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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20100709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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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에서 서양바라보기 - 현대 윤리학이론을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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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의 목적은 다양한 서양의 윤리이론의 요소들이 선진유가(先秦儒家)윤리학 속에 보이고 이들은 하나의 체계 속에서 모순 없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것을 보이는 데 있다. 유가윤리학적 관점에서 현대 서양윤리학계를 바라본다면, 이들의 조화는 가능할 뿐만 아니라 타당한 윤리학설의 수립은 이들을 적절히 종합하여 적재적소에 위치시킬 때 가능하다는 것이다. 선진유가는 현대 서양 당위윤리학의 양대 산맥을 형성하고 있는 공리주의와 칸트의 핵심사상은 도덕형이상학 내지는 메타윤리학적 관점에서 볼 때, 대립할 필요가 없다는 입장을 취하고 이들의 현대적 계승자들에게 화해를 권고하리라 생각된다. 한편, 공맹은 일상적 삶을 살아갈 때, 매사건 공리주의적 선택방식에 따라 옳고 그름을 가릴 것을 권고하지 않는다. 대신에 공맹은 일상적 도덕판단의 기준으로서 서(恕)의 원리--칸트적 공리주의 원리--에 의해 정당화되는 조건부의 일반규칙인 예(禮)를 따를 것을 권고하고 있다. 이 예(禮)에 따라서 도덕적 선택을 하고 실천하는 것을 ‘관습적 도덕활동’의 단계라 명명할 수 있다. 서양 현대 덕윤리는 직각론과 함께 이러한 ‘관습적 도덕활동’을 잘 해명하고 있는 학설들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유가는 덕윤리의 긍정적 측면을 적극 옹호할 것이다. 그러나 공맹은 현대 덕윤리와 달리 칸트나 공리주의에 대해 적대적 태도를 취하지는 않을 것이다. 유가는 예(禮)의 정당성 근거를 칸트적 공리주의 원리인 서(恕)의 원리에서 찾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상, 서(恕)의 원리가 규범윤리학 내지는 현실적 도덕선택방법으로 전환될 때 이 두 측면을 모두 포함하게 된다. 현대 덕윤리가 ‘반성적 도덕활동’의 단계를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는 의미에서, 선진유가는 현대 덕윤리와 칸트적 공리주의의 화해를 또한 권고하리라 생각된다. 이는 직각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이와 같이 현대 서양 윤리학설들이 적절한 통합을 이룰 때 진리에 보다 접근하게 되고, 또 동서양 윤리사상의 회통(會通) 역시 활발하게 이루어지리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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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서양의 윤리이론 요소들이 선진유가(先秦儒家)윤리학에 있고 하나의 체계에서 조화를 이루고 있는 것을 보인다. 도덕적 선택을 하고 실천하는 것을 ‘관습적 도덕활동’의 단계라 할 수 있다. 서양 현대 덕윤리는 직각론과 ‘관습적 도덕활동’을 해명하는 학설들이며 유가는 덕윤리의 긍정적 측면을 옹호할 것이나 공맹은 현대 덕윤리와 달리 칸트나 공리주의에 적대적 태도를 취하지 않을 것이며 현대 서양 윤리학설들이 적절한 통합을 이루면 진리에 접근하게 되고, 동서양 윤리사상의 회통(會通) 역시 활발해 진다.",
"21세기는 그 어느 시기보다 동서양이 서로 활발하게 교류를 해나갈 시기라는 것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이러한 과정속에서 문명충돌의 비극적 사태를 피하고 상호 공존을 이루기 위한 지적노력 또한 가속화될 것이다. 이러한 시대적 흐름에 발맞추어 동서철학 역시 상호대화를 통해 대립을 넘어서 서로가 공유하는 보편성을 찾아내고 또 이와 조화를 이루는 특수성을 각기 발전시키는 것이 적극적으로 요청되는 시기라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한편으로 보편철학을 지향해가면서 또 한편으로 타방으로부터 배울 점은 겸허히 받아들여 자신의 단점을 보완해 나갈 때 피차 유익한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한 선결작업은 당연히 동서철학에 대한 바른 이해라고 생각된다. 필자는 그간 선진 유가의 도덕철학을 현대적 시각에서 재구성해보는 작업에 많은 관심을 가져왔다. 현대 서양의 다양한 윤리학 이론들이 도덕적 당위(當爲)를 평가하는 나름의 기준을 각기 제시하고 그 타당성을 주장하면서 활발한 경쟁을 하고 있는데, 이 와중에서 유학은 어떤 입장을 취할 수 있는지가 무척 궁금했기 때문이다.",
"21세기는 동서양이 서로 활발하게 교류할 시기라는 것에 이론의 여지가 없으며 문명충돌의 비극적 사태를 줄이기 위한 노력도 가속화될 것이다. 따라서 동서철학에 대한 바른 이해가 필요하며 필자는 유가의 도덕철학을 현대의 시점에서 재구성하는 일에 관심을 가져왔다. \r\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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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20100709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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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심학의 특징과 그 전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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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퇴계심학과 『심경강록간보』의 관련성에 대한 해명을 목표로 하고 있다. 퇴계의 심경후론 이후 조선후기 주요 성리학자의 관심은 『심경부주』에 집중되었고, 그 결과 100여종에 이르는 『심경부주』 주석서와 해설서가 간행되었다. 『심경강록간보』는 중기 퇴계학파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 이상정과 그의 문인들에 의해 완성되었다는 점에서 중기 퇴계학파가 이황의 철학을 어떻게 계승하고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퇴계심학의 주요내용은 마음을 리기의 합으로 규정함으로써 ‘마음으로부터 직접적으로 도덕의 근거를 확보’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데 우리는 『심경강록간보』에서 마음을 리기의 통일체로 규정하는 관점을 확인할 수 있으며, 존덕성과 도문학 공부의 관계설정에 있어서도 『심경강록간보』는 이황의 길을 따르고 있다는 사실 역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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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심학과 『심경강록간보』의 관련성 해명을 하자면 『심경강록간보』에 마음을 리기의 통일체로 규정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으며, 존덕성과 도문학 공부 관계설정에도 『심경강록간보』는 이황의 길을 따르고 있다는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이황으로부터 김성일, 장흥효, 이현일, 이재를 거쳐 이상정으로 이어지는 흐름은 안동을 중심으로 한 퇴계학파의 정통적 관점을 가장 잘 계승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그리고 중기 퇴계학파의 퇴계학 계승과 전개 과정을 잘 보여주고 있는 책이 바로 김종덕에 의해 완성된 『심경강록간보』이다. 퇴계학을 잘 계승하고 있다는 것은 한편으로 새로운 관점이나 독자적인 철학 체계의 부재를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퇴계심학의 계승과정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심경강록간보』는 최소한 전기 퇴계학파와 후기 퇴계학파를 이어주는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앞에서 논하였듯 『심경강록간보』로부터 우리는 퇴계학과 구별되는 어떤 새로운 관점이나 독창적 견해를 찾아보기 어려우며, 사실상 퇴계학의 관점을 그대로 수용하고 이를 정당화하는 데 주력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것은 그들이 처했던 시대적 상황, 즉 기호학파의 성립과 함께 학문적인 내용뿐만 아니라, 정치적 입장까지도 서로 대립하는 상황에서 자신들의 학적 체계를 정당화하고 옹호 • 계승하기 위한 노력은 당연한 귀결일 것이다. 보다 구체적으로 그 계승내용, 즉 퇴계학과 『심경강록간보』로부터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뚜렷한 특징은 바로 마음을 리와 기의 합으로 규정한다는 점이다. 이것은 퇴계심학의 출발점이기도 하고, 사단칠정논쟁을 낳은 리기호발설의 근거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러한 관점이 『심경강록간보』에 그대로 계승되고 있다는 사실은 곧 퇴계심학이 『심경강록간보』, 즉 이상정과 김종덕에 의해 직접적으로 계승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황으로부터 이상정으로 이어지는 흐름은 안동을 중심으로 퇴계학파의 정통적 관점을 잘 계승하는 것으로 평가되며 그들은 기호학파의 성립과 함께 학문적인 내용과 더불어 정치적 입장도 함께 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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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20100709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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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적 도구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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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논문에서 진리에 관한 대응론, 정합론, 합의론, 상대론, 증명론, 실용론, 성경론, 열정론을 서술하고 비판하고 있다. 논문의 후반부에서는 대응론에 가해진 다음의 전통적 반론 세 가지에 응수하고 있다. 첫째, 신념이 사실에 대응하는지 알 수 없다. 둘째, 대응론은 수학적 진술의 진리성을 설명할 수 없다. 셋째, 세계에는 문장 비슷한 존재들이 없다. 나는 논문의 여기저기에서 독창적인 주장들을 조금씩 하고는 있지만, 이 논문의 주요 목표는 진리에 관한 연구의 첨단에서 괄목할 만한 공헌을 하는 것이 아니다. 이 논문은 학부생들을 염두에 두고 쓰여졌는데, 그들에게 쉬운 언어로 철학의 정수를 보여주고자 한다. 명료하고 엄격한 방식으로 어떤 이론을 비판하고 옹호하는 데에 철학의 정수가 있다고 나는 믿는다. 이런 토론을 즐기는 학부생들이 있고, 그들을 더욱 세련된 철학세계로 끌어들이는 것이 이 논문의 주목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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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에 관한 대응론, 정합론, 합의론, 상대론, 증명론, 실용론, 성경론, 열정론을 서술하고 비판하며 쉬운 언어로 철학의 정수를가 무엇인지 보여주고 명료하고 엄격한 방식으로 어떤 이론을 비판하고 옹호하는 것에 철학의 정수가 있다. ",
"철학과 과학의 목표는 진리를 발견하는 것이다. 그러나 진리란 무엇인가? 어떤 진술이 진리라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진리의 본성을 밝히는 것은 인식론자들(epistemologists)의 주요 임무 중의 하나이다. 나는 이 논문에서 진리에 대한 대응론, 정합론, 합의론, 상대론, 증명론, 실용론, 성경론, 열정론을 서술하고 비판한다. 이 이론들 중에서 몇몇은 실제로 철학자들이 제안했고, 다른 이론들은 철학자들이 제안하지는 않았지만 비철학자들 사이에서 인기가 있다. 나는 논문의 뒷부분에서 대응론에 가해진 다음의 전통적 비판 세 가지에 응수한다. 첫째, 신념이 사실에 대응하는지 알 수 없다. 둘째, 대응론은 수학적 진술의 진리성을 잘 설명할 수 없다. 셋째, 이 세계에는 문장 같은 것들(sentence-like entities)이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어떤 진술이 진리라는 것을 어떻게 아는가? 이는 인식론적 물음이다. 어떤 진술을 진리이게끔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이는 형이상학적 물음이다. 이 논문의 관심사는 두 번째 물음이지 첫 번째 물음이 아니다. 위 두 물음은 구분되어야한다. 왜냐하면 진술은 우리가 진리인지 몰라도 진리일 수 있기 때문이다.",
