장으로 평가받고 있다. 따라서 주빈국 개최는 한 나라의 출판을 포함한 문화적 위상을 집중적으로 해외에 홍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맥락과 관련해서 본 논문은 이제 한국이 주빈국으로 참여한 2005프랑크푸르트 도서전을 인문학적인 관점에서, 특히 한국의 문화이미지와 관련하여 재평가하고자 하며, 이를 위해 여기에서는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을 다양한 문화코드들의 의미작용으로 생산된 일종의 문화텍스트로 이해하고, 이에 대해 독일 언론들이 발신하는 메시지들을 텍스트-기호학적 방법으로 분석하고자 한다. ", "본 논문은 2005프랑크푸르트 도서전을 인문학적인 관점에서 재평가하고자 하며, 이를 위해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을 다양한 문화코드들의 의미작용으로 생산된 일종의 문화텍스트로 이해하고, 독일 언론들이 발신하는 메시지들을 텍스트-기호학적 방법으로 분석하고자 한다." ]
A201007092565
구전설화에 나타나는 성적 주체로서의 여성캐릭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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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목화 따는 노과부’의 성욕 실현 방식과 그 의미를 중심으로 성적 주체로서 여성캐릭터의 면모를 검토한 것이다. 여성캐릭터로서 이 과부는 자신의 성욕을 실현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남성을 유혹하되 점차적으로 접근해 상대방의 마음을 얻는데 성공한다. 물론 그녀의 유혹은 순간적인 쾌락을 위해서가 아니라 지속적인 관계를 맺기 위한 것이다. 또한 그녀에게는 열(烈), 수절, 내지 여성에 대한 자의식, 갈등이 없다. 그저 외로움을 극복하기 위해 남성을 유혹하는 것이다. 따라서 그녀의 유혹은 진실성을 얻는다. 구조적 의미에서 보면 이 노과부는 모든 면에서 결핍되어 있는 약자로 서사 전개상 패배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서사는 노과부의 주도로 전개될 뿐만 아니라 그녀의 성공담으로 귀결된다. 이는 그녀의 처지에 공감한 이들이 그에 걸맞는 대립적 인물을 동원해 노과부의 이야기를 만들어 냈기 때문이다. 요컨대 ‘목화 따는 노과부’는 자신의 불리한 삶에 절망하거나 주저앉지 않고 행복한 삶을 쟁취하기 위해 노력하고, 그리고 그것을 쟁취한다. 따라서 그녀는 자신의 삶에서 소외되지 않았고, 서사에서도 주도적인 역할을 함으로써 역시 소외되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 이 노과부는 진취적인 여성캐릭터로서 설화를 접하는 현재 여성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라 생각한다.
[ "본고는 목화 따는 노과부의 성욕 실현 방식과 그 의미를 중심으로 여성캐릭터를 성적주체로 살펴본다. 과부는 성욕 실현을 위해 남성을 유혹한다. 이는 행복한 삶을 위해 노력했고 그것을 쟁취했다. 그녀는 자신의 삶에서 소외되지 않았고, 서사에서도 주도적 역할을 함으로써 그녀는 진취적인 여성캐릭터로서 설화를 접하는 현재 여성들에게 긍정적 영향을 미칠것이다.", "지금까지 설화 속 여성 인물 연구는 자료상의 한계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대체로 과부 열녀 등 가부장제 사회 제도로 억압받는 여성 인물에 한정되어 왔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사회 문화적 맥락을 고려해 여성 억압의 실체를 파헤친다는 점에서 그러한 연구는 현재적으로도 중요한 의미가 있다. 하지만 수난받는 여성인물류를 자꾸 접하는 것은 현재 여성의 삶을 위축시킬 염려가 있다. 현재의 약자로서의 여성의 위상이 오랜 세월부터 그렇게 결정지어진 것으로 보일 것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고전 여성 캐릭터 연구는 자료 속 캐릭터 연구에 머물 수 없다. 자료 속 캐릭터의 본질에 대해서도 정확히 분석해야 하지만 그것이 궁극적으로는 현재 여성의 삶 여성상 정립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쪽으로 귀결되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좀 더 적극적이고 진취적인 여성 캐릭터를 많이 발굴하고 강조할 필요가 있다. 본 논문은 이러한 적극적인 여성 캐릭터 발굴의 한 사례로 목화 따는 노 과부의 면모를 고찰하려고 한다. 특히 성을 실현하기 위해 동원하는 방식과 그 의미를 중심으로 그녀의 성적 주체로서의 특징을 규명하는 것이 본 논문의 주된 목적이다. 서사 구조적 측면과 신화적 맥락에 대한 언급은 이러한 특징을 검증하고 심화한다는 의미가 있다. 그리고 유사한 다른 노 과부 이야기를 더 찾아내어 이들 노 과부가 성의 실현 방식에 있어 목화 따는 노 과부와 다른 점을 검토해 보고 자 한다. 이 또한 목화 따는 노 과부의 면모를 좀 더 부각하기 위한 방편이다.", "더욱이 고전 여성 캐릭터 연구는 자료 속 캐릭터 연구에 머물 수 없고 그런 의미에서 좀 더 적극적이고 진취적인 여성 캐릭터를 많이 발굴하고 강조할 필요가 있으며 본 논문은 이러한 적극적인 여성 캐릭터 발굴의 한 사례로 목화 따는 노 과부의 면모를 고찰하려고 한다." ]
A201007092570
조선의 여협(女俠), 검녀(劒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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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의 문화산업을 살펴보면 TV 드라마, 시나리오, 만화 스토리 등 다양한 문화콘텐츠 분야의 작가들이 우리의 고전에서 창작에 필요한 정보를 참고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그 시도들은 단순 소재 차용의 경우가 대부분이며 간혹 패러디를 시도하더라도 고전 작품에 대한 재해석의 정도가 약해 결과물의 작품성이나 주제의 깊이 등을 기대하기 어려운 경우가 눈에 띈다. 고전문학이 새로운 문화콘텐츠로 재해석된다면 이는 우리나라의 고전문학과 문화콘텐츠 두 영역에 모두 긍정적인 영향을 가져오는 결과를 낳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박제화되기 쉬운 고전문학은 오늘날의 문화 속에서 생동하는 작품으로 유통될 것이며, 해당 콘텐츠는 고전문학이라는 원천소스의 고유함으로 인해 여타의 콘텐츠들과 차별화될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2005년도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의 보고에 의하면 우리나라 문화산업에서 유망한 분야 중 하나로 캐릭터를 꼽고 있다. 이 연구는 고전문학의 연구 결과가 새로운 문화콘텐츠를 창작하게 하는 원천소스로 활용 가능하게 되기를 바라면서, 우선 캐릭터와 관련한 작업을 진행한 것이다. 기존의 콘텐츠에서 많이 다루어지지 않은 인물이면서 주제 면에서 보편적인 가치와 더불어 현대적인 가치로 재해석될 만한 인물을 모색한 결과, 본고는 논의 대상으로 ‘여성 검객’을 선택하였다. 고전문학의 캐릭터 연구가 문화콘텐츠 창작의 원천으로 사용 가능하려면 고전문학과 거리가 먼 문화콘텐츠 창작자들이 그 연구를 읽고 영감을 얻을 수 있도록 서술할 필요가 있다. 그렇게 되기 위해 연구가 반드시 갖추어야 하는 필수적인 요소들이 있는데, 개별 인물들의 개인사, 그 인물들을 시각적으로 표현할 때 반드시 필요한 정보들 그리고 무엇보다도 캐릭터에 대한 심도 있는 재해석 작업이 그것이다. 본고는 조선시대 한문 단편인 <검녀>라는 작품을 대상으로 하여 ‘조선시대 여성 검객’이라는 캐릭터를 구축하였다. 그 과정에서 <검녀>의 하위 서사라 할 수 있는 복수의 서사, 수사의 서사, 탐색의 서사를 통해 검녀의 과거사를 구축 가능하게 했으며, 작품의 서술을 통해 시각적인 정보들을 추출하였고, 마지막으로 한 남성을 선택했다가 절해공산으로 다시 떠나는 과정을 주체성과 섹슈얼리티라는 측면에서 포착하여 그녀를 조선시대의 이데올로기를 넘어서는 여성 인물로 재해석해 내었다. 조선시대 하층 여성이면서 검술에 능한 무협의 서사는 오늘날의 문화 산업에서도 충분히 매력적인 인물이 될 것이다.
[ "본고는 캐릭터를 우리나라 문화 산업에 유망한 분야로 꼽고 고전문학의 연구 결과가 새로운 문화콘텐츠 창작의 근원으로 활용 되길 바라며 캐릭터와 관련한 작업을 수행한 것으로, 조선시대 한문 단편인 작품 검녀로 조선시대 여성 검객이라는 캐릭터를 구축하였다. 검녀의 복수의 서사, 수사의 서사, 탐색의 서사를 통하여 검녀의 과거사를 구축했고, 작품의 서술을 통해 시각적인 정보 추출과 한 남성을 선택했다가 절해공산으로 다시 떠나는 과정을 주체성과 섹슈얼리티라는 측면에서 조선시대의 이데올로기를 넘어서는 여성 인물로 다시 해석했다. 조선시대 하층 여성이면서 검술에 뛰어난 무협의 서사는 오늘날의 문화 산업에서도 충분히 매력있는 인물이 되리라 생각된다.", "새로운 문화 콘텐츠의 캐릭터를 구상하기 위해서는 고전문학의 인물 연구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기존 논의만 보아도 인물 연구는 그 성과가 많이 축적되어 있다. 그런데 기존의 인물 연구는 인물에 대한 이념적 관심 및 평가가 연구의 중심에 놓여 있거나 혹은 인물을 유형 별로 범주화하여 설명하는 데 노력을 기울인 성과들이 많다. 그렇기 때문에 개별 인물들의 서사나 시각적인 요소 등은 논의에서 상대적으로 중요하게 부각되지 않아 왔다. 이 같은 연구 결과로는 해당 인물을 서사의 주인공으로 한 인상적인 캐릭터를 구상하게 하는 데에 어려움이 있다. 왜냐하면 오늘날의 문화 콘텐츠는 대개 멀티미디어 기술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문화 콘텐츠의 캐릭터가 되기 위해서는 일단 시각적인 구현이 가능해야 하는데 기존 논의들은 인물의 시각적인 특징에 대해서는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학술적인 연구의 축적 및 이론의 발전을 위한 인물 연구도 중요하다. 하지만 오늘날 문화에서 고전문학이 살아있는 텍스트가 되도록 하기 위해서는 고전문학의 인물 연구 방법 역시 변화할 필요가 있다. 현재 문화 콘텐츠 생산자들은 우리나라 고전에 관심은 가지고 있는데 원천 소스의 한계가 창작 결과물의 한계로 연결되는 결과들을 보여준다. 예를 들어 애니메이션 <신 암행어사>는 <춘향전>, <어사 박문수> 등 우리나라의 고전문학 작품들을 끌어들였지만 고전 인물에 대한 피상적인 접근으로 캐릭터 재해석에 취약성을 드러내고 있다.", "새로운 문화 콘텐츠의 캐릭터를 구상하기 위해서는 고전문학의 인물 연구를 참고할 필요가 있지만 오늘날 문화에서 고전문학이 살아있는 텍스트가 되도록 하기 위해서는 고전문학의 인물 연구 방법 역시 변화할 필요가 있다." ]
A201007092579
한국한문학 연구에 있어서 동아시아 담론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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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동아시아 담론의 큰 흐름을 개략적으로 점검하고, 그것이 한국한문학 연구에 어떤 의미를 환기시킬 수 있는지 검토하고자 하였다. 지난 날 동아시아 담론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해 볼 수 있었다. 하나는 서구의 오리엔탈리즘이고, 다른 하나는 인도.일본.중국 등에서 주창된 동아시아론이다. 그러나 이 두 가지는 모두 제국주의와 대국주의의 팽창 정책을 유인하고 또 그것을 합리화하는 이데올로기적 담론으로 작용하였기 때문에 우리 학계에서는 이를 전혀 주목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20세기 말 사회주의 국가의 몰락과 냉전의 해체라는 새로운 상황을 맞이하여 한국에서 새로운 동아시아론이 제기되었다. 이것은 내적으로는 한국의 분단체제 해소에 기여하고, 외적으로는 동아시아 여러 민족의 공존에 기여할 수 있는 새로운 대안으로 모색된 것이란 점에 주목할 가치가 있었다. 동아시아 담론은 한문학 연구에도 몇 가지 중요한 의미가 있었다. 먼저 연구 관점의 재조정이 필요함을 환기시켰다. 지금까지 한국한문학 연구는 민족.국가.근대 등 몇 가지 이념에 종속된 편향된 관점을 견지해 왔다. 그런데 이제 이런 편향된 관점을 탈피하여 동아시아 공동의 문명적 자산 확충에 기여할 수 있는 연구가 필요한 상황이 되었음을 일깨웠다. 그리고 지금까지 한문학 연구에서 주목하지 못한 몇 가지 중요한 과제, 즉 한문학의 본질적 존재 방식, 국한문의 교차 영역, 인접 국가와의 지식.정보.소통.실상 등에 대한 연구의 필요성을 환기시켰다는 점에서도 중요한 의미가 있었다. 따라서 이와 같은 동아시아 담론의 실체와 그 의미를 진지하게 고려하여 수용한다면, 그것이 앞으로 한문학 연구의 폭과 깊이를 더하는데 적지 않게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하였다.
[ "본고는 동아시아 담론의 큰 흐름을 점검하고, 이것이 한국한문학 연구에 어떤 의미로 환기시키는지 고찰한다. 20세기 말 한국에서 새로운 동아시아론이 제기되고 이는 한국의 분단체제 해소에 기여하고, 동아시아 공존에 기여하는 점에 주목한다. 한문학 연구에서 주목받지 못한 중요한 과제에 대한 연구가 필요함을 환기 시킨점에 중요한 의미를 두고 동아시아 담론의 실체와 의미를 진지하게 고려하고 받아들인다면, 향후 한문학 연구의 폭과 깊이를 더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런데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이들의 아시아 인식 역시 자국 중심의 제국주의 혹은 대국주의에 깊이 연루되어 있음을 바로 알 수 있다. 특히 일본의 경우가 그러하였다. 일본은 메이지(明治) 초기부터 줄곧 미개한 아시아의 일원이기를 거부하고 문명한 서구의 우등생이 되기를 지향하였다. 그러다가 러일전쟁 이후 서구에서 배운 제국주의 팽창정책을 이웃 나라에 적용함으로써 아시아의 새로운 패권을 추구하는 신생 제국주의로 변신하였다. 일본의 아시아 담론은 바로 이 같은 변신의 과정에서 이웃의 협력을 유인하고 변신의 속도를 자체 조절하는 논리로 나타난 것이다. 그래서 개인의 의도와 상관없이 모두 결국 제국주의 팽창 정책을 호도하는 논리적 위장 전술로 기능하였다. 이른바 ‘동양사’ 연구와 함께 그들의 침략 전쟁을 뒷받침한 가장 유용한 이론적 근거가 되었던 것이다. 인도와 중국의 경우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예외가 아니었다. 인도는 인도야말로 “아시아의 어머니요, 아시아 문명의 고향이며, 아시아 국가 가운데 가장 위대한 나라”라고 자부하였다. 그래서 “아시아 인민들의 연방이란 이념을 살아있는 것으로 만드는 것도 자치권을 가진 인도여야만 할 수 있다”라고 하였다. 아시아 연방이 자치권을 가진 인도를 중심으로 형성되어야 마땅하다는 대국주의적 태도를 드러낸 것이다. 이와 같은 인도의 아시아론은 주로 타고르와 그 계승자들이 많이 제창하였다.", "인도는 인도야말로 “아시아의 어머니요, 아시아 문명의 고향이며, 아시아 국가 가운데 가장 위대한 나라”라고 자부하였고 “아시아 인민들의 연방이란 이념을 살아있는 것으로 만드는 것도 자치권을 가진 인도여야만 할 수 있다”라고 하였으며 아시아 연방이 자치권을 가진 인도를 중심으로 형성되어야 마땅하다는 대국주의적 태도를 드러낸 것이다. " ]
A201007092584
현대 과정 종교철학의 흐름과 화이트헤드 철학의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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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성을 궁극자로 보는 화이트헤드의 과정 형이상학은 세 가지 도전에 직면해 왔다. 그 하나는 신을 궁극자로 보는 서구의 전통 형이상학의 도전이며, 다른 하나는 최근의 카오스 이론에 입각한 자연과학과 해체주의에 입각한 현대 서구 철학의 도전이며, 마지막으로는 비실재론적 무와 공의 철학에 입각한 동아시아 종교철학의 도전이다. 비록 이렇게 다양하고 새로운 도전들에 직면하고 있더라도, 우리가 보아 왔듯이 화이트헤드의 과정 종교철학은 이런 도전들을 하나로 아우르면서도 동시에 자기 자신의 체계를 훼손하지 않을 수 있는 하나의 탄탄한 형이상학적 체계를 갖추고 있다. 나는 그렇게 해석될 수 있는 실마리를 화이트헤드의 미학적 우주론, 즉 미를 최고의 가치론적 궁극자로 설정하는 그의 문명론에서 찾고자 하였다. 물론 화이트헤드철학의 공식 체계 내에 미는 궁극적 설명의 범주에 들어가지는 않는다. 이미 말한 바대로 화이트헤드 내에서, 미는 그저 가치론적으로 설정된 궁극적인 목표일뿐 모든 특수적 사태들을 설명해 내는 일반적 원리는 아니기 때문이다. 화이트헤드 체계 내에서 이런 일반적은 원리로 기능하는 궁극자는 창조성이다. 하지만 미가 가치론적으로 하나의 궁극적일 역할을 담당할 수 있다는 화이트헤드의 가정은 오늘날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수많은 현대의 종교철학적 난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할 수 있다.
[ "화이트헤드의 미학적 우주론, 다시말해 미를 최고의 가치론적 궁극자로 설정하는 그의 문명론에서 찾고자 한다. 화이트헤드 내에서 일반적인 원리는 궁극자는 창조성이고, 미는 그저 가치론적으로 설정된 궁극적인 목표지만 이런 미가 가치론적 궁극적인 역할을 담당할 수 있다는 화이트헤드의 가정은 우리가 마주하는 수많은 현대의 종교철학적 난제 해결을 위한 실마리를 줄 수 있다.", "이런 목적을 수행하기 위해서 나는 우선 화이트헤드적 종교철학의 특징을 살펴보겠다. 화이트헤드는 종교철학자는 아니었지만 그가 구축한 철학은 하나의 형이상학이었기 때문에 다른 영역은 물론 종교의 영역에 대해서도 많은 철학적인 통찰을 제공한 것이 사실이다. 이런 통찰 덕분에 기초해서 \"과정 신학\"이라는 신학적 장르가 탄생되기도 했던 것이다. 나는 이 글에서 먼저 화이트헤드 형이상학의 몇 가지 핵심 개념을 살펴보면서 그것을 중심으로 화이트헤드의 철학이 어떤 종교 철학적 특징을 드러내는지 보여주겠다. 특히 화이트헤드 철학은 창조성을 궁극적 실재로 기술하는 것으로 유명한데, 이런 궁극자 이론이 화이트헤드로 하여금 어떤 종교 철학적 특징을 갖도록 만드는지 중점적으로 살펴보겠다. 둘째로는 최근에 발전된 동양과 서양의 현대 철학에서 과정 철학이 어떻게 표현되어 왔는지 살펴본다. 과정 철학은 그 명칭이 화이트헤드의 철학에서 연원한 것이 사실이지만, \"과정\"의 범주를 우선적으로 여기는 사고방식이 반드시 화이트헤드에게서만 발견되는 것은 아니다. 나는 동서의 철학에서 과정 개념을 중시하는 철학들이 어떻게 발현되어 왔으며 그 들의 종교 철학적 특징이 무엇인지 살펴보려 한다. 나는 특히 카오스와 무, 혹은 공을 중시하는 현대의 동서 철학이 종교를 해석 하는 데 있어서 새로운 해석학을 제공해 왔다고 생각하며, 과정 종교철학도 이런 새로운 해석학적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겠다.", "화이트헤드 철학은 창조성을 궁극적 실제로 기술하는 것으로 유명한데, 이런 궁극자 이론이 화이트헤드가 어떤 종교 철학적 특징을 갖도록 만드는지 중점적으로 살펴보겠고 나는 동서의 철학에서 과정 개념을 중시하는 철학들이 어떻게 발현됐으며 그들의 종교 철학적 특징이 무엇인지 살펴보려 한다." ]
A201007092589
안국사지 석불과 매향암각의 조성주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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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배 바위 전설에서 우리는 해상 어업세력의 이거(賈氏)라든가, 혹은 경제력을 축적한 세력의 조성물이라는 상징성을 보게 된다. 특히 경제력의 근거가 혹 염업과 관련되지는 않을지 연상도 가능하다. 후술하겠지만 염분은 전장, 노비, 어량과 함께 상급으로 내려지는 경제적 재화로 중시되었고, 특히 소금은 공용의 물품으로 막대한 이익을 얻을 수 있어 세력가들의 독점과 획득노력이 강하였던 物目이었다. 이러한 염업이 국가의 전매제가 것은 충선왕 원년(1309)이 었으니, 그 이전 시기에 염분을 보유한 세력의 경제력 축적은 매우 괄목할 것이었고, 아마도 여미현과 염솔부곡의 경제기반이 바로 염이 아니었을까 추측해 볼 수도 있다. 나아가 이를 토대로 대형의 안국사 석불이 조성되고, 이에 대한 중앙정부의 관심이 여미현에 다른 지역보다 상대적으로 빠른 시기인 1106년 어간에 감무를 파견한 이유가 아니었을지 추측해 볼 수도 있다. 사실 이러한 추측과 연계성은 단순한 억측만은 아니다. 안국사라는 사찰이름의 유래가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은 상황에서, 염업과 관련되는 安國社 라는 기관의 이름이 보이는 것이나 염솔·염정부곡이라는 소금 관련 지명, 감무의 빠른 파견 등등이 함께 고려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염업의 전매제를 실시하는 충선왕 원년 2월의 교서에 보면 “내고, 상적창, 도염원, 안국사, 궁원, 중원과 지방의 사사에서 소유한 소금가마는 모두 관의 것으로 한다. 사사로이 소금가마를 설치하고 거래를 하면 엄하게 죄를 물을 것이다”라 하여 이중에 安國社가 보이고 있어 혹 안국사가 관리하던 염분이 이 지역에 있었고 그것과 연관되는 사찰이 바로 안국사가 아니었는지 추정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 "경제적 재화로 중시되고, 공용의 물품으로 막대한 이득을 얻을 수 있어 세력가들의 독점과 획득노력이 강하였던 염업의 전매제를 실시하는 충선왕 원년 2월의 교서를 보면 내고, 상적창, 도염원, 안국사, 궁원, 중원과 지방의 사사에서 소유한 소금가마는 모두 관의 것으로 사사로이 소금가마를 설치하고 거래를 하면 엄하게 죄를 물을 것이다라 되어있어 중에 安國社가 보여 혹 염분이 안국사가 관리하던 지역에 있고 이와 연관된 사찰이 바로 안국사로 추측된다.", "그러나 이 점에 있어서 지금까지의 연구 결과들(그나마 논의는 미술사 분야에 한정)을 본다면 학자들 간에 편차가 너무 많고, 나아가 연구자들의 무책임이 문제로 지목된다. 자료마다, 혹은 사람마다 서로 다른 편년이나 애매한 입장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조성 주체에 대하여는 언급이 전혀 없으며, 조성 시기도 ‘고려 시대’ ‘고려 말’ ‘고려 후기’ ‘11세기경’ 등으로 서로 다르며 그 근거라는 것도 대단히 관념적이기 때문이다. 본고는 우선 이러한 역사적, 문화적 의미에 대한 명쾌한 답을 해야 할 1차적 책임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현재로서는 석불의 편년 설정을 통하여 해소가 되는 것이 일반적 경향이지만, 이미 미술사적 구도로는 편년의 혼돈이 야기되어 있는 상태이다. 매향 암각의 경우도 시기 추정의 편차가 너무 크다. 따라서 단순 미술사적 이해만이 아닌, 사상적인 배경과 지역의 역사와 문화사적 기반의 종합적 검토라는 방법상의 보완이 필요하다. 본고에서는 그러한 관점과 자료 재해석, 즉 역사 민속학적 방법론을 원용하여 안국사지의 문화사적 성격을 재검토하여 보고자 한다.", "석불의 편년 설정을 통하여 해소가 되는 것이 일반적 경향이지만, 이미 미술사적 구도로는 편년의 혼돈이 야기되어 있는 상태이며 매향 암각도 시기 추정의 편차가 너무 크다. 따라서 단순 미술사적 이해만이 아닌, 사상적인 배경과 지역의 역사와 문화사적 기반의 종합적 검토라는 방법상의 보완이 필요하다. " ]
A201007092592
고용량 면역글로불린 정맥주사로 치료한 2세 남아의 독성표피괴사용해 1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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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들은 Augmentin 복용 후 발생한 것으로 추정되는 독성표피괴사용해 2세 남아를 고용량 정맥 주사용 면역 글로불린(1.0 g/kg/day for 3 day)을 사용하여 치료하였으며, 이때 정맥 주사용 면역 글로불린으로 인하여 발생한 것으로 보이는 백혈구 감소증을 G-CSF의 사용으로 호전시켰던 1례를 경험하여 보고하는 바이다.
[ "정맥 주사용 면역 글로불린에 의한 발생으로 보이는 백혈구 감소증을 G-CSF를 사용한 경험을 보고한다.", "TEN의 발생기전은 정확하게 알려져 있지 않지만, 약제에 의해 발생하는 과민반응으로서의 면역학적 기전이나 특정 HLA 항원 발현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 원인 약물이나 약물의 대사산물이 생체에 면역반응을 일으키는 물질로 작용하여, 세포자멸사(apoptosis) ligand로 알려진 CD95 ligand(FasL) 의 발현을 촉진시키게 되고, 이렇게 발현된 ligand가 각질 형성 세포(keratinocyte) 표면에 위치한 세포의 death receptor인 CD95(Fas) 와 결합하여 각질 형성 세포 자멸사가 일어나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CD95 ligand의 발현과 CD95와의 결합을 차단하게 되면 각질 형성 세포 자멸사와 피부 박리를 방지할 수 있을 것이다. TEN 환아에게 IgG를 비롯하여 IgA, IgM 등으로 구성된 면역 글로불린의 투여는 CD95에 대한 항체가 CD95에 붙게 되고 CD95 ligand와의 결합을 방해함으로써 각질 세포의 고사를 막는 것은 물론 감염 예방의 효과로 병변의 호전에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생각된다.", "TEN의 발생기전은 약제에 의해 발생하는 과민반응으로서, TEN 환아에게 IgG, IgA, IgM 등으로 구성된 면역 글로불린의 투여는 CD95에 대한 항체가 CD95에 붙게 되고 CD95 ligand와의 결합을 방해함으로써 감염 예방의 효과로 병변의 호전에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생각된다." ]
A201007092596
영화, TV드라마 史劇과 漢文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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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나 TV드라마는 대중과의 관계를 기초로 하여 이루어지는 매체이며 그 중에도 사극(史劇)은 한문학의 이해에서 그 단초를 찾을 수 있다. 그러므로 가장 현대적인 매체와 한문학(漢文學)의 연결은 양쪽 모두에게 새로운 활로가 될 것이다. 한문학과 사극을 쉽게 접근시키기 위하여 세 가지 방법을 생각해 보았다. 첫째, 한문학을 전공으로 한 분들이 직접 영화나 TV드라마의 기획자가 되거나 작가로 등단하여 보다 적극적으로 사극에 숨겨져 있던 우리 한문학을 직접 살리는 길. 둘째, 영화나 TV드라마의 기획자나 작가들이 언제든지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한문학회에 전담 상설기구를 설치하여 자문 및 자료지원을 하는 길. 셋째, 현재 정책적으로 하고 있는 대규모 프로젝트 외에 흩어져있는 문집이나 야사, 기타 자료 등을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집대성하고 우리말로 알기 쉽게 번역하여 모든 사람들이 편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국가적인 정책 설정이 필요하다.
[ "한문학을 전공자가 영화,드라마 기획자나 작가로 등단하여 한문학을 살리거나, 한문학회에 전담 상설기구 설치로 자문 및 자료지원을 하거나, 문집, 야사, 기타 자료 등을 집대성하고 우리말로 쉽게 번역하여 한문학과 사극에 접근이 쉽도록 국가적 정책이 요구된다.", "우리는 사극(史劇)을 이야기하기 전에 먼저 민족이라는 개념부터 이해해야 할 것이다. 민족이란 사전적 의미로 동일한 인종 및 지역적 기원을 가지는 역사적 운명 및 문화적 전통, 특히 언어, 종교, 역사 생활양식 등을 공통으로 하는 기초적 생활 집단이다. 그러나 인종이나 국민의 범위와는 반드시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민족의 이동 경로에 따라 여러 국가로 형성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민족의 개념에서 역사적 운명 및 문화적 전통을 기초로 하여 극화되는 것을 사극(史劇)이라고 한다면 가장 알기 쉬운 설명이 될 것이다. 그러나 현재 영화나 TV 드라마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사극(史劇)이 모두 똑같은 류의 드라마는 아니다. 이들을 크게 대별하면 역사의 기록을 축으로 하여 이루어지는 정통사극과 특정한 인물의 감성을 축으로 라이프 히스토리를 엮어가는 야사 위주의 멜러 사극, 그리고 최근에는 사극과 현대물의 장점을 서로 버무린 퓨전 사극까지 등장하여 그 영역의 한계는 점점 흐트러져 가고 있다. 우선 정통 사극이라고 하면 정확한 고증에 의해서 역사의 상황을 재현하고 그 시대를 밀도 깊게 파고드는 것으로서 기록에 대한 의존도가 높고 창의력이 떨어지는 흠은 있지만 대부분 스펙터클한 영상과 대규모의 상황 재현으로 민족의 자긍심을 살리는 데는 장점을 갖고 있다.", "민족이란 사전적 의미로 동일한 인종 및 지역적 기원을 가지는 역사적 운명 및 문화적 전통, 특히 종교, 언어, 역사 생활양식 등을 공통으로 하는 기초적 생활 집단이며 이러한 민족의 개념에서 역사적 운명 및 문화적 전통을 기초로 하여 극화되는 것을 사극이라고 한다면 가장 알기 쉬운 설명이 될 것이다." ]
A201007092600
해운에서의 중국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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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경제의 고도성장에 따른 소위 중국효과가 해운시장에서 중요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해운시황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으로 대변되는 중국효과는 세계해운시장의 호황과 불황에 어떤 변수보다 더 큰 영향을 미쳤으며 앞으로도 그 영향력이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따라서 중국효과가 어느 정도의 크기로 얼마나 오랫동안 지속되는가가 해운경기 결정에 중요한 요인이 된다. 이에 따라 해운경기를 예측하기 위해서는 중국효과의 특성과 지속 여부에 대한 정확한 분석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에 본고는 중국효과의 존재를 계량기법을 통해 확인하고 중국효과가 여전히 강하게 해운시황에 영향을 미치고 있으나 그 위력은 크게 쇠퇴하고 있음을 보인다.
[ "해운경기 예측을 위해 중국효과의 특성과 지속 여부의 분석이 필요함에 중국효과의 존재를 계량기법으로 확인하고, 중국효과가 해운시장에 여전히 영향을 주나 그 위력은 쇠퇴하는 것으로 보인다.", "MRI 종합운임지수는 1995년 5월 325.4에 정점에 도달한 후 2002년 말까지 장기간 침체국면을 겪었으나, 2002년 10월 231.8에서 본격적으로 상승하기 시작하여 2005년 4월 464.3에 이르는 3년이라는 기간 동안 최대의 호황국면을 맞이하였다. 특히 2001년 9월 11일 항공기로 미국의 세계무역센터를 붕괴시킨 소위 9ㆍ11테러의 충격으로 세계 경제 침체와 더불어 해운 경기 역시 하강 곡선을 그렸으나 4개월도 채 지나지 않은 2002년 1월부터 MRI 종합운임지수와 건화물선 해운 경기를 대표하는 BDI(Baltic Dry Index) 건화물선 종합운임지수 등 해운 관련 지수들이 반등하기 시작하여 2004년 12월 469.6, 2005년 4월 464.3까지 상승하였다. 이러한 현상은 소위 '중국 효과'에 원인을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BDI 건화물 운임지수도 2002년 1월 2일 882로부터 상승하기 시작하여 2004년 12월 6일에 6,208까지 상승함으로써 35개월 동안에 604%나 폭등하였다. BDI건 화물 운임지수는 2002년 8월 14일 1,006에서 2003년 4월 7일 2,011로 2,000선을 돌파하기까지 약 8개월이 걸렸으며, 2003년 10월 1일 3,138로 3,000선을 통과하는데 6개월이 소요되었다. 그런데 2003년 10월 9일에 4,049로 4,000선을 돌파하는 데는 불과 1주일밖에 걸리지 않았으며, 다시 2004년 1월 9일에 5,046으로 5,000선을 넘어가는 데 3개월밖에 소요되지 않았다.", "BDI 건화물 운임지수도 2002년 1월 2일 882로부터 상승하기 시작하여 2004년 12월 6일에 6,208까지 상승함으로써 35개월 동안에 604%나 폭등하였고 BDI건 화물 운임지수는 2002년 8월 14일 1,006에서 2003년 4월 7일 2,011로 2,000선을 돌파하기까지 약 8개월이 걸렸으며, 2003년 10월 1일 3,138로 3,000선을 통과하는데 6개월이 소요되었다." ]
A201007092603
정기선 해운 영업의 거래 특성 요인이 e-BIZ구현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실증적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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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연구모형과 연구가설에 따라 해운거래특성의 여러 영향요인들이 우리나라 해운기업들의 실질적인 전자상거래 활용수준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를 서비스업무 활용수준과 실거래업무 활용수준으로 구분하여 실증분석한 후, 우리나라 해운기업들의 전자상거래 활용수준이 전자 상거래 활용성과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를 실증분석하여 타 산업에 비해 아직 미흡한 수준에 머물고 있는 국내 해운기업의 전자상거래활용 촉진을 통해 e-Business구현을 실현하기위한 방안 수립의 기본 방향을 제시하고자 한다.
[ "본고는 해운거래특성의 영향요인이 국내 해운기업들의 실질적인 전자상거래 활용수준에 주는 영향을 분석하고, e-Business구현을 위한 방안을 제안한다.", "최근 세계 각국의 기업들은 업무처리 시간의 단축, 비용 절감, 품질향상 등을 위한 경영혁신을 실천하고 무한경쟁에서 생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러한 환경 변화 속에 기업들은 전자문서 교환시스템 (EDI: Electronic Data Interchange)뿐만 아니라 인터넷(Internet)과 월드와이드웹 (World Wide Web)의 상업적 이용을 광범위하게 함으로써, e-Business를 통한 비용 절감, 거래 과정의 시간 단축, 고객서비스 향상, 제품 품질향상 등을 꾀하고 있으며, 정보기술의 발전과 함께 기존의 종이 서류에 의존하던 상거래가 디지털 정보와 네트워크시스템을 이용한 전자상거래방식으로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전자상거래 환경하에서 시간적, 장소적 효용을 창출하는 물류 영역은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며, 성공적인 전자상거래를 위해서는 효과적인 물류 관리가 필수적이라 하겠다. 최근 들어 수출입과 관련된 해운서비스업에서도 인터넷과 EDI 서비스를 통해서 선박 입항 스케줄검색, 화물추적, 서류발급 등을 처리하고, 각종 운임정보검색 및 거래내역정보검색 등이 활용되고 있다.", "최근 세계 각국의 기업들은 경영혁신을 실천하고 무한경쟁에서 생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 최근 들어 수출입과 관련된 해운서비스업에서도 인터넷과 EDI 서비스를 통해서 선박 입항 스케줄검색, 서류발급, 화물추적 등을 처리하고, 각종 운임정보검색 및 거래내역정보검색 등이 활용되고 있다." ]
A201007092608
郭再祐의 傳과 野譚의 受容 樣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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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곽재우와 관련하여 전(傳)과 필기(筆記)와 야담(野譚), 전에 야담이 수용된 작품을 고찰하였다. 곽재우의 전은 인물의 죽음 직후 왕의 명령으로 사관(史官)이 입전(立傳)하였다. 전통시대 전은 인물의 업적을 기록하여 역사책에 길이 남기려 한 것이며 이를 곽재우의 전에서 확인하였다. 한편 사대부의 글쓰기로 필기는 견문한 사실을 기록하는 것이다. 본고는 곽재우의 전이 인물의 죽음 직후 곧바로 완성되어서인지 곽재우 관련 필기류는 기존의 전을 요약이거나 일부분을 분리하여 강조한 정도에 지나지 않았음을 고찰하였다. 그리고 임진왜란이 일어난 시점으로부터 시기가 멀어지자 후대인들은 역사적 인물에 대해 허구적인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조선후기 야담집에 유전한 김천일 서사가 그것이다. 이는 민간에 유전하던 이야기가 문인의 손을 빌려 만들어진 것이라 본다. 사실과는 다른 이 이야기에서 민간의 발랄하고 건강한 생활상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러한 김천일의 야담이 전통적 사대부의 글쓰기인 전(傳)에 수용되었다. 곧 이원명에 의해 재구성된 의병견괘칠포간(義兵肩掛匏竿)이었다. 이 작품은 전의 서두인 엄숙한 진입로를 거쳐서 김천일의 야담부분을 수용하여 곽재우의 행위로 변환하였다. 그리고 야담부분이 끝나는 자리에 다시 기존의 전을 요약하여 기록하였다. 그런데 작품은 종래의 전(傳)의 연쇄성은 약화되고 야담부분이 강조된다. 거기에는 조선후기 민의 삶과 의식을 보여주었다. 이는 전란이 있은 뒤 200여년이 지났기에 가능한 것이라고 본다. 곽재우 전에 야담을 수용한 것은 1869년 기존의 수집된 자료로써 작품을 재구성한 이원명이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지 조선후기 시대의 변화, 민중의 힘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상 본고는 곽재우를 주된 인물로 하는 전과 필기의 성격, 야담을 수용한 전의 양상을 고찰하였다.