"철학과 과학의 목표는 진리를 밝히는 것으로 진리의 본성을 밝히는 것은 인식론자들의 주요 임무다. 나는 이 논문을 통하여 진리에 대한 대응론, 정합론, 합의론, 상대론, 증명론, 실용론, 성경론, 열정론을 각각 서술하고 비판할 것이다. \r\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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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2010070916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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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스의 역사철학에 대한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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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스는 역사를 사건들의 축적이나 지속적으로 반복되는 밀물-썰물과 같은 순환과정으로 보지 않았다. 그는 인간의 노동에 의해서 결정되는 인류의 다양한 발전 경로들로 구성되는 단계들을 역사로 보았다. 맑스는 자본주의사회가 야만적이고 부끄러움을 모르는 착취를 정치적 환상들 속에 감추고 있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그는 시민계급에 의한 자본주의사회의 발전 속에서 정치적 진보의 결실들이 가능하다는 사실도 받아들였다. 그에게 자본주의사회는 아마도 앞을 내다볼 수 없는 현상들과 예상할 수 있는 결과들의 변증법적 드라마였다고 할 수 있다. 또한 그는 혁명의 문제들을 다루면서 민주주의적이고 개방적 자본주의사회에서 노동자계급이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을 신뢰하기도 했다. 따라서 모든 사람들이 따라야 할 역사법칙은 역사적 환경의 변화 그 자체로부터 나오기 때문에, 초역사적 이데올로기처럼 맑스의 역사철학을 만능열쇠로 이용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것이 논자의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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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스에게 자본주의사회는 앞을 내다볼 수 없는 현상들과 예상 가능한 결과들의 변증법적 드라마였으며 모든이가 따라야 할 역사법칙은 역사적 환경 변화로부터 나오므로 초역사적 이데올로기처럼 맑스의 역사철학을 만능열쇠로 이용하는 것을 막아야 하는 것이 논자의 주장이다.",
"역사철학은 역사의 방향과 운명을 신성하게 여기는 철학적 체계를 선호한 볼테르와 같은 학자들에 의해서 형성되었다가 그런데 역사적 감각을 가졌던 맑스는 이전의 선구자들에 의해서 구축된 역사철학에 대해서 매우 비판적이었다. 특히 헤겔에 의해서 구축된 역사철학에 대해서는 더 비판적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맑스는 헤겔의 역사철학과의 비판적 대립을 통하여 자신의 역사철학을 발전시켰다. 그리고 맑스의 역사철학이 형성되는데는 19세기라는 배경이 있었다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그리고 그 중요성은 이전 세기들에서 일어났던 것보다 더 많은 사건들이 19세기에 일어났다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역사를 하나의 철학적 문제로서 보기 시작하면서 이전보다 더 비판적이고 총체적 관심을 가지고 역사를 연구하고 조사한다는 의미에서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맑스 철학에서 역사는 핵심어이다. 그에게 자연과학과 비교되는 역사철학은 사회의 발전과 역사적 사건들의 진행 과정에서 인간이 하는 역할에 대하여 연구하는 실천적 학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역사철학에서 중요한 것은 인간의 실천과 역사적 실례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맑스는 역사 자체에 대해서 연구하지 않았지만, 역사철학자나 역사학자들에 대한 그의 영향력은 역사에 대한 물질적-현실적 개념으로부터 나왔다. 이러한 개념은 역사의 원시적 기원으로부터 자본주의사회의 출현에 이르는 인류 발전의 과정을 밝히고, 미래 사회주의-공산주의 사회를 설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역사철학은 철학적 체계를 신성하기 여기는 학자들에 의해 형성되었으나 맑스는 이에 매우 비판적이었다. 그러나 맑스는 헤겔의 역사철학과의 대립을 발판으로 자신의 역사철학을 발전시켰으며 인류의 발전 과정을 밝히고 사회주의-공산주의 사회를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r\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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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2010070916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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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과 마르크스에서 노동의 인간화 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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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은 인간만의 고유 활동이다. 인간은 자연에 속하면서도 노동을 통해 자연으로부터 자신을 구분하고 자연을 인간화할 수 있다. 가톨릭은 노동을 통한 인간과 자연의 매개의 의미를 인간이 초월자인 신으로부터 닮음을 부여받고 신의 대리인으로서 자연 전체에 질서와 가치를 부여함으로써 신의 창조, 구원 계획에 참여하는 것으로 본다. 그리고 이러한 노동은 현세적 영성으로서, 희망으로 만들어내는 하느님 나라를 발전시킨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인간과 자연을 초월하는 어떤 본질을 근본으로 하는 초월적 관점, 즉 인간과 자연의 비본질성을 함축하는 관점을 경제적 소외와 유비 관계에 있는 소외의 요소로 보고 그 지양을 주장한다. 노동을 통한 자연의 인간화는 초월자로서의 신이 배제된 자연과 인간의 일치, 그리고 노동을 통한 인간의 자기생성을 의미한다. 그리고 마르크스가 말하는 노동의 인간화가 궁극적으로 이루어지는 이상사회는 인간에 의한 인간을 위한 인간적 본질의 현실적 자기화로서의 공산주의, 즉 자유의 왕국이다. 그런데 외적으로 차이가 있어 보이는 두 노동이론에는 이웃에 대한 사랑과 약자 보호라고 하는 인간적 원칙으로 노동을 조직할 것을 주장한다는 점에서 인간의 노동에 기여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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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는 어떤 본질이 근본인 초월적 관점, 인간과 자연의 비본질성을 함축하는 관점을 경제적 소외와 유비 관계의 소외 요소로 본다. 마르크스는 노동 인간화가 이루어지는 이상사회는 인간적 본질의 현실적 자기화로 공산주의, 자유의 왕국인데 외적 차이가 있는 두 노동이론에 인간적 원칙으로 노동을 조직하여 인간 노동에 기여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 논문은 가톨릭과 마르크스의 노동개념을 다루고 있다. 두 이론체계는 그 기원상 양립할 수 없을 정도로 다른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이 두 이론을 하나의 체계로 엮을 수 있는가하는 것이 문제가 된다. 두 이론에는 신 중심적이고 인간 중심적이라는 근원적으로 양립 불가능한 체계의 차이가 있다. 가톨릭교회에 의하면 인간은 신 없이는 온전할 수가 없다. 인간은 신과 합일할 때에만 만족할 수 있는 존재라서, 신의 명령에 따라서, 끝없이 열리는 창문처럼 신의 모습을 닮으려 노동한다. 반면 마르크스에 의하면 신은 인간소외의 원인이요, 인간은 그 기원에서 자기 독립적 존재로서, 진정한 자기 자신을 생성하기 위하여 노동한다. 그런데 두 이론은 이러한 기원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현실의 결핍을 채우려 한다는, 초월적 노동개념이 있다. 그리고 현실에 대한 이러한 진단으로부터 두 이론은 모두 비인간화된 노동에 저항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 논문은 상반된 두 사상으로부터 노동이라는 실천적 가치가 체계의 차이를 넘어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실천적 목적을 가지고 기획된 것이다. 체계의 차이에 대한 논쟁과 그 해결책도 중요하다. 그러나 체계상의 차이 때문에 소모적 논쟁에 빠지거나 시급한 실천적 요청이 뒤로 밀려나서는 안 된다.",
"이 논문의 가톨릭과 마르크스의 노동에 대한 입장을 다루고 있으며 두 이론은 기원상 양립할 수 없다. 그러나 현실의 결핍을 채우려는 초월적 노동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이 논문은 상반된 두 사상으로부터 실천적 가치가 체계의 차이를 넘을 수 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 한다. \r\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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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2010070916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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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성과 도덕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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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리학에서의 반이론주장은 도덕이론이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필요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고 믿고 도덕적인 영역의 이론화에 반대한다. 본 연구는 반이론주장으로부터의 도전을 계기로 도덕철학이 제시하는 도덕이론이 지향해야할 적절한 방향을 모색하는데 목적이 있다. 이를 위해 도덕이론들이 적절하게 만족시킬 수 있는 불가피한 필요들이 무엇인지, 도덕이론의 성격과 도덕성의 의미는 무엇인지 고찰한다. 또한 도덕이론이 실천적인 영역에서 어떻게 작용하며 그것이 어떤 한계를 가지는지를 검토한다. 도덕이론은 도덕성의 정당화요구에 반응하고, 도덕적 직관들간의, 그리고 도덕적 가치와 그 밖의 다른 가치들간의 불일치나 갈등을 해소하도록 우리를 이끌어주며, 우리가 고려할 새로운 도덕적 가능성을 제시해준다. 성격에 있어서 도덕이론은, 반이론가들의 비판과 달리, 보편적인 도덕원칙을 제시하는 규범윤리이론일 수 있다. 도덕이론이 제시하는 보편성은 행위자와 행위자가 처한 구체적인 상황에 관련된 여러 변수들이 작용함으로써 다양한 정도로 실현되는 것을 허용한다. 한편 실천적 영역에서 도덕이론의 작용을 살펴보면, 도덕원칙에 따라 행위하는 것은 도덕적 관심으로부터 행위하는 것이며, 도덕원칙에 복종할 때 행위자의 감정이 함께 작용하는 것을 허용한다. 그리고 도덕원칙은 개별적 행위를 안내하는데 제한되지 않고 보다 근본적으로 삶의 지침으로 의도된다. 도덕적 요구와 실제 삶간의 괴리는 도덕에 한계로 작용하지만, 도덕적 요구의 옳음은 우리가 지향하고 추구해야할 수월성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여전히 우선성을 주장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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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이론주장의 도전으로 도덕철학이 제시하는 도덕이론이 지향하는 적절한 방향을 모색하는 것이다. 도덕이론은 도덕성 정당화요구에 반응하고, 도덕적 직관들간, 도덕적 가치와 다른 가치들간 불일치나 갈등을 해소하게 이끌어주며, 고려할 새로운 도덕적 가능성을 제시해준다. 도덕원칙은 개별적 행위를 안내하는데 제한되지 않고 근본적 삶의 지침으로 의도된다.",