[ "본고는 곽재우와 관련하여 전과 필기와 야담, 전에 야담이 수용된 작품을 분석한다. 그와 관련한 필기류는 기존의 전을 요약이거나 일부분을 분리하여 강조한 정도였고, 조선후기 야담집에서 유전한 김천일 서사는 곧 이원명에 의해 다시 구성된 의병견괘칠포이었다. 이 작품은 전의 서두를 거쳐 김천일의 야담부분을 수용하고 곽재우의 행위로 변환하여 야담의 끝자리에 다시 기존의 전을 요약하고 기록했다. 작품은 종래의 전의 연쇄성 약화와 야담이 강조되어 조선후기 민의 삶과 의식을 나타냈다.", "우리는 시대의 중차대한 과업을 이룩한 인물을 기념한다 조선시대에는 시대의 과업을 실천한 인물들을 기록으로 기념하기도 하였는데 대개 사실 기록의 차원을 넘어 절대적 과거 속에 형식화하여 찬양하였다 이것은 이념적이고 규범화되어 있다. 곽재우는 임진년 초에 ‘의(義)’로써 떨쳐 일어나 충(忠)을 다하여 국난극복의 과업을 이룩한 인물이다 그에 대한 공적을 기억하기 위해 문학적으로는 비지전류(碑誌傅類)에 담아 기념하였다. 본 고는 문학에서 인물의 기억을 형식화하여 찬양한 배대유의 전(傅)을 분석해 본다. 인물의 역사를 숭고하게 기념한 전이 조선후기에 민간의 이야기와 교섭되기 때문에 앞서 그 특성을 분석하는 것이다. 이 전(傅)이 입전된 이후에 문인학자들 사이에서 그의 생애를 기록한 필기의 특징도 간략하게 살펴보는데, 자료는 『지봉유설』‧『어우야담』‧『기문총화』‧『화헌파수록』이다. 이를 제시하여 사실의 기록적 전통과 허구적 서사와의 차이를 명시하려는 것이다. 그리고 전(傅)과 필기처럼 사실에 대한 글쓰기 차원과는 달리 곽재우의 허구적 서사가 이루어지는데 김천일의 야담에서 빌려온 것이므로 해당 야담도 살펴본다. 역사적 인물의 허구화는 대상인물 사후, 시간이 많이 흘러 조선후기 민간의 이야기에 근원하여 서사되었다. 필기와 야담을 분석함으로써 인물에 대한 기록‧서사의 통시성과 아울러 사실과 허구적 글쓰기의 차이를 고찰하려는 것이다.", "본 고는 문학에서 인물의 기억을 형식화하여 찬양한 배대유의 전(傅)을 분석해 본다. 인물의 역사를 숭고하게 기념한 전이 조선후기에 민간의 이야기와 교섭되기에 앞서 그 특성을 분석하고, 인물에 대한 기록‧서사의 통시성과 아울러 사실과 허구적 글쓰기의 차이를 고찰하려는 것이다." ]
A201007092614
체육인문학 연구의 몇 가지 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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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란 말은 일반적으로 “과거에 일어났었던 일들”을 지칭하는 단어로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인문학의 한 영역인 역사연구에서는 단순히 “일어났던 일들”을 지칭하는 단어로만 사용되지는 않았다. 독일의 철학자 헤겔(Hegel)은 “역사라는 단어는 객관적인 측면과 주관적인 측면을 통합하고 있으며, 사건으로서의 역사를 의미할 뿐만 아니라 사건의 설명으로서의 역사를 또한 의미 한다”고 설명한 바 있다. 역사연구의 기본적인 두 가지 형태는 기술하는 것(descriptive) 과 해석하는 것(interpretive)을 말한다. 본 연구는 해석에 있어 몇 가지 시도(try)이다.
[ "역사연구는 기술하는 것 과 해석하는 것 두가지 형태로 본고는 해석에 있어 몇 가지 시도하고자 한다.", "나라가 온통 축구판이다. 물론 한국의 승리를 기뻐했고, 무승부는 아쉬웠다. 축구가 무슨 죄가 있는가. 뜨겁게 응원하고 승리에 열광하는 것도 좋다. 한 목소리로 ‘대한민국’을 연호하는 것도 드물고 뜻깊은 일이다. 다만, 축구는 축구일 뿐이다. 작은 것과 큰 것을 가려서 보자. 축구 경기의 작은 승리는 국가적 승리인가? 패배는 곧 국가적 패배인가? 축구 잘하는 브라질은 흥하고 16강 탈락의 졸전을 보인 프랑스는 곧 망하는가? 그럴 리 없다. 왜? 월드컵 축구도, 동네 축구도, 축구는 그저 축구일 뿐이다. 큰 것을 잊고 작은 것에 열광하는 우리, 우리가 잊은 것은 무엇인가? 우리가 축구공 하나에 눈도 마음도 다 빼앗기고 있을 때, 우리를 기다리는 것은 무엇일까? 모든 매스컴들이 시끄럽다. 제13회 방콕아시안 게임, 야구경기에서 박찬호를 비롯한 22명의 한국 선수들은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예선 4경기와 준결승, 결승까지 한국은 단 한 차례도 지지 않았으며, 결승에서는 한국이 배출한 최초의 메이저리거 박찬호의 호투와 프로 10년의 강타선에 힘입어 숙적 일본을 13대1이란 엄청난 스코어로 이겼기 때문이다.", "나라가 온통 축구판이다. 물론 한국의 승리는 기뻐지만, 무승부는 아쉬웠다. 축구가 죄가 없다. 뜨겁게 응원하고 승리에 열광하는 것도 좋다. 한 목소리로 ‘대한민국’을 연호하는 것도 뜻깊은 일이다. 축구는 축구일 뿐이다. " ]
A201007092619
三峰 鄭道傳 散文의 문예적 특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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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작품을 두고 그 작품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는 데에는 작가론, 작품론, 주제론, 수사론 등 여러 가지 방법이 있을 수 있다. 작품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정당한 평가를 위해서는 이러한 여러 방법들이 다양하게 시도되어야 할 것이다. 본고는 이러한 일련의 연구 방법들을 다양화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先儒들로부터 추앙과 탄복을 받아왔던 三峰의 散文이 어떤 문예적 특징을 지니고 있는지 고찰해보고자 하는 일환으로 시도된 것이다. 三峰의 산문은 ‘豪逸’하면서도 섬세한 곳까지 상세히 변론을 하였고, ‘渾厚’하면서도 ‘精切’한 논리를 펼쳤다. 또한 古文에서 추구하고자 하는 ‘簡約’한 글을 지으면서도 ‘奇異’한 구상을 통해 작품을 생동감 있게 전개하였다. 이러한 글쓰기로 말미암아 權近은 “그의 詩文은 중국 문사들도 가상히 여겼다.”라 하였고, 李穡은 “鄭宗之가 뜻을 세운 것이 대단히 높았으니, 그가 학문에 있어 연구하여 밝히는 것은 圃隱 鄭夢周와 같고 저술하는 것은 陶隱 李崇仁과 같았으니, 隱微한 말을 분석하고 高調를 화답하는 데는 한때의 巨擘들이 모두 팔짱만 끼고 앉아서 감히 겨루지 못하였다.”고 하였다. 저술에 있어서 三峰은 우리나라 文에 있어서 大家로 추대 받는 牧隱과 쌍벽을 이루고 있던 陶隱과 같은 위치를 점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汪洋渾厚한 삼봉의 산문은 여러 사람들이 모두 추켜 올리고 양보하였던 것이다. 異端을 물리치는 것을 평생 자신의 임무로 삼았던 三峰은 性理學뿐만 아니라 이처럼 散文에 있어서도 뛰어난 성과를 올렸던 것이다.
[ "본고는 先儒들로부터 추앙과 탄복을 받아왔던 三峰의 散文이 어떠한 문예적 특징을 가지고 있는지 고찰한다. 三峰의 산문은 豪逸하고 섬세한 곳까지 상세히 변론을 하고, 渾厚하면서도 ‘精切한 논리를 펼치고 古文에서 추구하는 글을 쓰면서도 奇異한 구상으로 생동감 있는 작품으로 전개하였다. 三峰은 異端을 물리치는 것을 평생 자신의 임무로 삼고 性理學뿐만 아니라 이처럼 散文에 있어서도 뛰어난 결실을 맺었다.", "이것은 保閑齋 申叔舟의 新刊三峰鄭先生集序에 있는 언급이다. 三峰 鄭道傳의 詩가 高淡 雄偉하고 文이 通暢 辯博하기에 陽村 權近은 그의 詩文은 중국 문사들도 가상히 여겼다라 하였고 牧隱 李穡 은 문장도 있고 절의도 있으니 중원의 사대부들이 어찌 감히 우리 宗之를 소홀히 여길 것인가 라 하여 先儒들이 모두 三峰을 추앙하고 탄복을 금치 못하였다는 것이다. 본 고는 이처럼 先儒들로부터 추앙과 탄복을 받아왔던 三峰의 散文이 어떤 문예적 특징을 지니고 있는지 고찰해보고자 하는 일환으로 시도된 것이다. 지금까지 散文 硏究는 그 작가의 사상과 작품의 주제를 파악하는데 집중되어 왔다. 물론 한 작가의 사상이나 작품의 주제를 파악하는 것은 그 작품의 전체적인 면모를 이해하는데 가장 필수적이며 또 반드시 선행되어야 하는 작업이다. 하지만 문학작품이 사상과 주제로만 형성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각종 문학 수단이 종합적으로 운용되어 배태된 것이기에 작품의 문학성을 도출해 내기 위해서는 좀더 세밀하고도 다양한 각도에서의 고찰이 필요하리라 여겨진다.", "본 고는 이처럼 先儒들로부터 추앙과 탄복을 받아왔던 三峰의 散文의 문예적 특징을 고찰해보고자 하는 일환으로 시도되었다. 작품의 문학성을 도출하기 위해서는 좀 더 세밀하고도 다양한 각도에서의 고찰이 필요하다." ]
A201007092626
한국강점 직후 일본 지배계층의 조선인식―잡지 ?太陽?을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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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주로 태양에 게재된 논문과 담화를 중심으로 식민지 지배계층과 지식인이 조선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었는지 살펴본다. 당시 일본 국내에서 간행된 대부분의 신문과 잡지는 일본정부와 조선총독부의 한국 강제점령과 식민지 지배에 긍정적으로 반응했다. 이들은 한국강점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캠페인 기사를 대대적으로 게재했다. 한국강점 관련 각종 화보와 특집을 편성하고, 조선에 정통한 언론인과 지식인들을 총동원시켰다. 그들은 각종 담론을 통하여 한국강점의 필연성과 효과적인 식민지 지배방침을 주장했다. 또한 미디어를 통해 한국강점기 일본인 사이에는 침략사상과 배외사상이 침투 증폭되었다. 메이지유신 이후 강요된 천황제 이데올로기 교육과 악의적인 조선관련 보도기사는 일본인들의 조선인식을 왜곡시키기에 충분했다. 언론계에는 조선 침략을 지지하는 견해 일색으로, 조선의 식민지화에 이의를 제기하거나 반대하는 사람은 찾아볼 수 없었다. 심지어 양심적이라 자처하던 종교계 지도자들마저도 한국강점 지지여론에 편승하여 교세를 확장할 정도였다. 한국강점을 정당화시키기 위해서라면 특정 사실의 왜곡도 주저하지 않았다. 통치정책을 둘러싼 언론계의 주장은 일본정부의 입장보다 강경했다. 언론계는 체제 그 자체에 대한 비판자로서의 기능을 상실하고 오히려 정부의 홍보기관 역할을 자임하였던 것이다. 피해자인 조선인의 입장이나 반침략투쟁은 보도항목에서 누락되는 것은 물론 철저한 탄압의 대상이 되었다. 조선은 멸시와 무시의 대상이었으며 일본의 행위만이 정당한 것이었다.
[ "본고는 태양에 게재된 식민지 지배계층과 지식인의 조선에 대한 인식을 살펴본다. 당시 일본의 신문과 잡지는 한국 강제점령과 식민지 지배에 긍정적 반응과 이를 지지하는 캠페인 기사를 대대적으로 실었다. 조선에 정통한 언론인과 지식인들을 총동원시킨 담론에서는 한국강점의 필연성과 효과적인 식민지 지배방침을 주장했으며 양심적이라 자처하던 종교계 지도자들마저도 한국강점 지지여론에 편승하였다. ", "한국 강점이란 조선 침략을 감행한 일본제국주의가 1910년 8월 22일에 조인한 총 8개조로 이루어진 소위 ‘한국병합에 관한 조약’을 명목 삼아 조선의 통치권을 강탈한 정치과정을 말한다. 조약은 양국 정부 당사자 사이의 대등하고 자유스러운 합의에 의해 체결된 것이 아니었다. 조약은 한편으로는 미국, 영국 등 서구제국주의의 적극적인 지지와 협력 아래, 다른 한편으로는 조선인의 저항운동을 무력으로 진압함으로써 이끌어 낸 불법적인 것이었다. 일본은 한국강점의 정당화 논리로서 ‘동양 평화의 영원한 확보와 유지’ 내지는 ‘한일 양 국민의 행복증진’을 위한 지름길임을 애써 강조했다. 독립된 역사를 갖지 못하고 문화적으로도 뒤쳐진 후진국가 조선을 문명개화’시키는 것이 일본의 의무라며 제국주의적 침락을 합리화하는 여론을 조작 유포했다. 일본의 한국 강점과 식민지 지배는 국제법상 합법적인 것이고 정당하다는 논리이다. 식민지 지배의 정당화 논리는 언론보도를 통해서도 합리화되었다. 당시 일본 국내에서 간행된 대부분의 신문과 잡지는 일본 정부와 조선총독부의 한국 강점과 식민지 지배정 당화론에 호응했다. 이들은 한국 강점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캠페인 기사를 대대적으로 게재했다. ", "한국 강점이란 조선 침략을 감행한 일본제국주의가 소위 ‘한국병합에 관한 조약’을 명목 삼아 조선의 통치권을 강탈한 정치과정을 말한다. 조약은 양국 정부 당사자 사이의 대등하고 자유스러운 합의에 의해 체결된 것이 아닌 불법적인 것이었다." ]
A201007092630
한말?일제초 제주 하모리의 호구파악―光武戶籍과 民籍簿의 비교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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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하모리의 光武戶籍은 이전의 구호적에 비해 호수가 증가했으나 호를 잘게 분호하는 데에 그칠 뿐, 구수는 크게 변동이 없다. 그러나 1907년에는 더욱 소규모로 호가 분할되고 많은 수의 호구가 새롭게 파악되었다. 통감부의 인구정책으로 인하여 호수를 증대하도록 강요되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곧 이어 1909년부터 시행된 民籍法을 예고하는 것이었다. 1912년경의 民籍簿는 민적법으로 조사된 민적을 일련의 통호번호로 재정리한 것이다. 이것은 기존의 광무호적과 같이 ‘居住地主義’의 주민등록형식을 띠고 있다. 이 민적부는 기존의 호를 지속적으로 分戶하여, 이전에 결락되었던 연소자층을 호의 구성원으로 충당하였다. 면리단위의 행정처가 민적을 조사하게 됨으로써 1915년경에 민적부가 새롭게 작성되었다. 이 민적부는 연장자를 호주로 삼아 이전에 분할되었던 호들을 하나의 호로 合戶하는 경향을 보여준다. 그 결과 1923년경의 민적부는 혈연관계를 중심으로 호구를 파악하는 ‘本籍地主義’로 호구가 파악되었음을 분명히 보여준다. 이 민적부는 1922년의 ‘朝鮮戶籍令’에 근거하여 작성되기 시작하여 현재에 이르는 ‘호적’의 원형이라 할 수 있다. 한말에 이르기까지 조선 호적은 부세의 부과를 목적으로 조사되었다. 따라서 지역을 단위로 일정 수준의 호구총수가 확보되면 되었다. 일제 초기의 민적은 부세와 관련 없이 조사되었으나, 여기에도 여전히 인구누락이 존재했다. 이에 대해 총독부는 구래의 지방자치적인 호구파악을 폐쇄시키고 혈연관계에 기초하는 인구파악 방식을 시도하기에 이른 것이다.
[ "1912년경의 民籍簿는 민적법으로 조사된 민적을 일련의 통호번호로 다시 정리하고, 1923년경의 민적부는 혈연관계를 중심으로 호구를 파악하여 이는 현재에 호적의 원형이라 할 수 있다. 한말에 이르기까지 조선 호적은 부세 부과 목적으로 조사 되었고, 일제 초기의 민적은 부세와 관련없이 조사되었으나 인구누락이 존재해 총독부는 혈연관계에 기초하여 인구를 파악하는 방식을 시도한 것이다.", "제주 하모리에는 1898년 이후 1907년에 이르는 매년의 光武戶籍과 1909년 민적법 시행 이후에 작성된 세 시기의 民籍簿가 현존한다. 시 광무 호적은 본래 낱장의 호적표로 작성되나 제주의 경우에는 구 호적과 같이 면리 단위의 호적 중초 형태를 띠고 있다. 또한 1909년 이후에 작성되기 시작하는 민적은 하나의 장부인 민적부로 묶이어 보관되는데, 그 가운데 면사무소에 있는 것은 호주가 제적될 때마다 그 호의 호적을 빼내어 除籍簿로 철하고 현 호주로 새 호적을 작성하여 끼워넣는 식으로 하여 현재의 호적에 이른다. 그런데 제주 하모리의 민적부는 호주 변동이 있을 때마다 신규의 호로 교체하기 위해 해당 호를 빼내어 모아둔 제적부 형태의 장부가 아니다. 조선시대 호적처럼 작성 시기를 정기적으로 정해서 만들어진 것도 아니나, 정책과정에서 몇 차례의 개정된 민적 작성방법에 따라 일괄적으로 재정리하게 됨으로써 한 지역에 여러 부의 민적이 남게 되었다. 이것은 조선의 호적과 일본의 호적이 가지는 전통적 인구파악 방법의 상이성에서 출발하는 당 시대 민적의 특수한 위상에서 말미암은 것이기도 하다.", "1909년 이후에 작성되기 시작하는 민적은 하나의 장부인 민적부로 묶이어 보관되는데 제주 하모리의 민적부는 다른 형태의 장부다. 이는 당 시대 민적의 특수한 위상에서 말미암은 것이기도 하다." ]
A201007092635
朝鮮本 ??龍龕手鑑??의 판본과 특징에 대한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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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高麗本 龍龕手鏡, 宋本 龍龕手鑑, 淸本 龍龕手鑑과는 다른 판본 계열라 할 수 있는 朝鮮本 龍龕手鑑에 대하여 그 내용과 구성을 살펴봄으로써 조선본 용감수감이 지니고 있는 특징과 그 의의를 고찰한 것이다. 용감수경은 遼나라의 승려 行均이 독경과 염불을 돕기 위해 여러 경전에 나오는 漢字에 音注와 釋義를 붙인 것으로 불경의 필사과정에서 발생한 수많은 이체자를 수록하고 있다. 수록된 글자수는 총 26430자이며, 이들 한자를 平聲 97부수上聲 60부수去聲 26부수入聲 59부수의 242부수로 나누고, 각 부수에 속한 한자는 다시 平上去入의 4聲으로 나누어 배열하고 있다. 이것이 송나라에 유입되어 용감수감으로 바뀌었으며, 현존하는 판본으로는 간행된 시기에 따라 크게 ①고려본 용감수경, ②송본 용감수감, ③청본 용감수감, ④조선본 용감수감의 네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이 중 조선본 용감수감은 고려본 용감수경과 송본 용감수감을 저본으로 대대적인 수정을 가한 增補版이다. 현재까지 알려진 판본으로는 1472년(성종 3) 仁粹大妃가 간행한 것으로 추정되는 본과 1563년(명종 18) 승려 普雨에 의해 간행된 歸眞寺本, 그리고 연대미상의 목활자본이 있다. 조선본 용감수감의 특징으로는, 첫째 자수의 증보와 함께 입성의 부수를 59부수에서 60부수로 늘리고, 기존의 4권 3책에서 8권 8책으로 바꾸는 등 편집체계를 대폭적으로 수정하고 있다. 둘째 용감수경의 편찬 목적이 불경의 필사과정에서 발생한 이체자를 정리하고자 한 것인데, 조선본 용감수감에서는 기존 판본에 수용된 이체자를 좀 더 명확하게 구분하여 분류하고 있다. 셋째 이전 판본에서 잘못 배치하거나 편입시킨 부수자를 수정하고 있다. 넷째 기존의 고려본 용감수경과 송본 용감수감에 수록된 오류자를 바로잡고 있다. 이와 같이 특징을 지니고 있는 조선본 용감수감은 그 편집체계와 내용면에서 완전히 새로운 형태로 변한 조선의 字書 내지 音義書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현대에 이체자의 정리와 불교의 譯經事業에서 발견되는 難字의 해독 등에 지침서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 "본고는 朝鮮本 龍龕手鑑에 대한 내용과 구성을 살펴봄으로써 조선본 용감수감이 지니는 특징과 그 의의를 살펴본다. 용감수경은 遼나라 승려 行均이 독경과 염불을 돕고자 여러 경전의 漢字에 音注와 釋義를 붙여 불경의 필사과정에서 발생한 수많은 이체자를 기록하고 있다. 편집체계를 대폭 수정하고 기존 판본의 이체자를 명확하게 구분하여 분류했으며 부수자 수정과 오류자를 바로잡고 있는 조선본 용감수감은 새로운 형태로 변한 조선의 字書 또는 音義書라 할 수 있어 이체자의 정리와 불교의 譯經事業에서 보이는 難字의 해독 등에 지침서로서의 역할이 가능할 것이다.", "이 논문은 高麗本 『龍龕手鏡』, 宋本 『龍龕手鏡』, 淸本 『龍龕手鏡』과는 다른 판본 계열이라 할 수 있는 朝鮮本 『龍龕手鏡』에 대하여 그 내용과 구성을 살펴봄으로써 조선본 『용감수감』 이 지니고 있는 특징과 그 의의를 고찰한 것이다. 『용감수경』은 遼나라의 승려 行均 이 독경과 염불을 돕기 위해 여러 경전에 나오는 漢字에 音注와 釋義를 붙인 것으로 997년에 처음 간행되었다. ‘龍龕’이라는 말은 ‘龍藏’ 과 동의어로 一切經(大藏經)을 의미한다. 서문에 의하면 수록된 글자 수는 총 26‚430여 자이며 이들 한자를 平聲 97부수 上聲 60부수 去聲 26부수 入聲 59부수의 242부수로 나누고 각 부수에 속한 한자는 다시 平上去入의 4聲으로 나누어 배열하고 있다. 이와 같은 배열 방식은 이전에 없었던 변혁적인 방법으로 승려에 의해 만들어진 대장경의 字書 내지 音義書로서 오로지 검색의 편리함을 위주로 편찬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이것이 송나라에 유입되어 ‘鏡’자가 宋太祖의 조부 趙敬의 ‘敬’자와 음이 비슷하다하여 이를 피휘하기 위해 용감수감 으로 바뀌었다.", "이 논문은 高麗本 『龍龕手鏡』, 宋本 『龍龕手鏡』, 淸本 『龍龕手鏡』과는 다른 판본 계열이라 할 수 있는 朝鮮本 『龍龕手鏡』에 대하여 그 내용과 구성을 살펴봄으로써 조선본 『용감수감』 이 지니고 있는 특징과 그 의의를 고찰한 것이다. 『용감수경』은 997년에 처음 간행되었다." ]
A201007092639
재미 한인작가들의 자아 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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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용흘은 소설을 통해 아메리칸 드림과 자아 정체성을 확인하고자 했고, 김난영은 이민 1세대의 고통을 통해 자아 정체성의 혼란과 위기를 그려냈다. 강용흘의 작품들에는 식민 조국을 탈피하여 신세계에 뿌리를 내리고자 하나 결국 주류 사회로 편입되지 못한 주인공의 처절한 모습이 사실적으로 형상화 되어 있고 김난영의 작품에는 신세계를 탈출하여 구세계로 복귀하고자 하나 좌절하는 자아가 그려져 있다. 강용흘의 주인공과 김난영의 주인공이 보여주는 탈조국의 염원이나 조국에 대한 집착은 서로 상반되는 지향성을 보여준다. 그러면서도 경계인이나 주변인이라는 점에서 양자는 동질적이다. 강용흘의 주인공이 구세계의 문화적 전통이나 풍습의 소개, 서양 문학이나 문화에 대한 비평적 소견을 장황하게 펼치는 이면에는 현실적으로 피할 수 없었던 열등감의 보상 욕구가 잠재되어 있었다. 꿈에 그리던 조국으로 돌아갔다가 다시 미국으로 쫓겨 들어올 수밖에 없었고 (남북 분단으로 인해) 앞으로도 어쩔 수 없이 조국을 포기해야만 하는 혜수는 1세대 이민들의 현실적 한계와 보편 정서를 극명하게 드러낸다. 1세대의 한인 이민들 가운데 진정으로 탈조국의 꿈을 가졌던 부류는 지식인 이민들이었고, 미국사회에 뿌리 내리기를 거부했던 사람들은 대부분 노동이민들이었다. 이처럼 정반대로 나타나는 자아들의 양상은 미주 이민 1세기가 지난 지금이나 앞으로도 상당기간 지속될 수밖에 없는 한인 이민들의 두 모습이다.
[ "강용흘은 소설을 통하여 아메리칸 드림과 자아 정체성을 확인하려 했고, 김난영은 이민 1세대의 고통을 통하여 자아 정체성의 혼란과 위기를 그려내고 있다. 이들의 주인공은 탈조국의 염원과 조국에 대한 집착이란 상반된 지향성을 보이면서도 경계인이나과 주변인이라는 점에서는 동질적이었다.", "재미 한인사회를 형성하던 지식 계층의 핵심 부류인 작가들은 1930년대에 등장하기 시작했고, 그 대표적 인물이 강용흘이다. 그는 재미 한인 작가들의 공통 주제인 자아 정체성의 추구를 작품으로 구체화 시킨 첫 인물이며, 구세계의 문화적 전통과 자부심을 바탕으로 한점에서 다른 작가들과 구분된다. 재미 한인 소설들에 나타나는 자아 정체성 확인의 욕구는 체류자sojourner 의식이나 자국 문화의 使節의식 혹은 무조건적이고 강렬한 귀향 욕구 등으로 구체화 된다. 예컨대 강용흘 작품의 주인공은 ‘서술하는 나’이든 ‘서술되는 나’이든 모두 작가 자신 혹은 그 대리인으로서 한인 지식인의 표지를 갖고 있다. 이런 초기의 특징들은 약간씩의 변화를 보여주긴 하지만, 최근까지 지속되는 재미 한인 소설의 변함없는 주제의식이다. 이민 초기부터 한인 작가들은 일관되게 자신들의 작품에서 ‘자아 찾기’를 시도해왔다. 자신의 이야기이든 조부모 혹은 부모의 이야기이든 작품 안에서 그들이 초점을 맞추어온 주 대상은 1세대의 한인들이다. 그들은 다수의 노동자들과 소수의 지식인들로 나뉜다. 수적으로 많다고 할 수는 없으나 그들은 고국의 생활 현장에서 익힌 각종 장르의 문학들을 창작했으며, 그 가운데 서양인들에게까지 소개된 분야는 영문 소설이 유일하다.", "재미 한인사회를 형성하던 지식 계층의 핵심 부류인 작가들 중 강용흘은 재미 한인 작가들의 공통 주제인 자아 정체성의 추구를 작품으로 구체화 시킨 첫 인물이며, 구세계의 문화적 전통과 자부심을 바탕으로 한점에서 다른 작가들과 구분된다. " ]
A201007092643
새로운 시작 : 북미 대학의 한국문학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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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시작 : 북미 대학의 한국문학 연구 존 프랭클몇 십 년 전만 하더라도 북미 대학에서 한국문학의 입지는 미미했다. 자격을 갖춘 교수는 드물었고 자격과 능력을 갖추었다 하더라도 한국문학 교수 자리를 찾기는 너무나 힘들었다. 그러나 지난 십여 년 동안 북미 대학에서 한국문학 분야는 열악했던 과거의 상황에 비해 급속히 발전했다. 헌신적인 제 1세대 교수들과 새롭게 학위를 받은 박사들, 나날이 더해 가는 북미 대학들의 한국문학에 대한 관심 그리고 한국 정부와 개인의 재정적 지원 등의 복합적 요인으로 불과 이십여 년 전에는 상상조차 못했을 정도로 지난 몇 년 동안 북미 대학의 한국문학 분야는 큰 성과를 이룩했다. 또한 북미에서 한국문학 박사과정을 전공할 수 있는 대학의 수도 많아졌을 뿐만 아니라 분야도 다양해졌고 관련 교수직도 증가하고 있다. 북미대학에서 한국문학연구 초기에 그 박사과정이 있던 곳은 하와이대학교 마노아와 UCLA 뿐이었다. 그러나 지난 십여 년 동안 하버드, U.C.버클리 그리고 시카고 대학 같은 많은 북미 최고의 대학들이 그 선례를 따르고 있다. 현 발전 속도를 유지한다면 한국문학 연구 분야가 없는 대학은 북미 최고 대학으로서의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고 할 시기가 멀지 않았다.
[ "지난 십여 년 동안 북미 대학에서 한국문학 분야는 열악했던 과거의 상황에 비해 복합적 요인으로 지난 몇 년 동안 큰 성과를 이룩하며 급속히 발전하여 북미에서 한국문학 박사과정 전공이 가능한 대학의 수가 많아지고 분야도 다양해졌으며 관련 교수직도 증가하고 있다..", "필자는 이십일 년 전인 1985년에 U.C.버클리에 들어가면서 처음으로 한국어를 배웠다. 영문학을 전공했었는데, 외국어 필수 이수 과목으로 한국어를 선택했다. 당시 법률 대학원에 진학할 계획이었기에, 일 년 동안의 필수 이수 기간 이후에는 한국어를 계속 공부할 마음이 없었다. 더구나 한국문학 연구를 업으로 삼으리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었다. 그러나 1986년부터 비록 한국어 학습 자료만을 통해서이지만 한국문학을 단편적으로 접하기 시작했고, 1987년 처음으로 비록 번역서로나마 정식으로 한국문학 수업을 듣게 되었다. 그리고 1988년에는 일 년 동안 교환 학생으로 연세대학교에서 생활하게 되면서 계속해서 한국어와 한국문학을 공부할 수 있었다. 그 때 비록 번역서였지만 한국문학을 지속적으로 접했을 뿐만 아니라 국어국문학과 수업도 청강하면서, 필자는 한국문학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되었다. 필자는 교환학생으로 한국에 온 그 해에 의미 있는 일을 하나 겪게 되었다. 당시 연세대학교 국제학부 부학장으로 재직 중이시던 호라스 언더우드(Horace Underwood) 선생님을 만난 것이다. ", "필자는 1986년부터 한국문학을 단편적으로 접하기 시작했고, 1987년 처음 정식으로 한국문학 수업을 듣게 되었다. 그해 의미있는 일을 겪었는데 필자는 교환학생으로 한국에 온 그 해에 당시 연세대학교 국제학부 부학장으로 재직 중이시던 호라스 언더우드 선생님을 만났다." ]
A201007092647
제국을 향한 모델 마이너리티의 자기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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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고려인 한글문학을 제국의 중심으로 나아가고자 욕망했던 ‘모델 마이너리티의 자기 고백’이란 측면에서 살피는 것이다. 이러한 작업은 고려인 디아스포라의 욕망이 어떻게 억압되고 변용되어 왔는지를 살피는 동시에 고려인 디아스포라의 정체성(identity)을 탐구하는 것이기도 하다. 스탈린의 강제이주(deportation)는 고려인(Korean-Russian)들에게 민족 전멸이란 공포로 다가온다. 고려인들은 이 공포를 극복하고 성공한 소수자로 성장하여 김세일의 ≪홍범도≫와 한진의 <공포>와 같은 작품을 남긴다. 고려인 디아스포라 문학의 특징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고려인 문인들은 홍범도와 김알렉싼드라와 같은 영웅적인 인물을 통해 항일무장투쟁과 러시아 혁명(내전)기간 동안 영웅적으로 투쟁했던 과거 자신들의 역사와 전통을 현재적으로 의미화 한다. 둘째, 중앙아시아 현지인들과의 우애를 유독 강조하는 한편, 이른바 당과 인민에 대한 충성을 맹세하는 문학을 창작한다. 셋째, 소련 붕괴 이후 잃어버린 민족정체성의 회복과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다는 점이다.
[ "고려인 한글문학을 제국의 중심으로 나아가고자 욕망했던 ‘모델 마이너리티의 자기 고백’이란 측면에서 살펴보면, 스탈린의 강제이주는 고려인들에게 민족 전멸이란 공포로 다가오지만 그들은 공포를 극복하고 성공한 소수자로 성장하여 김세일의 ≪홍범도≫와 한진의 <공포>와 같은 작품을 쓴다.", "이 글은 중앙아시아 고려인 한글 문학 텍스트에 나타난 디아스포라의 특징에 대한 분석을 목적으로 한다. Diaspora는 원래 이산(離散)을 뜻하는 그리스어로 고대 이스라엘에서 예루살렘 신전이 파괴된 후에 세계 각지로 흩어져 살게 된 유대인과 그 공동체를 지칭한다. 그러나 최근에는 의미가 확대되어 “폭력적으로 자기가 속해 있던 공동체로부터 이산을 강요당한 사람들 및 그들의 후손을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되고 있다. 조선 정부의 지역 차별정책과 오랜 가뭄으로 인해 기아에 시달렸던 사람들이 신개지 개척이란 목표로 두만강을 건너 연해주에 정착하면서부터 시작된 고려인 디아스포라는 현재 대략 53만 명으로 중국, 미국, 일본 거주 코리안 디아스포라에 이어 전체 4위에 해당한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많은 숫자에도 고려인 디아스포라에 대한 연구-고려인 디아스포라 문학-는 미국이나 일본, 중국 등에 비해 아직까지 미흡한 실정이다. 다행히 최근 들어 디아스포라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면서 의미 있는 연구 결과들이 생산되고 있지만, 고려인 디아스포라와 그들 문학이 갖는 민족ㆍ문학사적 의의를 재고했을 때 보다 적극적인 연구가 필요하다.", "Diaspora는 원래 이산(離散)을 뜻하는 그리스어로 세계 각지로 흩어져 살게 된 유대인과 그 공동체를 지칭한다. 그러나 최근 의미가 확대되어 “폭력적으로 공동체로부터 이산을 강요당한 사람들 및 그들의 후손을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된다." ]
A201007092650
비평적 사고력 증진을 위한 소설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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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자는 교육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하여 비평적 사고력을 증진시키기 위한 소설 교육의 내용을 비평적 에세이 쓰기를 활용하여 살펴보았다. 이를 위해 연구자는 비평적 사고력의 개념, 비평적 사고력과 소설 읽기의 관련성, 비평적 사고력과 비평적 에세이 쓰기의 연관성을 논의하였다. 그런 다음 비평적 에세이 쓰기의 과정을 살펴보고, 이에 의한 소설 교육의 내용을 다음과 같이 구안하였다. ① 발견적 읽기에 의해 시공성, 사건, 작중인물간의 관계 파악하기 ② 기존의 문학 경험이나 문학 능력을 동원하여 텍스트 의미 구체화하기 ③ 해석적 읽기에 의해 작중인물의 의식, 가치관, 주제 파악하기 ④ 구성적 읽기에 의해 텍스트 의미 자기화하기 ⑤ 반성적 사고에 의해 자기 성찰 및 새로운 삶 설계하기 ⑥ 비평적 에세이 생산하기 이러한 내용들은 교육대학생들의 문학 경험과 문학 능력을 보다 풍부하게 하면서, 소설 텍스트와의 대화를 보다 심오하게 할 것이다.
[ "본고는 비평적 사고력 증진을 위하여 소설 교육의 내용을 비평적 에세이 쓰기를 통해 살펴본 후 소설 교육의 내용을 구안한다. 이 구안한 내용들은 교육대학생들의 문학 경험과 문학 능력을 풍부하게 하고, 소설 텍스트와의 대화를 보다 깊게 해 줄 것이다.", "이 글은 교육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해서, 비평적 에세이 쓰기를 활용해 비평적 사고력을 증진시킬 수 있는 소설 교육의 방법을 살펴보고, 이것이 소설 교육의 내용으로 어떻게 수렴될 수 있는지를 논의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비평적 사고력의 개념을 살펴본 다음, 비평적 사고력과 소설 읽기의 관련성, 비평적 에세이 쓰기와 비평적 사고력의 관련성 등을 살펴볼 것이다. 그런 다음 비평적 사고력을 증진시켜 주는 비평적 에세이 쓰기 과정을 실제 예를통해 살펴보고, 이러한 과정들이 소설 교육의 내용으로 어떻게 수렴될 수 있는지를 살펴볼 것이다. 연구자가 교육대학생들을 대상으로 비평적 사고력을 증진시킬 수 있는 소설 교육을 논의하고자 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지금까지는 초‧중등학생들을 대상으로 하여 비평적 사고력을 증진하기 위한 소설 교육에 대한 논의만 있었을 뿐,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논의가 전혀 없었다는 반성의식 때문이다. 특히 요즘의 대학생들이 소설을 많이 읽지 않고 어떤 대상에 대한 논리적이고 비평적인 안목이 부족하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하여 비평적 사고력에 대한 논의를 하는 것은 매우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Diaspora는 최근에는 의미가 확대되어 “폭력적으로 공동체로부터 이산을 강요당한 사람들 및 그들의 후손을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되고 있다. 이에 고려인 디아스포라와 그들 문학이 갖는 민족ㆍ문학사적 의의를 재고했을 때 보다 적극적인 연구가 필요하다." ]
A201007092653
힘에의 의지와 기운생동의 비교고찰-니체의 예술이론과 중국회화를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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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니체철학에서 주요 개념인 힘에의 의지와 중국회화에서 주요 개념인 기운생동을 비교하여 그 공통지평을 찾아보는 데 목적이 있다. 그리고 두 개념은 특히 예술과의 연관성 속에서 언급된다. 힘에의 의지는 니체의 근대비판 철학의 집약체라 할 수 있고, 기운생동은 중국회화에서 작품의 미적 가치를 평가하는 제일의 척도라 할 수 있다. 힘에의 의지와 기운생동의 비교가 가능한 것은, 다시 말해 철학과 회화의 비교가 가능한 것은 니체가 자신의 힘에의 의지 개념을 궁극적으로 예술을 통해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고, 더 나아가 두 개념이 지닌 의미가 유사하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먼저 니체에게서 예술은 근대적 사고의 반대급부로서의 의미를 담고 있으며 근대성이 고스란히 담긴 근대적 예술과는 달리 근대적 형식과 구도로부터 자유롭게 존재자의 존재원리인 힘에의 의지를 가장 잘 실현할 수 있는 장르이다. 여기에서 존재원리로서 설명되는 힘에의 의지는 생명력을 지닌 자연의 의미로서 이해되고 있다. 다시 말해 니체는 근대적 사고와 달리 자연 생명력의 의미를 부각시키고자 하는데 이에 대한 자신의 언어가 힘에의 의지이며, 이 개념은 내용뿐만 아니라 그것을 실현하는 형식에 있어서도 근대성으로부터 가장 자유로운 예술을 통해 설명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니체철학의 대표 개념인 힘에의 의지는 예술로서의 힘에의 의지라고도 할 수 있다. 그리고 도사상에 근거한 중국회화에서의 기운생동은 여러 화법과 화론 가운데 가장 중시되는 개념이며,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니체가 힘에의 의지라는 개념을 통해 드러내고자 한 자연 생명력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시 말해 중국회화는 자연의 생명력, 즉 기운생동을 잘 묘사했을 때 작품의 미적 가치를 높이 평가한다. 따라서 니체철학의 힘에의 의지 개념과 중국회화의 기운생동 개념은 지역과 장르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자연 생명력을 암시한다는 점에서 논의의 공통지평을 마련해 준다고 할 수 있다.