"동시대의 윤리학이 직면하고 있는 가장 심각한 도전 중의 하나는 반이론주장(anti-theory arguments)에서 비롯된다. 이론은 어떤 영역을 체계적으로 배열하거나 정돈한 것이며 이러한 과정에서 통상적으로 어떤 원칙들을 제공하고자 한다. 이런 의미에서 본다면 도덕 이론은 실천적 영역을 체계화 내지 조직화하려는 것이며 도덕 원칙은 그러한 시도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반이론가들은 도덕 이론이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필요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고 믿고 도덕적인 영역의 이론화에 반대한다. 일반적으로 반이론주장들은 다양한 맥락에서 제기되고 있는데 동시대의 윤리적 담론에서 반이론주장에 결정적으로 관련된 것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재등장과 덕윤리의 부활이다. 모든 덕윤리자들이 도덕 이론이라는 개념에 대해 부정적인 태도를 갖고 있지는 않지만 대부분의 반이론가들은 어떤 종류의 덕윤리를 옹호한다. 오늘날처럼 윤리나 도덕에 대한 사회적 요청이나 기대가 급증하는 상황속에서 윤리학에서의 반이론주장은 실제적인 차원의 도전이 될 수 있다. 만일 반이론주장에 적절히 대처하지 못한다면, 다시 말해서 실천적인 영역이 체계적으로 조직될 수 없다고 여겨진다면, 윤리학은 그것이 우리의 삶에서 갖기로 기대되는 권위와 효력을 상실할 수 있다.",
"반이론주장은 동시대의 윤리학이 직면하는 가장 심각한 도전으로 반이론가들은 도덕이론은 필요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으며 불가능하다 말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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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2010070916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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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인과와 정신인과에 대한 두 가지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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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적 사건들은 물리적 과정의 결과로 야기되고 또한 물리적 사건은 정신적 과정의 결과로 야기된다. 이렇게 사건들 사이의 결정이나 의존의 연관성을 인과의 관계로 드러낼 때, 인과성은 원인과 결과의 관계에 들어오는 대상을 하나의 관점으로 고정시키게 된다. 이러한 인과의 관점에서는 하나의 사건을 다른 사건과의 연관 속에서 이해함으로써 한 사건이 다른 사건을 일으킨 까닭을 설명할 수 있게 된다. 다시 말해서 한 사건이 다른 사건과의 의존 그리고 결정관계에 서게 함으로써 한 사건의 발생으로 다른 사건을 이해하고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신인과의 문제는 우선적으로 두 유형의 실체들에 의해서가 아니라 두 종류의 사건들, 즉 정신적 사건과 물리적 사건들에 의해서 공식화된다. 즉 정신적 사건이 어떻게 물리적 사건의 원인이 될 수 있으며, 또 물리적 사건이 정신적 사건의 원인이 될 수 있는가 하는 물음으로 바꿔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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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인과 문제는 정신적 사건과 물리적 사건들에 의해 공식화된다. 정신적 사건이 어떻게 물리적 사건의 원인이 되며, 물리적 사건이 정신적 사건 원인이 되는지 의문이다.다",
"정신적 인과관계라는 것은 정신적 사건이 원인이나 결과를 포함하는 인과관계이다. 따라서 인과관계는 정신적 사건이 물리적 사건을 야기하는 경우만 아니라 물리적 사건이 정신적 사건을 야기하는 경우, 그리고 정신적 사건이 또 다른 정신적 사건을 야기하는 경우까지 내포하는 것이다. 정신적 인과관계에 대한 데이빗슨의 이론은 정신 현상이 인과적 법칙들의 지배를 받지 않는다는 정신 현상의 무법칙성이다. 정신적 사건과 물리적 사건을 연결시키는 법칙과 정신적 사건과 다른 정신적 사건을 연결시키는 엄밀한 인과법칙도 성립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인과관계라는 것은 어떤 방식으로든 일반 법칙 혹은 규칙성에 포섭되어야만 한다는 것이 일반적인 생각이다. 따라서 그 어떤 법칙에도 포섭되지 않는 정신적 사건이 어떻게 또 다른 정신적 사건이나 물리적 사건과 인과관계를 맺을 수 있는가? 이에 대해 데이빗슨은 ‘무법칙적 일원론(Anomalous Monism)’으로 대응한다. 그는 인과관계에 내포된 정신적인 사건들은 물리적 법칙만이 인과관계에 내포된 유일한 법칙이기 때문에 물리적인 법칙 아래에 포섭된다고 주장한다.",
"정신적 인과관계는 정신적 사건이 물리적 사건을 야기하거나 물리적 사건이 정신적 사건을 야기하는 것이며 정신적 사건이 또다른 정신적 사건을 만드는 경우도 포함한다. 데이빗슨은 인과관계에 내포된 정신적 사건들은 물리적 법칙 하에 포섭된다 말한다. \r\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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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2010070916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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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소리계 소설에 나타난 가족의 형상과 그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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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소리계 소설에 형상화 되어 있는 가족의 문제는 조선 후기 봉건 질서의 와해와 그 변화 과정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변화하는 가족상을 살펴 볼 수 있다. 모녀 가족이나 부녀 가족을 그리고 있는 춘향전과 심청전의 경우, 딸로서 실현되는 사회 변화상을 그려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제도권에서 소외될 수밖에 없는 가족, 그 질곡을 넘어서 자신의 성취를 당당히 그려내고 있다는 점은 ‘불완전한’ 가족을 의미있게 포착한 것이라고 하겠다. 그러나 어머니의 부재와 아버지의 부재에 대한 주변의 시선이 같지 않음은 여전히 혈통의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함을 보여준다고 하겠다. 또 다른 일군의 소설은 가족 구성원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무숙이타령 옹고집전 이춘풍전 흥부전 등이 그것이다. 이들을 통해 불건강한 가장의 행태를 묘사 비판하면서 책임 있고 성실한 가장으로 복귀시키려고 하는 것이 향유층들의 소망이었음을 감지할 수 있다. 또한 이 과정에서 가정의 희생자, 피해자였던 여성의 능력을 부각시키고 부부관계를 조화롭게 재조정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변강쇠가 장끼타령을 통해 가족의 재구성을 위한 개가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이들 소설은 가족의 구성에 대한 여성의 중층적 질곡을 묘사한 것이기는 하지만 낙관적 전망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음을 밝혔다. 곧 개가에 관한한 여전히 보수적 시각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도 불구하고 판소리계 소설이 보여주는 가족의 형상은 가족 구성원의 이해와 욕구가 적절히 조화되고, 대사회적 승리를 예비하는 공간으로서 소망되고 있다. 장끼와 옹녀조차도 백년해로할 배필을 만나리라는 희망을 가지면서 반복된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판소리계 소설은 중세 질서의 완강한 이념을 보여주는 동시에 개인의 삶이 가족 안에서 어떠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를 다시금 반문한다. 떠도는 개인조차 여전히 가족을 지향하는 것으로 그려진다. 이러한 점에서 판소리계 소설들은 현실적 가족의 문제를 직시하고 새로운 가족상을 모색하는 조선 후기의 사회상과 인식을 반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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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소리계 소설의 가족 문제는 조선 후기 봉건 질서 와해와 변화 과정에서 가족상을 볼 수 있다. 춘향전과 심청전은 딸로서 실현되는 사회 변화상을 그리고 무숙이타령 옹고집전 이춘풍전 흥부전은 가족 구성원 문제를 다룬다. 불건강한 가장 행태를 묘사 비판하며 책임 있고 성실한 가장으로 돌아오는게 향유층들 소망이었고 변강쇠가 장끼타령으로 가족 재구성 개가 문제를 다룬다. 장끼와 옹녀도 배필의 희망으로 반복된 삶을 살고 있다. 판소리계 소설은 중세 질서의 완강한 이념을 보여주면서 개인의 삶이 가족 안에서 어떠한 의미를 가지는지 반문한다.",
"이 시대 우리는 다시금 ‘가족’을 문제 삼는다. 이것은 가족이 단순히 '혈통과 혼인관계로 묶여있는 사람들의 집단’으로 인식되는 것에 대한 반기이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일차적으로 가족이 배태하고 있는 권력과 불평등, 그로 인한 갈등과 모순을 감지한 때문일 것이다. 가족은 가족주의로 확대되고, 가족의 질서는 곧 사회 정치적 이념을 재생산하는 도구로서 기능하였으며, 이로 인한 억압과 모순이 사회 전반을 강제하고 있다는 문제의식의 결과인 것이다. 따라서 가족을 ‘담론화’한다는 것은 통일된 유기체로서의 가족과 그 안에서 수동적으로 복무하는 개인에 대한 관점을 새롭게 하기 위한 작업이 될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가족은 ‘구성원 개개인의 갈등과 저항이 역동적으로 전개되는 곳이며, 서로의 필요를 나누거나 자발적인 마음이 충동하는 곳’이라는 정의가 타당하게 여겨진다. 곧 가족 구성원 개개인의 충동과 욕구, 지향과 타협 등을 세밀하게 눈여겨보았을 때 보편적 가치로서 수긍할 만한 가족상이 드러나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이로써 전시대 우리의 무수한 질곡과 눈물의 근원이었던 유교적 가족 담론의 폐해를 근원적으로 치유할 대안이 모색될 것이며 가족 구성의 중요한 원리를 포착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시대의 우리는 가족이 혈통과 혼인관계로 묶여있는 사람들의 집단’으로 여기는 것을 문제 삼으며 그는 가족이 가지고 있는 권력과 불평등, 이로 인한 갈등과 모순 때문일 것이다. 가족 구성원 개개인의 욕구와 지향 등을 눈여겨보았을 때 유교적 가족 담론의 폐해를 근본적으로 치유할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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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2010070916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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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상섭 초기 문학에 나타난 근대체험과 가족 이데올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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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상섭 작품에서 나타나는 의식의 모순은 첫 번째로 자기동일시와 비동일시의 형태로 나타난다. 작품 곳곳에서 드러나는 나-가족-민족이라는 자기 동일시는 또 한편으로는 근대화된 일본과 그곳에 사는 사람들에 대한 선망과 부러움으로 그들과 자신을 동일시하고, 열등한 미개한 한국인을 타인으로 여긴다.‘근대화된 한국’에 대한 열망과 욕망에 의해서 나타난 개인의 주체 정립과 나-가족-민족이라는 자기 동일시는 개인주의와 가부장적 의식이라는 대립적인 관계임에도 동일선상에서 서술되고 있다. 이는 작품의 주인공들이 의식의 간극을 통해서 나타난다. 작품의 주인공들은 개인의 주체 정립을 위해 만들어진 인물이면서도, 경제적인 의존성을 보여주는 비주체적인 모습으로 드러난다. 염상섭의 문학에 드러난 민족주의는 ‘핏줄’로 연계된 전통적 구습인 가족제도에 의한 인간관계를 타파하고, 돈의 흐름을 사회화함으로써 근대 국가의 기본을 마련하는 부르주아 민족주의를 지향하고 있다. 또 가족의 번영과 영광을 위해 돈과 시간을 낭비하는 전통 가족주의는 반대하지만, 가족에 대한 책임의식과 희생으로 가족을 돌보는 부르주아의 가족관에는 동의하고 있다. 그러나 전통 가족제도로 인해 발생하는 잘못된 돈의 흐름에는 관심을 가지면서, 돈의 출처를 도외시함으로써 다시 가부장적 원리로 되돌아갈 수밖에 없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염상섭 초기 문학에 나타나는 의식의 모순은 피식민지 지식인으로서는 정치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한 어쩔 수 없는 한계일 것이다. 국가의 핵심적인 모순은 괄호로 하고 주변적인 것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밖에 없었던 일제 하 지식인의 슬픈 모순이기도 하다. 염상섭이 근대의 가치라고 상정한 개성의 발현에 의한 주체 확립의 문제는 경제적 자립이 이루어지지 않는 한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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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상섭 작품의 의식의 모순은 자기동일시와 비동일시의 형태로 나타나며 작품 주인공들은 개인의 주체 정립을 위해 만들어진 인물이면서 경제적 의존성이 있는 비주체적 모습으로 나타난다 .민족주의는근대 국가의 기본이 되는 부르주아 민족주의를 지향하고 전통 가족주의는 반대하나 가족 책임의식과 희생으로 가족을 돌보는 부르주아 가족관에는 동의한다. 염상섭 초기 문학 의식의 모순은 피식민지 지식인으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한계일 것이다.",
"일제하 1910년대는 근대화에 대한 추상적인 의식만 있을 뿐 아직 현실적인 대안을 낼 수 없었다고 한다면, 1920년대는 일부 일본 유학생들이 귀국, 사회적, 문화적인 역학관계가 변화하면서 좀 더 구체적인 근대화에 대한 담론이 생산되기 시작한다. 그중 염상섭의 「개성과 예술」 역시 근대화의 담론으로 1920년대 중요한 문제를 제기한 논문이다. 염상섭의 초기 문학은 '자아의 각성과 개성의 발견’으로 축약할 수 있을 정도로 작품과 평론에서 ‘자아의 각성’과 '개성의 발견’이라는 용어는 빠질 수 없는 핵심용어로 떠오른다. 「암야」(閣夜)나 「표본실의 청개구리」에서는 자아의 인식 과정을 소설로 형상화했다면, 『만세전』 이후의 소설에서는 개성이라는 문제를 좀 더 구체적으로 다루고 있다. 염상섭의 작품에서 ‘자아의 각성’과 ‘개성의 발견’은 민족적인 현실과 변증법적 관계를 맺으면서 다양한 형태의 소설적 형태로 나타난다. 개성의 문제를 ‘민족적 개성’으로 확대하면서 민족문학으로 발전하고, 개성의 문제를 남녀의 순수한 인생에 대한 열정으로 확대하면서 연애소설로 발전한다.",
"1920년대는 1910년대 보다 좀 더 구체적인 근대화에 대한 담론이 만들어지기 시작했으며 염상섭의 「개성과 예술」 도 근대화의 담론이다. \r\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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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2010070916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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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뢰즈의 예술론에 관한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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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뢰즈는 회화와 사유에서 공동 지반을 형성하고자 하였다. 그 공동의 지반이자 목표점을 ‘차이의 사유’로 보았다. 본 연구는 들뢰즈 철학의 사유 과정과 그의 예술과 철학에 관한 관계 규정을 이해하기 위한 예비적인 맥락에서 고찰되었다. 그러므로 이 글은 우선 회화에서 ‘차이의 사유’, 비재현주의를 분석할 것이다. 회화의 비재현주의는 이미 일상적인 이름으로 분류되는 ‘추상’이라는 이름을 통해 드러난다. 추상 회화는 사물에서 형태를 추출하여 표현하며, 그 형태에는 구체성이 빠져있다. 이러한 일반적인 추상 개념을 ‘빼기-추상’이라고 한다면, 들뢰즈가 문제 삼은 추상은 구체성을 잃어버리는 빼기의 추상이 아니라, 고립과 변형을 통한 ‘더하기- 추상’이다. 베이컨은 사물에서 형상을 추출하지 않는다. 그는 형태들을 창조하거나 재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힘들을 포착하고자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들뢰즈는 회화의 과제를 보이지 않는 힘들을 보이게 하는 것으로 정의한다. 이 힘들은 감각과 관계된다. 들뢰즈는 구상적인 것과 반대되는 의미의 형상적인 것의 개념을 이어 받아, 형상을 고안한다. 형상은 감각과 관련된 감각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형상은 디아그람에 의해 지워지고 변형된다. 형상은 수축과 팽창의 운동에 의해 변형되고 왜곡되는 구성의 장이며 무엇으로도 될 수 있는 비결정성의 영역, 동물-되기이다. 이런 의미에서 형상은 기관 없는 신체, 알, 내재성의 평면이다. 들뢰즈는 형상 개념을 통해서 그의 존재론적 토대인 내재성의 평면을 재생산하며, 구성의 장과 내재성의 장을 결합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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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뢰즈 철학의 사유 과정과 예술과 철학 관계 규정을 이해하기 위한 예비적 맥락에서 고찰되었으므로 회화에서 ‘차이의 사유’, 비재현주의를 분석하고 들뢰즈는 회화 과제를 보이지 않는 힘들을 보이게 하는 것으로 정의하고 힘들은 감각과 관계된다. 들뢰즈는 구상적인 것과 반대되는 형상적 개념을 이어 형상을 고안한다. 들뢰즈는 형상 개념으로 존재론적 토대인 내재성 평면을 재생산하고 구성의 장과 내재성의 장을 결합시킨다.",
"들뢰즈의 철학을 하나의 목표를 향한 체계로 규정하는 것은 잘못이지만, 그의 철학이 궁극적으로 ‘차이의 사유’에 이르고자 한다고 지적하는 데에는 무리가 없다. ‘차이의 사유’는 동일성의 사유에 대립적인 의미를 갖는다. 동일성이 재현된 것과 재현 대상 사이의 일치와 유사성을 전제한다면, 차이의 철학은 동일성에로 환원하지 않는 차이, 다양에로 나아가고자 한다. 그가 ‘재현(représentation)’을 비판하는 이유는 그것이 동일성의 형식에 머물며 차이에로 나아갈 수 없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들뢰즈는 차이의 철학을 전개하기 위하여, 몇몇의 철학자들과 마찬가지로 플라톤주의로부터 멀어지고자 하였다. 그러나 그가 멀어지고자 하는 플라톤주의가 그의 ‘차이나는 반복’의 개념에서처럼, 누구에게나 동일한 플라톤주의는 아닐 것이다. 그는 동일성의 철학자, 재현주의의 철학자로서 플라톤을 고려한다. 따라서 들뢰즈가 비판하고자 하는 플라톤주의의 핵심 개념은 ‘재현주의’이다. 들뢰즈는 재현이 쓰일 수 있는 다양한 맥락들을 구별하여 사용하지는 않는다. 그는 철학적 맥락에서 표상과 회화에서의 재현을 최소한으로도 구별하여 사용하지 않는다. “사유의 이론은 회화와 마찬가지다. 사유의 이론은 예술이 재현에서 추상으로 이행하도록 하는 변화가 필요하다” 그는 다만 회화에서 재현주의의 비판을 통해서, 철학에로 나아가고자 한다. 본 논문은 철학에서 추상으로의 변화를 이해하는 전 단계로, 회화에서 추상으로의 변화를 고찰해 보고자 한다. 현대 회화를 특징짓는 용어가 ‘추상 회화’라는 점에서 알 수 있듯이, 이미 회화에서 재현비판은 진부하기조차 하다. 그러나 들뢰즈가 『감각의 논리』에서 베이컨 회화를 통해서 언급하는 추상은 현대 회화의 일반적인 범주로서의 ‘추상’ 개념과는 다르다. 베이컨의 회화를 통해서 들뢰즈는 구상과 추상을 동시에 넘어서고자 한다. 본 논문은 구상과 추상을 동시에 넘어서는 베이컨의 길, 들뢰즈의 예술론인 감각의 논리를 검토하고자 한다.",
"들뢰즈의 철학을 하나의 목표를 향한 체계로 규정짓는 것은 잘못이지만 ‘차이의 사유’에 도달하고자 한다고 지적하는 데에는 문제 없다. 그는 플라톤의 ‘재현주의’를 비판하고자 하였고 베이컨의 회화를 통해 구상과 추상을 동시에 넘고자 하였다. 본 논문은 들뢰즈의 예술론을 고찰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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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2010070916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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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불교의 욕망론과 선(禪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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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불교에서는 인간의 궁극적인 행복을 열반으로 표현한다. 초기경전에 따르면, 열반은 탐진치(貪瞋癡)의 소멸로 정의된다. 따라서 붓다는 탐진치의 소멸로부터 인간의 궁극적인 행복이 가능하다고 본 것이라는 사실은 당연하게 보인다. 그런데 성냄[瞋]과 어리석음[癡]의 소멸이 행복으로 가는 길이라는 점에는 동의하기 쉬워도 탐욕의 제거가 행복으로 가는 길이라는 주장에 대해서는 납득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치로서 이해하고 동의하기 어렵다는 말이 아니라, 사람들의 실제 일상에서 욕구충족이 곧 행복이라는 등식을 포기하기 어려운 사정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논자는 붓다 스스로 닦고 제시한 일련의 수행방법이 욕망의 문제와 연관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는 데 주목하였다. 또 하나 주목해야 할 사실은 욕망자체에 내재된 위험성을 지적하는 경문에서 어김없이 선정수행이 등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때 나타난 일련의 서술이 먼저 욕망의 문제점을 깊이 통찰하고, 다음으로 그것을 다스리며, 마지막으로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운 경지를 터득하게 된다는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에서 욕망과 선정의 관계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게 된다. 논자는 이에 따라 초기불교의 욕망론은 선정수행과 직결된다는 점을 드러내고, 선정수행은 욕망자체가 지니고 있는 위험성에 대한 이해, 욕망이 감각정보로 구체화될 때 생겨나는 마음의 반응 과정에 대한 통찰로 파악하였다. 이에 대한 논증은 5부 4아함을 온전히 분석하는 작업이 필요할 것이지만, 논자는 『숫타니파타』와 『담마파다』에 나타난 욕망과 선정수행의 연결지점에서 붓다의 기본적인 입장과 태도가 충분히 드러나고 있으므로, 이 두 문헌에 의거하여 논의를 전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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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는 탐진치 소멸에서 인간의 궁극적 행복이 가능하다고 보고 논자는 붓다가 닦고 제시한 수행방법이 욕망의 문제와 연관을 가지는 데 주목하였고 욕망자체 위험성을 지적하는 경문에서 선정수행이 등장하는 점이다. 초기불교 욕망론은 선정수행과 직결되고, 선정수행은 욕망자체 위험성에 대한 이해, 욕망이 감각정보로 구체화될 때 생기는 마음의 반응 과정에 대한 통찰이다.",
"지금 여기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피해가기 어려운 삶의 문제 가운데 충족되지 않은 욕망에 대한 바램과 그 적절한 처리방식이 무거운 과제로 느껴지는 것이 논자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그것은 살아 있는 존재라면 누구나 욕망을 지니며, 욕망에 의해, 욕망을 위해 살아가고 있다는 표현이 결코 지나친 말이 아니라는 판단이 들기 때문이다. 더구나 자본주의 속에서의 삶의 방식은 소유와 소비라는 모습으로 욕망의 문제와 처음부터 만나게 된다. 논자는 불교 교의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사성제를 ‘붓다의 욕망론’이라고 규정한 증곡문웅의 견해에 대해 오래전부터 공감하고 있다. 논자의 일상에서 느끼는 불만족은 대부분 잘못된 욕망에서 생겨난다는 점을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사정에서도 그러하다. 불교에서는 불만족과 불안[苦]에서 벗어나 참된 자유[解脫]와 행복[涅槃]을 얻을 것을 가르친다. 초기 불교 경전에서는 세상을 제대로 바라볼 것[四聖諦, 三法印, 緣起]과 본 대로 살아갈 것[中道, 八正道, 禪修行]이 반복 역설되어 있다. 그러나 불교가 괴로움·집착·번뇌 등의 불완전한 마음상태로부터 벗어나는 것을 목표로 둔다는 사실에는 수긍하더라도 욕망의 문제에 대해서는 쉽게 동의하기 어려운 현실적인 문제가 작용한다. 그것은 욕망이 흔히 사는 재미와 직결된다는 사정에서 그러하다.",