[ "본고는 니체철학의 주요 개념인 힘에의 의지와 중국회화의 주요 개념인 기운생동을 비교하고 그 공통지평을 찾고자 한다. 니체철학은 근대비판 철약의 집약체로 예술로서의 힘에의 의지이고 중국회화의 기운생동은 도사상에 근거한 여러 화법과 화론의 개념 중 가장 중시되며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니체가 힘에의 의지라는 개념을 통해 보여주고자 한 자연 생명력과 크게 다를바가 없다. 니체철학의 힘에의 의지와 중국회화의 기운생동의 개념은 지역과 장르의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연 생명력을 암시하는 것에서 논의의 공통지평을 마련한다.", "니체 철학에서 ‘힘에의 의지’라는 개념은 그의 철학을 대표하는 다른 주요 개념들 중에서도 가장 근본적 개념이라 할 수 있다. 영원회귀, 위버멘쉬, 운명애, 디오니소스, 관점주의 등의 개념은 모두 힘에의 의지에 의해 설명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또한 니체는 힘에의 의지라는 개념에 특별한 중요성을 부여해서 많은 언급을 하고 있다. 우리는 니체의 이 독특한 개념의 의미를 보다 일반적인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을 텐데 그것은 곧 ‘자연’ 내지 ‘생명’ 개념이라 할 수 있다. 니체 역시 자신의 고유한 개념을 이 두 단어의 의미로 설명해 나간다. 그리고 근대 이성 비판적 관점에서 힘에의 의지는 근대적 관점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울 수 있는 예술과 관련해서 설명되기도 한다. 한편 동양회화라는 예술의 장르에서 기운생동(氣韻生動)은 많은 시대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화론과 화법의 제일 원칙이자 가장 기본 원칙으로 통용되고 있다. 여기서 기운생동의 의미는 달리 말해 자연 생명력의 온전한 표현이며, 작품의 미적 가치는 기운생동을 척도로 해서 평가된다.", "니체 철학에서 ‘힘에의 의지’라는 개념은 다른 주요 개념들 중에서도 가장 근본적 개념이다. 또한 니체는 힘에의 의지라는 개념에 특별한 중요성을 부여했다. 그리고 근대 이성 비판적 관점에서 힘에의 의지는 자유로울 수 있는 예술과 관련해서 설명되기도 한다. " ]
A201007090923
韓國儒學史 분류방법으로서의 主理ㆍ主氣 개념에 관한 비판적 연구 - 李震相學派와 田愚學派의 論爭에 관련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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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유학사의 분류방법으로서 주로 主理派, 主氣派 개념을 쓰고 있다. 이러한 분류방법은 다까하시 도루가 처음 썼다. 하지만 이 개념은 객관적이지 못하고 편파적이다. 왜냐하면 당시에 主理=正學, 主氣=異端으로 사용했기 때문이다. 다까하시는 이황=주리파, 이이=주기파라고 분류하였는데 그것은 곧 이황=정학, 이이=이단이 될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객관적이지 못한 것이다. 본래 주리, 주기개념은 이황이 四端=主理, 七情=主氣라고 정의하면서 처음으로 등장하였다. 영남유림 柳 은 이이의 理氣설을 主氣論이며 異端이라고 비판하면서 개념의 변화가 일어났다. 이러한 개념의 변화는 근현대에 이진상학파와 전우학파간의 主理.主氣논쟁에서 더욱더 잘 드러난다. 이진상학파는 이황의 계승자라고 자처하면서 자신의 心卽理說을 主理, 正學이라 칭하였으나 이이학파의 心卽氣說을 主氣, 異端이라고 비판하였다. 반면에 이이의 계승자 田愚는 心卽氣說을 主理, 正學이라 하고 이진상의 心卽理說을 主氣, 異端이라고 반박하였다. 그후 대를 이어 양학파는 논쟁을 계속하며 서로를 비판하였다. 물론 이황의 四端=主理, 七情=主氣의 용어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당시 다까하시는 主理=正學, 主氣=異端이라고 사용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李滉=主理, 李珥=主氣라고 한 것은 이황을 지나치게 두둔하는 것이며 객관성을 상실한 편파적인 견해이다. 그의 「李朝儒學史に於ける主理派主氣派の發達」은 1928년에 발표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객관성을 잃은 그의 분류방법을 국내학자들이 아직도 쓰고 있다는 것은 문제이다.
[ "한국유학사의 분류방법은 다까하시 도루가 처음 사용한 主理派, 主氣派 개념을 쓰고 있다. 다까하시는 主理=正學, 主氣=異端이라고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李滉=主理, 李珥=主氣 라고 한것은 이황을 지나치게 두둔하여 객곽적이지 못하고 편파적이다. 그럼에도 객관성을 잃은 다까하시의 분류방법을 국내학자들이 아직도 사용 중인것은 문제이다.", "조선의 유학사를 서술할 때 主理派, 主氣派로 분류하는 방법이 아직도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이것은 다까하시 도루가 이러한 용어로 조선유학사를 서술하면서부터 비롯되었다. 그 이후 학자들이 조선유학사를 집필하면서 주로 이같은 방법을 쓰고 있다. 그러나 그 개념은 이황이 四端은 主理, 七情은 主氣라고 해서 처음으로 사용한 용어이다. 한국유학사를 논하는데 있어서 다까하시 도루는 「李朝儒學史に於ける主理派主氣派の發達」을 일제 때인 1929년에 발표하였는데 이 논문에서 영남학파는 主理派, 기호학파는 主氣派로 양분한 것이 특징이다. 이러한 방법은 후세학자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그의 영향은 현상윤의 『朝鮮儒學史, 이병도의 『韓國儒學』, 배종호의 『韓國儒學史』, 금장태와 고광식의 저술인 『儒學近百年』, 『續儒學近百年』, 윤사순의 『유학사상사론』, 최영성의 『韓國儒學思想史』에 그로 미쳤다. 반면에 유학사 서술방식에서 주리, 주기개념을 탈피한 저술도 있다. 황의동의 한국의 유학사상은 유학통사로서 역사성과 철학성을 고려하면서 유학사상을 주제별로 나누고 철학자 중심으로 서술하였다.", "한국유학사를 논함에 있어 다까하시 도루는 「李朝儒學史に於ける主理派主氣派の發達」을 1929년에 발표했다. 이 논문에서 영남학파는 主理派, 기호학파는 主氣派로 양분한 것이 특징이다. 이러한 방법은 후세학자들에게 큰 영향을 줬다." ]
A201007090929
맹자의 정전론과 정전제도의 사상적 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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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맹자의 정전론과 정전제도의 사상적 연원」을 서술한 것이다. 맹자 사상의 중요한 내용은 성선설과 왕도론 이라고 할 수 있지만 성선설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항산(恒産)이 있어야 하고 항산이 있기 위해서는 정전제도가 올바로 시행되어야하기 때문에, 실제로 맹자사상의 핵심은 정전제도에 있다. 그러므로 이 글은 Ⅱ장에서 맹자 사상 가운데 정전론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가 하는 것을 살펴 정전론의 중요성을 서술하였다. Ⅲ장은 맹자 사상의 이상이었던 왕도정치는 정전제도의 실현을 통하여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으로서 맹자의 모든 이상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정전제도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을 서술한 것이며 Ⅳ장은 정전제도의 형성과정을 논한 것으로서, 정전제도는 하 은 주에서 이루어진 것이지만 그 연원은 요 순의 정신에서 이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을 밝힌 것이다. Ⅴ장은 주 나라 정전제도의 구체적 형성 과정을 서술한 것으로서, 이는 후직의 증손 공류가 빈 땅으로 천도하면서 백성들에게 처음으로 시행한 제도였음을 말한 것이다. 본 논문은 이와 같은 내용을 통하여 정전제도의 중요성과 그 형성 연원을 기술한 것이다.
[ "맹자 사상의 중점은 성선설과 왕도론이라 하지만 성선설의 실현을 위해서 항산이 있어야 하고 항산이 있기 위해서는 정전제도 시행이 올바르게 되어야 하기에 실제로 맹자사상의 핵심은 정전제도에 있다. 그러므로 본고는 맹자의 정전론과 정전제도의 사상적 연원을 서술한다.", "이 글은 맹자 정전론(井田論)의 사상적 특징과, 정전제도의 형성 연원을 밝히기 위하여 서술한 것이다. 나는 이 논문을 맹자 사상에서 정전론이 차지하고 있는 위치는 어떤 것이며 그 제도는 어떻게 형성하게 되었는가 하는 두 가지 측면에서 이를 접근하고자 하였다. 지금까지 맹자 사상에 대한 여러 연구 업적들은 대부분 성선론과 왕도론을 중심으로 연구된 것들이 많았다. 그 까닭은 맹자의 왕도론은 성선설의 연장선에서 이루어진 것으로서, 왕도는 인정(仁政)에서 나오는 것이며, 인정은 성선설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에, 성선설과 왕도론은 맹자 사상의 시작과 완성이기 때문이었다. 인정이 성선설에 근거하고 있는 것은, 인정(仁政)이란, 인간은 누구나 그 본성이 선하기 때문에 사람에게 차마하지 못하는 마음으로서 차마하지 못하는 정치를 베풀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론은 인간의 본성이 선하다는 믿음, 곧 성선(性善)에서 나온 것이었고, 이를 미루어 백성들을 잔인하게 대(對)하여서는 안 된다는 것이 인정(仁政)이었다.", "이 글은 맹자 정전론(井田論)의 사상적 특징과, 정전제도의 형성 연원을 밝히기 위함이다. 또한 맹자 사상에서 정전론이 차지하고 있는 위치와 그 제도는 어떻게 형성하게 되었는가 하는 두 가지 측면에서 이를 접근하고자 한다." ]
A201007091768
아리스토텔레스와 데까르트의 심신이론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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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과 신체의 관계를 탐구하는 심신이론은 오늘날 심리학, 인지과학, 신경생리학, 뇌과학 및 컴퓨터과학의 발달과 더불어 새롭게 각광받고 있는 분야이다. 이 문제는 과거의 철학에서도 가장 난해한 분야 중 하나로 알려져 있는데, 그것은 심신이론이 전통적으로 형이상학의 일부에 속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심신문제에 관한 오늘날의 과학적 탐구가 철학사적 배경을 무시하고 진행될 수 있다는 것은 오해일 것이다. 고대철학연구가들은 아리스토텔레스에서 이미 중요한 통찰을 발견하고 있는데, 가령 심신결합의 근본적인 가정과 생물학적 탐구의 강조와 같은 것이 그것이다. 물론 오늘날 의식의 사적 내용을 강조하고 이 내용과 생리적 혹은 물리적 메커니즘의 관계를 탐구하는 분야는 데까르뜨의 이원론에서 영향받은 바가 크다. 데까르뜨가 비록 실체이원론으로부터 정신과 신체의 극단적 분리를 주장하기는 했지만 그가 제시한 많은 문제들이 이후에 긍정적으로든 부정적으로든 논쟁의 진원지가 되었다. 한편 데까르뜨는 근대철학의 효시라는 명성에 걸맞게 심신문제에서도 많은 독창성을 보여주었지만 스콜라철학을 경유한 고대의 아리스토텔레스적 배경을 고려하지 않을 경우에는 많은 문제가 그늘 속에 머물게 될 것이다. 우리는 현대철학에서 논의되는 심신문제의 철학사적 기원과 의미를 고찰하고 이러한 작업이 문제의 핵심을 이해하는 데 필수적이라는 것을 보이고자 한다.
[ "본고는 현대철학에서 논의되는 심신문제의 철학사적 기원과 의미를 연구한다. 이러한 연구는 문제의 핵심을 이해하는 데 필수임을 보여주고자 한다. ", "심신이론은 흔히 정신(esprit)과 신체(corps)의 관계를 탐구하는 분야로 알려져있다. 따라서 정신과 신체를 극단적으로 분리하고 각각의 속성과 차이를 정의한 후 양자의 관계 맺음을 탐구한 데까르뜨 이래로 그 관심은 증폭되어 왔다. 데까르뜨는 인식론과 존재론, 자연학 등 여러 측면에서 고대의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및 중세 스콜라철학의 이론에 강력히 반발하고 이를 대체하는 새로운 생각을 제시했는데, 심신이론 역시 그 새로움에 있어서는 독보적인 것이다. 이 분야 역시 데까르뜨의 문제제기는 무수한 논쟁들의 원천이 되었으며 심지어 프랑스에서 상당히 중요한 흐름으로 자리잡은 반데까르뜨적 전통 역시 여기에서 자양분을 얻고 있다. 그러나 데까르뜨의 심신이론이 중요한 점에서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혼론과 대립한다는 데는 많은 철학사가들이 동의하고 있지만 몇 가지 기본 태도에서는 그들의 생각을 이어받고 있다는 것도 중요한 사실이다. 이 논문의 목적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혼론에서 나타난 심신이론과 감각이론에 대한 간략한 고찰을 통해 데까르뜨에 이어진 고대철학의 유산과 이에 대립하는 데까르뜨의 새로움을 동시에 드러내는 것이다.", "데까르뜨의 심신이론이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혼론과 대립한다는 데는 많은 철학자들이 동의한다. 이에 이 논문의 목적은 심신이론과 감각이론의 고찰을 통해 데까르뜨에 이어진 고대철학의 유산과 이에 대립하는 데까르뜨의 새로움을 동시에 드러내는 것이다." ]
A201007091773
화이트헤드의 環境哲學에 관한 小考 1- 과정의 원리와 환경을 중심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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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화이트헤드 환경철학의 이론적 근거들을 찾기 위한 첫 번째 시도이다. 우리는 그 근거들을 화이트헤드 형이상학의 네 가지 원리, 즉 과정의 원리, 상대성 원리, 존재론적 원리, 주관주의 원리에서 찾을 수 있었다. 이번 논문에서는 과정의 원리를 토대로 그의 환경철학이 검토되었다. 과정의 원리에 따르면 모든 현실적 존재자는 유기체이다. 유기체는 여건인 환경을 수용해서 자신을 형성한다. 이 과정을 합생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 유기체는 자신을 형성한 후에는 타자의 형성에 기여하는 여건인 환경이 된다. 이 과정을 이행이라고 한다. 합생과정은 목적인을 수반하면서 자신을 생성시키고, 이행과정은 작용인을 수반하면서 자신을 소멸한다. 작용인을 수반하기 때문에 환경의 영향을 강하게 받으며, 목적인이 있기 때문에 새로운 자신을 형성해서 새로운 환경을 만들어 간다. 이 합생(생성)ㆍ이행(소멸)하는 과정에서 환경이 유기체가 되고 유기체는 환경이 된다. 이러한 사실은 실체철학과는 다르다. 실체철학에서 주체는 먼저 존재하고 이어서 환경의 영향을 받는다. 즉 주체는 실체로서 지속되며 속성만 변한다. 그러나 유기체 철학에서는 그 유기체가 환경의 영향을 받아서 자신의 내적구조가 변한다. 이것은 유기체 자체가 바뀐다는 것이다. 결국 이 연구를 통해서 과정의 원리를 근거로 한 환경철학은 두 가지 특징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하나는 화이트헤드 환경철학이 훨씬 더 포괄적이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화이트헤드는 인간만의 환경으로 보지 않고 모든 생물, 무생물을 포함한 유기체의 환경으로 보기 때문이다. 그 다음은 유기체와 환경이 한 몸이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유기체 철학은 환경이 유기체가 되고, 유기체가 환경이 된다는 입장을 견지하기 때문이다.
[ "보고는 화이트헤드 형이상학의 근거 중 과정의 원리를 바탕으로 그의 환경철학을 검토한다. 유기체는 현실적 존재자로 합성과정은 목적인을 수반하여 자신을 생성하고, 이행과정은 작용인을 수반하며 자신을 소멸하여, 이 과정에서 환경이 유기체가 되고 유기체는 환경이 된다. 이 사실은 주체가 실체로서 지속되고 속성만 변하는 실체철학과는 다르다. 이를 바탕으로 화이트헤드 환경철학이 훨씬 더 포괄적이고 유기체와 환경이 한 몸이라는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화이트헤드의 유기체 철학을 접한 사람들은 이 철학이 환경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직감적으로 느끼게 될 것이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화이트헤드의 어떤 원리들이 환경 철학의 기초로 사용될 것인지에 대해서는 조금 더 연구가 진척되어야 할 것이다. 필자는 화이트헤드의 후반기 저서들(특히, 과정과 실재, 과학과 근대세계, 사고의 양태, 관념의 모험 등)에 나오는 환경과의 관련 글들을 모아서 정리하면서 화이트헤드는 환경을 어떻게 보았는가, 그리고 유기체와 환경을 어떻게 관계시키고 있는가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살펴보았다. 화이트헤드의 환경철학에서 그 기초가 될 수 있는 원리로는 역시 화이트헤드의 유기체 철학을 유기적으로 잘 설명하고 있는 4가지 원리(존재론적 원리, 과정의 원리, 주관주의 원리, 상대성 원리)가 적합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원리를 통해 화이트헤드가 환경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으며, 유기체와 환경의 관계를 어떻게 정립하고 있는지를 밝혀 가면 화이트헤드의 환경 철학이 윤곽을 드러내리라고 생각한다.", "화이트헤드의 환경철학에서 그 기초가 될 수 있는 원리로는 4가지 원리가 적합하다. 이 원리를 통해 화이트헤드의 환경에 대한 생각과, 유기체와 환경의 관계를 어떻게 정립하고 있는지를 밝혀 화이트헤드의 환경 철학의 윤곽을 드러내려 한다." ]
A201007091777
규범과 상황-바늘 도둑이 소 도둑 된다는 속담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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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늘 도둑이 소 도둑 된다는 속담의 네 가지 의미를 분석함으로써 확실성 추구의 정신 속에서 탄생한 근대 이후의 규범윤리 전통과 중세 결의법 및 관습윤리 전통을 구분한다. 집단적 차원에서 가치체계의 효과적인 실현을 지향하는 결의법과 관습윤리 전통에는 규범윤리에 대비되는 상황윤리의 정신이 베여있다. 사례 분석에 의한 준칙 개발, 중재, 예외 사례 규정 및 관습의 평가를 중시하는 상황윤리의 정신은 새로운 경향이기보다는 과거 전통의 부활이다.
[ "결의법과 관습윤리 전통에는 규범윤리에 대비되는 상황윤리의 정신이 베어있어 이는 새로운 경향이 아니라 과거 전통의 부활인 것이다.", "조선시대 여류 시인이자 기생으로 유명한 황진이는 동굴 속에서 30년간 면벽 수도를 하던 지족선사를 찾아간다. 비에 맞아 하얀 소복에 비치는 속살 앞에 지족선사는 무너지고 만다. 금욕을 해탈의 전제로 여긴 스님이지만, 그도 욕정을 가진 인간일 뿐이라는 사실이 반영된다. 지족선사는 결국 황진이를 찾아 헤매다 죽고, 그녀는 미안한 감정을 시로 남긴다. 반면에 욕망에 순응하라는 내용을 닮은 선불교의 우화도 많다. 북송의 유명한 사찰 경덕사(景德寺) 앞에는 아예 기방들이 늘어서 있었다고 한다. 여승 무착(無著)이 아직 출가하기 전 선사의 침실에 머무는 동안, 선사의 제자 도안(道顔)이 그 침실에 들렀다. 무착은 발가벗은 채 침상에 누워있었다. 놀란 도안은 무착에게 물었다. “여기는 어떤 곳이냐?” 무착은 답했다. “세상의 부처들과 육대의 조사들 그리고 노화상들 모두가 다 이 속에서 나왔지요.” 도안이 물었다. “노승도 좀 들어가 보아도 되겠는가?” 무착은 “이곳에는 나귀나 말은 들여놓지 않습니다”라고 답했다.", "황진이는 동굴에서 30년간 수도를 하던 지족선사를 찾아간다. 비에 맞아 소복에 비치는 속살에 지족선사는 무너진다. 금욕을 해탈의 전제로 여긴 스님이지만, 그도 욕정을 가진 인간이다. 지족선사는 결국 황진이를 찾아 헤매다 죽고, 그녀는 미안한 감정을 시로 남긴다. " ]
A201007091781
내재주의와 외재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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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일차적으로 1980년대 이후 인식론에서 활발하게 벌어진 내재주의 대 외재주의 논쟁의 본성을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다. 내재주의는 인식적 정당화를 결정하는 요인이 우리의 정신에 내적인 요인들에 의해 이루어진다고 주장하면서 인식적 책임과 인지적 파악가능성 개념을 토대로 하여 이 주장을 구체화한다. 반면에 외재주의는 내재주의의 이러한 주장을 부정한다. 양측의 주장을 살피다 보면 자연스럽게 인식적 정당화 개념에 두 측면, 즉 신념을 가진 사람이 그 신념에 대해 이유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내재적 측면과 신념이 옳음이나 옳음직함과 연관이 있어야 한다는 외재적 측면이 있음이 드러난다. 따라서 필자는 정당화에 이 두 측면이 있음을 선명하게 부각시킨 다음, 내재주의 대 외재주의의 논쟁이 이 두 측면에 대한 양측의 직관이 숨은 동기로 작용하고 있음을 밝힌다. 그리고 나서 마지막으로 올스튼의 내재주의적 외재주의를 양측의 입장을 조정하려는 대안으로 소개한다.
[ "본고는 내재주의 대 외재주의 논쟁의 본성을 정확히 이해하고자 한다. 신념을 가지는 사람이 그 신념에 대한 이유를 가져야 한다는 내재적 측면과 신념이 옳음 혹은 옮은직함에 관련이 있어햐 한다는 외재적 측면의 논쟁은 양측의 직관이 숨은 동기로 작용하고 있다.", "1960년대 이래 인식론에서는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자극적이고 흥미로운 숱한 토론과 논쟁이 펼쳐졌으며, 이를 통해 많은 발전이 이루어졌다. 1963년 게티어(E. Gettier)가 전통적인 지식 개념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짧은 논문 “정당화된 옳은 신념은 지식인가?”를 발표함으로써 인식론계에 일대 파장을 불러일으킨 사건이 있었고, 이후 대략 1970년대 중반까지 게티어가 제기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식에 대한 분석을 재정비하는 문제가 인식론을 지배했다고 볼 수 있다. 1970년대에는 지식에 대한 분석 문제 외에도 인식론자들이 인식적 정당화(정당성) 개념에 초점을 모으고, 두 가지 전통적 이론이랄 수 있는 기초론과 정합론을 발전시키면서 세련되게 다듬는 과정을 밟았으며, 1979년에 골드맨(A. Goldman)은 신빙론을 제시함으로써 정당화에 대한 새로운 연구 방식을 끌어들였다. 또한 1980년대부터는 기초론, 정합론, 신빙론 등의 정당화 이론들에 대한 메타 이론들로서 정당화에 대한 내재주의적 이론들과 외재주의적 이론들이 논쟁의 초점이 되어 정당화가 우리의 정신에 내적인 요인들에 의해 결정된다는 주장과 외적인 요인들에 의해 결정된다는 주장이 팽팽하게 맞서게 된다. ", "1963년 게티어(E. Gettier)가 전통적인 지식 개념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짧은 논문 “정당화된 옳은 신념은 지식인가?”를 발표하여 인식론계에 일대 파장을 불러일으켰다.이후 1970년대 중반까지 게티어가 제기한 문제 해결을 위해 지식에 대한 분석을 재정비하는 문제가 인식론을 지배했다." ]
A201007091784
이해와 체계화- 90년대 전반까지의 노장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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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제에서 분명하게 나타나듯, 이 글은 노장사상에 대한 필자의 주장을 펼치려는 논문이 아니라 우리나라에서 90년대 전반까지 노자와 장자의 사상에 대한 연구가 어떻게 진행되었고, 또 그 내용이 무엇이었는지 파악하고 정리하는 보고서이다. 그러므로 이 글은 과거의 노장사상 연구를 있는 그대로 보여줌으로써, 우리 노장학계의 현재 모습이 어떤 과정을 통해 형성되었고 앞으로 해결해야할 과제와 지향해야할 목표가 무엇인지 검토할 수 있는 자료를 제공하기 위해 서술되었다. 우리의 논의를 통해 노장연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 어느 정도 밝혀지는 것 같다. 그것은 첫째, 해석의 다양성을 보장하는 동시에, 노장사상의 기본개념과 명제, 나아가 체계에 이르기까지 합의할 수 있는 공통의 이해를 수립하는 것이요 둘째, 외국학자들의 해석과 견해를 보다 體化하여 우리 자신의 해석을 이룩하는데 도움을 주도록 하는 것이며 셋째, 문제가 될 수 있는 노장의 내용을 분명하게 분석하여 체계를 정립하는 것이다. 필자가 90년대 후반 이후의 연구를 살펴보지 못했기 때문에 이미 해결된 문제를 다시 제시하는 것인지도 모르지만, 만일 아직 분명한 해결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셋째 문제부터 역순으로 풀어나가는 것이 우리 노장학계의 당면과제라고 생각한다.
[ "본고는 90년대 전반까지 노자와 장자의 사상의 연구가 어떻게 진행됐고 내용이 무엇인지 정리하는 보고서로 향후 해결할 과제와 지향하는 목표를 살피고 자료 제공을 위함이다. 해석의 다양성 보장과 공통의 이해수립 그리고 외국학자들의 해석과 견해를 우리것으로 해석하고, 문제 소지가 있는 내용을 분명하게 분석하여 체계를 정립해야 할 것이다.", "부제에서 분명하게 나타나듯, 이 글은 노장사상에 대한 필자의 주장을 펼치려는 논문이 아니라 우리나라에서 90년대 전반까지 노자와 장자의 사상에 대한 연구가 어떻게 진행되었고, 또 그 내용이 무엇이었는지 파악하고 정리하는 보고서이다. 그러므로 이 글은 과거의 노장사상 연구를 있는 그대로 보여줌으로써, 우리 노장학계의 현재 모습이 어떤 과정을 통해 형성되었고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와 지향해야 할 목표가 무엇인지 검토할 수 있는 자료를 제공하기 위해 서술되었다. 물론, 이런 목적은 이 보고서에서 다루는 기간의 연구만 정리해서는 이루어질 수 없을 것이다. 우리 연구팀의 다른 연구원들이 20세기 초부터 70년대 이전까지, 그리고 90년대 후반부터 현재까지의 노장사상 연구를 각각 정리한 이유도 바로 위와 같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이다. 우리는 이런 정리들을 통해 상술한 목적이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이 글의 형식과 내용은 목차에서 보이는 그대로이다. 필자는 우선 90년대 전반까지의 단행본 연구서와 학위논문을 일람하여 정리했고, 이에 더하여 주로 7․80년대에 연구를 진행한 대만 유학 출신 학자들의 최근 저작도 정리하여 첨부했다. ", "이 글은 우리나라에서 90년대 전반까지 노자와 장자의 사상에 대한 연구가 어떻게 진행되었고, 그 내용을 파악하고 정리하는 보고서이다. 이에 이 글은 과거 노장사상 연구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어 노장학계의 현재 모습의 형성과정과 향후 해결해야 할 과제 및 지향 목표인지 검토하기 위해 서술되었다." ]
A201007090954
폭력과 근본주의 사이로-니체, 힘과 권력 사이에서 애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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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Kraft)은 ‘권력’(Macht)과 다르다.‘힘’의 관점에서 볼 때 약자 혹은 노예조차도 권력을 추구할 뿐 아니라, 심지어 자연적 ‘힘’의 관점에서 볼 때 강자인 상대를 압도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따라서 ‘힘’과 ‘권력’ 사이에는 무거운 차이, 혹은 불균형 혹은 갈등이 심심치 않게 일어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이 두 개념을 혼동할 때 사람들은 중요한 점을 간과하는 셈이다. 따라서 ‘권력’ 개념의 더러운 혹은 잡스러운 측면을 굳이 피하면서 ‘힘’개념을 선호하는 학자들의 경향에도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니체는 모든 인간들이 사회 안에서 행사하는 잡스러운 권력 의지를 인정했는데도, 왜 학자들은 그 측면을 외면하려는 것일까? 여기서 그들이 ‘권력에의 의지’를 ‘힘에의 의지’로 번역함으로써 생기는 문제는 무엇인가? 사람들이 정작 자신의 ‘권력에의 의지’는 감추고 은폐하면서 ‘힘의 질서’의 단정함만을 강조하는 일이야말로 사회적인 너무도 사회적인, 아니 정치적인 너무도 정치적인 시도가 아닐 것인가. 사실 이 질문이 니체 연구에서 취약했다. 그는 ‘위대한 정치’를 추구하고 동경했지만, 현실적으로 차선인 민주주의적 질서를 아직 예상하기 어려운 시대에 살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우리가 지금 긍정하고 살아야 할 민주주의적 상태에 대해서는 감히 구체적인 전략과 전술을 구사하기 어려웠다. 여기서 우리는 니체를 넘어가야 한다. 니체는 또 문화에서 폭력과 잔인함의 역할을 크게 강조했다. 싸움과 전쟁이 필수적이라고까지 했다. 여기서 어려움이 생긴다. 정치경제의 차원에서뿐 아니라 문화의 차원에서도 더 확대된 민주주의를 원하고 요구할 때 나는 니체의 주장과 충돌한다. 그러나 동시에 ‘차이의 열정’을 모조리 없앨 수 있다고 나는 여기지 않는다. 갈등과 폭력을 깨끗이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무엇보다도 문화의 영역에서 전망은 좋지 않다. 왜냐하면 문화적 행위와 실천은 다른 어떤 영역에서보다 차이의 열정에 의해 뒷받침되고 또 이끌리기 때문이다.
[ "니체는 모든 인간들이 사회 안에서 행사하는 잡스러운 권력 의지를 인정했음에도 불구하고 학자들은 외면 했다. 그는 위대한 정치를 추구하고 동경했지만, 민주주의적 질서를 아직 예상하기 어려운 시대에 살았으므로 민주주의적 상태에 대해 구체적 전략과 전술 구사는 어려웠다. 문화에서 폭력과 잔인함의 역할을 강조하여 정치경제의 차원 뿐만 아니라 문화의 차원에서도 확대된 민주주의를 원하고 요구할 때 니체의 주장과 부딪힌다. 문화적 행위와 실천은 그 어떤 영역에서보다 차이의 열정에 의하여 뒷받침되고 이끌리기에 전망은 밝지 않다고 본다.", "힘과 권력이 엄청난 문화적 혼돈 속에 있는 오늘의 상황에서 ‘권력’ 개념을 정치학적으로 혹은 정치 철학적으로 분명하게 할 필요가 있다. 니체가 철학사에서 실현한 커다란 성취는 무엇보다도 그 개념을 공식적으로 만들었다는 데 있을 것이다. 그 개념화는 순수할 정도로 솔직하면서도 동시에 뻔뻔스러울 정도로 솔직했다. 그 개념화가 놀라운 업적인 것은 무엇보다도 두 측면에서 드러날 것이다. 우선 기존의 철학과 형이상학을 비판하는 측면에서 보자. 여기서 기존의 진리에의 의지 혹은 사제적 욕망 자체가 이미 권력에의 의지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다른 측면은 앞으로 철학이 이 권력에의 의지를 둘러싼 다양한 기술과 기제를 분석하는 일을 건너뛸 수 없다는 데 있다. 잘 알려져 있듯이 푸코와 들뢰즈의 권력 분석은 여기에서 출발한다. 그 과정에서 철학은 단순히 기존의 철학의 영역에만 머물지 않고 현실 세계에 대한 분석, 곧 정치학, 경제학, 사회학 등등과 섞일 것이다. 그런데 그가 말한 권력 개념은 현실적이면서도 동시에, 그가 말하는 강자의 개념이 자연주의적이고 다소 형이상학적인 성격을 가진다는 데에서도 드러나듯이, 철학적이다.", "니체가 철학사에서 실현한 커다란 성취는 무엇보다도 그 개념을 공식적으로 만들었다는 데 있다. 그 개념화가 놀라운 업적인 것은 기존의 철학과 형이상학을 비판했기 때문이다." ]
A201007090960
욕망의 계보학-니체와 들뢰즈를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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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은 이성의 이름으로 욕망을 배제하거나 비난한다는 일반적 편견과는 달리 오히려 욕망과의 대결로 태어났다고 할 수 있다. 욕망은 플라톤이 이미 고백하고 있는 것처럼 인간 영혼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렇지만 욕망은 항상 우리가 알 수도 없고 쉽게 통제할 수도 없는 ‘어두운 힘’으로 이해되어 왔다. 이 어두운 힘의 ‘정체’는 무엇이며, 어떻게 ‘작용’하는가? 욕망의 추구가 우리의 삶에 미치는 ‘효과’는 과연 무엇인가? 철학은 바로 이러한 물음에 대한 대답이다. “모든 심오한 정신은 하나의 가면을 필요로 한다”는 니체의 말을 상기하면, ‘이성의 철학’은 엄밀한 의미에서 그 밑바탕에 자리 잡고 있는 ‘욕망의 철학’을 은폐하는 가면일지도 모른다. 서양 이성중심주의는 이처럼 욕망을 이성의 관점에서 규정함으로써 한번도 욕망을 ‘욕망 자체로서’ 고찰하지 못하였다. 소위 말하는 “위대한 의심의 거장들”이 등장하는 지점이 바로 이곳이다. 특히 니체는 이제까지 이성에 의해 배제되었던 ‘권력’, ‘몸’, ‘욕망’을 철학적 사유의 중심으로 올려놓음으로써 이성중심주의에 커다란 물음표를 붙인다. 이 논문은 니체가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을 선취하였다는 점을 보여줌으로써 동시에 정신분석학 자체가 철학적이라는 사실을 밝히고자 한다. 이제까지 이성과 의식에 배제되었던 영역을 탐구한다는 점에서 종종 “무의식의 심리학”으로 서술되는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은 근본적으로 철학적이다. 우리는 또한 니체에서 시작하여 프로이트와 들뢰즈로 이어지는 욕망의 계보학을 통해 욕망 자체가 능동적이라는 점을 밝힐 것이다. 이들에 의하면 욕망은 결핍으로부터 유래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 생산적이다. 욕망 그 자체가 힘이고 생산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니체의 새로운 철학적 질문에 접하게 된다. 욕망은 지배의 대상인가 아니면 승화의 대상인가?
[ "본고는 니체가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을 선취했다는것을 보여줌과 동시에 정신분석학 자체가 철학적이라는 사실을 규명한다. 지금까지 이성과 의식에 배제된 영역 탐구라는 점에서 무의식의 심리학으로 서술되는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은 근본적으로 철학적이다. 또한 니체에서부터 이어진 욕망의 계보학을 통해 욕망은 결핍으로부터 유래한 것이 아니라 그 자체 생산적이라 밝힌다. 욕망 그 자체가 힘이고 생산이라면, 욕망은 지배의 대상인지 아니면 승화의 대상인지에 대한 니체의 새로운 철학적 질문이 생긴다.", "“욕망은 모든 사람의 영혼에서 가장 커다란 부분을 이루고 있고, 그 본성에 따라 가장 충족시킬 수 없는 것이다. 이 욕망이 이른바 육체적 쾌락으로 충만해짐으로써 커지고 강해진 나머지 자신의 일을 하는 대신 오히려 자신의 신분에 맞지 않게 다른 것들을 자신에게 예속시켜 지배하려 들지 않도록, 그렇게 함으로써 욕망이 이들 모두의 삶 전체를 혼란 시키지 않도록 영혼의 다른 부분들은 욕망을 감시하게 될 것이다.” 플라톤이 영혼을 세 부분으로 구별하면서 제시하고 있는 이 말은 욕망에 관한 서양의 관점을 분명하게 규정하고 있다. 이 인용문의 두 번째 부분은 서양의 형이상학적 전통을 관통하고 있는 플라톤 사상을 가장 극명하게 드러낸다. 그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이 욕망이 이성에 의해 지배받아야 한다는 믿음이다. 여기서 우리는 욕망과 철학의 관계에 관해 한 가지 편견을 미리 제거할 필요가 있다. 플라톤은 그의 철학에서 결코 욕망을 제외하지 않으며 이성의 이름으로 모든 욕망을 비난하지도 않는다. 그는 오히려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나는 욕망의 작용과 효과, 그리고 욕망에 대처하는 영혼 내의 세력관계를 분석하고 있다.", "플라톤은 그의 철학에서 결코 욕망을 제외하지 않고 이성의 이름으로 모든 욕망을 비난하지 않는다. 그는 오히려 여러 가지 욕망의 작용과 효과, 그리고 욕망에 대처하는 영혼 내의 세력관계를 분석한다." ]
A201007091793
니체, 바그너 그리고 그 역사적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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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드리히 니체와 리하르트 바그너와의 만남은 독일문화의 역사에서 가장 주목할만한 영향들을 남긴 특별한 만남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스 비극에 대한 니체의 관심도 바그너 음악극과 그의 음악정신에 대한 니체의 열정에서 나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음악정신으로부터의 비극의 탄생은 이러한 바그너와 니체의 정신적이고 역사적인 우정의 소산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바그너에게 니체는 삶에 있어 한 에피소드에 불과했지만, 니체에게 바그너는 그의 삶 전체를 동반한 피할 수 없는 운명이었다. 니체는 자신의 미래적인 문화이상을 실현하기 위한 하나의 시험으로 바그너를 이해한다. 따라서 니체와 바그너 사이의 결별은 인간관계의 문제가 아니라, 복합적인 원인을 가진 니체 자신의 사유과정 속의 분리임을 의미하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니체의 투쟁의 대상은 적대자로서의 인간 바그너가 아니라 문화적인 몰락현상인 데카당스를 대변하는 모든 바그너주의적인 것이다. 데카당스의 전형으로서의 바그너 예술에 대한 니체의 비판의 근본적인 의도는 결국 자기 자신의 디오니소스적 삶과 예술 그리고 세계에 대한 해석에 있어 보다 정확하고 명시적인 개념을 확립하고자 하는 데에 있다.