"불교에서는 불만족과 불안에서 벗어나 참된 자유와 행복을 얻을 것을 가르치지만 이는 현실적으로 동의하기 어렵다. 욕망은 사는 재미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r\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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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2010070916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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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심(眞心)과 오수(悟修)의 구조 -『진심진설』을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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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진심(眞心)과 오수(悟修)의 구조를 『진심직설』을 중심으로 살펴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진심은 우리들이 본래부터 지니고 있는 하나인 마음이다. 그래서 모든 상대적인 것이 초월되어 있는 본래심이다. 부처와 중생, 보리와 번뇌, 선과 악 등 모든 대립적인 것이 초월되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실제로 우리는 그것을 모르고 있다. 각종 망상에 이끌려 생활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본래심과 중생심이 이원화된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이중구조를 타파한 상태가 바로 깨침[頓悟]이며, 이것은 곧 본래심과 중생심의 합일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합일은 완전한 것일 수도 있고 미완의 것일 수도 있다. 완전한 것이라면 실제 생활에서도 깨친 대로 살아질 것이다. 그러나 깨치기 이전에 쌓였던 습기로 인해서 실제와 완전합일이 되지 않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그래서 점수(漸修)가 필요하다. 점수의 내용으로 정도와 조도가 있다. 정도에는 무심식망이 있고 조도에는 염불이나 간경 등의 자리행과 보시행 등의 이타행이 제시되었다. 이러한 보살행의 강조는 지눌 선사상의 중요한 특징을 이룬다. 또한 점수의 과정에서 철저한 자기점검은 진심의 성숙과 완성을 위해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점수를 통해서 습기가 완전히 제거되고 본질과 실존이 완전 합일된 경지가 수행의 완성[證悟]이자 성불(成佛)의 경지이다. 지눌은 당시 타락한 고려불교를 바로 잡고 정법불교를 세우고자 하였다. 그는 고려불교의 타락을 불교의 본질인 깨침과 닦음의 부재 속에서 찾았다. 그것은 곧 마음 닦는 일을 게을리 하는 수행승들의 모습으로 나타났다. 이를 치유하기 위한 고뇌의 결과가 바로 지눌의 깨침과 닦음의 체계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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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심(眞心)과 오수(悟修)의 구조를 『진심직설』로 살펴보기 위해서다. 진심은 본래부터 지니고 있는 마음이어서 상대적인 것이 초월되는 본래심이다. 완전한 것이면 실제에서도 깨친 대로 살아질 것이나 깨치기전에 쌓였던 습기로 실제와 완전합일이 되지 않아 점수(漸修)가 필요하다. 보살행의 강조는 지눌 선사상의 중요한 특징이고 마음 닦는 일을 게을리 하는 수행승들의 모습을 치유하기 위한 고뇌의 결과가 지눌의 깨침과 닦음의 체계였다.",
"불교인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두 얼굴을 가진 자기 모습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고요한 사찰에 가면 자신도 모르게 마음의 평화를 찾다가도 다시 현실로 돌아오면 탐내고 성내며 어리석은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사찰이 지니는 분위기가 우리를 평화롭게 만들기도 하겠지만 우리 자신의 본바탕은 부처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그 본바탕을 현실 속에서는 등지고 산다. 이것이 실제 우리들의 삶의 모습이다. 선의 핵심은 이런 두 모습을 가진 자기와의 갈등을 타파하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즉, 본래 부처인 나와 성내고 탐내는 나 사이의 갈등 구조를 극복하고 부처와 내가 합일되는 경지에 이르는 것이 선의 궁극적인 목적이라는 것이다. 기도를 하고 염불을 하며 화두를 드는 등의 수행도 바로 이 합일을 위해서 필요한 것이다. 따라서 선의 기본 구조는 본질(本質)과 실존(實存)의 이중 구조를 타파하고 이 둘이 본래 하나라는 것을 깨치는 데 있다고 본다. 그동안 지눌 사상의 구조에 대한 연구가 있었다. 그 구조의 중심을 이루는 용어가 바로 법(法)과 인(人)이다. 강건기 교수는 이것을 진리관[法]과 실천론[人]으로 구분하였으며, 길희성 교수는 심성론과 수행론으로 구분했다. 또한 김종명 박사는 이것을 존재론과 현상론, 구원론으로 구분했다. 이런 구분들 사이에 근본적인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용어만 조금씩 다를 뿐이며, 김종명 박사가 현상론 하나를 더 첨부한 것은 무지와 분별심에 사로잡혀 살아가는 중생들의 실제 모습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의도에서 비롯되었다고 이해된다.",
"사찰에서 마음의 평화를 찾다가도 현실에서의 어리석은 모습을 발견하는 자신의 두 얼굴은 불교인이라면 한번쯤 본 적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실제 우리며 부처와 내가 합일되는 경지에 이르는 것이 불교의 선이 말하는 궁극적인 목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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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2010070916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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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여성 만보의 담론화 과정과 감각적 인식 ― 무진기행을 중심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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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보는 방식’과 관련한 젠더의 미학적 구축과정을 밝히는 작업이다. 즉 근대화 및 도시화에서 특징적으로 드러나는 ‘만보’를 중심으로, 여성의 만보와 남성의 만보를 바라보고 규정짓는 방식의 차이를 통해, 사회적인 ‘보는 방식’을 검토하고, 젠더의 미학적 구축과정과 여성 젠더의 전유 방식을 고찰하고자 하였다. 무진기행은 윤희중의 시선으로 시각적 헤게모니가 형성되어 있다. 윤희중은 세계와 거리두기를 하면서 파노라마적 시각과 유동적 응시를 보여주지만, 여성과 만보하면서는 원근법적 시각으로 전회하면서 세계로부터 여성을 분리하여 성적으로 대상화한다. 원근법적 시각 하에서 여성은 ‘성적 스펙터클’이 되며, 가부장적 시선으로 욕정적 소유의 대상이 된다. 이에 반해 하인숙은 만보를 통해 ‘성찰’에 도달한다(이는 ‘젠더화된 읽기’의 결과이지 작가가 의도한 것이 아니다). 하인숙은 ‘상징적 거세를 거부하는, 의식의 자기충족적 방식의 주체화’를 달성한다. 이는 김승옥의 ‘자기세계’가 여성성의 훼손에 입각해 있지 않음을 보여준다. 하인숙으로 인해 무진은 근대화를 갈망하는 부르주아 남성 개인의 이중적 정체성을 폭로하는 탈식민적 공간이 된다. 한편 무진기행에서 만보는 감각적 인식의 통로이다. 자아와 대상과의 관계는 윤희중의 감각적 인식에 의해 구성된다. 윤희중에게 여성은 몸의 일부분을 통해 보여지며, 물신주의적 시선으로 파편화하여 재현된다. 물신주의적 시선은 여성을 소비 또는 소유로 보는 성적 지배방식이다. 여성 젠더는 시선의 헤게모니를 쥐고 있는 남성 화자에 의해 한편으로는 성적 지배의 대상으로, 다른 한편으로는 보호받아야 할 존재로 재탄생하면서 남성 판타지에 기여하고 새로운 재남성화에 이바지하였다. 한편 김승옥의 감각적 인식은 물신주의적 시선으로 여성의 성적 ‘지배’와 연결되어 있다. 이러한 방식으로 여성 젠더는 남성의 시선의 헤게모니 속에서 전유되고 담론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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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는 방식’과 젠더의 미학적 구축과정을 밝혀 근대화 및 도시화에 있는 ‘만보로, 여성과 남성의 만보를 규정짓는 방식 차이로 ‘보는 방식’을 검토하고, 젠더의 미학적 구축과정과 여성 젠더 전유 방식을 고찰하였다. 만보는 감각적 인식 통로이고 자아와 대상과는 감각적 인식으로 구성된다. 윤희중에게 여성은 몸의 일부분, 물신주의 시선으로 재현된다. 여성을 소비, 소유의 성적 지배방식이며 여성 젠더는 시선 헤게모니의 남성 화자의 성적 지배 대상, 보호받을 존재로 재탄생해 남성 판타지에 기여하고 재남성화에 이바지했다. ",
"개인의 심미적 경험이 보편적 합의에 이를 수 있다는 이율배반이 미학의 역설이라면, 이때 ‘개인’과 '보편’은 보편자가 아니라 '남성’이라는 특수자였다. 인류역사는 남성 중심적 자기이해를 보편화하고, 남성 중심적 세계이해를 보편화한 결과 남성을 보편적 인간 개념으로 절대화하였으며, 존재근거 • 인식근거 • 사유근거에서 여성은 배제하였다. 고대 이래로 사회문화적 표준은 근본적으로 남성의 인식이었으며, 보편성, 객관성, 진리 등의 개념은 ‘아버지’의 기표로 대변되었다. 하지만 진리가 보편타당하고 객관적이어야 한다면, '세상의 절반’인 여성을 배제시켜 온 전통 철학의 인식론은 남성 중심적 인식론(male-centered epistemology)임이 드러난다. 즉 진리, 보편성, 객관성 등 개념은 완벽한 사회적 구성물(social constructions)로서, 남성 중심적 객관성(male_xFFFE_centered objectivity), 남성 중심적 보편성 (male-centered universality)에 불과하였다. 따라서 서사학을 제대로 세우려면 근대미학에 전제되어 있는 젠더화 방식과 담론 구성과정을 추적해 밝힐 필요가 있다. 젠더 정치학의 담론구성과정을 추적하여 ‘보편’, ‘객관’, ‘진리’, ‘리얼리티’ 등의 의미망이 이동, 재배치되는 과정을 역사 사회적 맥락과 함께 살펴보아야 한다. 또 그것이 거시적 측면과 미시적 측면에서 어떻게 상호 교호하며 상숭-하강하는지도 아울러 분석해 보아야 한다.",
"고대부터 사회문화적 표준은 근본적으로 남성이었으며 진리, 보편성, 객관성 등 개념은 남성 중심의 보편성, 객관성일 뿐이다. 때문에 서사학을 올바르게 세우려면 근대미학에 전제되어 있는 젠더화 방식과 구성과정을 추적해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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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20100709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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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 여성의 육체에 대한 남성의 시선과 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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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여성의 성욕망이 문제 되기 시작한 1920년대 초반 작품인 배따라기와 타락자를 대상으로, 여성의 성욕망을 두고 미분화된 타자인식을 벌이거나 여성의 육체를 유사팔루스로 전유해 사적 환상을 투사하는 남성인물의 모습을 분석했다. 이들 모두 여성을 자신의 거울상으로 구성하는 나르시시즘적 욕망을 가지고 있었고, 이 욕망에 부합되느냐 혹은 배치되는냐에 따라 여성의 의미가 결정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즉, 여성의 육체가 남성의 거울상으로 가부장적 질서를 유지하거나 강화하는 데 쓰이지 않고 개인의 성욕망으로 발견될 때, 여성은 격리되거나 축출된다. 이처럼 성욕망의 기표로 그려진 여성은 처벌되거나 배제된다. 그러나 이같은 담론이 공적으로 유포되면서 남성의 사적 환상은 공공연해진다. 이것은 작품안에서 과거회상이라는 장치를 통해 드러나고 있다. 이는 과거의 사건으로만 한정된, 그래서 현재적인 시점에서는 이미 마무리되거나 종결된 사건으로 여기려는 의도로 파악되며 남성인물의 성적 환상에서 당대적인 맥락을 지우려는 행위인 듯 보인다. 그러나 기억해야 할 것은 여성인물에 대한 의미화가 고고학적 사건으로 발견된 것이 아니라는 점, 즉 가부장제의 이데올로기가 계보화되는 과정에서 발생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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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20년초 작품 배따라기와 타락자에서 여성 성욕망을 미분화된 타자인식으로, 여성 육체를 유사팔루스로 전유해 사적 환상을 투사하는 남성인물의 모습을 분석했고 현재 종결된 사건으로 파악되며 남성인물의 성적 환상에 당대적 맥락을 지우려는 행위로 보이나 여성인물의 의미화가 고고학적 사건이 아니고 가부장제 이데올로기가 계보화되는 과정에 발생했다.",
"우리나라에서 여성의 육체가 예술작품을 통해 보여지기 시작한 것은 1920년대이다. 구 한말시기에 다양한 춘화가 그려지고 유통되었지만, 그것은 여성의 육체 자체가 초점화된 것은 아니며 1916년 김관호에 의해 누드가 그려지기는 했으나 풍속을 이유로 매일신보에서 게재하지 않아 이 시기를 본격적 시기로 잡는 것은 무리가 있다. 때문에 1920년대로 그 시기를 잡는 게 무난할 듯싶다. 1920년대 조선 서양화의 흐름은 인상주의로, 화가의 주관으로 포착된 조선의 풍경이나 인물을 담아내는 것이었다. 그런데, 여성의 육체를 담아낼 때 화가의 주관은 낯설게 다가오는 측면이 있다. 예컨대, 제2회 ‘鮮展’ 작품 중에 김관호의 「호수」(1923)라는 그림이 있는데, 강가에서 여성이 옷을 벗고 고개를 숙인 채 비스듬히 앉아 있는 모습이다. 이 작품은 일본의 구로타 세이키의 「나체부인상」과 거의 흡사하다. 다만 다른 것은 구로타 세이키의 작품이 한 올 걸치지 않은 나체임에 반해 김관호의 작품은 여성의 하복부를 천으로 가려 놓은 여체이며, 구로타의 작품이 여인의 풍만한 자태에서 나온 관능성을 드러낸다면 김관호의 작품은 왜소하고 빈약한 여인의 가련함을 자극해 연민을 느끼게 한다는 것이다. 김관호의 작품에는 여체를 다루는 서양화의 코드는 있되, 여성의 육체를 보는 관점과 전시하는 맥락이 구로타의 것과는 다른 것이다. 다시 말해 거의 똑같은 포즈로 벗고 있는 여인을 이렇게 다른 시선으로 보는 것에는 여성의 누드를 수용하는 조선의 현실과 작가의 관점이 맞닿은 결과라고 봐야 할 것이다.",
"1920년대 들어서 여성의 육체가 예술작품을 통해 보여지기 시작했으며 이때 화가의 주관은 낯설게 다가온다. 여성의 나체를 수용하는 조선의 현실과 작가의 생각이 닿은 결과일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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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20100709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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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의 메타포와 근대의 일상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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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계몽기는 계몽의 열정과 욕망이 범람하던 시기이다. 이 시기 서구로부터 유입된 근대적 산물들은 문명을 표상하는 기제였다. 기차, 시계, 전신, 전화, 유성기 등으로 대표되는 문명의 이기들은 한국인들의 일상에 침투하여 새로운 습속을 형성해 갔다. 근대적 인쇄매체인 신문과 잡지에 글을 썼던 문필가들은 자신들의 계몽적 담론을 전파하기 위한 효과적인 수단으로 기차, 시계, 전화 등의 이미지를 빌려온다. 여기에 사용된 수사학적 장치가 ‘소리(청각)의 메타포’이다. 특히 당대의 독서문화 관행이 낭독을 위주로 했던 시대임을 감안하면 소리, 즉 청각적 이미지가 주는 효과는 담론이 설파된 현장성을 ‘재현’하는 데 매우 유효한 장치이다. 근대 계몽기로부터 1910년대에 이르는 시기, 시계 소리, 기차 소리, 유성기 소리 등은 대부분 ‘문명 및 계몽의 담론’과 짝패를 이룬다. 요컨대 서구 근대 도시의 발명품들의 이미지는 대부분 ‘문명’과 등질적 관계를 형성하고, 한국 민중들의 각성을 촉구하는 기제로 활용된다. 이때 ‘소리’는 분열되고 혼돈된 민중들의 정서를 하나로 통일시켜 주는 중요한 매체이자 ‘소리의 공동체’를 만들어주는 수단이다. 1910년대부터 1920~30년대에 이르는 시기로 접어들면, 근대계몽기에 주로 사용되었던 소리의 메타포들은 전과는 질적으로 다른 의미망을 형성한다. 시계, 기차, 유성기, 사이렌 등의 소리는 ‘감정을 소비’하거나, 한 개인의 고독을 위무하는 기제이거나, 근대적 시간표와 같이 신체를 훈육하는 규율로써 이용된다. 1920~30년대에 형성된 ‘소리의 공동체’는 근대계몽기와는 달리 광장에서 울려 퍼졌던 집합적 욕망의 발현을 기반으로 한 것이 아니었다. 1920~30년대의 문학작품에 나타난 소리의 공동체는 근대적인 감각의 소비라는 관점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이 시기의 문학작품에 나타난 소리의 메타포는 계몽의 욕망을 분출하는 것이 아닌, 끊임없이 개인의 밀실을 확장해 가려는 욕망에서 출현한 ‘소리의 공동체’를 지향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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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계몽기는 계몽의 열정과 욕망이 넘쳐난 시기이고 서구에서 유입된 근대적 산물들은 문명 표상의 기제였다. 계몽적 담론 전파의 효과적 수단으로 기차, 시계, 전화 등의 이미지를 빌려오고 사용된 수사학적 장치가 ‘소리(청각)의 메타포’이다. 근대 계몽기에서 1910년대에는 시계 ,기차, 유성기 소리는 ‘문명 및 계몽의 담론’과 짝패를 이루고 1910년대부터 1920~30년대에 접어들면 전과는 다른 의미망을 형성하고 1920~30년대 문학작품 소리의 공동체는 근대적인 감각의 소비에서 이해해야 한다.",
"근대 계몽기의 독서 관행인 낭독 문화는 소리의 공동체를 형성한다. 광장에서 울려 퍼졌던 연설과 웅변이 활자화되고 그것이 근대적 인쇄미디어를 매개로 전국적으로 재생산된다. 광장에서 들끓었던 말들은 청자들의 감정을 자극하고, 이 감정이 활자화되어 시공간을 가르는 근대적 네트워크를 타고 또 다른 청자들의 감각의 촉수를 이끌어낸다. 또한 근대의 각종 발명품들은 계몽의 속도를 청각화함으로써 민중들에게 계몽의 역동적 파토스를 전달할 수 있었다. 즉, “경험을 새로운 형태로 바꾸는 적극적인 힘을 갖는 은유”뙈로서의 미디어 권력이 극대화됨과 동시에 내면을 조작하는 도구의 역할을 자임하게 된 것이다. 글쓰기 방식도 \"나’에게 말하거나 특정한 ‘너’와 ‘그’를 지칭했다기보다는 불특정 집단에게 공개적으로 말을 거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이때 활자화된 음성과 청각적 기계음들은 다수의 군중을 향한 ‘공공적인 고백’의 형식이자 이를 매개로 '우리’라는 공동체를 지향하는 소리이다. 1910년대로 접어들면서 집단이 아닌 ‘개인’ 혹은 '자아’를 둘러싼 담론들이 융성하기 시작하고, 글쓰기 방식 또한 내면의 고백으로 빠져든다. 내면의 고백은, 비록 그것이 사유의 내적 기반을 갖지 못한 것이라고 할지라도 그 소리가 울리는 자장은 언제나 특정한 대상이지 ‘공동체적 집단’이 아니다. 그 고백은 개인의 감추고 싶은 속내의 표현이자 자신의 속살을 드러내는 행위이며, 죄의식으로부터 속죄받기 위한 도구이기도 하다. 1920년대 들어 고독한 책 읽기와 글쓰기가 성행하면서 각종 소리의 메타포 역시 집단의 각성이나 계몽의 매개체가 아니라 감정의 소비나 내면의 울림을 포장하는 도구로 변화한다.",
"낭독 문화는 근대 계몽기의 독서 관행으로 청자들의 감정을 자극하고 계몽의 속도를 청각화함으로써 계몽의 역동적 파토스를 전달할 수 있다. 1920년대 들어서는 소리의 페타포가 내면의 울림을 포장하는 도구로 바뀌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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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20100709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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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과 여성의 존재 양상-염상섭의 미망인과 화관 연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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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상섭의 미망인은 1954년 6월 16일부터 12월 6일까지 연재되었던 장편소설이다. 그런데, 신문에 연재될 당시 독자들의 관심을 크게 끌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연재 후에도 연구자들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미망인의 속편인 화관 역시 1956년 9월부터 이듬해 9월까지 「삼천리」에 연재되었지만,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미망인 연작에서 전쟁미망인은 가족 관계의 붕괴라는 전쟁의 후유증을 가장 잘 보여주는 존재들이다. 한국전쟁 이후, 50여 만명에 달하는 전쟁미망인과 그 가족들은 국가의 체계적인 구호대책도 없이 개인적으로 생존을 도모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전후의 현실 속에서 전쟁미망인들은 윤리적이고 규범적인 측면에서 접근되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문제적이다. 그들은 전후의 급속한 사회 변화 속에서 기존의 질서가 유지되기를 바라는 지배세력들에 의해 “위험한 여자”로 규정되어 사회적인 편견과 냉대, 통제의 대상으로 자리매김되는 것이다. “가정을 경시하고 허영과 향락에 빠진 여성”이라는 이미지가 항상 전쟁미망인들의 존재 위에 덧씌워졌던 것이다. 염상섭이 미망인 연작에서 제시하고 있는 미망인들의 재혼 문제 역시 전쟁미망인의 자기 실현이라는 측면보다는 전통적인 가족 관계의 유지라는 사회적 요구의 반영으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전후의 현실 속에서 전쟁미망인들은 한국전쟁의 직접적인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도덕적 타락의 근원으로 규정되는 또다른 폭력의 희생양이었다고 할 수 있다. 현충일, 국군의 날 등과 같은 국가적인 기념일을 통해서 남성들의 죽음이 명예롭게 기억되었다면, 전쟁의 또다른 피해자였던 전쟁미망인들은 고의적으로 망각되고 은폐되거나 혹은 감시와 통제의 대상으로만 존재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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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상섭 미망인은 1954년 6월 16일부터 12월 6일까지 연재된 장편소설이고 전쟁미망인은 가족 관계 붕괴라는 전쟁 후유증을 가장 잘 보여주는 존재들로 전후의 현실에서 전쟁미망인들은 한국전쟁의 직접적 피해자이지만 도덕적 타락 근원으로여겨지는 또다른 희생양이었다. 현충일, 국군의 날과 같은 국가적 기념일에서 남성들 죽음이 명예롭게 기억되었다면, 전쟁의 또다른 피해자인 전쟁미망인들은 고의적으로 망각되고 은폐, 감시와 통제의 대상으로만 존재했다.",
"한국전쟁은 모든 민족 구성원들의 일상적 세계를 붕괴시켰다. 자의에 의해서건 타의에 의해서건 개인들은 전쟁 속으로 끌려 들어가 삶과 죽음의 기로에서 헤매거나, 혹은 친숙했던 세계로부터 쫓겨난 채 낯선 공간 속에서 피난살이를 해야만 했다. 그래서 전쟁은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씻기 어려운 육체적·정신적 상흔을 남겨주었던 것이다. 1950년대 문학이 상처의 치유에 골몰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한국전쟁 이후의 삶이 일상성의 붕괴라는 충격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염상섭은 1950년대에 들어서서 10여 편의 장편소설(미완 포함)을 비롯한 수많은 단편소설을 발표하였다. 양적인 면만을 살펴보았을 때 염상섭은 단편 중심의 1950년대 소설계에서 독보적인 역량을 과시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취우」(1952), 「미망인」(1954), 「젊은세대」(1955), 「화관」(1956~1957), 「대를 이어서」(1959) 등의 장편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소설적 전제 중의 하나는 바로 전쟁의 상처가 육체적인 훼손이나 정신적인 충격뿐만 아니라 전통적인 사회적 관계의 붕괴로서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은 염상섭의 소설적 관심이 전쟁이 직접 참여했던 젊은 남성들의 전장 체험에 집중되었던 신세대 작가들과는 달리 후방에서 이루어지고 있던 일상적인 삶에 집중되어 있었던 것에서 연유한다. 한국전쟁 중에 씌어졌던 장편 「취우」에서 분명하게 드러났던 바, 이념적인 대립과 갈등을 일상인의 시각에서 바라봄으로써 전쟁의 무의미성과 욕망의 불변성을 포착하고자 했던 것이다.",