[ "비극의 탄생은 바그너와 니체의 정신적이고 역사적인 우정의 소산물이라 할 정도로 니체에게 바그너는 피할 수 없는 운명이었다. 니체와 바그너의 결별은 니체 자신의 사유과정 속의 분리를 의미하는 것으로 니체의 투쟁의 대상은 인간 바그너가 아니라 문화적인 몰락현상인 데카당스를 대신하는 모든 바그너주의적인 것이었다.", "니체는 자신의 삶과 체험 속에서 스스로를 이해하고 해석하는 독특한 철학자이다. 그리고 그 해석에 의미심장한 상징적 양식을 부여한다. 니체 철학의 중심점에는 궁극적으로 부조리가 지배하는 사회 속에서 어떻게 개인이 삶을 창조적으로-예술적으로-미화해 나갈 수 있는가의 문제가 자리하고 있다. 니체에 의하면 인간은 자신의 이상을 신화, 종교, 철학, 예술과 같은 문화 속에서 표현하고 그 속에서 다시 자신의 삶의 모습을 재확인하는 모순적 존재이다. 그리고 그 속에서 인간은 어떠한 전통적인 가치도 전제로 하지 않는 부단한 실험과 시도를 통하여 삶의 참다운 의미를 찾아야 한다. 왜냐하면 니체에게 삶은 하나의 실험이기 때문이다. 니체 철학이 어떤 형식적인 틀과 체계도 거부하는 것은 그의 삶과 철학은 실험과 시도를 바탕으로 하는 실험철학적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니체에 있어 이러한 문제의 해결은 그의 예술철학을 통하여, 특히 바그너의 “경우”를 통하여 가장 잘 드러나고 있다. 니체 사상을 정확하게 해석하고 그 상징적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그의 삶의 과정에 대한 전기적인(biographisch) 고찰은 필수적인 작업에 속한다.", "니체 철학이 형식적인 틀과 체계도 거부하는 것은 그의 삶과 철학은 실험과 시도를 바탕으로 한 실험철학적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니체 사상을 정확히 해석하고 그 상징적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그의 삶에 대한 전기적 고찰이 필요하다." ]
A201007091797
니체와 예수, 그리고 금강경:실체성 부정에 관한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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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이 변하는 세상에서는 어느 것도 독자적인 본질을 배타적으로 갖지 않는다. 관계의 그물망이 달라지면 모든 것은 변화한다. 그러니 존재하는 것은 개체라기 보다는 사건이다. 니체의 허무주의의 핵이기도 하지만 니체는 철저하게 사물의 실체성을 부정하고 그럼으로써 실체성에 결박되어 있는 삶을 해방하려 한다. 실체성의 결박의 해방이라는 의미에서 니체는 철저히 금강경의 부처를 닮아 있고, 죽음을 앞둔 예수의 태도와 닮아있다. 니체는 모든 이를 죄인으로 만듦으로써 인간적인 행위를 비방하고 독살한 바울의 기독교를 비판하면서 왜 사도들의 기독교가 희생, 벌, 심판, 이 세계와 저 세계의 분리 등 복음의 본능에 위배되는 요소들로 채워지게 됐는지를 추론한다. 그렇다면 복음의 본능은 무엇인가? 그것은 실체성의 부정이고, 니체는 예수에게서 그 흔적을 보았던 것이다. 물론 그것은 <금강경金剛經>에 면면히 흐르는 정신이기도 하다. 금강경은 실체로서의 ‘나’의 존재까지 부정함으로써 이 점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왜 실체 개념을 갖게 되는가? 니체에 따르면 실체 개념은 주체 개념의 결과다. 그러니 우리가 영혼과 ‘주체’를 포기하면 ‘실체’ 일반의 전제는 사라진다. 석가가 사지를 오려내는데도 성냄도, 원망도 없을 수 있었던 것은 조건 따라 흐르는 생성의 의미를 품고 있었기 때문이다. 참담한 죽음을 앞에 두고도 선과 악이라는 진부한 망상에 사로잡히지 않고 모든 원한 감정을 넘어선 자유정신을 보여준 예수는 신과 인간의 거리를 멀게 한 죄 개념을 폐기하고, 누구든지 다 신의 자식으로 지금 여기에서 천국의 평화를 누릴 수 있음을 보여준 인물이다. 이들은 모두 생성의 의미를 품고 살았던 현자들이었다. 이들을 품은 니체가 말한다. 생성의 의미는 모든 순간에 충족되고 도달되고 완성되어야 한다. 이 논문은 예수와 석가와 니체가 어떻게 닮아있는 지를 실체성 부정의 관점에서 기술한 것이다.
[ "본고는 예수와 석가와 니체가 어떻게 닮았는지 실체성 부정의 관점으로 서술한다. 니체는 철저하게 사물의 실체성을 부정함으로써 실체성에 묶여있는 삶을 해방하려 한다. 실체성의 결박의 해방이라는 의미에서 금강경의 부처와, 죽음을 앞둔 예수의 태도와 닮아있었다. 니체에 따르면 실체 개념의 결과는 주체 개념으로 우리가 영혼과 주체를 포기하면 실체 일반의 전제는 사라진다. 석가와 예수는 모두 생성의 의미를 품고 살았고 이들을 품은 니체는 생성의 의미는 모든 순간에 충족되고 도달되고 완성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논”이라고 하니까 논이고, “밭”이라고 하니까 밭이다. 논과 밭이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나무”라고 하니까 나무고, “꽃”이라고 하니까 꽃이지 어디 나무가 ‘나무’라고, 꽃이 ‘꽃’이라고 자기주장을 하는가? 선과 악, 빛과 어둠도 그렇다. 악이 있으니 선이 있고, 어둠이 있으니 빛이 있다. 남자가 있어 여자가 있고, 노예가 있어 주인이 있다. 신하가 있어 왕이 있고, 너가 있어 내가 있다. 전쟁이 있어 평화가 있고, 죄가 있어 구원이 있고, 유한자가 있어 무한자가 있다. 어떤 것은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와 반대되는 것” 속에서 생겨나고, 관계 속에서 이름이 붙여진다. 서로 대립해 있는 것조차도 서로는 서로가 없이는 존재할 수조차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종종 선과 악이, 남자와 여자가, 죄와 구원이, 유한자와 무한자가 그 자체로 존재한다고 믿는다. 그만큼 언어의 그물이 강력하다. ‘신’이라는 말에 걸리고 ‘죄’라는 말에 걸리고 ‘악’이라는 말에 걸려 넘어진다. 사실 언어나 개념은 허구다. 실재를 허구적 논리인 언어로 포착하다 보면 언어의 그물에 그물을 만난다. ", "서로 대립해 있는 것조차도 서로는 서로가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종종 선과 악, 남자와 여자, 죄와 구원, 유한자와 무한자가 그 자체로 존재한다 믿는다. 그만큼 언어의 그물이 강력하다." ]
A201007091800
미시 파시즘론의 함정;니체의 능동적인 힘을 너무 꺾어버린 들뢰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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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동적 힘에 대한 니체의 주장이 논란의 여지가 많은 것도 사실이며, 정치철학적으로 많은 비판을 받았다. 특히 좌파에 의해 파시즘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능동적 힘이나 공격성에 대한 니체의 언명들이 통째로 비난의 대상이 될 수는 없으며, 아직도 중요한 정치철학적 논의를 제공한다. 들뢰즈는 초기에 니체적 관점을 적극적으로 수용했었다. 특히 능동적 힘의 긍정은 그 수용의 중요한 축을 이룬다. 그런데 니체에 대한 이 태도가 점차 수정을 겪는다. 들뢰즈(가타리와의 공동작업을 포함하여)의 미시 파시즘 분석은 이 변화와 수정의 한 가운데에 있다. 들뢰즈는 파시즘의 성격을 미시적으로 분석하고 규정하려 했고, 그를 통해 미시 파시즘의 위험을 경계했다. 미시 파시즘은 도처에 편재하는 것으로 드러난다. 그러나 미시 파시즘의 존재에 대한 그(들)의 분석과 주장은 근본주의적 함정에 빠지는 듯하다. 미시 파시즘론은 모든 미시적인 권력과 폭력까지 미시 파시즘의 이름으로 비판하고 비난하는 듯하다. 결국 들뢰즈는 초기에 자기가 가졌던 힘에 대한 긍정을 스스로 포기하는 듯한데, 이 변화는 일정하게 시대의 변화를 반영한 결과였을 것이다. 본 논문은 모든 권력과 폭력을 미시 파시즘으로 해석하는 미시 파시즘론의 문제를 분석하고, 더 나아가 파시즘이 단순히 미시 파시즘과 등치될 수없다는 점을 밝히고자 한다. 통속적인 해석은 파시즘의 핵심이 마치 미시 파시즘적 성격에 있는 것처럼 말하지만, 그 둘은 서로 분리되면서도 서로를 보완하는 관계에 있다.
[ "본고는 모든 권력과 폭력을 미시 파시즘으로 해석하는 미시 파시즘론의 문제를 분석하고, 이 파시즘이 단순히 미시 파시즘과 등치될 수 없음을 밝힌다. 통속적인 해석으로는 파시즘의 핵심이 마치 미시 파시즘적 성격에 있는 것처럼 이야기 하지만, 이들은 서로 분리되면서도 서로를 보완하는 관계이다.", "들뢰즈는 초기에 니체적 관점을 적극적으로 수용했었다. 그래서 그때 프랑스 좌파들 중들뢰즈를 파시스트라고 부른 자들이 있었다. 한 예를 들자면, 바디우는 왜 그랬던 것일까? 무엇보다도 들뢰즈가 니체적 힘과 권력을 긍정해서였을 것이다. 아마도 이런 비판도 들뢰즈에게는, 처음에는 그렇지 않았을지라도, 나중에는 부담이 되었을 것이다. 물론 그런 비판에 유독 들뢰즈가 영향을 받았다고 말할 필요는 없다. 무엇보다도 시대와 역사가 변화의 소용돌이 한 가운데 있었고 그 결과 심각한 변화를 겪었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바디우를 비롯한 당시 ‘좌파’ 계열의 사람들이 들뢰즈에게 가했던 비판, 곧 ‘파시스트적’이라는 비판의 내용은 도대체 무엇인가? 니체에 충실한 생의 철학에서는 무엇보다도 자발성과 능동성이 긍정된다. 그리고 이 자발성과 능동성의 요체는 특히 능동적 ‘힘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능동적 힘은 공격적이고 파괴하는 힘이며, 그것은 사물을 바라볼 때 의미로서의 목적을 관조하고 성찰하기보다는 권력에의 의지에 따라 사물을 해석하고 사물에 의미를 부여한다.", "니체에 충실한 생의 철학에서 중요한건 자발성과 능동성이다. 그리고 이 자발성과 능동성의 요체는 특히 능동적 ‘힘에 있다. 그리고 이 능동적 힘은 공격적이고 파괴하는 힘이며, 그것은 사물을 바라볼 때 권력에의 의지에 따라 사물을 해석하고 사물에 의미를 부여한다." ]
A201007092699
니체의 도덕적 세계해석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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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의 전통 형이상학 비판은 그의 도덕적 세계 해석 비판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달리 말하자면 전통 형이상학 자체가 세계에 대한 도덕적 해석이다. 니체의 이러한 비판은 삶의 자연적 과정에 주목함으로써 수행된다. 니체에 의하면, 삶의 자연적 과정은 도덕성을 넘어서 있다. 그리고 도덕성을 이러한 과정에 적용하는 것은 삶의 침체를 결과한다. 따라서 삶의 힘을 회복하기 위해서 우리는 삶의 자연적 과정으로 돌아가야 한다. 요컨대 니체의 목표는 자연인을 되살려내는 것이다. 우선 이 글은 도덕적 세계관에 대한 니체의 비판의 배경을 다룬다. 그것은 이 세계에 대한 비극적 해석 다시 말해 이 세계에 대한 미적 해석으로 불릴 수 있다. 이러한 해석은 니체의 전통 형이상학 비판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다음으로 반자연적 도덕의 구체적 형태는 양심과 원한이다. 그리고 금욕적 이상은 그것들이 적절한 가치를 갖게끔 해준다. 세 번째로 우리는 니체가 어떤 근거들 위에서 도덕적 해석에 반대할 수 있는지를 물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도덕적 세계 해석에 대한 비판을 위한 여러 가지 차원이 있으며 그 각각이 차례로 검토될 것이다. 끝으로 우리는 니체의 도덕 비판의 결과가 어떤 것일 수 있는지 알아보아야 한다. 이러한 탐구는 니체의 도덕 비판에 대한 비판을 니체적인 입장에서 옹호하는 과정을 포함한다.
[ "본고는 도덕적 세계관에 대한 니체의 비판의 배경을 다루고자 한다. 이 세계에 대한 미적 해석으로 불릴 수 있고, 이 해석은 니체의 전통 형이상학 비판에서 결정적 역할을 할 것이다. 또 우리는 니체의 도덕 비판의 결과가 어떤 것일 수 있는지 살펴보고 이는 니체의 도덕 비판에 대한 비판을 니체적인 입장에서 옹호하는 과정을 포함하고 있다.", "니체의 전통 형이상학 비판은 도덕 비판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하이데거는 이 사실을 니체가 형이상학을 도덕적으로 해석하고 있다고 표현하고 있다. “니체는 도덕을 항상 형이상학적으로 즉 도덕을 통해서 존재자 전체에 대한 결단이 내려진다는 관점으로부터 파악한다. 이는 플라톤주의에서는 존재자 전체가 두 세계로 나누어지는 것을 통해 일어난다. 두 세계란 이상과 마땅히 행해져야 할 것 그리고 그 자체에 있어서 참된 것이 위치하는 초 감성적인 세계와 모든 것을 조건지우는 그 자체에 있어 타당한 무조건적인 것을 향해서 노력하고 그것에 복종하는 감성적인 세계이다.” 형이상학에 대한 니체의 도덕적 해석은 지금까지 세계해석의 전범이었던 형이상학의 전면적 비판을 위한 전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니체는 도덕적 세계해석의 대안으로 미적 세계해석을 내세운다. 그래서 니체가 지금까지의 도덕에 대해 새로운 해석으로 내세우는 “비도덕적 해석”이라고 할 수 있는 소위 비도덕주의는 미적 세계해석의 다른 이름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형이상학에 대한 니체의 도덕적 해석은 세계해석의 전범이었던 형이상학의 비판을 위한 전제이다. 니체는 도덕적 세계해석의 대안으로 미적 세계해석을 내세운다. 그래서 니체가 도덕에 대해 새로운 해석으로 내세우는 소위 비도덕주의는 미적 세계해석의 다른 이름이다." ]
A201007091804
불살생의 생태적 문화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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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인도철학 특히 불교에서 나타난 불살생에 대하여 생태문화적인 관점에서 논하였다. 먼저 오늘날 생태계의 위기는 인간중심적인 세계관에서 비롯한다고 보고, 이에 대한 대책으로서 생태중심적 세계관을 제시하였다. 생태중심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하는 문화를 생태적 문화로 정의하고, 인도철학 및 불교에서 생태적 문화의 실마리로서 不殺生 및 肉食禁止에서 찾을 수 있음을 보였다. 이어서 인도철학 및 불교에서 불살생 및 육식금지가 자각되어 형성되어가는 과정을 살펴보았다. 그와 함께 살생을 하지 말아야 할 이유로서 살생 후에 받게 되는 두려움과 자신과 마찬가지로 타인도 고통스러워한다는 共感 그리고 大慈悲에서 찾아보았다. 특히 대승불교의 大命題로서 일체중생은 모두 佛性을 지니고 있다는 교리는 당연히 살생은 살해당하는 중생의 佛性種子를 끊는 일이며, 살생을 행하는 자는 자신의 대자비 불성종자를 끊게 되어 佛道로 나아감을 어렵게 한다. 결국 당연히 살생을 하지 말아야 하고, 한 걸음 더 나아가면 육식을 하지 말아야 함을 문헌을 통하여 살펴보았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히 敎團내의 戒律이나 敎理로서 머물지 않고 대중적으로 실천되었을 때 가능할 것이다. 또한 자신이 佛性을 지닌 존귀한 존재인 것과 마찬가지로 일체중생이 불성을 지닌 존재임을 깨닫고, 일체중생을 그렇게 바라볼 때 가능한 것이다.
[ "본고는 인도철학 특히 불교에서 나타나는 불살생에 대한 생태문화적인 측면에서 고찰한다. 생태중심적 세계관을 토대로 문화를 생태적 문화로 정의하고, 대승불교의 大命題로서 일체중생은 모두 佛性을 지닌다는 교리는 문헌을 통해 이는 대중적으로 실천될때 가능하며, 자신이 佛性을 지닌 존귀한 존재인 것과 마찬가지로 일체중생이 불성을 지닌 존재임을 깨닫는 것이다.", "인간의 과도한 욕망으로 인하여 지구의 환경오염 문제를 지적하며 미래를 예견한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급속하게 변화하고 있는 주변 환경에서 우리는 그것을 인지하게 된다. 환경오염 문제가 단순히 어떤 국한된 지역에서의 문제가 아니라 지구 생태계에 영향을 미쳐 생태계 자체의 붕괴를 초래할 지도 모른다는 의식이 확산되고 있다. 그와 동시에 인간을 포함한 생태문제가 단순히 환경오염 문제를 넘어서 정치, 경제, 사상, 문화, 교육, 종교의 각 부분과도 밀접하게 연결되어 일어나고 있음을 인식하기 시작하였다. 이는 인간의 정신활동 즉 문화로 총괄할 수 있으며, 곧 생태문제는 인간이 창조하고 있는 기존의 문화에 문제를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한 의미에서 보면 생태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기존의 인간의 생각, 의식, 가치관, 세계관, 철학이 바뀌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와 함께 우리의 생활양식을 바꾸는 작업이 필수적이며, 생활양식의 변화는 일상에서 개인적인 행위양식의 변화와 관계된다. 이는 곧 각 개개인이 일상생활에서 생태문화 즉 생태적인 문화를 추구해가는 것이라 하겠다.", "생태문제는 인간이 창조하고 있는 기존의 문화에 문제를 담고 있다. 그러한 의미에서 생태문제를 해결은 기존의 인간의 생각, 의식, 가치관, 세계관, 철학이 바뀌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며, 그와 함께 우리의 생활양식을 바꾸는 작업이 필수적이다." ]
A201007091810
유교의 종교성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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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유교만이 갖는 특수한 형태, 즉 종교와 학문 그리고 문화적 특징을 모두 담보하는 유교의 특수성을 종교와 철학의 구분을 통하여 명확히 설명해보고자 노력한 글이다. 현대 유학을 전공하거나 혹은 유학에 관심을 가진 학자들은 근대 이후 서구 과학문명으로부터의 개인주의 문화를 받아들인 점을 비판하면서, 유교가 갖는 고유한 人文精神을 부각시킴으로서 현재 당면하고 있는 문제점들을 극복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점은 유교의 긍정적인 면을 강조하는 주장일 수도 있겠으나, 한편으로는 가족중심주의나 연고주의 혹은 지역주의에서 출발하는 유교문화가 비민주적인 정의 실현에 걸림돌로 작용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기도 하다. 이렇게 유교문화라는 단어 안에서도 종교적 의미가 거의 드러나지 않는점을 감안하여 볼 때, 유교의 종교성과 철학적 특징들을 구분하기란 좀처럼 쉬운 작업이 아니었다. 이에 유교의 종교성과 초월성을 양명학적 관점에서 비교 구분하고자 논지를 전개하였으며, 전통 유가에서 말하는 ‘聖人’의 정의에 따라 인간의 종교적 존재 의미로서 매듭지었다. 즉 유교에서 말하는 聖人은 도덕적으로 또는 인격적으로 완성자라 할 수 있으며, 세계의 질서를 세우는 창조주이고 나아가 세계 전체에 대한 궁극적 관심의 실천자로 표현된다. 그리고 인간이면 누구나 성인이 될 수 있다. 이러한 점으로 살펴 볼 때, 유교에서의 인간이라는 존재 의미는 모두 종교적 인간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 "본고는 유교의 특수성을 종교와 철학의 구분으로 명확히 규명하고자 한다. 유교가 人文精神을 부각하는 한편 비민주적인 정의 실현에 걸림돌이라 비판 받는다. 유교에서 聖人은 도덕적 혹은 인격적 완성자고, 세계의 질서를 세우는 창조주이며 세계 전체에 대한 궁극적 관심의 실천자로 표현되고 인간이면 누구나 성인이 될 수 있다. 유교에서 인간이라는 존재 의미는 모두 종교적 인간이라 할 수 있다.", "유‧불‧도 각각에 學자를 부쳐 쓰기도 하고 家자를 부쳐 쓰기도 하고 敎자를 부쳐 쓰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學은 학술 이론을 중심으로 보고, 家란 집단을 가리킨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敎자를 부치면 미묘한 차이가 난다. 도교 하면 신선술, 방중술 등 양생이 떠오르고, 불교 하면 깨달음과 해탈이라는 전통적 의미의 종교가 떠오른다. 그러나 유교라고 하면 막연한 느낌이 든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유교문화 혹은 유교문화권이라는 말을 많이 쓴다. 문화를 학문, 종교, 예술, 도덕 등 인간의 정신적 활동과 거기에서 비롯되는 생활양식의 총체라고 표현할 수 있다. 불교문화 하면 종교적 형태와 예술적 가치가 어우러진 삶의 양식이 떠오르는 반면 유교문화 하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관계없이 정치, 경제 및 사회적 구조가 먼저 떠오른다. 예를 들어 당대 신유학자 杜維明은 근대 이후 서구 문명이 지나치게 개인주의적이고 물질적인 측면만을 향하여 달려왔고, 이러한 결과로 가치관의 상실, 가족과 공동체의 해체 등이 일어나게 되었다고 보고 유교의 인문정신을 되살려 후기 산업사회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발판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하며 유교문화의 긍정적인 측면을 강조하고 있다.", "우리는 유교문화권이라는 말을 많이 쓴다. 그 결과로 가치관의 상실, 가족과 공동체의 해체 등이 일어나게 되었고, 유교의 인문정신을 되살려 후기 산업사회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발판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하며 유교문화의 긍정적 측면을 강조한다." ]
A201007091814
정제두의 황극론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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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정제두의 황극론을 고찰한 것이다. 황극은 『상서』「홍범」에 나온다. 황극을 두고 주희와 육구연은 논쟁을 하였다. 주희는 황극을 군주의 기준으로, 육구연은 큰 가운데로 해석하였다. 이는 각기 리와 마음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런데 주희는 홍범편을 상세하게 주석한데 비하여, 육구연은 간략하게 언급하는 정도였다. 정제두는 두 사람의 해석을 알고 있었다. 그는 홍범편을 해석하면서, 육구연의 해석을 따르지 않고, 주희의 해석을 따른다. 이는 육구연의 해석이 간략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희와 정제두는 세부적인 점에서 차이가 난다. 정제두는 극에 대한 해석에서 주희보다는 육구연의 해석을 따른다. 정제두는 극이 가운데의 의미를 갖지만 표준을 뜻하기도 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주관적인 기준이 아니라는 것을 뜻한다. 아울러 정제두는 주희가 황극의 세우는 문제에 등한시했다고 비판한다. 황극의 내용이 없다는 것이다. 황극의 내용으로 정제두는 탕평의 구절을 제시한다. 탕평이야말로 황극이라는 것이다. 탕평을 이상적인 마음의 경지로 이해하는 점에서 육구연을 따르고 있다. 그러나 탕평 구절에 대한 세부적인 해석에서는 주희를 따르고 있다. 정제두의 철학은 주륙절충론이라고 규정할 수 있지만, 다른 점에서 보면 육구연을 중심으로 주희의 해석을 흡수하려는 사고라고 할 수 있다.
[ "본고는 정제두의 황극론을 연구한다. 정제두는 황극의 내용으로 탕평이야 말로 황극이라는 것으로 탕평을 이상적인 마음의 경지로 이해하는 점에서 육구연을 따른다. 그러나 탕평 구절에 대한 세부적인 해석은 주희를 따르고 있어 그의 철학은 주륙절충론이라고 규정하지만, 다른 시각에서 보면 육구연을 중심으로 주희의 해석을 흡수하려는 것이라고 보여진다.", "이 글에서 본인은 정제두(鄭齊斗)의 황극론(皇極論)을 고찰해 보고자 한다. 기존의 정제두에 대한 연구는 학변(學辯)이나 존언(存言) 등에 대한 연구가 중심으로 이루고 있고, 그 밖의 저작에는 관심을 두고 있지 못하다. 최근에 대학 이나 중용 등에 대한 정제두의 주석에 대한 분석이 이루어지고 있기는 하나, 좀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 정제두를 연구하는 데 있어 가장 우선시해야 할 문제는 그의 사상의 성격을 어떻게 규정하느냐에 있다. 그래서 필자는 송대 중요한 논쟁 중의 하나였고, 조선 후기에 중요한 개념으로 등장하는 황극 개념을 분석해 보고자 한다. 그리고 황극이 속해있는 『상서』 「홍범」(洪範)편의 구조를 분석해보고자 한다. 황극에 대한 정제두의 견해는 그의 철학이 지닌 성격을 해명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홍범에 대한 정제두의 해석작업 자체가 기존의 양명학 틀에서는 이해가 되지 않는, 차라리 완물상지(玩物喪志)하는 지리한 작업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정제두의 주석에 대한 이러한 평가는 오히려 후대의 조선 양명학에 대한 연구를 한정시키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 "이 글에서는 정제두(鄭齊斗)의 황극론(皇極論)을 고찰해 보고자 하며 송대 중요한 논쟁 중의 하나였고, 조선 후기에 중요한 개념으로 등장하는 황극 개념을 분석하려 한다. 그리고 황극이 속해있는 『상서』 「홍범」(洪範)편의 구조를 분석해보고자 한다. " ]
A201007091818
강화 하곡학파의 ‘實心實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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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하곡(霞谷) 정제두(鄭齊斗)의 핵심사상을 전승(傳承)한 강화(江華) 하곡학파(霞谷學派)가 추구한 실심실학(實心實學)이 무엇인지 고찰하였다. 강화 하곡학파들은 부귀공명(富貴功名)과 같은 외적인 것의 유혹에 넘어가거나 그것을 향해 치닫는 것, 의리(義理)를 사물에서 구하거나, 타인으로부터 인정과 명예를 구하는 것, 진실을 덮고 거짓으로 속이며, 공리(功利)의 사욕을 인의(仁義)의 명분으로 꾸미는 것, 성현의 말을 빌려 군자의 허물을 꾸미는 것 등을 배척하였다. 따라서 강화 하곡학파들은 물질, 권세, 명예 등을 존귀한 가치로 높게 평가하지 않았다 또한 인간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행위의 규범이나 의무를 외적 사물이나, 세상 사람들로부터 구하지 않았다. 그들이 지향했던 학문과 삶의 목표 및 방법이란 오로지 내면에 힘쓰고 자기에게 성실함, 외적 유혹을 물리치고 실리(實理)를 보존함, 외적 화려함을 물리치고 실(實)로 나아감, (본연의) 마음을 보존하여 만 가지 이치를 정밀하게 분별하고, 마음을 진실하게 하여 만사에 대응함, 충신(忠信)을 주로 하고 속이지 않음, 참된 지(知)로써 신실한 행위를 함, 진실한 마음으로 실효의 정치를 행함 등이다. 외면으로부터 내심으로, 다른 사물로부터 자신에로 방향을 전환하여, 내심을 오로지 하고 자신에게 충실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노력은 본연의 마음을 보존하고, 마음을 진실하게 하며, 참마음의 이치를 알고 이를 신실하게 실천하는 일련의 과정이라고 하겠다. 강화 하곡학파의 학문과 삶은 부귀공명과 같은 외적 가치의 구속으로부터 자유를 추구하며, 부단히 자아를 반성하고, 스스로 시비선악을 판단하고 선택하며 책임을 지는 자아주체를 확립하고, 나아가 각각 주체의 다양성을 실현하는 것이다. 강화 하곡학파들에게 있어서 학문과 삶이란 사적(私的)으로는 허학(虛學)과 가행(假行)으로 인해 상실한 진실한 자아를 찾고자 하는 것이며, 공적(公的)으로는 쇠퇴한 국력을 회복하고 잊혀진 민족주체의식을 고취하는 것이었다. 민족주체의식을 고취하고자 하는 강화 하곡학파들의 노력은 우리 한민족(韓民族)의 역사, 언어, 사회, 정치 등에 대한 지대한 관심, 즉 국학(國學) 연구로 나타났으며, 또한 실사(實事), 실효(實效)의 실용적인 학문 연구로 실현되었다. 뿐만 아니라 국권이 상실된 후에는 교육구국운동으로 또는 독립운동으로 표출되었다.
[ "본고는 하곡 정제두의 핵심사상을 계승한 강화 하곡학파가 추구한 실심실학을 고찰한다. 강화 하곡학파들이 지향했던 학문과 삶은 부귀공명과 같은 외적 가치의 구속으로부터 자유를 추구하며, 끊임없이 자아를 반성하고, 스스로 시비선악을 판단하고 선택하며 책임을 지는 자아주체를 세우고, 나아가 각각 주체의 다양성을 실현하고자 했다. 민족주체의식을 고취하고자 하는 강화 하곡학파들의 노력은 국학 연구로 나타났고, 실사, 실효의 실용적인 학문 연구로 실현되었을 뿐만 아니라 국권의 상실 후에는 교육구국운동으로 혹은 독립운동으로 표출 된것이다.", "이 논문에서 논의의 대상으로 삼고자 하는 <강화(江華) 하곡학파(霞谷學派)>는 강화도 지역을 구심점으로 하고, 학문분야는 다양하되 하곡(霞谷) 정제두의 양명학(陽明學)을 근본사상으로 삼으며, 하곡으로부터 시작하여 혈연(血緣)과 학연(學緣)으로 이어지는 하곡의 문인(門人)들을 지칭한다. 이러한 명칭은 민영규(閔泳珪) 교수가 하곡과 그 문인들의 학문의 다양성 때문에 그 학파의 지역적 특색을 강조하여 ‘강화학파’라고 부친 명칭과, 오늘날 많은 양명학자들이 ‘강화 양명학’ 또는 ‘하곡학파’라고 호칭하는 것을 고려하여 지은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명칭은 학파의 발생과 전개의 지역적 특색을 드러내면서, 그 학파의 핵심 또는 근본 취지가 하곡 정제두의 양명학이라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강화 하곡학파>에 관한 연구는 1930년대 위당(爲堂) 정인보에 의해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는 1933년 동아일보에 연재하였던 양명학연론(陽明學演論)에서 조선의 양명학파를 세 유형으로 분류하였다. 제1의 유형은 뚜렷한 저서나 언론(言論)에서 분명히 징거할 만한 것이 있어서 양명학파라 하기에 의심할 수 없는 사람으로 지천(遲川) 최명길(崔鳴吉), 계곡(谿谷) 장유(張維), 하곡 정제두 등이다.", "이 논문에서 논의의 대상은 강화도 지역을 구심점으로 하는 <강화(江華) 하곡학파(霞谷學派)>이고, 학문분야는 다양하되 하곡(霞谷) 정제두의 양명학(陽明學)을 근본사상으로 삼으며, 하곡으로부터 시작하여 혈연(血緣)과 학연(學緣)으로 이어지는 하곡의 문인(門人)들을 대상으로 한다." ]
A201007091822
四書 성립과정에 관한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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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에서는 『論語』, 『孟子』, 『大學』, 『中庸』에 대하여 그 텍스트의 성립시기로부터 宋代에 이르러 四書라는 체계로 확립되면서 경전으로서의 지위를 획득해가는 과정을 추적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경전화의 과정은 宋代 程朱學의 정신 및 이념체계의 시작과 연관되어 있음을 밝혔다. 따라서 우리는 四書에 대하여, 유교 이념의 전형으로서의 표준적인 권위를 지닌 經典이라는 전통적으로 고착된 시야에 매몰되지 않고, 새로운 송대의 시대정신을 발현하는 과정 속에서 새롭게 해석되고 조망된 텍스트로 그 자의성과 참신성을 인정할 때에만 그 본래의 의미와 또한 새로운 역할을 찾아낼 수 있게 될 것이다.
[ "본고는 論語, 孟子, 大學, 中庸에 대해 宋代에 이르러 四書라는 체계로 확립되며 경전으로서의 지위를 획득하는 과정을 고찰한다.", "『論語』, 『孟子』, 『大學』, 『中廣』의 四書는 그 텍스트가 형성되던 시기부터 현재와 같은 위상을 가지고 전해진 것은 아니다. 특히 『大學』, 『中廣』과 같은 경우에는 당시 五經중 하나인 『禮記』의 각 편에 해당하던 것이었으며, 『論語』, 『孟子』의 경우에도 유가의 聖經으로서의 사상적 지위를 얻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宋代 에 이르러서야 본격적으로 四書가 중시되면서 사상사적인 역할을 하게 되었고, 朱子, 殷後, 元나라 때에는 四書가 과거 과목으로 중시 되면서 관학화 되어 통치이념으로서 정치사상적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으며, 明나라의 영락제에 의해서 사서대전이 만들어지면서 동아시아의 지배이념으로까지 역할하게 되었다. 이는 『論語』, 『孟子』, 『大學』, 『中廣』이라는 네 가지 텍스트가 성립되고 확장되어 텍스트 이상의 권위를 지니게 되는 이념화의 과정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이러한 확장의 근본적인 계기는 주자는 사서대전에 주해를 달아 『대학』과 『중용』에는「章句」를 『論語』와 『孟子』에는 「集注」를 저술하는 것으로부터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다.", "『論語』, 『孟子』의 경우에도 유가의 聖經으로서의 사상적 지위를 얻지 못하고 있었지만, 宋代 에 이르러서야 본격적으로 四書가 중시되면서 사상사적인 역할을 하게 되었다. 이후 朱子, 殷後, 元나라 때에는 四書가 통치이념으로서 정치사상적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다." ]
A201007091826
왕기의 心本論과 그 易理的 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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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에서는 왕기가 ‘역리(易理)’의 방식을 어떻게 끌어들여 자신의 심본론(心本論)의 함의와 의의를 밝혔는가에 중점을 두고 있다. 이를 위해 본 논문에서는 역사적 맥락과 이론사유라는 두 가지 측면을 논거로 삼았다. 즉 육왕심학의 계열, 즉 정호, 육구연, 양간, 왕양명으로 계승되는 심학의 발전사의 흐름과 그 속에서 논의되는 역학적 사유방식에 천착했다. 왕학(王學)에서 특히 왕기라는 인물을 주목하는 것은 그가 심학의 논변에 관한 방법론적 특성을 잘 보여 주기 때문이다. 그는 인간의 마음을 지고지존(至高至尊)의 범주로 삼고, 이것을 우주가 변화하는 이치의 중심 혹은 만사만물이 운행되는 본원으로 상정해놓음으로써 주관인식의 내면적 경지를 우주의 본체라는 지향성의 차원으로 올려놓았다. 왕양명처럼 왕기 역시 인간의 마음이 운용되는 원칙을 논하는 데에 ‘양지’의 본체론적 사유방식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는 ‘양지’ 개념을 설명하는 데에 ‘역리’의 방식을 활용한다. 특히 그는 “역은 바로 양지이다(易卽良知)”라는 명제로써 본체로서의 마음의 성격을 규정하고, 또한 “태극이란 마음의 궁극이다(太極者, 心之極)”라는 원칙에 입각하여 심본론의 강령을 세워놓았다. 그 내용에 있어서 그는 ‘체’와 ‘용’의 범주 뿐만 아니라 ‘적연’과 ‘감통’, ‘선천’과 ‘후천’의 범주도 설정하고, 그 범주의 일체적 과정을 통해 마음 속에서 궁극적 본체로서의 ‘양지’가 어떻게 운용되고 발용하는지를 규명했다. 이러한 일체적 과정을 내용으로 한 ‘양지’의 본체론적 성격은 결국에 이른바 ‘사무설(四無說)’에 형이상학적 논거를 제공한 셈이다. 즉 ‘양지’는 선도 악도 없는 마음의 본체로서, 인간이 일단 그 본체를 보존하기만 한다면, 그 본체에 따라 발동하는 도덕적 의식과 행위는 자연스레 선하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양지’의 본체론적 사유방식에 관한 그의 논단은 ‘천인합일(天人合一)’ 혹은 ‘천인의 도(天人之道)’라는 성리학적 대전제를 추구하는 심학의 특유의 논변, 즉 천도(天道)와 인도(人道)의 통일 혹은 일체를 체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 "본고는 왕기가 역리의 방식을 어떻게 끌어들여 자신의 심본론의 함의와 의의를 밝힌다. 왕기는 인간의 마음을 지고지존의 범주로 삼고, 인간의 마음이 운용되는 원칙을 논하는 데에 양지의 본체론적 사유방식에 초점을 맞춘다. 그는 양지 개념을 역리의 방식을 활용하여 易卽良知라는 명제로써 본체로서의 마음의 성격을 규정하고, 太極者, 心之極라는 원칙에 입각하여 심본론의 강령을 세웠다. 이는 사무설에 형이상학적 논거를 제공하고 양지의 본체론적 사유방식에 관한 그의 논단은 천인합일 또는 천인의 도라는 성리학적 대전제를 추구하는 심학의 특유의 논변을 체현한 것이다.", "성리학에서 추구하는 일종의 지향성의 관념으로는 ‘천인합일(天人合一)’ 혹은 ‘천인의 도(天人之道)’가 있다. 이 관념은 인간이 체현하려는 도덕수양의 경지를 단적으로 드러낸 것이라 할 수 있다. 그 특징을 성리학의 3대 이론체계, 즉 리학(理學), 기학(氣學) 및 심학(心學)으로 나누어 설명하면, 리학이 인도(人道)를 천도(天道)로 끌어올리는 입장에 있다면, 기학은 천도를 인도로 구체화 시킨 입장에 있으며, 심학은 천도와 인도가 통일 혹은 일체 된다는 입장에 있다는 것이다. 이른바 ‘육왕(陸王)’의 심학이 주목받는 것은 바로 천도와 인도의 통일 혹은 일체를 추구하는 데에 인간 마음의 본질 및 그 의의를 천착했다는 점일 것이다. 심학을 주장한 학자들은 인간이 자신의 본래의 마음을 다스릴 수 있기만 한다면, 결국에는 그 본연의 모습 즉 완전한 인격을 성취할 수 있다고 보았다. 여기에 인간이 구현하려는 절대적 단계, 즉 나와 우주 혹은 주체와 객체를 일체화하는 경지가 중요시된다. 필자가 왕학(王學)에서 특히 왕기(王鐵)라는 인물을 주목하는 것은 그가 심학에 관한 방법론적 특성을 잘 보여 주기 때문이다.", "심학이 주목받는 것은 천도와 인도의 통일 혹은 일체를 추구하는 데 인간 마음의 본질 및 그 의의를 천착했다는 점이다. 심학 학자들은 인간이 자신의 본래의 마음을 다스릴 수 있기만 하면, 결국 그 본연의 모습 즉 완전한 인격을 성취할 수 있다고 했다." ]
A201007091830
박목월 시의 산에 나타난 미학적 특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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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목월의 초기시에 자주 등장하는 산은 그의 미학과 이상의 집약이다. 이러한 진단에 따라 본고는 박목월의 山詩를 중심으로 그 미적 근원을 구명하고자 한다. 시에서 산은 전통을 계승하는 동시에 그가 창안한 표상에 의해 새로운 미적 공간으로 발현된다. 그의 표상들은 동양 고전에 근거한 것으로 간소하고 단순한 미적 구도와 이상을 담보한다. 이러한 특징은 박목월이 동양화의 세계를 미적 이상으로 삼고, 그 구도를 전유하는 데서 비롯된다. 여기서 중요한 기법으로 작용하는 ‘取捨’는 대상을 취하고 버리는 것의 엄격한 운용으로, 박목월 시의 미학은 대부분 이를 통해 구현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미적 감각과 추구에 따라 박목월의 산시는 독특한 고전미와 이상을 확보하며 동양화 같은 신비로운 세계를 보여준다. 안식과 평화를 위한 시적 도피처인 산이 박목월이 꿈꾸는 하나의 심미적 이상향으로 발현되는 것이다. 따라서 시 속의 산은 ‘仙桃花’가 피고 ‘청노루’가 사는 ‘무릉도원’ 같은 동양적이고도 독창적인 이상향의 특징을 보여준다. 산이 생명의 원형 공간이자 적막의 영원성을 담보한 이상 세계를 구현하는 것이다. 이렇듯 박목월이 추구한 시 속에의 산은 고전적 미학과 이상의 집약으로 특유의 미학적 아우라를 확보한다. 전통을 이어받되 그가 선취한 고전적 이미지와 미학으로 산시 계보에서 또 하나의 독창적인 산을 세운 것이다.
[ "본고는 박목월의 山詩의 그 미적 근원을 밝히고자 한다. 그의 시에서 산은 전통을 계승함과 동시에 그가 창안한 표상에 의해 새로운 미적 공간으로 발현된다. 이런 미적 감각과 추구에 따라 시 속에의 산은 고전적 미학과 이상의 집약으로 특유의 미학적 아우라를 확보하고 전통을 이어받았지만 그가 선취한 고전적 이미지와 미학으로 독창적인 산을 세웠다.", "박목월의 초기시는 미적 이상에 대한 추구가 두드러진다. 이는 주로 산을 통해 나타나며 동양화적 구도 위에 세워지는 특성을 보인다. 한 폭의 동양화 같은 구도에 고전적인 미학을 집약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초기시의 산에 부각되는 구도나 표상들은 독특한 양식성을 갖고 있다. 특히 山詩는 이러한 양식성과 함께 심미성이 두드러지는데, 양적인 면에서도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한다. 초기시 전체(靑綠集 과 山桃花)의 자연 표상 가운데서도 산이 가장 높은 빈도를 나타내는 것이다. 산에 대한 이런 집중은 박목월의 초기시가 추구하는 미적 이상과 특성이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인지 잘 보여준다. 박목월 시에서 산은 정신적인 안식처이자 이상적인 생명의 공간으로 나타나고 있다. 산이 현실과의 격리나 초월을 통해 새로운 생명의 발현을 꿈꾸는 이상향으로 구현되는 것이다. 이러한 추구는 “자연과 인간을 하나로 통하게 하는 것이 바로 마음이며 그 원리가 도”라고 본 동양적 세계관의 집약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산은 실제 현실 속의 공간이 아닌 ‘마음의 지도’로 기획되며 박목월의 내밀한 은신처이자 도피처로 추구된다.", "박목월 시에서 산은 정신적인 안식처이자 이상적인 생명의 공간으로 나타난다. 산이 현실과의 격리나 초월을 통해 새로운 생명의 발현을 꿈꾸는 이상향으로 구현된 것이다. 이러한 추구는 동양적 세계관의 집약이라 할 수 있다." ]
A201007091841
탈색된 머리카락의 미세구조적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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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성인 여성의 머리카락에 미용실에서 일반적으로 시술하는 탈색제를 사용한 다음 탈색 직후, 탈색 후 10일, 20일이 경과한 머리카락을 채취하여 머리카락의 손상정도를 고배율의 투과 및 주사전자현미경으로 관찰하였다. 탈색 직후 머리카락의 표면은 정상 머리카락과 비슷한 상태로 관찰되었으며 비늘이 분리되거나 손상됨 없이 나타났다. 탈색 후 10일 경과된 머리카락은 비늘이 분리되어 있고 일부 큐티클세포의 세포질은 조각이 나 있거나 떨어져 나갔다. 이 시기에 머리카락은 비늘이 떨어져 나가면서 표면에 세포부스러기들이 그대로 부착되어 있고,비늘의 모양은 끝 쪽이 날카로운 모양을 하고 있었다. 탈색 후 20일이 경과된 머리카락은 표면 전체가 비늘의 분리에 의해서 거칠게 나타났다.
[ "일반적인 탈색제를 사용해 머리카락 탈색 직후에는 정상 머리카락과 비슷했고, 10일 후에는 머리카락 비늘이 분리되고 큐티클세포의 세포질은 조각 나거나 떨어졌으며, 20일 후에는 표면 전체가 거칠어졌다.", "머리카락의 죽은 세포 부분인 모간(hair shaft)은 바깥부위에서 안쪽으로 큐티클(cuticle)과 피질(cortex) 및 수질(medulla)의 세 개의 층으로 구성되어 있다. 큐티클은 케라틴 단백질로 구성된 큐티클세포(cuticular cell)들이 중첩되어 마치 지붕의 석가래 모양으로 중첩되어 있다. 큐티클의 기능은 피질을 둘러싸서 보호해주는 역할을 하는데 정상 머리카락의 손상되지 않은 큐티클은 표면이 매끄러우며, 빛을 굴절시키고, 머리카락 사이의 마찰력을 줄여주는 역할을 한다. 수질은 머리카락의 중심부에 연속적으로 또는 불연속적으로 존재하며 수질이 없는 경우도 있다. 피질은 머리카락에 신축성과 강도를 제공하는데 길게 신장된 각화세포(cornified cell)들이 서로 밀착되어 있다. 각화세포는 머리카락 섬유와 같은 방향으로 길게 종주하며 서로 아주 밀착되어 있으며 이들 세포는 무정형의 황함유 단백질과 케라틴 세사들로 구성되어 있다. 케라틴은 그 자체가 무색이며 머리카락의 색깔은 피질에 있는 멜라닌과립의 존재유무에 따라 부여 된다.", "머리카락의 죽은 세포 부분인 모간(hair shaft)은 큐티클(cuticle)과 피질(cortex) 및 수질(medulla)의 세 개의 층으로 구성된다. 피질를 포함한 이들 세포는 무정형의 황함유 단백질과 케라틴 세사들로 구성되어 있다. " ]
A201007091845
방향성 좀목형(Vitex negundo) 모용의 구조적 분화발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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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향성 식물은 식물체 특정 부위에 분비구조를 발달시켜 활성물질을 세포의 외부 또는 세포간극으로 방출한다. 민간에서 약용으로 활용되는 좀목형(Vitex negundovar.incisa)은 독특한 향기를 강하게 발산하는 식물로 향의 근원은 표피조직에 발달하는 분비모 등에 의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에 본 연구에서는 좀목형의 잎 및 줄기 표피조직에 발달하는 모용에 대하여 생장단계별로 형태 및 세포 수준에서의 구조분화 양상을 연구하였다. 좀목형에 발달하는 분비모는 4개의 분비세포(ca.50m 직경)와 병세포(ca.5m 길이)로 분화하는 peltate 유형(Type 1), 2개의 분비세포(ca.15m), 병세포(5~ 10m), 기저세포로 이루어진 capitate 유형(Type 2), 정단의 분비세포가 초기 단계에서부터 퇴화되는 degraded capitate 유형(Type 3)으로 분화하였다. 비분비모는 특히 하피 전체에 더 발달하는 장상의 다세포성 모용 (110~ 190 m, Type 4)과 상 ㆍ하피 전체에 밀생하는 단세포성 모용 (20~ 30 m, Type5)으로 대별되었다. 분화 초기 분비모 정단의 분비세포에서는 큐티클층이 세포벽으로부터 서서히 분리되어 팽창되면서 분비강이 형성되었다. 분비세포 세포질에서 생성된 물질은 세포벽을 통해 운반되어 분비강에 형성된 많은 분비소포에 저장되고, 이들 소포가 팽창된 분비강을 가득 채우며 생성되는 물질들을 축적한 후 방향성분 및 관련 물질을 누출상 분비방식으로 세포간극 또는 외부로 방출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와 같이 좀목형에서는 peltate 및 capitate 유형 (Type 1, 2)이 분비기작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사료된다. 본 연구에서 밝혀진 좀목형의 분비구조에 대한 정보는 방향성 약용식물이 함유하는 특정물질의 기능성 성분 추적 연구 등에서 매우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는 자료가 될 것이다.
[ "본고는 좀목형의 잎 및 줄기 표피조직에 발달하는 모용에 대해 생장단계별로 형태 및 세포 수준에서의 구조분화 양상을 고찰한다. 분비모 정단의 분비세포에서는 큐티클층이 세포벽으로부터 분리되어 팽창하며 분비강이 형성되고 분비세포 세포질에서 생성된 물질은 세포벽을 통해 분비강에 형성된 분비소포에 저장되어 소포가 팽창된 분비강을 가득 채워 누출상 분비방식으로 세포간극 혹은 외부의 방출로 추정된다. 이 같은 좀목형에서는 peltate 및 capitate 유형이 분비기작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여진다.", "방향성 식물(aromatic plants)은 식물체의 잎, 줄기, 생식구조 등의 특정부위에 독특한 향을 내는 분비선 또는 모용 등의 분비구조를 발달시킨다. 많은 종류의 방향성 식물들은 발생초기부터 식물체 여러 부위의 최외층 표피조직에 다양한 형태의 모용을 생성하여 이들을 통한 독특한 향의 방출 또는 특정물질의 분비를 유도할 수 있도록 분화된다. 특히, 모용은 분비기능이 활발한 방향성 식물에서 유용한 2차 대사유기 화합물을 생성 및 축적하고 분비하는데 중추적인 기능을 수행하는 것으로 알려진 구조이다. 표피세포가 특수하게 돌출되어 단순한 하나의 세포나 여러 개의 복잡한 다세포로 형성되는 모용은 동일 식물체 내에서도 부위에 따라 다양한 유형이 발달할 수 있다. 크게 분비모(glandular trichome)와 비분비모(non-glandular trichome)로 대별되는 모용은 식물종에 따라 혹은 기관에 따라 각기 현저하게 다른 형태 및 기능을 가진 구조로 분화할 수 있다. 식물의 분비모는 특정물질을 세포의 외부 또는 세포간극으로 방출하는 매우 발달된 세포들로 구성되며, 대개의 경우 분비세포(secretary head cell)와 보조세포(supporting cell)로 분화된다.", "방향성 식물은 식물체의 잎, 줄기, 생식구조 등 특정부위에 독특한 향을 내는 분비선 또는 모용 등의 분비구조를 발달시킨다. 특히, 모용은 분비기능이 활발한 방향성 식물에서 유용한 2차 대사유기 화합물을 생성 및 축적하고 분비하는데 중추적인 기능을 수행한다." ]
A201007091848
세계화 시대의 한국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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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세계화시대이다. 세계화시대에 문학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우리가 지구촌의 떳떳한 구성원으로서 우리 문학을 세계화하려면, 그 길은 민족문학을 재정립하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근대 이후 오랫동안 쌓아왔던 민족문학의 전통을 유지하면서 새로운 민족문학의 모습을 만들어야 할 시점에 있다. 지금까지의 민족문학이 쌓아왔던 실체는, 민족문학론들이 애써 가꾸어 왔듯이, 민주정신, 인간해방정신, 공정한 삶의 기회 등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었다. 세계화시대에도 그러한 보편적 가치는 여전히 중요하고 기본적인 것이며 또 아직도 위협받고 있기도 하다. 이를 위하여 이제 새로운 시대에 대응할 지혜와 각성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하여 다음과 같은 세계화에 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첫째, 주체성을 바르게 세우는 일이다. 둘째, 윤리성을 되찾고 새로운 윤리의 모델을 만드는 일이다. 셋째, 인간애를 확산시키는 것, 다시 말하면 중심과 주변의 경계를 지우는 일이다. 넷째, 세계의 환경을 지키는 데에 협력하고 주도하는 일이다. 그렇다면 그러한 자세를 갖추고, 세계화 시대를 맞이하기 위하여 구체적으로 민족문학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1. 통일을 준비하는 과제를 우선적으로 수행해야 한다. 2. 중심과 주변의 경계 지우기의 하나로서 지역문학에 대한 애정을 키워 나가야 한다. 3. 정보산업시대에 대응하기 위하여 매체의 다양성을 받아들여야 한다. 4. 장르의 경계지우기에 인색하지 않아야 한다. 5. 민족문학의 외연을 넓히기 위하여 해외에 나가있는 동포들의 문학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6. 세계문학과 우리 문학의 만남을 더 확장시켜야 한다. 7. 우리 문학의 해외 전파에도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8. 위의 작업들을 설계하고 조정하며 실천, 반성하는 일들을 위한 문화정책 수립이 필요하다.
[ "본고는 세계화에 임하는 자세로 주체성 정립과, 윤리성을 되찾고 새로운 윤리의 모델을 만들며, 인간애를 확산하고 세계의 환경을 지키는 데에 협력하고 주도해야한다. 이러한 자세를 갖추고, 세계화 시대 맞이를 위해 구체적으로 민족문학이 해야 할 일 통일 준비 과제를 우선적으로 수행하고 지역문학에 대한 애정키우며, 매체의 다양성을 받아들여야 한다. 해외 동포들의 문학에 관심을 기울이고, 세계문학과 우리 문학의 만남 확장과 우리 문학의 해외 전파에도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필자가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2006년 4월), 서울에서는 FTA를 반대하는 시위가 한창이다. 반대하는 사람들은 주로 노동자, 농민, 진보적 학생들인데, 그러거나 말거나 다른 한편(정부를 포함하여)에서는 FTA만이 살길이라 외치고 있다. 그리고 정치, 경제, 문화 모든 방면에서 지도자, 전문가에 속하는 사람들은 세계화가 대세라 말한다. 세계화란 무엇일까? 미국에서나 볼 수 있던 스타벅스를 우리나라에서도 볼 수 있게 된 것이 세계화인가? 그 스타벅스가 우리나라 곳곳에 창궐하여 우리 돈을 벌어가는 것인가? 혹은 스타벅스에서 호박죽이나 단팥죽을 사먹을 수 있는 것인가? 우리나라에 있는 스타벅스는 미국 대도시에 있는 스타벅스에서 주문할 수 있는 메뉴를 거의 모두 갖추고 있다. 그러나 미국의 스타벅스에서는 호박죽이나 단팥죽을 주문할 수 없다. 그렇다면 우리가 미국보다 더 세계화 된 것일까? 혹은 그 반대일까? 우리는 지금 ‘세계’화와 한국문학이란 주제로 ‘국제’학술대회를 열고 있다. 나는 지금 ‘지구촌’ 시대와 한국문학의 관계란 주제로 발표를 하려 한다. 국제화와 세계화, 지구촌화(전 지구화)는 각기 어떻게 다른 것일까? ‘세계화’가 지금 우리 시대의 대세라고들 하면서 여기저기서 세계화에 대한 이야기들을 나누지만, 세계화가 무엇이며, 무엇을 남길 것이며, 우리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에 대한 담론은 그다지 보이지 않는다. 심지어는 세계화에 대한 개념과 용어조차도 명확하지 않다.", "‘세계화’가 우리 시대의 대세라 하며 세계화에 대한 이야기들을 나누지만, 세계화가 무엇이며, 무엇을 남길 것이며, 우리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에 대한 담론은 보이지 않는다. 심지어 세계화에 대한 개념과 용어조차도 불명확하다." ]
A201007091851
이중정체성의 갈등과 문학적 형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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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조선족은 한반도에 그 뿌리를 둔 한민족의 후예들이며 지금은 중국의 소수민족의 일원으로, 민족적 정체성과 국민적 정체성이라는 이중 정체성을 항상 의식하며 살아가고 있다. 조선족의 이중 정체성으로 말미암아 조선족 문학도 자연 이중적 성격을 지니게 된다. 1900-1920년대의 ‘재중한인’ 문학은 민족애, 조국애, 고향애가 기본 주제였고 그 가운데서도 국권회복과 민족독립이 가장 큰 관심사였다. 유린석, 김택영, 신규식, 신채호, 이륙사, 김좌진, 김중건 등 우국지사들의 작품과 이 시기 만주 땅에 널리 전해진 창가, 독립군가요 등이 바로 그것이다. 이때는 민족적 정체성이 우위였다고 할 수 있다. 1931-1945년의 재만 조선인 문학은 이주민으로서의 정체성 의식, 즉 한민족이란 민족적 정체성과 만주 땅에 이주해 사는 이주민이란 정체성의 갈등과 화합이 뚜렷한 특징이었고 그 가운데서도 정착의 고난과 그 극복이 가장 큰 관심사라고 할 수 있다. 공화국 창건 후 조선족 문학은 민족적인 형식에 사회주의 내용을 담은 문학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시기 조선족 문학에 중국 문화의 침투가 가장 뚜렷이 나타났고 국민적 정체성이 우위였다고 할 수 있다. 개혁 개방 후, 한국과의 교류가 현실화되자 조선족들은 민족의 정체성 확인에 열중하였고 그 첫째 가는 작업이 뿌리 찾기였다. 그들은 고국에서의 이질감과 소외감, 거주국에서의 열등감과 소외감 등 이중 정체성의 갈등을 형상화하면서 많은 우수한 작품들을 창작하였다. 조선족 문학에서 민족의 정체성 의식은 선조와의 연계성-‘문화의 뿌리 찾기’ 작업에서 가장 뚜렷하게 나타난다. 이민사의 재현, 이는 중국 조선족 문학의 원초적인 ‘뿌리 찾기’ 작업이요, 중국 조선족이 자신을 정확히 인식하는 행정에서의 첫 발자국이다. 이근전의 장편소설 <고난의 년대>, 최홍일의 장편소설 <눈물 젖은 두만강>은 조선족의 이민사라는 역사 제재를 통하여 뿌리 찾기 작업을 실천한 대표작이다. 망향의식은 조선족 문학의 주요한 특징 중의 하나이며 140여 년간 조선족 문학의 기본 주제 가운데 하나였다. 망향의식의 변이로, 유량의식과 유동의식 역시 조선족 특유의 소재이다. 최국철의 중편소설 <당신과 당신의 후예들>은 집시처럼 떠돌아 다니기를 좋아하는 조선족들의 유이민적인 문화 성격을 그 뿌리로부터 파헤치고 있다. 조선족 문학의 가장 뚜렷한 특징은 민족성일 것이다. 민족화의 시대의 망명 문학과 개척민 문학, 국가화의 시대의 사회주의 문학, 다원화 시대의 자유 문학을 막론하고 거의 모든 작품들은 민족문화에 뿌리를 두고 조선족의 생존 상황을 풀이하고 있다. 어찌 생각하면 남의 땅에서 주변 인물로 소외된 삶을 살아가는 조선족들에게 있어서 민족심은 본토의 우리 민족보다 갑절 더 절실하였다고 할 수 있다.
[ "조선족 문학에서 민족의 정체성 의식은 선조와의 연계성-문화의 뿌리 찾기 작업에서 가장 뚜렷히 나타난다. 이근전의 장편소설 고난의 년대, 최홍일의 장편소설 눈물 젖은 두만강은 조선족의 뿌리 찾기 작업을 실천한 대표작이다. 망향의식은 140여 년간 조선족 문학의 기본 주제 중 하나였다. 최국철의 중편소설 당신과 당신의 후예들은 조선족들의 유이민적인 문화 성격을 그 뿌리로부터 파헤치고 있다. 민족성은 조선족 문학의 가장 뚜렷한 특징으로 거의 모든 작품들은 민족문화에 뿌리를 두고 조선족의 생존 상황을 풀어내고 있다. 남의 땅에서 주변 인물로 소외된 삶을 살아가는 조선족들에게 있어서 민족심은 본토의 우리 민족보다 갑절 더 절실할 수 있을 것이다.", "중국의 조선족은 중국 국적을 가진 조선민족으로서 중국의 소수민족의 일원인 동시에 세계 한민족의 일원이기도 한다. ‘조선족’이란 개념도 ‘조선민족’의 약칭이 아니라 중국 국적을 가진 조선 민족에 대한 전문 칭호, 즉 국적과 민족 출신을 동시에 표시한 호칭이다. 우리 민족이 중국 땅에 이주하여 거친 만주 땅에 첫 괭이를 박은 지도 어언간 140여 년 이되었다. 나라를 잃고 살길을 찾아, 또는 독립운동을 위하여 중국 만주 땅에 발을 붙인 그날부터 조선족은 황무지를 개간하여 벼농사에 성공했고 중국 청 정부, 봉건 군벌, 마적, 일제 등 이중 삼중의 억압 속에서도 제2의 고향 건설과 정착 의지를 굽히지 않았고 항일투쟁, 해방전쟁과 중화인민공화국의 창건에서 많은 피와 땀을 흘리고 귀중한 생명을 바침으로써 역사상 지워버릴 수 없는 기여를 하였고 중화인민공화국의 당당한 주인으로 되었다. 중화인민공화국이 창건된 후에도 조선족들은 사회주의 개조와 건설, 반우파투쟁, 인민공사, 대약진, 문화대혁명을 거쳐 개혁 개방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많은 어려움과 질곡을 헤쳐 왔고 많은 업적들을 창조하였다.", "중국의 조선족은 중국 국적을 가진 조선민족으로서 중국의 소수민족의 일원인 동시에 세계 한민족의 일원이다. 조선족들은 중화인민공화국이 창건된 후에도 많은 어려움과 질곡을 헤쳐 왔고 많은 업적들을 창조했다." ]
A201007091856
고문헌 자료 XML 전자문서 편찬 기술에 관한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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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는 고문헌 자료 정보화를 위한 고전 분야 전문가의 자료 분석 노력이 데이터의 입력 단계뿐 아니라 정보 관리 및 정보 검색 서비스 차원에서도 실효성 있게 반영되도록 하는 전자적 문서 편찬 방법론을 제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으며, 다음과 같은 내용의 연구 성과를 산출하였다. 고문헌 정보화 분야의 XML 활용 현황: 우리나라 고문헌 정보화 분야 사업에서 도입적용되고 있는 XML 관련 기술의 현황과 문제점을 조사분석하고, 고문헌 데이터베이스의 생산관리를 효율화하기 위한 과제를 도출하였다. 기본 저장 단위의 구조화 방안: 문서 중심적 XML의 특징과 고전 문헌 자료의 구조적 특성을 분석하고, 이를 기반으로 계층 구조 고문헌 원시 자료의 논리적 체계가 데이터베이스화 과정에서 왜곡되지 않도록 하는 XML 문서의 설계 모델을 제시하였다. 기본 저장 단위 내부 요소의 정보화: XML Enabled Database 상에서 본문 텍스트에 혼재된 정보 요소들이 기계적으로 식별되고 활용될 수 있도록 하는 문중 요소(In-Text Mark-up Element)의 처리 방법을 제시하였다.
[ "본고는 고문헌 자료 정보화를 위한 전자적 문서 편찬 방법론을 제시한다. 문서 중심적 XML의 특징과 고전 문헌 자료의 구조적 특성 분석을 바탕으로 계층 구조 고문헌 원시 자료의 논리적 체계가 데이터베이스화 과정에서 왜곡되지 않게 하는 XML 문서의 설계 모델을 제안한다.", "고문헌 자료에 기록된 정보를 디지털 신호로 전환하고 그것을 데이터베이스에 담아 온라인으로 서비스하는 일은 이제 고문헌 연구자들만의 관심 사항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 지식 정보 산업의 중요한 부분으로 인정받고 있다. 1999d 이후 연평균 43억원 규모의 정보 콘텐트 개발 사업비를 투여하고 있는 국책 프로젝트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의 경우, 정보화 대상 자원의 40% 이상이 우리나라의 역사에 관련된 기록물들이며, 그중의 적지 않은 부분이 고전 문헌 또는 그것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2차적 저작물들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학술 관련 공공기관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고전 문헌 자료의 정보화는 전자 자료의 생산 업무를 효율화 하고 그 결과물의 활용성을 제고하는 데 필요한 기술적 지반이 미비된 가운데 자료의 양적 증대만을 위주로 추진되어 왔던 것이 현실이다. 그것은 이 분야의 정보화 사업이 IMF 이후 “고학력 실업자 구제’’라는 사회복지 시책의 차원에서 갑작스럽게 출발했던 데에 기인한다. 추진체인 정부 부처나 사업 주관 기관 모두 고전 문헌 자료와 정보 기술이라고 하는 상이한 두 분야를 적정하게 맺어 줄 수 있는 연구 개발을 선행시킬 만한 여유가 없었다. ", "국책 프로젝트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은 40% 이상이 우리나라의 역사에 관련된 기록물들이며, 그중의 적지 않은 부분이 고전 문헌 또는 그것을 기반으로 한 2차적 저작물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고전 문헌 자료의 정보화는 자료의 양적 증대만을 위주로 추진되어 왔던 것이 현실이다." ]
A201007091860
비트겐슈타인과 유아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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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아론에 대한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적 투쟁을 조명하는 것은 그의 전체 철학의 핵심을 조명하는 것에 상당한다. 요컨대 유아론의 문제는 언어놀이, 놀이와 언어의 유사성, 가족 유사성, 규칙 따르기, 규칙 따르기의 역설, 사적 언어 논변, 뜻함, 봄과 -로서 봄, 모순, 논리적 필연성, 함 또는 실천과 같은 후기 비트겐슈타인의 핵심 개념이나 주제와 얽혀 있다. 이를 보이기 위해서 이 글에서는 유아론의 개념, 유아론에 대한 청년 비트겐슈타인의 생각, 후기 비트겐슈타인의 진단을 논의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우리는 비트겐슈타인이 유아론(넓게는 데카르트주의, 영국경험론, 현상학)에서 실천으로 나아가는 패러다임의 전환을 수행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논의가 진행되면 우리는 유아론에 대한 후기 비트겐슈타인의 비판과 ‘사적 언어’가 어떻게 연결되는지 자연스럽게 문제 삼게 된다. 많은 학자들이 주장하는 바에 따르면, 비트겐슈타인은 사적 언어가 불가능하다고 간주했다. 그러나 나는 이러한 주장은 비트겐슈타인이 처한 패러다임의 전환 상황을 간과하는 처사로서 설득력 없는 것임을 보이고자 한다.
[ "본고는 유아론의 개념, 유아론에 대한 청년 비트겐슈타인의 생각과 후기 비트겐슈타인의 진단을 논의한다. 유아론에서 실천으로 나아가는 패러다임의 전환을 확인하고, 많은 학자들은 비트겐슈타인이 사적 언어가 불가능하다고 주장했으나 나는 그가 처한 패러다임의 전환 상황을 간과하는 처사로서 설득력이 없음을 보여준다.", "다른 사람과 커피를 마시며 대화를 할 때 우리는 한 번쯤 이렇게 묻는다. 저 사람도 과연 나와 같이 바로 이 커피 맛을 느낄까? 내 혀에서 느껴지는 바로 이 맛을 저 사람도 느끼고 있을까? 혹시 저 사람은 혀에서 주스 맛을 느끼고 있는 것은 아닐까? 커피 맛이 달다고 말하지만 저 사람은 혹시 매우 쓴 맛을 느끼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내가 느끼고 있는 커피 맛과 저 사람이 느끼고 있는 그 맛은 어쨌든 동일하거나 상이해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동일하다면 어떻게 나는 이를 알 수 있을까? 내가 저 사람이 아닌 바에야 결코 알 수 없는 것 아닐까? 일단 이런 물음이 떠오르면 물음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내가 저 사람이 아닌 이상 결코 알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엄습하면, 내가 저 사람이 아닌 이상 저 사람이 도대체 커피 맛이건 주스 맛이건 느끼기나 하는 존재인지, 혹시 기계는 아닌지, 저 사람이 과연 나와 같이 생각할 수 있는 존재인지, 그래서 지금 내가 사람과 대화를 하고 있는 것인지, 그리고 이를 알 수 있기나 한 것인지 기묘한 기분과 의문들이 꼬리를 물며 달콤했던 커피 맛을 바꾸어 버린다.", "다른 사람과 커피를 마시며 대화를 할 때 우리는 한 번쯤 이렇게 묻는다. 저 사람도 과연 나와 같이 바로 이 커피 맛을 느낄까? 라는 등의 여러가지 생각이 엄습하면, 기묘한 기분과 의문들이 꼬리를 물며 달콤했던 커피 맛을 바꾸어 버린다." ]
A201007091864
야담의 기이 인식*- 학산한언을 중심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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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두 단편은 기이의 가장 중요한 두 영역을 다루었다. 전자는 기이한 자연 현상과 산 사람의 관계를 다루었다. 후자는 귀신과 산 사람의 관계를 다루였다. 최신록의 많은 기이 관련 문답 중 가장 핵심적인 두 단편을 선별한 데에서도 신돈복의 기이 인식 수준을 짐작할 수 있다. 이 점을 염두에 두며 송시열의 귀신론을 좀더 체계적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최신록에 이런 구절이 있다. (내[최신]가 여쭈었다.) “중용에 ‘(귀신은) 만물의 본체가 되기에 버릴 수 없다’ 했습니다. 이로 본다면 귀신이 깃들지 않은 사물이 없다 하겠습니다. 사람의 몸에도 귀신이 없지 않겠지요. 이런 (주장은) 사람이 죽으면 귀신이 된다는 설과는 같지 않은 듯한데 왜 그럴까요?” 선생께서 대답하셨다. “‘(귀신은) 만물의 본체가 되기에 버릴 수 없다’는 (중용의) 구절은 천지 사이에 굽히고 펴고 가고 오는 음양의 실제 이치가 귀신 아닌 것이 없다는 뜻이지. 사람이 죽으면 귀신이 된다는 설을 살펴보자. 혼은 올라가 하늘로 돌아가고 백은 내려가 땅으로 돌아가니 이때 말하는 혼백이 귀신이다. 비단 사람에게서만 그러한 것이 아니라 금수에게서도 그러하니 이런 설은 ‘(귀신은) 만물의 본체가 되어 버릴 수 없다’고 하는 (중용의) 설과는 같지 않은 것이다.
[ "기이 관련 문답 관련 중 핵심적인 두 단편을 선정한것에 신돈복의 기이 인식 수준을 염두하고 송시열의 귀신론을 체계적으로 이해하고자 한다. 혼은 올라가 하늘로 돌아가고 백은 내려가 땅으로 돌아가니 이때에 혼백은 귀신이다. 비단 사람에게서만 그러한 것이 아니라 금수에게서도 그러하니 만물의 본체가 되어 버릴 수 없다하는 설과는 같지 않다.", "‘현실적’인 이야기와 ‘비현실적’인 ‘기이(奇異)한’ 이야기가 야담집에 공존한다는 현상은 야담이 현실 경험을 바탕으로 했을 뿐만 아니라 과거로부터 전승되던 전설이나 민담을 발전시킨 것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당연하다고 하겠다. 아울러 야담집을 편찬한 사대부가 현실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물론 기이한 이야기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의미를 부여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현실적인 이야기와 기이한 이야기를 모순 관계로만 보지 말고 그들이 공존하게 된 논리를 찾아보는 것이 더 바람직할 것이다. 필자는 이런 문제의식에서 학산한언(鶴山閑言)의 현실지향과 비현실지향의 공존양상과 공존논리를 검토한 바 있다. 본 고에서는 그 논리를 바탕으로 하여 학산한언 의 편찬자 신돈복의 기이관의 기저를 살피고 그런 기이관이 어떤 의의를 지닐 수 있는지 생각해보고자 한다. 특히 송시열의 기이관을 신돈복이 수용한 양상을 밝히고자 한다. 학산한언 에 실려 있는 기이한 이야기는 크게 두 성향과 연결된다. 첫째가 귀신과 관련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신선과 관련된 것이다. 귀신과 신선은 현실의 일상적 인물은 아니라는 점에서 비슷하지만 그 본질은 상당히 다르다. 이렇게 본질이 다른 두 요소가 어떤 인식적 기저에서 학산한언 을 구성하게 되었는가를 밝히고 그것들이 어떤 역할을 하게 되었는지도 탐색해보겠다.", "사전연구에서 문제의식에서 학산한언(鶴山閑言)의 현실지향과 비현실지향의 공존양상과 공존논리를 검토한 바 있다. 이에 본 고에서는 학산한언의 편찬자 신돈복의 기이관의 기저를 살피고 그런 기이관이 어떤 의의를 지닐 수 있는지 생각해보며, 특히 송시열의 기이관을 신돈복이 수용한 양상을 보려 한다. " ]
A201007091880
문장의 의미 파악과 오심(五心)의 관계에 대한 태현의 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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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심(心)은 솔이심(率爾心), 심구심(尋求心), 결정심(決定心), 염정심(染淨心), 등류심(等流心)이다. 『유가사지론』에서 거론된 후 원측(圓測)과 규기(窺基) 같은 논사들이 「오심장(五心障)」을 따로 두어 논할 만큼 불교 논사들의 지대한 관심의 대상이 되었던 주제이다. “취집(聚集)의 현현(顯現)”은 문장의 의미 파악의 본질을 보여 주는 한역어이다. 매 자 매 구절에서 의미가 형성되고 축적되지 않다면 문장의 최후의 자를 들을 때 문장의 의미를 파악할 수 없을 것이다. 태현에 따르면 문장의 최후의 자를 들을 때 취집이 현현하려면 5심 중 솔이심, 심구심, 결정심이 이미 매 자에서 기능해야 하고 최후의 자에 가서 이 3심과 함께 염정심, 등류심이 기능해야 한다. 이렇게 “취집의 현현”과 5심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문장의 의미 파악은 문장의 최후의 자를 들을 때 완성된다. 최후의 자를 들을 때 최후의 자의 의미가 새로 파악되는 것이긴 하지만 이 자의 의미만 파악되는 것이 아니다. 문장의 앞 자에서 뒤 자로 가면서 명(名)이 형성될 때마다 곧바로 의미가 파악되면서 보존된다. 예를 들어 “제행무상”이란 말을 듣는 경우 앞의 자들인 ‘제’, ‘행’, ‘무’의 의미를 보존하고 있어야 최후의 자인 ‘상’을 들을 때 문장의 의미를 파악할 수 있는 것이다. ‘제’, ‘행’, ‘무’, ‘상’ 각각의 명(名)에서 곧바로 의미가 파악되어야 보존될 수 있고, 이렇게 각각의 명(名)에서 의미가 파악되려면 각 자에서 솔이심과 심구심과 결정심이 기능해야 한다고 태현은 말한다. ‘제’ 자를 들을 때 ‘제’의 성(聲)을 파악하기 위해 솔이심이 기능하고 ‘제’의 자(字)와 명(名)과 의(義)를 결정하기 위해 결정심이 기능한다. ‘제’, ‘행’, ‘무’, ‘상’ 각 자는 이미 습득된 자들이므로 이제 새롭게 의미를 심구해서 결정해야 하는 자들이 아니다. 이미 습득된 자들이므로 듣는 즉시 의미를 결정할 수 있다. 다만 문장의 부분을 이루는 자(字)는 아직 명(名)을 형성하지 않고 명(名)은 아직 단일한 의미로 확정되지 않으면서 다음의 명(名)으로 넘어가기에, 다음에 오는 명(名)과 함께 의미가 확정될 수 있도록 심구할 가능성은 있다. 다음 자(字)에서 명(名)이 결정되고, 다음의 명(名)에서 의미가 확정되거나 또는 다음 구절과의 관계에서 의미가 확정되기에 의미[義]는 일정한 한도 내에서 개방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고, 이 개방된 의미의 영역에서 심구심이 기능한다.