"1950년대 문학은 한국전쟁 이후 붕괴된 일상때문에 상처의 치유에 골몰할 수 밖에 없었고 염상섭의 소설 속에서도 전쟁의 정신적 충격과 사회적 관계의 붕괴를 볼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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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20100709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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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손열두조충의 발육단계별 표피 미세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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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험실내 생활사를 통하여 획득한 만손열두조충의 각발육단계별 유충 및 성충의 표피미세구조를 주사 및 투과전자현미경으로 관찰하고자 하였다. 주사전자현미경 관찰에서 섬모유충은 타원형이었고 체표면에 직경이 약 0.2m인 섬 모, 작은 결절 및 좁쌀모양의 돌기 등이 밀생하고 있었으며 직경 약 0.2m인 구멍이 드물게 분포하였다. 원미충의 전단에는 가시모양 미세모가 밀생하였고 체부위 체표면에는 끝이 약간 구부러진 긴 쐐기형 미세모가 밀생하였으며 꼬리혹에는 둔단의 짧은 미세모가 분포하였다. 실험감염 올챙이에서 감염 후 3일에 회수한 충미충은 성숙한 원미충과 형태가 유사하였고 전단홈에는 억센 가시모양의 미세모가 밀생해 있었다. 감염 5일된 충미충의 전단홈에는 3일된 충체에서 관찰되었던 가시모양미세모는 없었고 체부위에서 관찰되는 것과 동일한 미세모가 분포하였다. 성숙한 충미충의 체표면에는 원추형의미세모가 밀생해 있었는데 전반부에 분포하는 것이 후반부의 것보다 약간 억센 모양이었다. 성충의 두절에는 긴섬모상의 미세모와 짧고 억센 모양의 미세모가 혼재되어있었으며 섬유상 미세모의 밀도는 두절의 중간부위보다전반부에서 높았다. 경절과 미성숙 편절에는 짧고 억센원추형의 미세모가 밀생해 있었다. 투과전자현미경 관찰에서 섬모유충은 배막과 육구유충이 명백히 나누어져 있었고 배막에는 무수히 많은 섬모와 글리코겐 입자, 사립체 및 지질과립 등이 분포하였다. 섬모는 9쌍의 미세소관과 2개의 중심복합체로 구성되어 있었고 육구유충은 얇고 표면이 매끈한 표피로 덮여 있었으며 다핵성 구조이었다. 원미충 및 충미충의 표피는 송곳 모양의 미세모가포함되어 있는 원형질막과 합포체, 기저층 및 근육층으로이루어져 있었고 합포체에는 수 많은 원반모양체와 공포및 사립체 등이 분포하였다. 실질층에서는 배설관과 표피세포가 관찰되었으며 표피세포는 핵 주위에 무수히 많은과립형질내세망과 분비과립 등을 내포하고 있었다. 이상의 결과로 만손열두조충의 표피미세구조가 발육단계에따라 변화하면서 특징적인 소견을 나타냄을 확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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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험실내 생활사에서 얻은 만손열두조충의 각발육단계별 유충 및 성충의 표피미세구조를 주사 및 투과전자현미경으로 관찰하였다. 원미충 및 충미충 표피는 송곳 모양 미세모가 포함된 원형질막과 합포체, 기저층 및 근육층으로 되어 있었고 합포체에는 많은 원반모양체와 공포및 사립체가 분포하였다. 실질층에서 배설관과 표피세포가 나타났으며 표피세포는 핵 주위에 많은과립형질내세망과 분비과립 등을 가지고 있었으며 만손열두조충의 표피미세구조가 발육단계에따라 변화하면서 특징적 소견을 나타냈다.",
"전자현미경의 등장으로 각종 생물의 미세구조 관찰이 쉽게 되었고 조충류의 표피가 무세포, 무정형의 불활성 각피라는 개념이 바뀌게 되었다. 조충류의 표피는 무수히 많은 미세모(microtriches)로 덮여있고 선충류와 달리 생명현상을 유지하는데 긴요한 활성막으로서 숙주로부터 영양물질을 흡수하고, 대사산물을 배설하며, 숙주의 탐식세포 또는 소화효소로부터 충체를 보호하기 위하여 물질을 분비하는 등 다양한 기능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기능을 수행하는 조충류의 미세모는 발육단계 변화에 따라 변하고 미세모의 구조와 크기가 체부위에 따라 다르다고 하였다. 조충류의 표피에 대해서는 많은 연구가 진행되었고 표피의 형성과정을 관찰하기 위해서 발육단계별 유충의 표피에 대해서도 많은 연구가 진행된 바 있다. 조충류 유충 중 Spirometra 속(genus) 조충의 표피 미세구조에 관한 연구로는 Oaks & Mueller (1981)가 북미 열두조충 원미충의 표피에서 탄수화물을 관찰하였고 Yamane (1968), Kwa (1972), Yamane et al. (1982) 및 Lee et al. (1984) 등은 만손열두조충의 성충 및 고충의 표피미세구조를 관찰하였으며 Okino (1996)는 S. erinaceieuropaei의 발육단계별 표면 미세구조를 관찰한 바 있다.",
"전자현미경의 등장으로 조충류의 표피가 무세포, 무정형의 불활성 각피라는 개념이 바뀌었고 표피의 형성과정을 관찰하기 위해 발육단계에 따른 표피에 대한 연구도 다수 이루어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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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20100709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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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계몽기 소설과 검열제도의 상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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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의 목적은 「제국신문」을 중심으로 ‘검열 제도와 소설의 등장’ 사이의 상관성을 살피는 것이다. 을사조약 이후 검열이 제도화됨에 따라 논설은 현실의 주요 사안에 대해 시비를 가린다는 본연의 기능을 수행할 수 없게 된다. 더불어 논설란을 중심으로 나타났던 단형 서사물 또한 존속하기 어려운 처지에 놓인다. 논설의 성격이 규제를 받고 잦은 압수와 삭제로 신문의 일관된 편집체제를 유지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하자 「제국신문」 잡보란에 연재물이 등장한다. 집필진은 검열을 피할 수 있는 내용과 지면을 안정적으로 채워줄 수 있는 형식의 게재물이 필요했다. 연재물은 그러한 현실적 요구에 부응하는 글쓰기였던 것이다. <이어기담>으로 출발한 「제국신문」 연재물의 이름은 이후 <小說>로 변한다. 이때 <小說>은 「제국신문」의 집필진이 1906년에 처한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기존의 서사전통을 변주하여 만든 산물이었다. <小說>은 기존 연재물의 특성을 이어가는 동시에 흥미 위주에서 벗어나 비판정신을 회복하고 현실성을 강화하려는 시도를 보여준다. 하지만 이러한 시도는 지속될 수 없었다. 재정 악화로 집필진이 교체되는 가운데 전혀 다른 이데올로기적 지향과 표현형식을 가진 <혈의루> 하편이 연재물 <小說>을 대체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과정은 1906년은 소설을 둘러싼 변화를 가져온 요소 가운데 하나가 검열제도였다는 사실과 근대계몽기 문학연구 역시 을사조약을 기점으로 하여 식민체제의 문제를 고려할 수밖에 없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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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신문」에서 ‘검열 제도와 소설의 등장’ 상관성을 보고 논설 성격이 규제와 압수와 삭제로 신문의 편집체제가 힘들자 「제국신문」에 연재물이 등장한다. 집필진은 검열을 피하고 안정적 지면으로 채우는 게재물이 필요했다. 연재물은 현실 요구에 맞는 글쓰기였고 <이어기담>에서 「제국신문」 은 <小說>로 변하며 <小說>은 「제국신문」의 집필진이 1906년 상황 대처fmf 위해 기존 서사전통을 변주하였다.",
"소설이 근대사회를 재현하는 핵심적인 글쓰기 방식이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면, 근대소설의 출발에 관한 논의는 자국의 근대성을 사고하는 방식과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여전히 문제적이다. 서구적 근대를 유일한 보편으로 추수하거나 이에 맞서 자국 문화의 발전사를 구성하려는 민족주의의 열정으로부터 거리를 두는 패러다임의 전환과 더불어, 한국 근대소설의 형성과정에 관한 이해도 전기를 맞게 되었다. 계몽기를 근대적 습속과 관념이 구성되던 시기로 사고하는 최근의 논의들은 텍스트의 저변을 확대함으로써 고착화된 문학성에 대한 반성을 제기했고, 새로 발견한 텍스트를 바탕으로 전통적 글쓰기 관습이 근대소설의 형성에 미친 영향을 양식사의 관점에서 분석하는 성과가 있었다. 또한 ‘민족’, ‘국민’ 등의 관념과 ‘근대적 시공의 경험 형식이 자국어를 사용한 소설로 구현될 수 있었던 당시 지형이 그려지기도 했다. 근대계몽기는 유학에 기반하던 전통적 인식론과 표현형식이 ’서양’이라는 타자를 만나 새롭게 재편되던 시기였고, 다양한 지식 개념과 글쓰기 방식이 경쟁하던 가운데 '소설’의 가치가 부각되었음은 분명하다. 하지만 이런 경험은 비단 한국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약간의 시차가 있기는 하나, 일본과 중국 또한 민족국가를 기획하는 동안 겪었던 보편적 현상이었다. 서사양식의 역사적 변화에 주목하여 근대소설의 출발을 설명하는 경우, 전통적 서사관습이 ‘소설’의 형성에 간섭하는 고유한 양상을 잘 보여주지만 유독 ‘소설’을 중심으로 서사적 글쓰기가 재편되었던 이유에 대해서는 좀 더 살펴볼 여지를 남겨놓고 있다.",
"소설은 근대사회를 재현하는 핵심적인 글쓰기 방식이었다고 생각한다면 근대소설의 출발에 관한 논의는 자국의 근대성을 사고하는 방식과 관련이 있다는 점에서 문제적으로 유독 소설 중심으로 서사석 글쓰기가 진행된 이유에 대해 좀 더 논의해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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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20100709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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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용 후기 시의 시간과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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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과 공간은 사물이나 인간의 행동, 혹은 사건의 기하학적 배경이 아니라, 사건이 개체의 존재성과 동행하는 생성적인 지각장(知覺場)이다. 또한 기존의 시각이 공간의 개념을 위치 공간적인 측면에만 한정하고 있었던 반면, 본고에서는 비위치 공간과 관념적 공간 등 공간 개념을 확대 상정하였다. 시간 개념 역시 선조적이거나 계기적인 성격에 국한시키지 않고, 즉 그것-선조적, 계기적 성격-은 시간이 형상화되는 과정이나 시간상에 나타나는 관계의 하나일 뿐 시간 그 자체의 성격이나 본질적 양태가 될 수 없음을 지적했다. 따라서 시간 개념 역시 경험, 기억, 상상 등의 모티프가 시간성을 구성, 형성하는 지각장의 구조 원리라는 측면에서 접근하였다. 또한 시간과 공간을 각각 별개의 범주가 아닌, 서로 연관된 것으로 전제하였다. 즉 자연 공간은 인간의 체험이라는 시간적 요소가 개입된 사건의 장(場)이다. 이렇게 볼 때, 「白鹿潭」에 나타난 시공간은 생성으로서의 시간이 시적 자아의 신체적 감각성을 바탕으로 진동하는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정지용 시집」 시기에서의 원근법적 공간과 대비적으로, 「白鹿潭」 시편에 나타나는, 원근법을 버린 비균질적 자연 공간에 대한 감각 체제는 인간과 세계와의 관계성에 대하여 열려 있으며, 나아가 세계에 대한 인간의 신체적 경험을 더욱 풍부하게 할 수 있다. <九城洞>과 <長壽山> 시편에서 물질적 공간과 화자의 정서, 혹은 기억이 맞부딪치며 진동하는 생명의 소리는 공간과 시간이, 사건이 일어나는 배경이 아니라 사건 그 자체라는 것,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인간과 생명체의 삶의 본질이라는 것을 일깨운다. 또한 「호랑나븨」에서의 순환적이며 생성적인 시간은 질적이며 지속적인 자연의 리듬과 구체적인 생명의 리듬을 일치시킨다. 이들 시편에서의 시인의 감각과 고난에 대한 극복 의지, 자기 성찰은 매 순간 기억의 층으로 쌓이고 보존되어 다시 감각적 형상화의 장으로서의 현재적 풍경의 질적 변화를 이끄는 것이다. 감각적 주체로서의 ‘눈’이 아니라 ‘신체’를 발견하는 과정이 정지용 후기 시에서 쌓아올린 감각주의의 실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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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용 시집」 원근법 공간과 대비되게 「白鹿潭」 시편 원근법을 버린 비균질적 자연 공간 감각 체제는 인간과 세계와 관계성이 열렸고 세계에 대한 인간 신체 경험을 풍부하게 했다. <九城洞>과 <長壽山> 시편에 물질적 공간과 화자의 정서, 기억이 진동하는 생명 소리는 공간, 시간, 사건이고 호랑나븨의 순환적,생성적 시간은 질적이며 지속적 자연 리듬과 구체적 생명 리듬을 일치시키고 시인의 감각과 고난 극복 의지, 자기 성찰은 순간 기억으로 쌓여 감각적 형상화장의 질적 변화를 이끈다. 감각적 주체로 ‘눈’이 아닌 ‘신체’ 발견 과정이 정지용 후기 시의 감각주의이다.",