[ "5심은 오심장을 따로 두어 논할 만큼 불교 논사들의 관심 대상의 주제로, 태현에 따르면 문장의 최후의 자를 들을 때 취집이 현현하려면 5심 중에 솔이심, 심구심, 결정심이 이미 매 자에서 기능하고 이 3심과 함께 염정심, 등류심이 기능한다. 이렇듯 취집의 현현과 5심은 밀접한 연관이 있다. 문장의 최후의 자를 들을 때 의미가 파악 되지만 자의 의미만 파악되는 것이 아니다. 문장의 앞 자에서 뒤 자로 가면서 명이 형성될 때마다 즉시 의미가 파악되고 보존되므로 의미는 일정한 한도 내에서 개방되어 있고, 이 개방된 의미의 영역에서 심구심이 작용한다.", "5심(心)은 솔이심(率爾心), 심구심(尋求心), 결정심(決定心), 염정심(染淨心), 등류심(等流心)이다. 『유가사지론』에서 거론된 후 원측(圓測)과 규기(窺基) 같은 논사들이 오심장(五心障)을 따로 두어 논할 만큼 불교 논사들의 지대한 관심의 대상이 되었던 주제이다. “취집(聚集)의 현현(顯現)”은 문장의 의미 파악의 본질을 보여 주는 한역어이다. 매 자 매 구절에서 의미가 형성되고 축적되지 않다면 문장의 최후의 자를 들을 때 문장의 의미를 파악할 수 없을 것이다. 문장의 최후의 자를 들을 때 취집이 현현하려면 5심 중 솔이심, 심구심, 결정심이 이미 매 자에서 기능해야 하고 최후의 자에 가서 이 3심과 함께 염정심, 등류심이 기능해야 한다. 이렇게 “취집의 현현”과 5심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제행무상”을 들을 때 이 문장의 의미가 파악되려면 5심(心) 중에서 특히 솔이심, 심구심, 결정심이 기능해야 한다. 최후의 자에는 염정심과 등류심도 함께하기에 문장의 의미 파악에 이 심들도 기능하겠지만, 최후의 자를 제외한 자들에서 이 심들이 기능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솔이심, 심구심, 결정심이 3심이 이미 들은 앞 자들의 의미를 축적하며 의미를 적극적으로 결정한다고 할 수 있다.", "5심(心)은 솔이심(率爾心), 심구심(尋求心), 결정심(決定心), 염정심(染淨心), 등류심(等流心)이다. 이는 불교 논사들의 지대한 관심의 대상이 되었던 주제이며, “제행무상”을 들을 때 이 문장의 의미가 파악되려면 5심(心) 중에서 특히 솔이심, 심구심, 결정심이 기능해야 한다." ]
A201007091885
道德ㆍ倫理 敎育의 方向에 관한 提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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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개인의 도덕관이나 윤리의식은 그 사람의 정체성을 형성한다. 따라서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우리 전통의 도덕/윤리를 교육해야 한다. 그런데 도덕관이나 윤리의식은 그 철학관, 세계관, 인생관 등에 근거하여 나온 것이다. 따라서 우리의 도덕윤리를 알기 위해서는 우리의 철학 등의 특징을 먼저 알아야 한다. 서양철학은 智慧를 사랑하며 사물의 본질 탐구를 주로 하지만, 동양철학은 현실대응을 긴박하게 여겨 만물이 갈 길, 즉 道를 찾고자 한다. 이 道는 우리 앞에 놓인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다. 그런데 儒家에서는 이 길을 선택할 때 상대를 사랑하는 仁을 기준으로 한다. 이러한 철학에서는 무엇의 본질보다 최선의 대처방법을 먼저 묻는다. 따라서 동양철학은 道學이며, 그대로 윤리학이 된다. 동양은 전체를 먼저 본 다음 그 내부로 분석해 들어가지만, 서양은 내부를 먼저 검토한 다음 그를 모아 전체로 삼는다. 이에 동양적 세계관을 統體的 세계관으로, 서양식을 集合的 세계관으로 규정하였다. 통체적 세계관은 국가나 사회의 통합에는 장점을 갖지만 개인의 개성을 억제하는 측면이 있다. 반면 집합적 세계관은 개인의 권리 보호와 자아실현에는 장점을 갖지만 개인주의나 이기주의로 흐르는 측면이 있다. 오늘날 서양의 철학과 윤리만이 이상적이고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지만, 동양의 철학과 윤리도 그에 못지않게 타당하고 이상적이다. 이러한 사실과 그 내용을 청소년에게 교육시켜 인류의 미래를 건전하고 행복하게 해야 한다. 우리는 동양윤리가 서양윤리의 부족한 점을 보완하거나 대체할 수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서양윤리만을 고집하여 인류의 미래를 옹색하게 해서는 안 된다.
[ "도덕윤리를 알기위해 먼저 우리의 철학 등의 특징을 알아본다. 서양철학은 智慧를 사랑하며 사물의 본질을 탐구하고, 동양철학은 현실대응을 긴박히 여겨 만물이 갈 길을 찾는다. 철학에서는 무엇의 본질보다 최선의 대처방법을 우선 물음에 따라 동양철학은 道學이며, 그대로 윤리학이 된다. 동양은 전체를 먼저 보고 그 내부로 들어가지만, 서양은 내부를 먼저 살피고 전체를 모아 본다. 동양적 세계관을 統體的 세계관으로, 서양식을 集合的 세계관으로 규정하고 있다.", "도덕‧윤리는 인간을 인간답게 해준다. 심지어 동양에서는 짐승과의 차이는 도덕‧윤리에 있다고까지 한다. 그렇다면 도덕윤리 교육은 사람이 되게 하는 교육이며, 사람다운 품위를 갖게 해 주는 교육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한국의 도덕윤리를 교육하면 한국인이 되고, 서양의 도덕윤리를 교육하면 서양인이 된다고도 할 수 있다. 즉 그 사람의 정체성은 그 사람이 가진 도덕윤리에 있다는 것이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우리는 어린이, 젊은이에 대한 도덕윤리 교육을 보다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오늘날 한국에서 행해지고 있는 공교육은 대부분 서양의 학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모든 학문의 대표성은 서양학문이 차지하고 있고, 거기에 우리의 것을 나타내거나 포함시키고자 하면 반드시 한국이나 동양을 앞에 추가해야 한다. 지금 論者가 논의하고자 하는 ‘도덕과 교육과정의 개정 방향’에 관한 것도 사실 서양의 것이 주이며, 특별히 ‘동양’을 추가해야 우리의 윤리가 된다. 한편 西洋醫學과 韓醫學도 인간과 그 질병을 보는 관점이 서로 다르지만 한국인의 정체성을 논할 정도로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도덕‧윤리 교육은 사람이 되게 하는 교육이며, 사람의 품위를 갖게 해주는 교육이다. 동양에서는 짐승과의 차이는 도덕‧윤리에 있다고도 한다. 이에 우리는 어린이, 젊은이에 대한 도덕‧윤리 교육을 보다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
A201007091890
초등학교 도덕교육과 동양윤리- 교육과정 개정을 중심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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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우리의 교육이 전통을 무시하거나 폄하한 결과 많은 문제점을 노출시켰다. 이러한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동양 윤리가 교육과정에 반영되어 왔고, 많은 사람들이 거기에 주목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그것이 교육과정에 어떻게 반영되어 있는지, 학교 현장에서 어떻게 교육되고 있는지 살피는 데는 소홀히 해 왔다고 말할 수 있다. 따라서 본 연구는 제7차 초등학교 교육과정과 새로운 교육과정에 반영된 동양적 윤리의 비율을 살펴보고, 그것이 교과서에 어떻게 서술되었는지 따져 봄으로써 문제점과 시사점을 살펴보고자 하였다. 제7차 교육과정을 보면 많은 동양적 윤리가 명목상으로는 반영되어 있다. 물론 이 경우는 서양적 가치와 보편적 성격을 띠는 것이지만, 순수한 동양적 가치만 보더라도 거의 30%에 육박하는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새로운 교육과정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교육과정의 덕목에 구체적 개념 설명이나 내용이 없기 때문에 그것을 어떻게 가르치느냐 하는 문제는 결국 교과서 집필 문제로 넘어간다. 그래서 제7차 교육과정의 교과서 내용을 분석해 보니, 대다수의 내용이 명확한 개념 없이 구체적인 행동의 나열로만 되어 있었다. 또 덕목만 동양적이지 내용은 서양의 것으로 된 경우도 많았다. 이런 식이라면 우리 문화의 정체성 교육이 흔들릴 뿐만 아니라 교육과정의 기본 성격에도 위배된다. 이러한 문제점이 있음에도 새로운 교육과정의 교과서 집필상의 어떤 개선이 없다면, 제7차 교육과정의 방식을 답습할 우려가 있다. 그래서 교육과정의 확정과 교과서의 집필 때까지 동양사상을 전공한 사람들의 참여와 관심이 절실히 요구되는 것이다.
[ "본고는 제7차 초등학교 교육과정과 새로운 교육과정에 반영된 동양적 윤리의 비율과 그것이 교과서에 어떻게 서술되는지 살펴 문제점과 시사점을 도출한다. 동양적 가치는 30%의 비중을 차지하나 교과서 대부분의 내용은 명확한 개념 없이 구체적인 행동만 나열하고 내용은 서양적이라 우리 문화의 정체성 교육이 흔들리고 교육과정의 기본 성격에도 위배되어 교육과정의 확정과 교과서의 집필때까지 동양사상 전공자들의 참여와 관심이 절실히 요구된다.", "교육이란 사회의 가치를 존속‧유지시키는 역할도 하지만 사회의 폐습을 타파하고 개혁하는 역할도 수행한다. 보편적이면서 사회구성원이나 인류의 미래를 위해 유용한 가치는 교육을 통하여 존속되어야 하겠지만, 그렇지 못한 것은 과감히 철폐되어야 한다. 물론 동양의 윤리라고 해서 예외는 아닐 것이다. 그러나 과연 동양의 윤리 가운데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용한 가치가 있느냐 하는 것은 별도의 논의로 제쳐두고, 문화적 토양과 정서를 배제한 보편적 가치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에게 동양적 가치가 문제 되는 것이다.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우리가 개화기 이후 지나치게 전통을 폄하하고 서구 편향적 교육을 자행한 덕분에 사회 전반에 걸친 가치관 혼란의 혹독한 대가를 치루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전철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동양적 가치가 교육과정이나 교과서에 반영되어 왔다. 그래서 그것이 어떤 비중으로 녹아 있는지 살펴보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라 생각된다. 그런데 여기서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은 동양적 가치가 전통 그대로 반영되었는지, 아니면 비판적으로 재해석 되었는지, 또 아니면 용어만 갖다 붙이고 내용은 서구의 그것으로 채웠는지 살펴야 한다는 점이다. ", "교육이란 사회의 가치를 존속‧유지시키는 역할도 하지만 사회의 폐습을 타파하고 개혁하는 역할도 수행한다. 하지만 서구 편향교육에 치중하지 말고 교육에 동양적 가치가 그래도 반영이 되었는지도 고려해야 한다." ]
A201007091894
중학교 도덕교육과 동양윤리- 8차 도덕과 교육과정 개정 시안과 관련하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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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도덕과 8차 교육과정 시안(試案)이 발표되었다. 도덕 교과서로서의 정체성을 확고히 할 수 있는 기반을 조성하고 있다는 점에서 환영할 만하다. 그러나, 시안은 동양윤리(동양철학) 분야의 축소를 동반하고 있다. 발표된 시안대로 교과서 집필이 이루어진다면, 현재 중학교 교과서에 실려 있는 동양윤리와 관련된 내용들이 상당 부분 삭제될 전망이다. 동양윤리의 축소는 서양윤리 중심의 서술을 의미한다. 동양윤리의 축소는 서양윤리 중심의 편향된 교육으로 이어져 균형감 있는 교육을 저해할 가능성이 높다. 동양윤리를 전공하는 학자들이 교과서 집필에 보다 관심을 기울여야 할 시기이다. 8차 교육과정 시안이 올바른 방향으로 확정되고, 동양윤리에 관한 서술이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역량을 결집해야 할 때이다. 동양윤리는 매우 포괄적인 학문적 특성을 띠고 있다. 人性뿐만 아니라, 정치⋅경제⋅사회⋅문화⋅국가 등 전 영역에 걸친 서술이 가능하다. 동양윤리 전공자들은 교과서의 연구⋅집필⋅심의에 적극 참여하는 한편, 각 분야별로 연구진을 구성하여 균형감 있는 서술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 "도덕과 8차 교육과정 시안은 동양윤리분야의 축소를 동반한다. 이는 서양윤리 중심의 편향된 교육으로 이어져 균형감 있는 교육을 해칠 가능성이 높으므로 동양윤리 전공학자들이 교과서 집필에 보다 관심을 기울여 8차 교육과정 시안이 올바른 방향과, 동양윤리에 관한 서술이 바르게 이루어 지도록 역량을 결집해야한다.", "8차 교육과정 시안은 문헌 연구, 여러 관련 학회 및 단체와의 워크숍, 전문가 협의회, 현장 교사들에 대한 설문 조사, 공청회, 심의회 등을 거치며 이루어졌다. ‘도덕교육의 이론적 동향’‧‘교육과정 편성 운영에 관한 선행연구’‧‘외국의 도덕교육 현황’ 등에 대해 심도 있게 고찰한 문헌 연구와, 7회에 걸쳐 이루어진 전문가 협의회, 3번의 연구 공동체 워크숍, 그리고 2,200명의 교사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와 공청회의 개최는, 8차 교육과정 시안이 다양한 객관적 절차를 거치며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반증하고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객관적 절차에도 불구하고 동양윤리(동양철학)적 관점에서 볼 때, 이번 시안은 그 과정상 부족한 점이 있다. 동양철학 전공자들의 참여가, 단 한 차례 개최 된 ‘도덕과 교육과정 내용 검토를 위한 동양윤리 전공교수 협의회’(2005. 10. 7, 참가자 6명)외에는 없었기 때문이다. 동양윤리 전공자들의 부진한 참여는 8차 교육과정 시안에서 동양윤리 영역의 축소로 이어지고 있다.", "8차 교육과정은 문헌 연구, 여러 관련 학회 및 단체와의 워크숍, 전문가 협의회, 현장 교사들에 대한 설문 조사, 공청회, 심의회 등으로 이루어졌다. 그리고 2,200명의 교사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와 공청회는, 8차 교육과정이 객관적 절차를 거쳤다는 사실을 반증하고 있다." ]
A201007091898
老子와 黃老思想-『黃老帛書』를 중심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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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黃老帛書』를 중심으로 하여, 황로사상이 老子 사상에서 받은 영향과 그 차별성, 그리고 초기 黃老學의 구체적 성격 등을 살펴보는 것을 연구 목적으로 삼는다. 『黃老帛書』는 기본적으로 老子 사상을 계승하고 있지만, 통일을 지향하는 전국 말기라는 시대적 상황에 맞게 老子 사상을 새로운 형태로 개조 발전시킨다. 첫째, 『老子』의 ‘道’를 보다 구체적 이념으로 발전시킨다. 이를 위해 ‘道’의 하위 개념으로서 ‘理’ 개념을 도입하며, 궁극적으로는 ‘도에서 법이 생겨났다’(道生法)라고 하는 독특한 명제를 제시하게 된다. 둘째, 『黃老帛書』는 『老子』의 自然無爲論을 개조하여, 사물의 ‘形’과 ‘名’이 밝혀지고 제자리를 찾으면 자동적으로 무위정치가 실현된다고 하는 形名無爲論을 발전시킨다. 셋째, 『老子』의 ‘不爭論’ 일변도에서 벗어나, 때와 상황에 따라 ‘文’과 ‘武’를 적절히 운용해야 한다고 하는 ‘文武兼用論’을 전개한다. 이렇게 하여 『黃老帛書』는 老子 사상을 구체적 현실 사회에 합당한 정치철학으로 발전시켰으며, 이는 초기 黃老學의 전형적인 모습이 된다.
[ "본고는 黃老帛書를 중심으로 황로사상이 老子 사상에서 받은 영향과 그 차별성을 살피고 초기 黃老學의 구체적 성격 등을 고찰한다. 黃老帛書는 老子 사상을 계승하지만, 시대적 상황에 맞게 구체적 현실 사회에 합당한 정치철학으로 발전시켰다. 이는 초기 黃老學의 전형적인 모습이 되었다.", "도가 사상사에서 우리는 이른바 ‘黃老思想’이라는 하나의 특별한 사상적 흐름을 만나게 된다. ‘黃老’는 물론 ‘黃帝’와 ‘老子’의 합성어이며, 따라서 ‘黃老學’은 ‘황학’과 ‘노학’이 결합된 어떤 학문적 경향을 가리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또는 사상사적으로 ‘老學’의 실체는 老子를 통해 분명히 드러나고 있지만 ‘黃學’의 실체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더욱이 漢代 이전의 문헌에서는 ‘황로’라는 용어조차도 존재하지 않았다. 先秦 시대의 문헌 자료들에서 ‘黃帝’와 ‘老子’에 대한 개별적 언급은 찾아볼 수 있지만 이들을 하나로 묶은 ‘황로’라는 말은 쓰이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므로 과거 학계에서는 ‘黃老學이라는 게 정말로 존재하기는 하였는가?’ 하는 의문이 종종 제기되기도 하였다. ‘黃老’라는 말이 처음으로 나타나는 것은 司馬遷의 史記 에서다. 사마천은 전국시기의 慎到 申不害 田騈 韓非子와 같은 사상가들에 대해 “學本於黃老” “學黃老道德之術” “歸本於黃老”와 같은 말을 구사하고 있다.", "도가 사상사에는 ‘黃老思想’이라는 특별한 사상적 흐름이 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또는 사상사적으로 ‘老學’의 실체는 老子를 통해 분명히 드러나고 있지만 ‘黃學’의 실체는 찾아보기 힘들다. 그러므로 과거 학계에서는 黃老學에 대한 의문이 종종 제기되었다." ]
A201007091903
양주는 극단적 이기주의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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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의 목적은 맹자가 양주의 ‘위아설(爲我說)’을 이기주의라고 평가한 것이 타당한 것인지 검토하는데 있다.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나는 먼저 맹자의 양주에 대한 평가를 논의 대상으로 삼고, 맹자의 평가가 타당한지, 그리고 맹자의 평가가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살펴보았다. 나의 기본 입장은 양주철학을 단순히 맹자처럼 이기주의라고 평가할 수 없다는 것이다. 양주철학은 개인주의 또는 개인 생명의 존엄함과 자유를 주장하는 생명철학이라는 점을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첫째, 보편적 이기주의와 고립적 이기주의의 구분에 의해 양주는 이기주의자가 아니라, 개인주의자라는 것을 밝혔다. 둘째, 양주의 주장은 맹자처럼 사적 이익과 공적 이익을 서로 대립시키고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본래적인 생명 가치와 파생적이고 부차적인 개인의 이익을 대조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맹자는 이 점을 무시하고 양주의 주장을 사적 이익과 공적 이익, 사적 이익과 공동선의 문제로 파악하고 양주철학을 이기주의라고 잘못 평가하였다.
[ "본고는 맹자가 양주의 위아설을 이기주의라고 평가한 것에 대해 타당한지 살펴본다. 양주철학은 개인주의 혹은 개인 생명의 존엄함과 자유를 주장하는 생명철학을 지적했으나 맹자는 사적 이익과 공적 이익, 사적 이익과 공동선의 문제로 인식하고 양주철학을 이기주의로 잘못된 평가를 했다.", "맹자는 양주(楊朱)의 학설을 평가하여 “양자는 자기를 위하는 사상을 취하여 자기 몸의 터럭 한 올을 뽑아서 세상을 이롭게 한다 하더라도 하지 않는다.”라고 비판한다. 이러한 맹자의 양주에 대한 평가에 의해, 맹자 이후에 많은 학자들은 양주를 이기주의자라고 규정한다. 또한 열자(列子) 의 「양주편」에 근거해 양주를 쾌락주의자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아울러, 맹자와 「양주편」의 평가와 다르게 양주는 개체로서의 개인생명의 존엄과 자유를 주장한 자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이러한 평가 중에서 양주철학의 참 모습을 나타내는 것은 무엇인가? 양주는 맹자가 평가하듯이 과연 이기주의자인가, 아니면 개인생명의 존엄과 자유를 주장한 생명주의자인가, 또는 쾌락주의자인가? 이러한 서로 다른 평가가 가능한 이유는 양주에 대한 독립된 저술이 존재하지 않고, 오직 단편적으로 전해지는 제한된 자료에 의해 양주의 철학을 가늠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제한된 자료밖에 존재하지 않지만, 맹자는 분명하게 “양씨는 자기를 위하니 이것은 임금이 없는 것”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맹자와 「양주편」의 평가와 다르게 양주는 개체로서의 개인생명의 존엄과 자유를 주장한 자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이러한 다른 평가가 가능한 이유는 양주에 대한 독립 저술이 없고, 오직 단편적이고 제한된 자료에 의해 양주의 철학을 가늠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 ]
A201007091906
密敎戒思想의 현대적 조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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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교의 계는 有爲戒로서의 五戒十善戒와 無爲戒로서의 三昧耶戒를 들 수 있다. 실제생활의 구체적 자세로서 遮制的 금지조항인 五戒十善戒가 중시되나, 대일경에 설해지는 십선계는 정보리심에 기반한 智의 방편에 의하여 일체법평등의 입장에서 실천하는 것이고, 나아가 밀교계의 근본을 이루는 三昧耶戒에 이른다는 道程을 확인할 수 있다. 삼매야계는 삼종보리심을 발하고 이것을 원리로 하여서 생활하고 수도하는 계이다. 이 계율정신을 구체적으로 표현한 것이 四重禁으로서 밀교의 四波羅夷로 표현됨을 통해서 보리심을 궁극에 두는 밀교계의 차별성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세간의 상식적인 善을 초월하여 最高善의 實現證悟에 중점을 두는 밀교계율의 본지는 바로 대일경 주심품에 설하는 三句法門이다. 다만 온갖 형식을 벗어나 무한한 방편으로써 佛事를 행하는 일이며, 여기에서 밀교가 비윤리적이라는 견해가 나올 소지가 있다. 그러나 밀교계의 목적 자체가 佛性을 현현하는 데에 주어지고 있는 만큼 事邊界가 아닌 理邊界의 입장에서 이해해야 한다.
[ "보리심에 궁극을 둔 밀교의 四波羅夷로 차별성 확인할 수 있다. 最高善의 實現證悟에 중점을 둔 밀교계율의 본지는 갖은 형식을 벗어나 무한한 방편으로써 佛事를 행함은 비윤리적이라는 견해가 있으나 밀교계 목적 자체가 佛性을 현현하는 데에 있는 만큼 理邊界의 입장에서 이해가 필요하다.", "『대일경』 제6 「受方便學處品」 에는 오계와 아울러 재가보살을 위한 十善業道가 설해지고 있다. 십선업도가 재가보살의 행법이라는 것은 아미다르마불교 이래 설해져온 바이다. 아비다르마불교에서는 재가신자에게 三歸五戒와 八齊戒, 출가하면 沙彌의 十戒와 比丘의 二百五十戒라고 하는 실천덕목이 확정되었기에 十善이 들어올 餘地는 없었던 것이다. 그 때문에 十善이 附隋的인 덕목으로 떨어졌다. 그러나 보살불교는 처음부터 재가‧출가 공통의 입장이었기에 도리어 이 십선이 중요시되었다. 『화엄경』 에서 중요시되었을 뿐만 아니라 반야경 의 大乘品에서도 보살마하살의 六波羅蜜 가운데 尸羅波羅蜜을 언급하며 十善道라 말하고 있다. 초기대승불교의 계는 十善戒였던 것이다. 계란 선을 행하려고 하는 자발적인 결심이기 때문에 율법과 같이 엄밀한 조문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十善에는 身‧口‧意 삼업의 기본적인 것이 모두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이것을 계로 가지면, 불교의 수행으로서 충분하다. 대승불교에도 출가자가 있기 때문에 십선이 재가‧출가에 공통되면 대승의 계로서도 출가에게는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해볼 수 있다. ", "『대일경』 제6 「受方便學處品」에는 오계와 아울러 재가보살을 위한 十善業道가 설해졌다. 십선업도가 재가보살의 행법이라는 것은 아미다르마불교 이래 설해져왔다. 그러나 보살불교는 처음부터 재가‧출가 공통의 입장이어서 이 십선이 중요시되었다." ]
A201007091909
고려후기 儒生의 寺刹讀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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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에서 독서를 하기 시작한 초유의 모습은 한국 최고의 지식인이라 할 孤雲 崔致遠에서 찾아지는데 그것이 바로 海印寺와 斷俗寺의 讀書堂이다. 그리고 고려말 무인 이성계의 歸州寺의 독서당도 찾아지므로 유생의 사찰독서의 연원은 매우 오래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이 땅에 불교가 들어온 이래 불교를 중심으로 하는 儒佛文化의 전통에 기인하는 것이지만 현재 남아 있는 기록들은 대부분 고려후기의 문집류에서 찾아지고 있을 뿐이다. 이에 의하면 의종대의 東山處士 郭輿나 그와 교류했던 淸平居士 李資賢, 원나라 간섭기 動安居士 李承休 같은 居士에게서 사찰이 아닌, 손수 山齋를 짓고 讀書한 것은 오히려 예외에 속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 외의 대부분의 유생은 사찰에 가서 독서를 하였는데, 이는 유생들의 호불적 성향때문이기도 하지만 당시 불교가 정신문화계에서 차지하는 비중 때문이라고 하겠다. 특히 무신난 직후 난의 화를 피하여 산중에 은둔한 李仁老林椿 등 江左七賢類의 유생들에서 보듯이 아예 사찰에 가서 독서뿐만 아니라 승려에게 공부를 하였다. 원나라 간섭기 성리학이 수용되면서 자신의 서재를 갖기 시작하였으나 여전히 사찰에서의 독서는 지속되었다. 이는 性理學의 수용에 앞장을 섰던 李穀과 그의 아들 李穡은 曉香會나 契 등의 香徒의 結社體를 결성하여 주도하였고 그들과 어울렸던 吳仝白璘李詹 등 新進士類들도 사찰독서에 참여했다. 특히 고려말 사회개혁에 앞장을 섰던 李崇仁과 吉再 등이나 조선건국에 적극 참여했던 趙浚과 河崙 등의 新進士類의 경우도 사찰에서 독서를 하였다. 이렇듯 사찰에서 독서하는 전통은 불교가 이 땅에 들어 온 이후 불교를 중심으로 하는 儒佛文化의 단적인 표징이었다고 하겠다.
[ "사찰 독서 초유의 모습은 한국 최고의 지식인이라 할 孤雲 崔致遠에서 찾아지고 무인 이성계의 歸州寺의 독서당도 찾아진다. 유생은 사찰에서 독서를 했는데, 이는 유생들의 호불적 성향이 있기도 했지만 그 당시 불교가 정신문화계에서 차지하는 비중 때문이었다. 사찰에서 독서를 하는 전통은 불교가 이 땅에 들어오고 난 후 불교를 중심으로 하는 儒佛文化의 단적인 표징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할 때 儒‧佛문제는 중요 핵심어 가운데 하나이다. 예컨대 한국 최고의 지식인이라고 할 고운 崔致遠은 儒‧佛‧仙에 통달하였고 조선전기 최고의 지식인라 할 雪岑 金時習도 역시 유‧불‧선에 회통하였다. 이들 뿐만 아니라 한국문화의 최고의 인물인 聖師 元曉는 그의 아들 薛聰을 최고의 유학자로 만들었고 최치원과 설총을 잇는 고려의 대표적 문인도 마찬가지이다. 즉 고려 성종대의 崔承老는 한국 역사상 최초의 불교비판자였지만 그도 불교적 분위기 속에 태어났고 죽어서도 불교를 떠날 수 없었다. 문종대 崔冲은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사학 설립자의 이름을 따서 지은 文憲公徒를 만들어 과거 준비를 위한 九經三史를 교육시켰지만 여름 한철은 歸法寺‧龍興寺 등 사찰에서 詩賦를 배우게 하였다. 고려 중엽 유교적 사관에 의하여 최고의 정사인 三國史記 의 편찬을 총감독하였던 金富軾도 당대의 고승 비문을 짓거나 고승들과 교유하면서 자신이 雪堂居士라고 하였다. 고려 중기 무신집권기 지식인들은 중국의 竹林七賢을 모방하여 결사한 李仁老 등 江左七賢(또는 竹高七賢)도 山寺에 머물면서 승려들과 교유하였다. 특히 動安居士 李承休나 淸平居士 李資賢 등은 儒‧佛의 교유를 넘어서 반 승려적인 생활을 하였다.", "한국 역사와 문화를 이해할 때 儒‧佛문제는 중요 핵심어다. 고운 崔致遠은 儒‧佛‧仙에 통달했고 조선전기 최고의 지식인라 할 雪岑 金時習도 유‧불‧선에 회통했다. 최치원과 설총을 잇는 고려의 대표적 문인도 마찬가지다." ]
A201007091912
초기 선종기 禪法의 조류와 楞伽禪의 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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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마에서 六祖에 이르는 초기 선종기 禪法의 주요 조류는 소승근본선으로서는 僧稠系와 僧實系가 대표적이었고, 대승보살선으로서는 달마선문(능가선문)과 天台禪門이 주류였다. 이 밖에 誦經, 念佛, 禮懺 등을 겸수하는 경향이 많았고, 개인적으로 어느 대승경론에 의거한 觀行 실천자도 많았다. 대체로 五門禪으로 요약되는 소승근본선은 선정의 성취에 치우친 면이 있었고, 禪定의 味(禪味)에 애착하기 쉬운 경향이 많았다. 僧稠禪은 이러한 愛味(情事)에 흐르기 쉬운 약점이 있었고, 달마선은 그 幽玄한 禪旨를 이해하기 어렵고 잘못 이해하기 쉽다는 약점이 있었다. 단지 僧稠는 대승의 慧門도 일찍이 갖추고 있었고, 그가 행한 소승근본선도 대승의 법으로서 하거나 나아갈 수 있는 것이었다는 점에서 간단히 그의 선법을 소승선으로만 논단하기는 곤란한 면이 있다. 특히 돈황문헌 가운데 그의 저술로 되어 있는 자료의 선법이 의미하는 것은 개인의 修證 진전에 따라 선법의 전환이 이루어질 수 있는 것임을 말해주는 것으로 유추해보았다. 달마선맥에서 2승(3승과 2승)의 定을 邪定으로 비판하고, 그 愛味 경향을 지적하면서 自宗을 최상승선으로서 주창해가는 가운데 소승근본선문은 크게 퇴락하였다. 그러나 그 선법은 天台의 대소승을 망라한 선법 체계 가운데 포괄되어 傳習되어 갈 수 있었다. 定慧雙修는 능가선이나 천태선이나 마찬가지지만 전자는 다소 慧에, 후자는 다소 定에 치우치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능가선의 경우 본래 선정이 따로 없다는 悟를 바탕으로 하는 定慧不二의 선법을 강조한다. 그러나 양 조사들의 궁극의 禪旨는 서로 상통되는 것임을 지적하였다. 천태는, 후대에 방대한 교학체계의 傳習, 그리고 선종 선사들이 禪門의 宗으로서 자리 잡게 됨에 따라 선종 선사로부터 禪師가 아닌 ‘哲匠’으로 칭해지고 있는 사례가 있다. 천태는 특히 간경독송, 염불, 禮懺 등 거의 모든 대승 행법을 체계화하고 傳習하였다. 이것은 天台의 큰 功이라고 생각한다. 선종에서도 천태의 이러한 경향과 마찬가지로 여러 행법을 兼修하는 추세가 되고 있다.
[ "僧稠는 달마선맥에서 2승의 定을 邪定으로 비판하고, 그 愛味 경향을 지적하며 自宗을 최상승선으로서 주창해가는 중에 소승근본선문은 크게 퇴락했으나 그 선법은 天台의 대소승을 망라한 선법 체계 가운데 포괄되어 傳習되어갔다. 능가선은 悟를 토대로 定慧不二의 선법을 강조하나 양 조사들의 궁극의 禪旨는 서로 상통됨을 지적 하고 천태는 간경독송, 염불, 禮懺 등 거의 모든 대승 행법을 체계화하고 傳習하여 天台의 큰 功이라고 생각한다. 선종도 천태와 마찬가지로 여러 행법을 兼修하는 추세였다.", "달마에서 六祖에 이르는 초기 선종기는 북위 후반에서 당 중기까지로 대략 500년 무렵에서 700년 무렵까지의 기간에 해당한다. 이 기간은 여러 선법이 비교적 다양하고 균등하게 지역별로 분포되어 성망을 얻고 있었다. 크게 나누면 五門禪으로 요략되는 소승근본선과 대승경론에 의거한 대승선으로 구분되고, 후자는 당시 각기 종파의 모습을 형성해 가면서 나름대로 自宗의 선법을 체계화 하고 고취하였다. 대승선의 경우, 그 행법은 誦經‧念佛‧禮敬懺法도 있었지만 대체로 所依경론에 의거한 觀行 내지 慧行이 주조였다. 후한 이래 소승근본선 위주의 선법이 주류였으나 대승경전의 유포와 함께 般若理法에 의한 定慧兼修의 중요성이 점차 널리 인지되는 추세가 되었다. 남북조에서 定學으로 칭해지는 집단은 대체로 소승근본선에 의한 점차의 선정 성취를 목표로 하였다. 한편 경론의 연구와 해석에 주력하는 소위 義學의 부류는 대체로 禪의 實修에 등한하였다. 그리고 매우 소수이긴 하나 대승경론의 深義를 통달하여 대승선의 禪旨를 증득한 명사들이 있었으나 그 가르침을 터득하고 따를 수 있는 徒衆들이 드물었다.", "달마에서 六祖에 이르는 초기 선종기는 여러 선법이 다양하고 균등하게 지역별로 분포되 성망을 얻었다. 이 시기는 五門禪으로 요략되는 소승근본선과 대승경론에 의거한 대승선으로 구분된다." ]
A201007091914
불교의 낙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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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본문은 임신 중절(낙태)에 대한 불교적 견해를 밝히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불교의 철학적 입장은 우주의 근본 이치이자, 존재하는 다르마의 체계인 법계를 성립시키는 원리 혹은 성격인 연기성(緣起性)에 기초하고 있다. 하여 생명체에 대한 논의는 생명이 시작되는 정(精, 정자)과 혈(血, 난자)과 식(識, 간다바) 세 조건의 상호의존성 위에서 전개될 수밖에 없다. 불교는 인위적인 살생을 금지하고 있으며, 아울러 임신 중절 상황을 만들지 말 것을 적극 권유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에서는 임신 중절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이 엄존하고 있고, 그것을 바라보는 관점 역시 찬성론과 반대론 및 절충론적 입장 등이 다양하게 존재하고 있다. 그러므로 태아의 생명권과 산모의 자율권이 충돌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할 때, 지혜와 자비의 두 축을 통해 인간을 구원하려는 불교 역시 임신 중절에 대한 도덕적 정당성 여부의 논의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불교에서는 ‘뭇 인연의 화합에 의해 생겨난’(衆緣和合所生) 생명체는 수정되는 순간으로부터 일생을 시작한다고 본다. 때문에 수정은 곧 정(精)과 혈(血)과 식(識)의 세 조건이 만나서 이루는 생명체의 근거가 된다. 그리고 수정된 모든 생명체는 불살생계의 대상이 된다. 하여 인-연-과의 상호의존성에 의해 탄생된 생명체에 대해 물리적인 위해(危害)를 가하게 되면, 반드시 거기에 상응하는 과보를 받게 되는 것이다. 불교 경론은 태를 죽이거나(殺胎) 태를 떨어뜨리는데(墮胎), 업(業)에 대해 거기에 상응하는 보(報)를 받게 된다고 역설하고 있다. 불교는 태아 역시 수정 순간부터 이미 생명을 지닌 존재로 보고 있다. 해서 살아있는 생명체이자 성인과 동일한 의미의 생명성을 지닌 태아의 임신 중절은 금지해야만 한다는 입장을 지니고 있다. 이 같은 불교의 생명 존중의 정신을 계승하면서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임신 중절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미혼모와 미혼부에 대한 의식의 전환을 통해 사회적 비용을 창출하여 각종 탁아 및 장애아 시설을 확충함으로써, 임신 중절의 상황을 예방하고 생명 존중의 문화 속에서 살 수 있는 환경을 확산시켜 나가야만 할 것이다. 이같은 구체적인 실천 방안들의 제시 및 그 실천과 동시에 이미 낙태된 영가에게는 천도의식을 통해 새로운 길을 열어 주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임신 중절한 부모에게는 참회의 길을 열어 주어야만 한다. 따라서 불교 생명윤리의 입장은 무엇보다도 새로운 임신 중절 상황을 예방하고 생명 존중의 지혜의 길로 나아가도록 하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살태 혹은 타태한 부모들을 위하여 참회법회를 열어 주고, 이미 임신 중절된 영가들을 위하여 천도법회를 열어 그 얽힘들을 풀어줌으로써, 행복한 삶이 영위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 "본고는 임신 중절에 대한 불교적 견해를 밝히고자 한다. 불교는 인위적인 살생을 금지하며, 아울러 임신 중절 상황을 만들지 않도록 적극 권유 하지만 지혜와 자비의 두 축을 통해 인간을 구원하려는 불교 역시 도덕적 정당성 여부로 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불교는 태아의 수정 순간부터 생명을 지닌 존재로 보고 살아있는 생명체이자 생명성을 가진 태아의 임신 중절은 금지해야한다는 입장이다. 이 같은 불교의 생명 존중의 정신을 계승하며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임신 중절의 최소화를 위해서, 구체적인 실천 방안을 제시하고 그 실천과 동시에 이미 낙태된 영가에게는 천도의식을 하고, 임신 중절한 부모에게는 참회의 길을 열어 주는 것이다. 불교 생명윤리의 입장은 새로운 임신 중절 상황예방과 생명 존중의 지혜의 길로 인도하는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 곳곳에서는 수많은 태아들이 빛을 보기도 전에 죽어가고 있다. 이들은 그 무엇보다도 소중한 생명체들임에도 불구하고 한번 잘못 맺은 인연 때문에 또 다른 인연을 만나기 위해 윤회를 거듭하고 있다. 서로 간의 사랑과 욕망에 의해 이루어진 태아가 왜 자기 의지에 관계없이 죽어야만 하는가.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의해 형성된 태아라 하더라도 생명체로서 존재할 수 있는 권리는 없는 것인가. 태아는 성인과 동일한 조건을 갖춘 생명체가 아니기 때문에 이들에 대한 임신 중절은 도덕적으로 정당한 것인가. 우리 사회 곳곳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임신 중절 수술의 현실은 아마도 우리 사회의 도덕적 불감증을 보여주는 지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무분별한 임신 중절 수술의 현실을 단지 자유로운 성 개방 풍조와 산부인과학의 발달 때문이라고만 치부할 수는 없을 것이다. 어쩌면 양육과 탁아와 입양 시설이 현저히 부족한 우리 현실이 오히려 임신 중절을 조장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제 임신 중절은 출산이냐 낙태냐 하는 딜렘마 상황에서 고뇌하는 부부들의 문제만이 아니라 오늘을 사는 우리 모두들에게 새로운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임신 중절 수술의 현실은 우리 사회의 도덕적 불감증을 보여준다. 무분별한 임신 중절 수술의 현실을 자유로운 성 개방 풍조와 산부인과학의 발달 때문이라고만이라고 결론 지을 수 없을 것이다." ]
A201007091921
갑오개혁기 공문식과 공문서의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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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는 갑오개혁기 주요 공문서를 규정한 법령인 「공문식」을 분석하였다. 국가 조직체의 동맥이라고 할 수 있는 공문서는 당대의 정치사회 제도의 변화와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다. 조선 정부는 국가적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갑오개혁기를 전후하여 국가 체계 변화를 대대적으로 진행시켜 왔다. 그 중 일본의 영향을 받는 「공문식」을 제정·반포하여 祖宗成憲인 경국대전 공문서 체제가 전면적으로 대체되기에 이르렀다. 갑오개혁기 「공문식」은 1894년 7월, 1894년 11월, 1895년 5월에 제·개정되었는데, 이 「공문식」은 갑오개혁 이후 주요 공문서를 사실상 규정하였다. 「공문식」은 법률과 칙령의 제정 절차와 포고 방식, 하위 명령, 사용문자, 印璽 사용 등이 규정되어 있는 법령이다. 이 때문에 국가 주요 공문서인 법률과 칙령 문서, 외교 문서, 관리 임명장의 작성에 있어서 대원칙이 설정되어 있다. 본고는 우선 「공문식」의 제·개정 과정을 알아보고, 다음으로 법률과 칙령, 사용문자, 印璽 사용 규정으로 「공문식」 조항을 구분하여 실제 관련 문서와 연결하여 분석하였다. 이에 법률과 칙령 문서, 외교 문서, 사령장에서의 어압어새국새의 사용, 大臣의 署名 방식에 대한 기본적 원칙을 밝혔다. 그 중 「공문식」에 사용된 용어에 대한 세심한 주의가 필요함을 제기하였다. 결론적으로, 「공문식」 속에는 갑오개혁기 급변하던 공문서 변화를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는 중요한 법령이다.
[ "본고는 갑오개혁기에 주요 공문서를 규정해 놓은 법령인 공문식을 분석한다. 공문식의 제·개정 과정을 살펴본뒤 법률과 칙령, 사용문자, 印璽 사용 규정으로 공문식 조항으로 구분하여 실제 관련된 문서와 연결하여 분석하고자 한다.", "국가 조직체를 유기적으로 움직이기 위한 의사표시는 공문서에 의해 시행되어 왔다. 이렇게 국가 조직의 활동 동맥이라 할 수 있는 공문서는 그 관리, 작성, 처리 절차 등을 명백하게 법령으로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한 국가의 공문서 체제는 법령에 기반하고 중요시기에 있어 변화를 동반하기 마련이다. 본 고에서 살펴보려는 국가체제와 밀접한 관련이 되는 주요 공문서의 법령인 「公文式」은 갑오개혁기에 제정‧반포되었다. 1894년 주된 정책이 근대적 국가를 형성하기 위하여 기존의 官制와 법령을 일본식으로 대표되는 제도로의 변화 시도를 목표로 하였다. 이 때문에 공문서 체제와 양식 역시 1894년을 기점으로 전면적인 변화를 맞이하였다. 수백여 년 동안 큰 틀에서 준행되어 왔던 『경국대전』 체제의 公文書式이 갑오개혁기를 통하여 전격적으로 대체되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그 일부는 지금 사용하고 있는 공문서와도 크게 다르지 않을 정도로 이전 시기와는 확연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물론 공문서 전체가 갑오개혁기를 통해 新式으로 모두 바뀌었다는 의미는 아니다. 新舊의 혼용은 어쩔 수 없는 역사적 현상으로, 본 고에서는 공문서 변화의 중심축에서 이 시기를 언급하고자 한다.", "국가 조직체를 유기적으로 움직이기 위한 의사표시는 공문서에 의해 시행되었다. 본 고에서 연구되는 「公文式」은 갑오개혁기에 제정‧반포되었다. 이로인해 공문서 체제와 양식 역시 1894년을 기점으로 전면적인 변화를 맞이했다." ]
A201007091925
국어과 협동 학습에 관한 인식 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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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에서는 국어과에서 협동학습의 방법으로 이루어지는 교수-학습에 대하여 교사와 학습자가 어떠한 인식을 가지고 있는가를 살펴보았다. 조사 결과, 국어과 협동학습에 관한 교사의 인식에 문제점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많은 교사들이 협동학습을 교수-학습 효과보다는 교수-학습 방법의 변화에만 의미를 두고 있었으며, 협동학습에 대한 지식의 부족으로 잘못된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조사 대상 교사의 75.00%가 협동학습을 하는데 필요한 의사소통 방법을 구체적으로 알지 못한 상태이며, 이런 상태의 교사는 학습자들에게 이를 지도하지도 않은 상황에서 협동학습의 방법을 사용할 가능성이 큼을 학습자 조사를 통하여 알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학습자가 개별 책무성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협동학습에 임하도록 지도하여야 하나 이 또한 제대로 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 대상 학습자의 과반수 이상이 협동학습으로 국어 수업을 하는 것이 재미가 있으며, 이러한 수업의 과정에서 동료 학습자에게 배우는 것이 많다는 긍정적인 인식을 보였다. 한편, 고등학교의 경우 여학생이 남학생보다 국어과 협동학습에 대한 흥미도가 높았으며 동료 학습자에 배우는 것이 많다고 응답한 비율도 높았다. 국어과 교사는 협동학습으로 교수-학습을 진행하는 데 필요한 전문적 지식을 충분히 익힌 뒤 국어과 교수-학습을 설계하여야 하며, 학습자들에게 그 학습 방법을 사용하는 데 필요한 사항에 대해서 미리 지도를 하여야 한다. 협동학습에 대한 학습자들의 긍정적인 인식이 국어과 교사의 정확하고 철저한 사전 지도와 만날 때 협동학습이 가진 교육적 장점을 국어과 교육에서 살릴 수 있을 것이다.
[ "본고는 국어과에서 협동학습의 방법에 대하여 교사와 학습자가 갖는 인식을 고찰한다. 많은 교사들이 협동학습에 대한 지식의 부족으로 국어과 협동학습에 관한 교사의 인식에 문제점이 나타났고, 조사 대상 학습자의 과반수 이상이 협동학습 국어 수업을 재밌어했다. 이런 수업의 과정에서 동료 학습자에게 배우는 것이 많은 것으로 학습자들의 긍정적인 인식이 국어과 교사의 제대로된 지도와 만날 때 협동학습의 교육적 장점을 살리게 될 것이다.", "협동학습은 교사가 공동 작업에 대하여 집단에게 여러 가지 방향을 제시해 주는 교육 방식을 총칭하는 것으로 교육 현장에 모둠 학습의 형태로 가장 흔하게 나타난다. 집단을 구성하여 과제를 수행하게 하는 협동학습은 학습자 간의 의사소통의 과정에서 서로 배우며 문제를 해결하게 함으로써 능동적, 협력적 학습이 가능하다. 7차 국어과 교육과정에서는 국어과 ‘교수-학습 방법’에 협동 학습을 적용할 것을 명시하고 있으며, 7차 초·중·고등학교 국어과 교과서 역시 학습자 중심, 활동 중심의 교수-학습의 일환으로 협동학습을 사용하고 있다. 국어과에서 협동학습을 적용하였을 때 효과적인 교수-학습이 이루어졌고, 소설이나 시에 대한 학습자의 흥미가 높아졌다는 연구들은 협동학습이 국어과에도 의미가 있는 교수-학습 방법임을 입증한다. 신헌재 외(2003:30~31)에서는 협동학습이 특히 국어교과에 적합한 것으로 보고 그 이유를 협동학습이 ‘언어 교과 내용, 기능, 태도와 신념, 실제 세계에 대한 적응 등을 가르치는 데 강력한 효과를 나타내고, 국어교과와 의사소통의 내용, 언어 기능 등을 가르치는 데 매우 효과적’라는 것을 들고 있다.", "협동학습은 집단에게 여러 가지 방향을 제시해 주는 교육 방식을 총칭하는 것으로 교육 현장에 모둠 학습의 형태로 나타난다. 집단 구성으로 과제를 수행하는 협동학습은 학습자 간 의사소통에서 서로 배우며 문제를 해결하게 하는 능동적, 협력적 학습이 가능하다." ]
A201007091930
전래동화의 설화수용의식과 교육적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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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는 <해와 달이 된 오누이> 전래동화의 모태가 된 <해와 달이 된 오누이> 설화의 서사구조를 분석하여 그 수용의식을 고찰한 후 전래동화 속에 나타난 근원설화의 수용의식이 초등학교 교과서에 수록된 전래동화의 학습내용에 어떻게 반영되고 있는지에 대한 분석을 통해 교육적 의미를 고찰해 보는데 목적이 있다. <해와 달이 된 오누이> 전래동화에 수용된 설화수용의식을 고찰해 보면 인물에 나타난 수용의식에서는 결손, 일월상실의 어두운 세상, 어둠과 혼돈의 세계, 혼란과 위기를 극복한 새로운 세상의 출현을, 배경에 나타난 수용의식에서는 하늘에서 해와 달이 되고 싶은 오누이의 상승적 의지, ‘해와 달’의 재생과 광명과 풍요를 가져오는 매개물이며, 하늘과 직접 통할 수 없는 인간세계의 신을 향한 매개물인 나무의 상징성이 드러나 있다. 사건에 나타난 수용의식에서는 ‘해’와 ‘달’을 생성시키기 위한 대항의지와 민중적 친근성, 일반민중의 역사성이 투영되어 있다. <해와 달이 된 오누이> 전래동화의 교과서 수록 양상과 설화수용의식의 관련성 고찰을 통해 교육적 의미를 살펴 본 결과 다양한 학습전략을 통한 학습활동을 하는 사고과정 속에서 전래동화에 내재된 설화수용의식이 학생들의 상상력과 사고력에 영향을 미칠 것이며 이러한 잠재된 영향력이 통합적인 교육적 효과로 나타나리라는 결론을 얻었다.
[ "본고는 설화 해와 달이 된 오누이를 분석하여 수용의식을 고찰한 뒤 초등학교 교과서의 수록된 전래동화의 학습내용 분석을 통해 교육적 의미를 고찰한다. 인물에 나타난 수용의식과 사건에 나타난 수용의식의 관련성 고찰을 통해 설화수용의식이 학생들의 상상력과 사고력에 영향을 주고 이 잠재된 영향력이 통합적 교육 효과로 나타날 것이다.", "<해와 달이 된 오누이> 설화는 전래동화로 재화되어 어린이들의 꿈과 상상력의 원천이 되었으며 초등학교 교과서의 학습제재로 활용되고 있다. 어린이들은 <해와 달이 된 오누이> 설화를 재화한 전래동화 읽기와 이 학습제재에 대한 말하기․듣기․쓰기 등의 총체적인 언어학습활동전략에 의하여 과연 무엇을 배울 것인가? 교사는 이 전래동화를 활용한 학습전략을 통해 어떤 교육적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가? 이 전래동화의 근원설화가 수용하고 있는 인류공동체에게 주어진 집단 무의식과 원형성과 인류 공동의 공통점을 어린이들은 다양한 학습활동을 통해 정말로 간접경험을 하게 되는가에 대한 의문점은 매우 흥미 있는 연구과제가 된다. <해와 달이 된 오누이> 설화는 ‘오누이’가 해와 달이 되고 있다는 점에서 창세기원 신화에 그 근원을 두고 있다고 볼 수 있으나, 어머니나 호랑이, 떡, 젖먹이, 수수밭 등의 인간 세상을 상징하는 화소들로 인해 민담적 성격을 많이 가지고 있다. 그래서 해와 달의 유래가 민담의 전파과정에서 부연되었으리라는 설과 신화를 만든 원시인의 세계 이해의 방식과 심상이 투영되어 있다는 견해가 있다.", "<해와 달이 된 오누이> 설화는 창세기원 신화에 그 근원을 두고 있으나, 인간 세상을 상징하는 화소들로 인해 민담적 성격을 많이 가지고 있다. 그래서 해와 달의 유래가 민담의 전파과정에서 부연되었으리라는 설과 신화세계 이해의 방식과 심상이 투영되어 있다는 견해가 있다." ]
A201007091936
현대도심포교의 성장과정에 관한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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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포교당의 시원은 1908년 범어사가 부산에 창건한 동래포교당이며, 1910년에는 오늘날 총무원의 기능을 담당하는 각황사가 서울의 한복판인 수송동에 창건되었다. 동래포교당과 각황사의 창건 이후 해방 이전까지는 본사급 사찰을 비롯해서 일정수준의 사격(寺格)을 갖춘 사찰들에 의해 도심에 포교당들이 연이어 세워지게 된다. 하지만 해방 이후부터 1970년대 초반까지는 오히려 도심포교당 신설이 위축되는 추세를 보인다. 1970년대 들어서는 도심포교의 원력을 가진 소수의 출가자 및 재가자가 개별적으로 포교활동을 전개하기 시작하였다. 한마음선원(1972, 창건주: 대행), 불광사(1974, 창건주: 광덕), 석왕사(1976, 창건주: 고산) 등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하지만 전반적으로는 포교활동이 미미한 시기라 할 수 있다. 해방 이후 1970년대까지의 어려운 포교 환경은 조선조 500년간의 배불정책(排佛政策)에 이어지는 무차별 서구 문화의 범람과 편향된 종교정책에 기인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사회적 배경과 외래 종교의 위세로 인해 민족종교의 위상을 상실한 채 침잠해 있던 불교는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다시 활력을 찾기 시작한다. 서울지역의 능인선원(1984, 지광스님), 통도사 서울 포교당(1985, 정우스님), 정토회(1988, 법륜스님) 등이 이 시기에 창건되었다. 1980년대에는 포교당의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면서 도심포교당 설립이 일반적인 추세로 굳어지는 경향을 보였다. 이러한 큰 흐름은 1990년대 이후에도 우리절 영남불교대학·관음사(1992, 우학스님)를 필두로 하여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1990년대 창건된 도심포교당의 수치는 종단의 여건상 통계적으로 파악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1980년대의 도심포교의 활성화에 힘입어 1990년대 들어서도 그 성장세가 지속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 "해방 이후부터 1970년대까지의 미미한 포교활동은 조선조 500년간의 배불정책에 이어지는 무차별 서구 문화의 범람과 편향된 종교정책의 원인으로 사회적 배경과 외래 종교의 위세로 인해 민족종교의 위상을 상실한 채 침잠해 있던 불교는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포교당의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도심포교당 설립이 일반적인 추세였다. 이러한 큰 흐름은 1990년대 이후에도 우리절 영남불교대학·관음사를 필두로 하여서 그 성장세가 지속된 것으로 추정된다.", "“제자들아! 자, 이제 길을 떠나거라. 많은 사람들의 이익과 행복을 위하여, 세상을 불쌍히 여기고, 인천(人天)의 이익과 행복과 안락을 위하여 그리고 두 사람이 한 길을 가지 말라.” 부처님의 유명한 전도(傅道)선언 중 일부이다. 현대사회에서 부처님의 전도선언은 도심포교의 중요성을 더욱 가중시킨다. 현대사회는 산업화와 도시화를 거치면서 인구가 도시로 집중되었고 전반적인 생활양식이 과거와는 많이 달라졌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세속과 떨어져 ‘산중불교’만을 고집한다면 사회적 선도의 기능을 다하기 어렵다는 판단 하에, 불교계는 일제시대부터 도심포교당을 설립하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불교계에서 도심포교당을 운영한다는 것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기독교와는 달리 교단 혹은 종단 차원의 지원이 전무(全無)했을 뿐 아니라 도심포교의 성공사례에 대한 운영기법을 공유하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오늘날 대형 도심사찰로 성장한 일부의 도심포교당들은 포교의 황무지인 도심포교를 옥토로 개간한 것이다. 이러한 대형 도심사찰은 시대의 요구에 부응하고 새로운 요구를 창출하는 동시에 과거와는 다른 새로운 포교 방식을 도입한 일부의 도심포교당들이 성장한 것이다.", "현대사회에서 부처님의 전도선언은 도심포교의 중요성을 더욱 가중시킨다. 이에 불교계는 일제시대부터 도심포교당을 설립하기 시작하였다. 오늘날 대형 도심포교당들은 포교의 황무지인 도심포교를 옥토로 개간한 것이다." ]
A201007091940
중국인의 문미 억양 실현 분석과 교육 방안- 반복의문문을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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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한국어에 대한 교육적 기대가 증대되고 있는 요즘, 한국어 문미 억양 경계 음조에서 나타나는 중국인 학습자들의 한국어 의문문의 억양에 대한 문제점을 검토하고, 음성학적 실험과 분석을 통하여 중국인 학습자에게 한국어 억양을 정확히 인지시키고자 하는데 목적이 있다. 중국인 학습자들이 자주 행하는 오류는 결국 한국어를 제대로 읽어내지 못하는데서 오는 것이라 사료되며, 그 중의 하나가 문미 억양 경계 음조 구조에 대한 미숙에서 비롯된다. 이에 본고에서는 한국어 의문문의 억양에 대한 일반적인 특징과 중국어 억양의 특징을 살펴보고 이들의 차이점과 특성 등을 음성실험을 통해 보여주고자 하였다. 중국인 학습자들에게서 발견되는 이러한 오류를 시정하기 위하여 피치웍스 프로그램을 통해 억양곡선이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그림으로 제시하여 기존에 사람의 직관력(청취)에만 의존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실질적인 운율의 형태를 제시했다. 또한 한국인의 표준형과 그들의 억양이 어느 정도 다르게 실현되었는지 그 양상을 그림으로 증명함으로써 중국인 학습자들의 한국어 의문문 문미 억양 오용 실태를 연구해 보았다. 결과적으로 중국인 학습자들의 유사한 양상으로 나타나는 오류는 그들의 모국어인 중국어(성조언어)의 의문문 종결어미인 ‘마(ma, 嗎)’ 성조(3성)의 간섭현상의 영향을 받아 중국인 학습자들 스스로도 인지하지 못한 채 한국어 의문문의 문미 억양을 발화하고 있다고 판단된다. 이러한 일련의 작업들은 한국어 반복의문문을 중심으로 진행되었으며, 실험 문장들을 제대로 읽어내기 위한 전제 조건으로 제시되었다. 그 결과 실험음성학적 접근을 통해 얻어낼 수 있는 효과들을 도출해 낼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결론을 대신하여 효과적인 교육 방안을 제시하였다.
[ "본고는 중국인 학습자들의 한국어 의문문의 억양의 문제점을 살펴보고, 한국어 억양을 정확히 인지시키고자 한다. 이들이 행하는 오류 중 하나는 문미 억양 경계 음조 구조에 대한 미숙에서 비롯된 것으로 이는 모국어인 중국어의 의문문 종결어미인 마 성조의 간섭현상의 영향으로 중국인 학습자들이 인지하지 못하고 한국어 의문문의 문미 억양을 발화하여 이런 일련의 작업을 한국어 반복의문문을 중심으로 진행하여 실험음성학적 접근으로 효과를 얻었고, 효과적인 교육 방안을 제안하였다.", "한국어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면서 이에 대한 교육적 기대 및 효과가 증대되고 있다. 본 논문은 한국어 문미 억양 경계 음조에서 나타나는 중국인 학습자들의 한국어 의문문의 억양에 대한 문제점을 검토하고, 음성학적 실험과 분석을 통해 한국어 억양을 정확히 인지시키고자 하는데 목적이 있다. 한국어의 의문문은 그것이 가지는 독특한 특징으로 말미암아 외국인 학습자들에게 어려움을 주는 데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억양에 대한 인식 부족이 그러한 점을 부추기고 있어서 더욱 그렇다. 따라서 한국어 의문문의 문미 억양 경계 음조에 대한 실험음성학적 분석은 외국어 학습자들에게 한국어의 의문문 발화현상을 구체적으로 제시해줌과 동시에 이를 토대로 정확한 발음을 형성해내는데 도움을 줄 것으로 사료된다. 본 논문에서는 그 연구 대상을 한국어 의문문 중 일반적으로 많이 사용되는 반복 의문문만을 그 분석대상으로 한정하였다. 반복 의문문의 정의에 대해서 이호영에서는 반복 의문문은 청자의 말을 제대로 못 들어서, 청자가 한 말의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서 확인할 때, 또는 청자가 한 말의 표현이나 내용이 못마땅해서 질책할 때 사용한다고 하였다. 또한 김종현에 의하면 반복 의문문은 선행 발화를 확인하는 태도에 의하여 발화되기도 하며 이 경우에는 반복 의문문의 화자가 상대방에게 그러한 발화를 수행하였는지의 여부를 확인하는 의미를 갖는다.", "한국어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면서 교육적 기대 및 효과가 증대되고 있다. 본 논문은 한국어 문미 억양 경계 음조에서 나타나는 중국인 학습자들의 한국어 의문문의 억양에 대한 문제점을 검토하고, 음성학적 실험과 분석으로 한국어 억양을 정확히 인지시키는데 목적이 있다." ]
A201007091944
향가의 기능과 언술적 특징에 관한 연구-제의 문맥 향가를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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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제의문맥 향가의 기능과 언술적 특징들을 비제의문맥 향가와의 비교를 통해 드러내고자 한 논문이다. 현전하는 삼국유사의 향가는 배경설화와 함께 수록되어 있으며, 배경설화는 향가 해석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하지만 향가와 배경설화의 관련 양상은 작품마다 다르다. 향가와 배경설화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경우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으며, 향가와 배경설화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경우도 배경 설화의 문맥에 따라 이들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따라서 향가와 배경설화의 관련 양상을 문맥에 따라 갈라 보고, 그에 따르는 향가의 성격과 특징들을 분석해 보는 접근 방법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본 논문에서는 일단 제의문맥으로 해석되는 배경설화와 그 속에 위치한 향가에 주목하여 이들의 성격과 특징을 살펴보았고, 이들을 다른 향가 작품의 그것들과 비교해 보았다. 제의문맥 속 향가는 배경설화와 밀착되어 사건의 전개에 깊이 관여하는데 특히 향가는 주인공의 강한 능력과 권위에 의존하여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는 기능을 수행하였다. 이 때 향가는 특정 청자를 눈앞에 두고 그에게 직접 발화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으며, 표현에 있어서는 비유적, 상징적 표현보다 산문적, 직설적 표현이 많이 사용되었다. 한편, 비제의문맥 향가는 독립된 시가로 존재하며, 화자 자신의 내면을 드러내 보이는 데 충실한 모습을 보였다. 이 경우 향가는 특정 청자를 겨냥하지 않은 채 자신의 심경을 토로하는 화자 중심의 말하기 방식을 보였으며, 표현에 있어서는 문학적으로 세련된 비유적, 상징적 표현이 많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 "본고는 제의문맥 향가의 기능과 언술적 특징들을 비제의문맥 향가와 비교한다. 제의문맥 속에 위치하는 향가는 배경설화와 밀착해 사건의 전개에 깊이 관여하고, 이 때 향가는 특정 청자를 앞에 두고 직접 발화하는 형식으로, 산문적, 직설적 표현을 사용했다. 비제의문맥 향가는 독립된 시가로, 화자 자신의 내면을 내보이는 데에 충실했다. 특정 청자를 겨냥하지 않고 화자 중심의 말하기 방식으로, 표현은 비유적, 상징적 표현이 많았다.", "향가는 신라시기 가요로 향가의 기원을 유리왕대 <도솔가>로 잡는다면 향가의 마지막 작품이라고 알려진 고려 예종의 <도이장가>에 이르기까지 아주 오랜기간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던 노래임을 알 수 있다. 일연이 <월명사 도솔가>조에서 ‘신라 사람들이 향가를 숭상한 지 오래되었다’(羅人尙鄕歌者尙矣)고 한 기록이나, 삼국사기 노례왕(弩禮王)조의 ‘시작도솔가 유차사사뇌격’(始作兜率歌 有嗟辭詞腦格)이란 표현을 볼 때에도 향가의 연원이 무척 오래됨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오랜 기간 신라인들의 사랑을 받은 향가에 대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정보는 소략하기 그지없다. 향가 작품집이라고 할 수 있는 삼대목 이 현재 전하지 않고, 현재 전하는 향가 작품은 삼국유사 와 균여전 에 전하는 작품 25수에 지나지 않아 향가의 실상을 제대로 알기 어렵다. 게다가 향찰 해독이 난해하여 그 내용의 뜻함을 온전히 파악하는 것도 어려우며, 연행과 관련해서는 향가가 어떤 장소에서 어떤 사람들에 의해 어떻게 불렸는지도 확인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하지만 그래도 다행인 것은 향가가 노래 단독으로 존재하지 않고 배경설화와 함께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향가는 신라부터 고려시대 까지 오랜기간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던 노래이다. 하지만 이렇게 오랜 기간 신라인들의 사랑을 받은 향가에 대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정보는 소략하기 그지없다." ]
A201007091948
대학생들의 어휘 사용 연구- 청주대 박물관 답사기를 통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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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는 다른 사람에게 글을 쓰는 이의 생각을 조리 있게 전달한다는 점에서 의사소통의 핵심적인 도구라 할 수 있다. 일상생활에서 말하기 능력이 중요한 것 못지않게, 다른 사람과의 원활한 의사소통을 위해서 글쓰기 능력을 키우는 것은 대학생들에게 필수적이다. 그러면 좋은 글은 어떤 것일까? 이 질문에 우선, 전달하려는 내용이 독창적이고 풍부해야 한다. 글을 읽는 사람을 사로잡는 것은 문장의 기교가 아니라 참신하고 독창적인 내용이다. 다음으로, 내용을 정확히 전달해야 한다. 읽는 사람에게 부정확한 지식이나 정보를 제공해서는 안 된다. 여기에 덧붙여, 글의 제반 형식적인 측면과 논리적인 측면에서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여기서 중요시될 수 있는 것이 어휘의 선택이 정확하고 규범에 맞아야 한다. 모든 글은 어휘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므로 글의 잘 되고 못 되고는 어떤 어휘들이 선택되었으며, 또 그 어휘들이 어떻게 짜여 있는가에 달려 있다. 본 논문은 청주대학교 학생들의 글쓰기에 있어 언어 사용 양상, 특히 어휘 사용 양상에 대한 문제점을 인식하고, 이에 대한 개선노력을 고취하고자 하는 데 목적을 두었다.
[ "글쓰기는 의사소통의 핵심적 도구로 어휘의 선택이 정확하고 규범에 맞아야 한다. 이에 본고는 청주대학교 학생들의 글쓰기에 있어 언어 사용 양상 그중에 어휘 사용 양상에 대한 문제점을 느끼고, 이에 대한 개선노력을 높이고자 한다.", "현대는 많은 정보들이 홍수와 같이 우리들에게 밀려오고 또 그 정보를 떠나서는 온전한 사회생활을 해 나갈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 이러한 수많은 정보들은 시각적인 수단인 문자를 통하여 우리에게 전달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올바른 언어규범을 통한 언어생활은 더욱더 중요시되고 있다. 글은 자기의 생각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기 위해 쓰는 것인데, 생각을 담고있는 의미의 최소 단위가 단어이고, 단어의 집합 개념이 어휘이다. 하나 이상의 단어가 모여 한 문장이 되고, 하나 이상의 문장이 모여 한 단락이 되며, 하나 이상의 단락이 모여 한 편의 글이 된다. 즉,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단어의 정확한 뜻을 알고, 어문 규범에 맞는 정확한 어휘를 사용해야 한다. 정서법에 맞춰 글을 쓴다는 것은 단순히 올바른 낱말 사용의 의미를 넘어서 사고의 정확성과 깊이를 좌우하는 근원적인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청주대학교 학생들의 언어 사용 양상에 대한 실태를 조사하기 위하여 2005학년도 2학기 ‘대학인의 글쓰기’ 과제로 청주대학교 박물관 답사기를 부여하였다. 본 논문은 이 과제를 제출한 223명의 과제를 교정하면서 어휘에 관련된 구어적인 표현 및 어형의 오류 현상을 분석한 것이다.", "수많은 정보들은 문자를 통하여 우리에게 전달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올바른 언어규범을 통한 언어생활은 더욱더 중요시된다. 이에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단어의 정확한 뜻을 알고, 어문 규범에 맞는 정확한 어휘를 사용해야 한다." ]
A201007091952
문학교육 평가의 활용 방안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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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에서 평가는 교육의 내용과 방향을 결정지을 정도로 중요하게 작용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바람직한 국어교육을 위해 국어교육에서 문학교육 평가가 어떻게 활용될 수 있는가를 고찰하고자 한다. 그러기 위해 우선, 국어교육에 대한 논의는 어떻게 이루어져 왔는가를 살펴보고자 한다. 국어교육의 논의에서 중요한 쟁점은 국어를 무엇이라고 보는가 하는 국어관과 밀접하게 관련을 맺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국어를 ‘가치 중립적인 기호체계’로 볼 것인가 아니면, 문화의 일종으로 볼 것인가 하는 점이다. 그리고, 국어교육의 목표를 ‘언어 사용 기능 신장’에 둘 것인가, 아니면 ‘전통 문화를 계승하고, 바람직한 인간으로 성장’하게 하는 것으로 볼 것인가 하는 점이다. 문학교육의 평가도 국어교육의 성공적인 달성을 위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본다. 문학교육의 평가는 결국 본질적인 문학교육을 하는 데에도 필요할 뿐만 아니라, 나아가 국어교육을 하는데 중요한 기여를 할 것이다. 국어교육이 내용을 중시하게 되어, 흥미 있고 유익하게 전개된다면 가르치는 선생님이나 배우는 학생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국어교육을 필요하고도 중요하게 생각하게 되어 국어교육을 한 차원 높게 끌어올릴 것으로 판단한다. 문학교육의 평가를 활용하는 것은 바람직한 국어교육을 하는데 크게 기여할 것으로 판단한다.
[ "국어교육에서 문학교육 평가가 바람직한 국어교육을 위해 어떻게 활용될 수 있는지 고찰한다. 국어교육 논의에서 중요한 쟁점은 가치 중립적인 기호체계로 볼지, 문화의 일종으로 볼지이고, 국어교육의 목표를 언어 사용 기능 신장에 둘지, 전통 문화를 계승하고, 바람직한 인간으로 성장에 둘것인지다. 문학교육의 평가를 활용은 바람직한 국어교육에 크게 기여할 것이다.", "문학교육에서 평가는 문학교육의 목표와 매우 밀접하게 관련을 맺고 있다. 목표가 무엇인가에 따라 문학교육의 내용과 방법, 평가가 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문학교육의 평가는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가를 살펴보고자 한다. 문학교육에서 평가를 어떻게 하느냐 하는 것은 문학교육의 방향을 바르게 제시해 줄뿐만 아니라, 국어교육에서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판단한다. 왜냐하면 국어교육이 단순히 외국어 교육처럼 의사소통 능력 향상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한국의 문화와 전통을 이해하고 바람직한 인간으로 성장하게 하는 보다 수준 높은 목표를 달성하는데, 문학의 활용 가치는 매우 높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 국어교육의 목표에 관한 논의는 어떻게 이루어져 왔는가를 검토하고자 한다. 국어교육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논의를 검토하여 그 차이점이 무엇인가를 살펴보는 것은 국어교육의 발전을 위해 매우 유익한 작업이라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평가의 활용방안을 생각하게 된 것은, 우리나라에서 평가는 매우 큰 위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대입수능 시험이 어떻게 평가되는가에 따라 대한민국 중, 고등학교 전체의 수업 내용과 방법이 달라지는 형편이다. 평가가 중요하게 작용하는 것은 우리나라의 일만은 아닌 것 같다.", "문학교육에서 평가에 대한 고려는 문학교육의 방향을 바르게 제시해 주고, 국어교육에서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 그러기 위해서, 이 논문에서는 국어교육의 목표에 관한 논의는 어떻게 이루어져 왔는가를 검토하고자 한다." ]
A201007091955
동안' 부사어의 의미 기능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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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안' 부사어가 양화되지 않은 단일 사건 구조를 갖는 핵문장에 결합하면, '동안' 앞에 어떤 시간 명사구가 오는가에 따라 '동안' 부사어가 부여하는 시간 의미가 달라진다. 또한, '동안'에 선행하는 시간 명사구의 차이는 '동안' 부사어가 결합할 수 있는 시상 부류에도 제한을 가한다.
[ "동안의 부사어 앞의 시간 명사구에 따라 부사어가 부여하는 시간의 의미가 달라진다.", "본 논문은 한국어의 '동안' 시간 부사어의 시간 의미 기능을 기술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동안' 시간 부사어는 Vendler(1967)이래로 한국어 문장의 미종결상(atelicity)을 드러내는 표지어(marker)로 간주되어 왔다. 그러나 말뭉치를 살펴 보면 ‘동안’ 시간 부사어가 미종결상을 갖지 않는 문장들과 결합하여 나타나는 용례들이 적지 않게 발견된다. 조민정(2000)은 활용빈도가 높은 1200개 서술어를 포함한 말뭉치 용례들을 분석하여 ‘동안’ 부사어와 ‘만에’ 부사어는 종결상 동사구와 미종결상 동사구를 구분하는 판별법으로 그렇게 유용하지 않다고 보고한 바 있다. 다음은 조민정(2000)이 Vendler(1967)의 시상 모델로 설명될 수 없다고 본 ‘동안’ 부사어의 예들이다. (1) 밤 동안 벼락이 내리쳤다. (2) 가정주부들이 겨울 동안 스웨터를 떴다. (3) 나리는 한 시간 동안 강을 건녔다. (4) 그녀는 한 시간 동안/한 시간 만에 그 책을 읽었다. 예문 (1)의 ‘벼락이 내리쳤다’는 순간적인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동안’ 부사어와 결합하고 있다. 또,예문 (2)의 ‘스웨터를 떴다’ 라는 사건은 물리적으로 겨울 내내 쉼 없이 이루어 질 수 있는 사건이 아니다. 예문 (3)은 Vendler의 시상 모델에서 완결상을 갖는 문장으로 간주되지만 ‘동안’ 부사어와 자연스럽게 결합하는 예이다. 예문 (4)는 서술어 자체가 시상적으로 중의적인 예로서, ‘그녀가 그 책을 읽었다’는 정반대의 시상 의미를 가진 ‘동안’ 부사어와 ‘만에’ 부사어와 모두 결합할 수 있다.", "본 논문에서는 한국어의 '동안' 시간 부사어의 시간 의미 기능을 기술한다. ‘동안’ 시간 부사어는 Vendle r이래로 한국어 문장의 미종결상을 드러내는 표지어로 간주되어 왔다. 그러나 말뭉치에서는 ‘동안’ 시간 부사어가 미종결상이 없는 문장들과 결합해 나타나는 용례들이 많다. " ]
A201007091958
상호의존적 유통경로에서 영향전략이 갈등에 미치는 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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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 유통경로의 구성원은 공동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주어진 과업을 적절히 수행하여야 하며 서로의 활동을 조정하여야 할 필요성을 느낌에 따라 상대방의 의존성에 기반한 자신의 힘을 바탕으로 경로기능을 조정하고자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유통경로상에서의 거래기업들간 관계에 대한 많은 연구들이 거래상대방의 의사나 행동에 어떻게 하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지와 이러한 영향력을 행사한 상대기업들의 반응에 대한 다양한 연구들이 진행되어 왔다. 이에 본 연구에서는 이러한 다양한 연구들에 근거하여, 상호의존성과 관련된 대부분의 연구들에서 상호의존성과 경로성과간 직접적인 관계에 대해서만 연구해왔던 한계점을 보완하고자 매개변수로서 영향전략을 제시하였다. 권고, 정보교환, 약속 등의 비강압적 영향전략들과 법적 호소, 위협 등의 강압적 영향전략들을 활용하여, 상호의존성과 갈등간 관계의 매개효과를 실증적으로 검증하였다. 실증분석을 통해서 상호의존성이 총합이 클수록 비강압적 영향전략을 더 많이 사용하게 되며, 상대적으로 힘의 우위에 있을수록 강압적 영향전략을 덜 사용하게 된다는 분석결과를 도출하였다. 또한 강압적 영향전략은 지각된 갈등을 증가시키고, 비강압적 영향전략은 잠재적 갈등을 증가시킴을 검증하였다.
[ "본고는 상호의존성과 경로성과간 직접적인 관계 연구의 한계점 보완을 위해 매개변수로서 영향전략을 제안한다. 분석결과, 상호의존성이 총합이 클수록 비강압적 영향전략을 더 사용하고, 상대적으로 힘의 우위에 있을수록 강압적 영향전략을 덜 사용했다. 강압적 영향전략은 지각된 갈등을 증가시켰고, 비강압적 영향전략은 잠재적 갈등을 증가시켰다.", "Coughlan, Anderson, Stern and Elnsary(2001)에 의하면, 유통경로는 “고객이 제품이나 서비스를 사용 또는 소비하는 과정에 참여하는 상호의존적인 조직들의 집합체”로서 정의할 수 있다. 이러한 정의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의존성은 유통경로의 기본적 특성으로서, 유통분야에서 많은 학자들에 의해서 연구되어 왔다. 즉 유통 경로상에서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경로구성원간 의존성은 필연적으로 형성되는 필수적인 요소이며, 최근에는 Gundlach and Cadotte(1994)의 연구를 포함한 일부 연구들에 의해 거래당사자 쌍방의 관계(dyadic relationship) 속에서 의존성의 확장된 개념인 상호의존성(interdependence)을 제시된 이후에 보다 체계적으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상호의존성은 어떤 행위라고 보기 어렵다. 상호의존성은 의존성의 구조(structure of dependence)이며, 의존성의 상대적 개념인 힘도 상대방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역량(capability)에 불과한 것이라는 견해가 많은 기존 연구들에서 제시되었다. ", "의존성은 유통경로의 기본적 특성으로, 유통분야에서 많이 연구되어 왔다. 즉 유통 경로상에서 차이가 있을 뿐 경로구성원간 의존성은 필연적으로 형성되는 필수적인 요소이다. 최근에는 의존성의 확장된 개념인 상호의존성이 제시된 이후에 보다 체계적으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
A201007091961
미국과 일본의 자동차 유통채널시스템의 개방성과 폐쇄성에 관한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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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미·일 자동차유통채널시스템에 대한 국제비교연구를 통해 양국 자동차유통채널시스템의 성격을 명확히 밝히는 것을 목적으로 이루어졌다. 이를 위해 필자는 채널관계에 대한 일반론을 자동차유통과 관련하여 미·일 자동차유통채널시스템의 구조상의 차이 및 형성요인에 대해 분석하였고, 이러한 미·일 자동차유통시스템의 서로 다른 채널관계 형성배경과 미·일 자동차유통시스템의 「개방성」과 「폐쇄성」을 규정하는 요인에 대해 고찰하였다. 그 결과 다음과 같은 결론을 도출할 수 있었다. 먼저, 미국 자동차유통시스템에 있어서의 자동차메이커와 딜러간의 관계는 초기단계에서는 시스템이익 최대화의 달성을 전제로 서로 협력적인 관계를 유지해 왔다. 하지만, 이후의 시장변화에 따른 자동차메이커의 일방적인 지배형태의 유통구조가 형성되어 시스템이익의 최대화의 전제가 무너지고 양자간의 협력관계도 무너지게 되었다. 이에 따라 미국의 자동차딜러들은 새로운 시스템이익을 찾아서 또 다른 자동차메이커의 시스템으로 이동하게 되었고, 이러한 딜러에 의한 시스템간 이동이 다수 출현하게 되었다. 따라서, 미국 자동차메이커와 유통업자간의 유통시스템은 개방적인 형태로 발전하게 되었다. 한편, 일본의 경우에는 초기단계부터 자동차딜러가 메이커보다 먼저 형성된 특수한 유통구조에 의해 메이커는 설립초기부터 기존의 딜러에 의존하며 시스템이익 최대화를 실현 가능화 시켰다. 고도성장기에 있어서는 딜러의 영역이 그대로 보증되어 메이커 자신의 이익최대화와 동시에 딜러 자신의 이익최대화가 실현되어 결과적으로 시스템 전체의 이익을 달성하게 되었다. 아울러, 서비스 중시의 마케팅정책 하에 딜러는 적극적으로 체계적인 서비스구축에 노력해 왔다. 그 결과 자동차메이커와 딜러간의 협력관계는 더욱 강해졌고, 따라서, 일본자동차메이커와 유통업자간의 유통시스템은 폐쇄적인 형태로 발전하게 된 것임을 밝혔다.
[ "본고는 미·일 자동차유통채널시스템의 성격을 고찰한다. 미국의 초기단계에는 자동차메이커와 딜러가 협력적 관계였지만, 시장변화에 따른 자동차메이커의 일방적 지배형태의 유통구조로 딜러들은 새로운 시스템이익을 찾아 이동하여 미국 자동차메이커와 유통업자간의 유통시스템은 개방적인 형태로 발전했다. 일본의 초기단계는 자동차딜러가 먼저 형성된 유통구조로 메이커는 딜러에 의존하며 시스템이익을 최대화했고, 딜러는 체계적인 서비스구축에 따라 자동차메이커와 딜러의 협력 강화로 유통시스템은 폐쇄적인 형태로 발전했다.", "지금까지 미‧일 자동차 유통시스템에 대한 연구가 많은 학자들에 의해 이루어져 왔다. 그러한 연구의 대부분은 양국 자동차 메이커와 딜러간의 기업간 관계에는 현저한 차이가 존재하고 있고, 특히 일본 자동차 산업에 있어서의 기업 간 관계의 폐쇄성은 미국을 포함한 많은 외국 자동차 메이커들의 일본시장 진출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일본의 경우, 자동차 메이커와 딜러가 계열관계를 구성하여 양자 간의 장기적인 거래를 중심으로 폐쇄적인 유통시스템이 형성되어 있다는 점이다. 특히, 미국정부는 이러한 일본의 폐쇄적인 계열거래 관계를 중심으로 한 전매제(專賣制)가 미국 자동차 메이커의 일본시장진출을 방해하는 요인으로 자리잡고 있으며 「일본 자동차 메이커는 미국 빅3계 딜러 1400사를 통하여 직접 판매하고 있으나, 미국의 빅3가 계약하고 있는 일본 자동차 메이커 계열의 딜러 수는 37사에 불과하다」며 일본 자동차 메이커와 딜러 간의 폐쇄적인 계열관계를 강하게 비난하고 있다. 한편, 이에 대해 일본정부는 「일본 자동차 메이커는 딜러들의 병매(供賣)요구에 반대하지 않았으며, 미국정부에 의한 일본 자동차 유통시스템의 폐쇄성에 대한 비난은 적절하지 않다. 유럽차에 비교하여 미국자동차가 일본시장에서 판매되지 않는 것은 미 국자동 차메이커의 노력부족의 결과이다」라며 강하게 반론하고 있다.", "지금까지 미‧일 자동차 유통시스템에 대한 연구가 많이 이루어져 왔다. 그러한 연구의 대부분은 양국 자동차 메이커와 딜러간의 기업간 관계에는 큰 차이가 존재하고, 특히 일본 자동차 산업에 있어서 기업 간 관계의 폐쇄성은 미국을 포함한 많은 외국 자동차 메이커들의 일본시장 진출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라고 강조했다." ]
A201007091964
태변 전 증후군 3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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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들은 산과력에서 특이 소견이 없는 3명의 신생아에서 출생 직후부터 경한 복부 팽만, 담즙성 구토 및 태변 배출 지연이 발생하여 시험적 개복술을 시행하여 회장 말단에서부터 대장에 박혀 있는 굳은 태변을 제거한 2예와 바륨 관장과 초음파 검사로 진단 후 gastrografin 관장으로 치료한 1예의 태변 전 증후군 3례를 경험하였기에 이에 보고하는 바이다.
[ "굳은 태변 제거 2예와 gastrografin 관장 치료한 1예의 태변 전 증후군을 경험하고 보고한다.", "신생아 초기에 발생하는 태변에 의한 질환 중 태변 전 증후군(meconium plug syndrome)과 태변성 장폐색증(meconium ileus), 태변성 복막염은 명확히 분리된 질환이 아니라 같은 스펙트럼에 있는 질환으로 생각하고 있다. 태변 전 증후군은 미숙아에서 더 흔히 발생하고 농축되고 움직이지 않는 태변에 의해 원위부 결장 또는 직장 때로는 소장이 일시적으로 폐쇄되는 질환으로 낭종성 섬유증과는 관련이 없다. 태변성 장 폐색증은 끈끈하고 단백이 풍부한 농축된 태변이 회장 말단의 폐쇄를 일으키는 질환으로 서양에서는 신생아 장 폐쇄의 20%를 차지하고 있다. 비록 드물게 정상 신생아에서도 태변성 장 폐색증이 발생하지만, 대부분의 태변성 장 폐색증 환자는 낭종성 섬유증과 동반하여 발생한다. 태변 전 증후군의 발병 원인에 대해서는 아직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으며, 빈도는 500명 내지 1,000명의 신생아당 한 명으로 추정한다. 임상 증상은 복부 팽만, 구토 및 태변 배출의 장애로 나타난다. 이 태변 전 증후군은 주산기 대장 폐쇄를 일으킬 수 있는 거대 결장증, 항문 직장 기형, 소 좌측 대장 증후군(small left colon syndrome), 신경성 장 이형성증(neuronal intestinal dysplasia), 거대 방관-소결장-장저 연동운동 증후군(megacystis-microcolon-intestinal hy_xFFFE_poperistalsis syndrome)과 감별을 해야 한다.", "신생아 초기에 발생하는 태변에 의한 질환 중 태변 전 증후군과 태변성 장폐색증, 태변성 복막염은 명확히 분리된 질환이 아니다. 태변 전 증후군의 발병 원인에 대해서는 아직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으며, 빈도는 500명 내지 1,000명의 신생아당 한 명으로 추정한다." ]
A201007091969
미국의 초기 사회과 전통에서 Harold Rugg의 교육이념 및 실천 노력의 위상 탐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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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시회과교육의 이론가이자 실천가인 Harold Rugg에 대하여 지속적으로 논의되고 있지만, 이념적 차원에서 주로 조명되어왔다. 이러한 접근은 Rugg의 교육론의 특성을 드러낼 수 있으나, 그의 교육론이 초기 사회과 전통에 기반한 시대적 산물임을 조명하지 못하여 사회과 교육에서의 합의를 충분히 드러내기 어려웠다. 본 연구는 1916년 NEA 보고서가 초기 사회과의 핵심적 전통을 드러내는 표상물인 동시에 여러 교육진영들 간 타협의 산물임을 전제로, 이 보고서를 근간으로 Rugg 사회과교육론의 특성에 대하여 탐색하고자 한다. 1916년 NEA 보고서의 핵심 논점들을 준거로 Rugg의 교육과정과 교재에 관한 제안들을 조망하는 것은 그의 이념적 노선뿐만 아니라 그의 사회과교육론의 함의를 직접적으로 드러낼 수 있을 것이다. Rugg의 교재와 교육과정 개발에 관한 핵심적 제안들은 1916년 NEA 보고서와 공유되는 기저를 가지고 있다. 사회과의 핵심 내용을 학습자의 실제적 경험과 이를 바탕으로 한 학습자의 사고과정으로 보고 있다는 점, 학습자의 심리적 고려의 필요성과 사회적 관심과 요구에 대한 고려를 하고 있다는 점, 통합적 접근을 시도하고 있어 주제 또는 문제 중심으로 접근할 것을 제안하고 있으며, 전통적인 교육과정 조직법에 동의하지 않고 새로운 시도를 한다는 점에서 서로 공유되었다. 이러한 점들은 Rugg의 사회과교육론의 핵심이 초기 사회과의 전통에 수렴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Rugg의 사회과교육론이 1916년 NEA 보고서의 핵심적 노선과 정합가능하다는 것은 이념 논쟁의 소재로서 개인적 혹은 돌발적인 사건으로서가 아니라, 교과교육 탄생에 동의한 많은 사회과교육의 실천가와 연구자들이 달성하고자 하였던 지향점을 구현하고자 하였다고 볼 수 있다.
[ "본고는 사시회과교육의 이론가이자 실천가인 Harold Rugg 사회과교육론의 특성에 대해 고찰한다. Rugg의 교재와 교육과정 개발의 핵심적 제안들은 1916년 NEA 보고서와 공유되어 Rugg의 사회과교육론의 핵심이 초기 사회과의 전통에 수렴됨을 보여주었고, 1916년 NEA 보고서의 핵심적 노선과 정합이 가능한 것은 이념 논쟁의 소재로서 교과교육 탄생에 동의한 사회과교육의 실천가와 연구자들의 달성을 위한 지향점 구현을 하고자 했다.", "현재 한국 사회과는 교육과정 개편을 앞두고, 일견 다양한 이해관계에 따라 논쟁이 이루어지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 사회과에서는 1990년대 이후 지역 학교에서 가르쳐야만 할 것을 국가 수준의 교육과정으로 표준화하자는 이른바 표준화 운동(standard movement)을 둘러싼 논쟁이 가시화되고 있다. 사회과에서 다양한 논쟁들이 일어나는 것은 당연한 것일 수 있고, 그 만큼 사회과의 이상은 현실에 실현하기 어렵다는 의미일 것이다. 이는 ‘사회과의 이상(利理)을 현실에서 온당하게 구현하는 것이 정말로 어려운 것인가?’ 를 자문하게 한다. 나아가, ‘그동안 사회과의 이상을 적극적으로 구현하고자 했던 실천적 사례를 남긴 사례는 그렇게 발견하기 어려운가?’ 하는 물음을 떠올리게 한다. 이러한 물음들에 대하여 많은 사회과 교육론자들은 사회과의 이상을 제시하고 이에 따른 실천적 노력까지를 시도한 대표적 사례의 하나로서 Harold O. Rugg(이하 Rugg)의 사회과 교육론을 떠올릴 것이다. 이는 사회과 교육계에서 그의 사회과 교육론에 대한 논의가 지속적으로 진행되어 온 그동안의 모습을 살펴보면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현재 한국 사회과는 교육과정 개편을 앞두고, 일견 다양한 이해관계에 따라 논쟁이 이루어지고 있다. 사회과에서 다양한 논쟁들이 일어나는 것은 당연하며, 그 만큼 사회과의 이상은 현실에 실현하기 어렵다는 의미이다." ]
A201007091973
매장내 고객의 감정반응 : 선행요인과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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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는 고객의 매장내 감정에 영향을 미치는 선행요인과 그 결과를 규명하고자 하는 목적을 두었다. 기존 연구를 검토하여 물리적 환경을 매장내 감정에 영향을 미치는 선행요인으로 선정하였고, 감정반응이 고객의 행동의도에 미치는 영향을 검증하였다. 패밀리 레스토랑 고객 486명의 자료를 바탕으로 공분산구조분석을 실시한 결과, 지각된 물리적 환경은 부정적 감정에 부(-)의 영향을 미치고, 긍정적 감정과 환기에 정(+)의 영향을 미치며, 이러한 감정을 매개하여 행동의도에 영향을 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시사점을 논의하고, 연구의 한계와 미래 연구방향을 제시하였다.
[ "본고는 고객의 매장내 감정에 영향을 주는 선행요인과 그 결과로, 지각된 물리적 환경은 부정적 감정에 부, 긍정적 감정과 환기에 정을 주어 이것을 매개하여 행동의도에 영향을 주었다.", "최근 들어 고객의 인지적 반응뿐만 아니라 소비과정에서 발생하는 감정적 반응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고 있다. 여러 마케팅 자극에 의해 매장 내에서 고객의 감정반응은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다. 예를 들어 음악, 향기, 조명, 진열, 레이아웃과 같은 물리적 환경에 의해 고객들은 환기되고 기분이 고조되어 예상 구매량 보다 더 많이 구매할 수도 있으며, 즐겁고 유쾌한 경험으로 향후 재방문의도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이처럼 고객의 매장 내 긍정적 감정반응을 유도하는 것은 마케터의 주요한 과제로 부각되고 있다. 최근 매장의 물리적 환경이 고객의 행동에 미치는 중요한 영향을 인식한 여러 유통업체들은 매장 설계와 머천다이즈에 상당한 자원을 투자하고 있다. 일부 유통업체(e.g., The Sharper Image, Bass Pro Shops, Barnes & Noble)는 쇼핑을 촉진하는 매장의 물리적 환경을 매력적으로 만들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는 반면, 다른 유통업체(e.g., Costco, Home Depot)는 창고형 쇼핑환경으로 투자를 최소화함으로써 성공하고 있다.", "최근 고객의 인지적 반응과 소비과정에서 발생하는 감정적 반응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고 있다. 마케팅 자극에 의해 고객의 감정반응은 다양하다. 물리적 환경에 의해서도 고객들은 더 많이 구매할 수도 있고, 즐겁고 유쾌한 경험으로 향후 재방문 의도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
A201007091975
프랜차이즈 시스템에서 거래특성이 신뢰와 만족에 미치는 영향- 국내 외식프랜차이즈를 중심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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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기본적으로 프랜차이즈 본부와 가맹점 간의 관계성에 초점을 맞추어 안정적인 관계형성에 대한 메커니즘을 심도있게 분석하는데 주요 목적이 있다. 즉 효율적인 관계를 형성하기 위해 요구되는 거래특성을 파악함과 동시에 핵심적인 관계적 요소를 정립하는데 그 의의가 있다. 이를 위해 프랜차이즈 본부와 가맹점 간의 거래특성 차원에서 중요하게 대두되는 커뮤니케이션, 공식화, 거래기간 및 서비스지원이 관계의 질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보고, 관계성 차원에서 신뢰와 만족 간의 관계를 분석하였다. 실증은 국내 대표적인 외식 프랜차이즈 가맹점의 관점에서 진행하였다. 연구결과 커뮤니케이션은 신뢰와 만족을 증가시키는 것으로 나타났고, 공식화도 신뢰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거래기간은 신뢰에 뚜렷한 영향을 주지 않고 있다. 그리고 서비스지원은 신뢰와 만족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신뢰가 만족을 증가시킴에 따라 신뢰는 성공적인 관계를 형성하는데 초석이 되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 "본고는 프랜차이즈 본부와 가맹점 간의 관계성에 초점을 두고 안정적인 관계형성에 대한 메커니즘을 심도있게 분석한다. 커뮤니케이션은 신뢰와 만족을 증가시키고, 공식화도 신뢰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에 따라 신뢰는 성공적 관계 형성에 초석이 됨을 확인했다.", "최근 끊임없이 변화하는 경영환경 하에서 관계마케팅은 조직간 관계를 운영하는 메커니즘으로서 학문적으로나 실무적으로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관계마케팅은 효율성과 효과성을 높이기 위해 경로 구성원들이 장기적인 교환관계를 구축하고 유지하는 상호노력을 말한다. 이는 보다 의미있는 거래관계를 통해 불필요한 비용을 절감하고 수익을 증대시킴으로써 상호 혜택을 강조하는 것이 핵심이다. 특히 프랜차이즈는 본부와 가맹점 간의 관계에 기초한 유통시스템으로 구성원 간의 관계관리가 시스템 경쟁력 제고에 중요하게 작용한다. 따라서 관계마케팅은 프랜차이즈 시스템의 전략수립을 위한 필수적인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프랜차이즈 시스템은 교환관계의 전형적인 형태로서 본부는 좋은 상품과 경영기법을 가지고 타인의 자본과 인력을 이용하여 빠른 성장을 할 수 있고, 가맹점은 이미 입증된 사업개념을 통하여 자신의 사업을 운영하여 위험성을 줄일 수 있게 된다. 우리나라의 프랜차이즈는 1979년 롯데리아를 선두로 외식업을 비롯한 광범위한 분야에 적용되어 가장 강력한 소매형태가 되고 있다. 특히 외환위기와 경기침체, 그리고 구조조정을 수반한 기업 구조의 변화로 실직자들이 증가하면서 프랜차이즈 산업은 확장일로에 놓여 있다. ", "최근 경영환경에서 관계마케팅은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관계마케팅은 구성원들이 장기적인 교환관계를 구축하고 유지하는 상호노력이다. 이는 보다 의미있는 거래관계를 통해 불필요한 비용을 절감하고 수익을 증대시킴으로써 상호 혜택을 강조하는 것이 핵심이다. " ]
A201007091978
소비자 점포선택요인의 실증적 비교연구- 대전지역 편의점과 동네슈퍼마켓을 중심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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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영세소매업태인 동네슈퍼마켓의 생존을 위한 정책방향 설정 및 활성화 계획 수립을 위하여, 영세소매업의 전통적인 업태인 동네슈퍼마켓과 규모 및 상품구색 등이 유사한 신업태인 편의점을 비교하여, “소비자들의 소규모 소매점포 선택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에 관하여 설문지를 통한 실증분석을 시행하고 이들의 경영개선 방안을 제시하고자 하였다. 본 연구결과, 편의점 상품의 가격과 서비스 차원은 중요도가 높은 반면에 소비자들이 느끼는 만족도는 낮은 것으로 나타나 이 두 가지 차원의 만족도를 향상시키기 위한 노력이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동네슈퍼마켓은 점포 내외 환경, 다양한 상품구색 및 서비스 차원의 만족도를 향상시키기 위한 노력이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소비자의 선택을 받기 위해서는 편의점은 비교적 높은 상품가격의 하향조정이 필요하고, 동네슈퍼마켓은 점포 내, 외부 환경 개선사업과 공동물류를 통한 상품의 질 향상과 구색의 다양성이 요구된다. 영세소매업 정책도 동네슈퍼마켓의 조직화를 통한 점포 내, 외부 환경 개선사업과 상품의 질과 다양성을 갖추는데 초점을 두어야 할 것이다.
[ "본고는 영세소매업태인 동네슈퍼마켓의 생존을 위한 경영개선 방안을 제안한다. 편의점은 높은 상품가격의 하향조정을 하고, 동네슈퍼마켓은 점포 내, 외부 환경 개선사업과 상품의 질 향상과 다양성이 필요했다. 영세소매업 정책도 동네슈퍼마켓의 조직화로 내,외부 환경 개선과 상품의 질과 다양성을 갖추어어야 한다.", "1996년 유통시장 개방 이후 10년 동안 우리나라는 제도개혁, 소비자 행동의 변화, 제조부문의 구조조정 등 다양한 측면에서 유통 환경의 변화를 경험하였다. 특히 대규모 자본이 투여된 대형마트의 등장으로 전통적인 업태인 재래시장 및 영세소매업의 침체가 눈에 띄게 가속화되면서 유통시장의 양극화 문제도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닌 실제 상황이 돼 버렸다. 이를 통계로 살펴보면 유통개방 이후 등장한 신업태인 대형마트의 판매액은 1996년 대비 960.7%, 편의점은 291.7% 늘어났으며, 무점포 판매업 역시 통계조사를 시작한 2000년 대비 207.8% 증가하였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업태인 슈퍼마켓과 구멍가게 등이 주를 이루는 기타소매업은 각각 14.8%, 19.30% 감소하여 양극화 현상이 극명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런 상황 하에서 정부, 업계나 학계는 전통적인 업태의 지속적이고도 안정적인 발전방안을 강구하기 위해서 부단한 관심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나, 대부분의 연구‧조사들이 유통산업 전체의 효율성을 제고하는 거시적이고도 규범적인 연구들이었다. 그러나 이 문제는 “소비자가 왜 동네슈퍼마켓을 찾지 않는가?”에서 시작하여야 한다.", "1996년 유통시장 개방 이후 10년 동안 우리나라는 다양한 측면에서 유통 환경의 변화를 경험하였다. 특히 대규모 자본이 투여된 대형마트의 등장으로 전통적인 업태인 재래시장 및 영세소매업의 침체가 눈에 띄게 가속화되면서 유통시장의 양극화 문제가 실제 상황이 돼 버렸다." ]
A201007091981
삼국유사의 인용자료와 이야기의 중층성―초기 서사의 구축형태에 주목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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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기본적으로 초기 서사물이 많이 남아있지 않은 현실을 감안하되, 그나마 남아있는 자료를 통해서 초기 서사의 지형을 역추적하는 작업의 일환으로 기획되었다. 그 대상은 『삼국유사』이다. 『삼국유사』에는 다양한 자료가 동원되어 하나의 이야기가 구축된 예가 매우 많다. 찬자는 당대까지 축적된 관련 자료를 ‘조합’ 또는 ‘분절’, 그리고 ‘재배치’를 하여 『삼국유사』를 찬술했는데, 이 과정에서 서사성이 짙은 자료들이 망라되기에 이르렀다. 이런 결과로 『삼국유사』는 『삼국사기』와는 변별되는 역사서로 꾸려질 수 있었고, 그 사이에 서사적 골격을 갖춘 자료들이 상당수 포섭되기에 이르렀다. 요컨대 『삼국유사』는 삼국시대부터 고려시대 중기까지의 서사 관련 자료의 集積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이런 집적은 일률적이지 않아 대략 네 가지 방식을 취하고 있다. 이 중 특히 둘 이상의 자료가 동원되어 ‘인물’이나 ‘사건’에 대한 내용의 어떤 결을 느끼게 하는 작품이 주목된다. 「太宗春秋公」·「圓光西學」·「郁面婢念佛西昇」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 작품은 편차가 적지 않은 둘 이상의 자료가 동원된 예이다. 따라서 이들 작품을 읽다보면 하나의 대상인데도 그 안에서 다양한 서사적 층위를 실감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삼국유사』에는 초기 서사의 양태라고 할 만한 자료들이 시기와 성격을 달리한 채 복잡하게 얽혀져 있다. 특히 이들 자료 중에서 초기 서사의 범위에서 논의할 수 있는 자료들이 적지 않은 바, 해당 자료들의 성격이 일률적이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초기 서사의 지형이 단순하지 않다는 점에서 매우 고무적인 문제제기라고 판단된다. 그리고 이런 점에서 앞으로 이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가 필요하다.
[ "본고는 초기 서사의 지형을 역추적하는 작업의 일환이다. 삼국유사는 둘 이상의 자료가 동원되어 인물이나 사건에 대한 내용의 어떤 결을 느끼게 하는 太宗春秋公· 圓光西學 · 郁面婢念佛西昇 등이 그 예로, 자료들이 시기와 성격을 달리하여 복잡하게 얽혀져 초기 서사의 범위에서 논의할 수 있는 자료들이 적지 않은 바, 자료들의 성격이 일률적이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이는 초기 서사의 지형이 단순하지 않은 점에서 매우 고무적인 문제제기라고 판단된다. ", "필자는 최근 『삼국유사』의 하나의 코드라고 할 수 있는 神異性에 주목하여, 이를 초기 서사의 형성과정의 주요 지표로 상정하였었다. 거기서 우선 유념한 것은 초기 글쓰기 양식으로서 『삼국유사』 이야기의 ‘중층성’(또는 적층성)이었다. 주지하듯이 13세기에 편찬된 『삼국유사』는 앞 시기 史書와 기타 다종의 자료를 망라하여 엮은 종합적인 성격의 역사서이다. 이러한 자료 인용의 흔적은 ‘○○元•••’ 형태로 문면에 드러나 있기도 하고, 자료들을 절묘하게 배치시켜 그 흔적이 선명하지 않은 경우도 있다. 어쨌든 『삼국유사』는 편찬 시기까지 축적된 수많은 자료를 통해 ‘遺事’로 구축된 새로운 형태의 사서인 셈이다. 이번에는 초기 서사의 층위성을 확인하고자 바로 이 『삼국유사』의 축조형태에 주목하였다. 다양한 성격의 자료들이 두루 동원되면서 균일하지 않은 내용들이 뒤섞인 채 엮어진 『삼국유사』에는 당연히 서사적인 면모가 강한 초창기 자료들도 대거 인입되어 있다. 이런 자료는 개별 작품(또는 이야기)안에 배치되어 새로운 형질의 서사양태로 거듭 태어날 것으로 기대되는데, 바로 이 점에 주목한 것이다. ", "필자는 『삼국유사』의 하나의 코드라고 할 수 있는 神異性에 주목해, 이를 초기 서사의 형성과정의 주요 지표로 상정했다. 거기서 우선 유념한 것은 초기 글쓰기 양식으로서 『삼국유사』 이야기의 ‘중층성’이었다." ]
A201007091989
칼 바르트의 화해론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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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는 한반도의 비극적 현실, 즉 분단에 대하여 책임감과 소명감을 가지고 자유롭게 말을 하고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것에 대한 하나의 접점이 필요하다는 것에서 착안하여 칼 바르트의 화해론을 분석하고자 하는 것이다. 화해와 대화의 기본적 전제는 서로가 노선이 다르고 의견의 차이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바르트의 화해론은 삼위일체론적, 그리스도 중심적 사고에서 신학적 근거를 가진다. 따라서 그의 신학적 진술은 여기서도 정통, 체제, 이념, 종교의 틀을 벗어나 자유의 행진을 시작한다. 그것은 마치 탕자가 자유를 찾아 나섰지만 세속에서 실패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화해하고, 그래서 참 자유의 삶을 사는 것과 같다. “탕자의 자유”는 오늘날 화해를 잃어버린 세계를 향해 주는 신학적 메시지다. 바르트에게서 예수 그리스도는 화해의 핵심이다. 화해자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을 향한 화해의 근원이다. 하느님의 섭리와 예정 속에서 하느님의 위대한 계획이 수립되었고,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과 그의 하느님 나라의 운동과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 속에서 하느님의 화해가 시작된 것이다. 너와 나의 화해가 아니라, 화해하지 못하는 너와 나를 위해서 그리스도가 화해의 재물이 된 것이다. 화해케 하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인간의 운명을 드러나게 했다. 인간 자체적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하나의 축과 동시에 그리스도의 희생이 너와 내가 화해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우리는 화해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성서가 제시하는 복음이다. 우리는 인간이 하느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다는 성서적 진술과 다시금 십자가 아래서 더 깊은 차원으로 하느님과의 바른 관계를 가지게 되었다는 사실을 숨길 수 없다.
[ "본고는 칼 바르트의 화해론을 분석한다. 삼위일체론적, 그리스도 중심적 사고에서 신학적 근거를 가짐에 따라 그의 신학적 진술은 마치 탕자가 자유를 찾아 나섰지만 세속에서 실패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화해하여 참 자유의 삶을 사는 것과 같다. 탕자의 자유는 신학적 메시지로 바르트에게서 예수 그리스도는 화해의 핵심이자 세상을 향한 화해의 근원이다. 인간이 하느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다는 성서적 진술과 하느님과의 바른 관계를 갖게 된 사실임을 숨길 수 없다.", "한반도의 비극적 현실, 즉 분단에 대하여 책임감과 소명감을 가지고 자유롭게 말을 하고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것에 대한 하나의 접점이 필요하다. 화해와 대화의 기본적 전제는 서로가 노선이 다르고 의견의 차이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화해를 위해서는 하나가 다른 하나를 억눌러 자유로운 의견 발표나 대담을 불가능하게 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민족화해와 세계 평화를 외치는 소리에도 여전히 모순이 나타남을 경험해왔다. 인권이 유린되고 사회 정의가 없는 곳에 평화가 있을 수 없다는 주장은 옳다. 그러나 평화를 위하여 전쟁을 시인하고 폭력과 무력을 평화의 수단으로 주장한다는 것은 옳지 않다. 지난 9.11 테러 그리고 그 이후 “테러와의 전쟁”은 평화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전쟁을 감행했고, 그리고 여전히 지금도 그러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 “테러”가 일어났고, 이어서 테러를 종식시킨다는 명분으로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와의 전쟁을 감행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 전쟁을 통해 얻어진 것이 무엇인가? 그 어디서도 평화를 찾아 볼 수가 없다.", "한반도의 비극적 현실인 분단에 대해 책임감과 소명감을 갖는 하나의 접점이 필요하다. 인권이 유린되고 사회 정의가 없는 곳에 평화가 있을 수 없다는 주장은 옳다. 그러나 평화를 위해 전쟁을 시인하고 폭력과 무력을 평화의 수단으로 주장하는 것은 옳지 않다." ]
A201007091991
국어 담화의 연결 표지-완형 표현의 반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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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이웃하는 두 문장 사이에 연결 표지로 쓰이는 완형 표현의 반복 현상을 다룬 것이었다. 여기서 완형 표현의 반복이란 선행 문장의 서술어를 포함한 구나 절을 그대로 되풀이하되, 여기에 특정의 연결어미를 결합시킨 형식을 말한다. 이러한 완형 표현의 반복은 ‘그러하-’에 의한 대용 방식과 함께, 한국어 담화의 유표적 결속 장치를 구성한다. 이 글에서 논의한 사항들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① 완형 표현의 반복은 선행 문장의 일부 표현을 형태 그대로 반복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경우에 따라 일부 표현이 생략되거나 첨가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경우에도 생략되거나 첨가되는 표현은 문맥상에서 추론이 가능하거나 강조어처럼 정보량이 크지 않은 경우에 한한다. ② 완형 표현의 반복은 반복되는 표현이 선행 문장에서 초점 정보를 나타내는 것이어야 한다. 이 초점 정보는 연결 표지로 반복되면서 배경 정보로 바뀌게 된다. ③ 선행 문장이 접속문이면 반복되는 부분은 접속문의 후행절이 되기 쉬운데, 그것은 대체로 후행절이 초점 정보로 작용하는 경향이 크기 때문이다. 만약 선행절에 초점 정보가 포함되어 있으면 선행절까지 반복된다. ④ 선행 문장이 타동사문이면, 대체로 목적어까지 반복된다. 왜냐하면 타동사문에서 목적어는 초점 정보를 갖는 수가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목적어가 초점 정보가 되지 못하면 목적어는 반복 과정에서 생략될 수 있다. ⑤ 문장의 끝에 첨가되는 요소는 반복되지 않는다. 이런 첨가 요소는 본질적으로 배경 정보를 나타내기 때문이다. ⑥ 반복되는 완형 표현에 결합되는 연결어미 가운데 ‘-는데’가 압도적인 비율을 차지한다. 그것은 ‘-는데’에 상황을 제시하는 의미 기능이 있기 때문이다. 연결 표지로 쓰이는 완형 표현은 선행 문장의 초점 정보를 배경 정보로 바꾸면서 뒤따르는 문장의 배경을 제시하는 기능을 하는데, 이런 연결 표지의 기능은 연결어미 ‘-는데’에 의해 가장 효과적으로 표현될 수 있다. ⑦ ‘그러하~’와 같은 대용어에 의해 문장이 연결되는 경우, 한국어 문법에서 이를 ‘접속부사’라 불렀다. 한국어 담화에 사용되는 접속부사는 ‘그래서’, ‘그런데’, ‘그러니까’, ‘그리고’ 등의 순으로 사용 빈도가 높다. 이러한 사용 빈도는 완형 표현이 반복될 때의 경우와는 다르다. 이것은 대용어와 완형 표현의 반복이 문장을 연결하는 기본적 기능에서는 동일하지만, 그 밖의 경우에는 상당한 차이를 갖기 때문이다. ⑧ 접속부사는 완형 표현의 반복에 비해 지시 범위가 넓고 포괄적이다. 또한 완형 표현이 갖지 못하는 다양한 담화적 기능을 수행한다. 더구나 ‘그러니까’와 같은 접속부사는 담화표지로 쓰이는 수도 있어, 이런 것들이 포함된 접속부사의 사용 빈도는 완형 표현의 반복과는 다를 수밖에 없다. ⑨ 접속부사는 글말과 입말 모두에 사용되지만, 완형 표현의 반복은 주로 입말에서 쓰인다. 따라서 완형 표현의 반복은 입말 담화에 제한된 연결 표지라 할 수 있다.
[ "본고는 완형 표현의 반복 현상을 다룬다. 완형 표현의 반복은 그러하-에 의한 대용 방식과 함께, 한국어 담화의 유표적 결속 장치를 구성한다. 완형 표현의 반복은 선행 문장의 일부 표현을 형태 그대로 반복하지만 문맥상에서 추론이 가능하거나 강조어처럼 정보량이 크지 않은 경우이고, 선행 문장이 접속문이면 반복되는 부분은 접속문의 후행절이 되기 쉬워 선행절에 초점 정보가 포함되면 선행절까지 반복된다. 선행 문장이 타동사문이면 목적어까지 반복되고, 문장의 끝의 첨가 요소는 반복되지 않으며, 결합되는 연결어미 가운데 -는데가 효과적으로 표현된다. 그러하~와 같은 대용어에 의해 문장이 연결될때 사용하는 접속부사는 지시 범위가 넓고 포괄적이고, 다양한 담화적 기능을 수행한다. 접속부사는 글말과 입말 모두에 사용되지만, 완형 표현의 반복은 입말 담화에 제한된 연결 표지라 할 수 있다.", "담화 또는 텍스트는 ‘일정한 의미적 지향을 갖는 언어 표현들의 집합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의미적 지향이란 공통된 화제를 기반으로 하여 여러 언어 표현들이 구성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이를 ‘의미적 결속상’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담화나 텍스트가 조리 없이 이루어지는 말의 단순한 집합과 다른 점이 여기에 있는 것이다. 의미적 결속성을 가진 담화는 그 결속성이 형태적으로 반영되기도 하는데, 이처럼 형태적으로 결속성을 보여 주는 일련의 표현들을 ‘결속 구조’ 또는 ‘결속 장치’라 한다. 담화의 결속 장치 가운데 전형적인 것은 선행 문장의 표현이 후행 문장에서 다시 지시되는 경우이다. 이런 경우 두 문장은 공통으로 나타나는 표현으로 묶이게 되므로, 두 문장은 당연히 의미적 형태적 결속관계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두 문장에 공통으로 나타나는 표현이 명사일 경우 후행 문장은 세 가지 방식에 의해 선행 문장의 명사를 지시하게 된다. 원래의 명사가 그대로 반복되는 경우, 원래의 명사를 대명사로 지시하는 경우 그리고 명사나 대명사 등 명시적인 표현 없이 무표적인 지시를 사용함으로써 표면에서는 명사가 생략되어 나타나게 하는 경우가 그것이다.", "담화 또는 텍스트는 ‘일정한 의미적 지향을 갖는 언어 표현들의 집합체’다. 여기서 말하는 '의미적 지향이란 공통된 화제를 기반으로 하여 여러 언어 표현들이 구성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이를 ‘의미적 결속상’이라고 할 수 있다." ]
A201007091995
칼빈의 삼위일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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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빈의 삼위일체론은 1536년의 기독교강요 초판에서부터 등장한다. 그러나 그는 곧 카롤리에 의해서 아리우스파라는 고발을 당하면서, 그와의 논쟁에 들어간다. 그 뒤 세르베투스, 젠틸리스 등의 반 삼위일체 사상가들과 논쟁을 거치면서 그의 삼위일체 사상은 풍부해지고 발전하게 된다. 그의 삼위일체 사상은 성서주석이나 설교들을 통해서도 설명되지만, 최종적으로는 1559/60년 기독교강요 최종판에서 완성된다. 전체적으로 볼 때, 그의 삼위일체론은 “한 본질에서의 일치와 세 위격에서의 구별”이라는 아타나시우스적 관점을 따른다. 그러나 그는 위라는 용어를 독특하게 subsistentia로 번역했는데 이는 생활이나 급양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그는 그것을 프랑스어로는 거주résidence라고 번역했다. 그런 점에서 그의 각각의 위가 본질과 맺는 관계를 사람들의 생활, 특히 주거 생활과 밀접한 방식으로 설명했다. 즉 위는 본질 안에 뿌리내리고 거기에 거주한다는 것이다.
[ "1536년의 기독교강요 초판에서 등장하는 칼빈의 삼위일체론은 반 삼위일체 사상가들과 논쟁을 거치며 풍부해지고 발전한다. 그는 한 본질에서의 일치와 세 위격에서의 구별이라는 아타나시우스적 관점을 따르지만, 위를 본질 안에 뿌리내리고 거기에 거주한다고 번역했다.", "삼위일체론은 교회사에서 가장 치열한 논쟁을 통해 형성된 교리들 중 하나이다. 그만큼 신비하고 난해한 교리이며, 많은 사람들이 그로 인해 정죄되고, 파문당하기도 했던 ‘비극적인’ 그리고 ‘위험한’ 교리이기도 하다. 칼빈은 삼위일체론의 그런 점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처음에는 그 교리를 적극적으로 발전시키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나 칼빈은 본의 아니게 초기부터 삼위일체 논쟁에 연루되었다. 즉 그는 1536년 카롤리에 의해 반(反)삼위일체 주의자로 고소당해서, 논쟁하게 되었던 것이다. 또한 칼빈은 1553년 세루베투스를 반삼위일체 주의자로 고발하면서, 치열한 교리 투쟁을 전개했다. 그 이후에는 다시 쥬네브의 이탈리아인 공동체, 특히 젠틸리스와 논쟁을 벌여야 했다. 칼빈은 그런 논쟁들 속에서 그자신을 스스로 변호해야 하는 입장에도 처했었고, 남을 정죄하고 심판하는 입장이 되기도 했다. 칼빈의 삼위일체론은 그 과정을 거치면서 풍부해지고, 발전하게 되었다. 이 연구는 그런 칼빈의 삼위일체론을 살펴보고자 한다. ", "삼위일체론은 신비하고 난해한 교리이며, 많은 사람들이 그로 인해 정죄되고, 파문당하기도 했다. 칼빈은 삼위일체론의 그런 점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칼빈의 삼위일체론은 그 과정을 거치면서 풍부해지고, 발전하게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