"자연과 세계를 향한 시인의 시선과 감관의 반응 양식은 풍경이라는 창을 통해 들여다볼 때 보다 다양하고 상이한 양상으로 드러난다. 이때 그려지거나 씌어진 풍경은 창작자의 인식틀을 구성하면서 동시에 작품의 예술적 형상화를 지탱하는 지각 양식의 구조적 원리가 된다. 거기에는 시간과 공간의 주어진 체계를 받아들이거나 거역하는 나름의 문법과 기획이 숨어 있다. 공간에 대한 이해와 그 정도는 인간의 자연 인식과 대응에 밀접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역사적으로 입증된 바 있다. 가령 20세기 초에 이르기까지 근대의 과학적 공간 개념으로 확고히 자리 잡고 있던 3차원 유클리드 공간 대신, 경험적인 시간 변수를 매개시킨 4차원 유클리드 공간 개념이 제기되자 나타난 자연 법칙의 결과들이 그것이다. 즉, “새 시공간 개념을 바탕으로 표현한 자연법칙들이 전혀 예상치 못했던 단순미(單純美)와 대칭미(對稱美)를 보여준다는 것”이며, 공간의 개념과 존재론적 지위에 관한 이해가 심화될수록 자연의 모습 또한 놀라울 정도로 명료해지는 것이다. 또한 칸트에 따르면, 시간과 공간은 인간이 자연과 관계하는, 즉 자연을 바라보는 직관 형식이다. 따라서 공간과 시간에 대한 이해는 인간의 자연 인식의 양상에 접근하기 위한 첩경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는 정지용 시에 나타난 공간과 시간의 형상화 양상을 통해 자연 인식의 일면을 고찰해 보고자 한다.",
"자연과 세계를 향한 시인의 시선과 감관은 풍경에 따라 다른 모습으로 드러나며 이때 씌어진 풍경은 작품의 예술적 형상화를 지탱하는 지각 양식의 구조적 원리가 된다. 여기서 정지용 시에 나타난 공간과 시간의 형상화 모습을 통해 자연에 대한 인식을 고찰할 것이다. \r\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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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20100709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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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측성 비기능성 부신선종을 동반한 가성쿠싱증후군 1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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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들은 호흡곤란을 주소로 내원한 70세의 비만한 여성이 우측 폐 기흉, 마이코 플라즈마 폐렴 진단 하에 치료 중 일중 변동이 소실된 고코티솔 혈증과 감소된 부신피질자극호르몬, 복부 전산화 단층 촬영상 우측 부신종양을 발견 부신피질자극호르몬 비의존성 쿠싱 증후군 의심 하에 저용량과 고용량 덱사메타손억제 검사를 실시 하였으나 모두 억제됨으로써 노인성 우울증에 의한 가성 쿠싱 증후군으로 진단된 1예가 있어 문헌고찰과 함께 보고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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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신피질자극호르몬 비의존성 쿠싱 증후군 의심되고 저용량과 고용량 덱사메타손억제 검사 실시, 억제됐고 노인성 우울증 가성 쿠싱 증후군이다.",
"쿠싱 증후군은 고코티솔 혈증과 이로 인해 유발되는 특징적 임상양상으로 진단한다. 그러나 알코올 중독 상태, 심한 우울증, 외상이나 감염 등도 고코티솔 혈증을 유발할 수 있으며 경미한 쿠싱 증후군의 임상양상을 보일 수 있다. Mengden 등은 고코티솔 혈증을 유발할 수 있는 조건으로 쿠싱 증후군, 가성 쿠싱 증후군(pseudo_xFFFE_Cushing's syndrome), 감염이나 외상 같은 스트레스 상황을 제시했으며 이 경우 내인성 쿠싱 증후군과 마찬가지로 24시간 요의 유리 코티솔(urinary free cortisol[UTC])이 상승함을 보고하였다. 비만 자체만으로도 5%미만에서 UFC가 증가할 수 있으며, 17-hydroxycorticos-teroid(17-OHCS)도 10〜15%에서 상승됨이 보고된 바 있다. 혈중 코티솔의 증가는 우울증 환자들에게서도 관찰될 수 있는데, 최 등은 우울증 환자들에서 인터루켠2(interleukin-2)의 혈중농도와 기저 코티솔(basal cortisol)농도 사이의 유의한 역 상관관계가 있음을 보고하면서 우울증에 의한 면역기능의 저하가 시상하부-뇌하수체-부신피질 축(H-P-A axis)을 과활성화시켜 혈중 코티솔을 증가시키는 것으로 보고하였다.",
"쿠싱 증후군은 고코티솔 혈증과 이로 인한 특정직 임상양상으로 진단하지만 알콜 중독, 심각한 우울증 등 외상이나 감염같은 스트레스 상황에서도 유발할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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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20100709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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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비교한 중국의 직업구조와 인적자원개발 정책적 함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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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오르고 있는 세계의 공장’이라고 하는 중국은 경제, 산업적인 측면에서 눈부신 성장을 이룩하고 있다. 하지만 그러한 성장 속에서도 몇몇 문제점들이 지적되고 있는 바, 이 논문에서는 중국 직업구조의 특징과 취약점을 분석하면서 중국의 산업화 수준을 확인하고자 한다. 중국의 빠른 경제성장은 산업구조의 큰 변화를 초래했다. 그러나 산업별 노동력 구성비를 보면 중국은 한국에 비해 20~30년, 일본에 비해서는 약 반세기 뒤처진 상태로서 아직 산업화 단계에 달하지 못한 상태이다. 중국과 한국의 직업구조를 비교 분석해 보면 한국이 이미 정보사회에 진입한 직업구조를 보이는 반면, 중국은 겨우 산업화 초기단계에 이르고 있음을 보여준다. 직업구조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요인은 교육구조이다. 따라서 미래 직업구조의 변화 양상을 예측해보기 위해 교육수준별 직업분포를 분석하였다. 그 결과, 중국인은 한국인에 비해 동일한 교육수준으로 더 나은 직업을 얻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역으로 말해 중국의 현재 교육구조는 현대적 직업구조를 뒷받침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중국 인구 중 학생구성을 보여주는 도표 역시 고등교육 인구가 극히 적은 중국 교육구조의 취약성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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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직업구조 특징과 취약점을 분석하며 중국의 산업화 수준을 확인하고 중국인은 한국인에 비해 동일한 교육수준으로 더 나은 직업을 얻고 있다. 직업구조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요인은 교육구조이므로 미래 직업구조의 변화 양상을 예측하기 위해 교육수준별 직업분포를 분석한 결과 중국의 현재 교육구조는 현대적 직업구조를 뒷받침하기 어렵다.",
"중국은 개혁·개방 정책 이후 빠른 산업화와 경제성장을 경험하고 있다. 현재 중국의 국민총생산은 세계 7위의 규모이며, 2020년경에는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이 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이러한 중국의 경제성장은 거대한 시장, 저임금을 바탕으로 한 막대한 규모의 노동력, 대규모의 외국인 직접투자 등이 결합되어 이루어지고 있다. 대부분의 국가와 사람들은 이러한 중국의 경제발전을 경이롭게 바라보면서 동시에 큰 위협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근래 우리나라에서도 중국의 경제발전이 우리나라 경제를 지탱하는 수출입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는 사실과 더불어, 몇 년 안에 한국경제가 중국에 종속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일부 학자들은 중국의 미래에 대해 어두운 전망을 하고 있기도 하다. 이들은 국영기업과 국영은행의 취약성, 보편화된 부정부패, 매우 높은 수준의 실질 실업률 등의 문제에 주목한다. 한편 일부 학자들은 산업화 과정에서 드러나고 있는 중국 사회구조의 부정적인 측면에 문제를 제기하기도 하는데, 농촌의 해체, 극심한 사회적 불평등의 증가, 도시의 팽창에 따른 각종 도시문제와 갈등 등이 주요 논점이다.",
" 개혁·개방 정책 이후 중국은 빠르게 산업화 되고 경제 성장하였으며 막대한 노동력, 대규모의 외국인 직접투자 등이 결합되어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일부 학자들은 중국의 미래에 어두운 전망을 내놓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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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20100709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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蓮潭 李世仁의 삶과 시의 상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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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연담(蓮潭) 이세인(李世仁: 1452 - 1516)의 삶과 시가 어떻게 연결되는 가에 대하여 고찰한 것이다. 연담은 관직 생활의 대부분을 삼사(三司)에서 보냈다. 임금에게 직언(直言)하는 직책을 맡고 있었기 때문에 더욱 더 정명(正名)을 강조했다. 연담은 시 속에 도를 싣고 있다. ‘시이재도(詩以載道)’이다. 그는 재도만을 강조하지 않았다. 사장(詞章)도 함께 중시했다. 연담은 임금을 떠나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신하로서 임금을 생각했다. 임금만을 생각한 것이 아니라 나라의 치란(治亂)을 항상 염려했다. 그는 자신의 안위보다는 국가와 겨레의 안녕을 기원했다. 그는 소강지유(小康之儒)가 아니라 대동지유(大同之儒)에 속한다. 그는 내면의 충실을 통한 보편주의를 지향했다. 그는 시종(始終)이나 비은(費隱)이라는 말을 통해서 군자의 도(道)를 강조했다. 연담의 시 풍격은 충담, 고고, 전아(典雅)하다. 이러한 충담, 고고, 전아한 풍격은 그가 세속의 영리에 연연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타난다. 그는 비록 20 수년 동안 관직 생활을 했지만, 항상 겸손한 것을 미덕으로 삼았다. 그는 도학자였다. 그는 시와 문을 즐겨 지었다. 그가 사장(詞章)을 무시하지는 않았지만, 성정(性情)을 흐트러뜨리는 시와 문은 즐기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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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담(蓮潭) 이세인(李世仁: 1452 - 1516)의 삶과 시가 어떻게 연결되지 고찰하고 내면의 충실의 보편주의를 지향했으며 시종(始終)이나 비은(費隱)이라는 말로 군자의 도(道)를 강조했고 연담의 시 풍격은 충담, 고고, 전아(典雅)하며 이것은 그가 세속의 영리에 연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
"본고는 연담(蓮潭) 이세인(李世仁: 1452 - 1516)의 삶과 시가 어떻게 연결되는가에 대하여 고찰한 것이다. 이상의 논의를 요약하는 것으로 결론을 삼으려 한다. 『연담집(蓮潭集)』에 실려 있는 작품은 시가 63수, 부(賦)가 7편, 문이 14편, 잡저(雜著)가 2편 있다. 이 밖에 『속동문선(續東文選)』에 시만 2수 실려 있다. 연담은 관직 생활의 대부분을 삼사(三司)에서 보냈다. 임금에게 직언(直言)하는 직책을 맡고 있었기 때문에 더욱더 정명(正名)을 강조했다. 겉으로 드러난 정명은 자신의 직분을 충실히 하는 것이었다. 이것이 집안으로 들어가면 부모에 대한 효도가 된다. 그는 문욱(文郁)이라는 출가승을 내세워 효도를 강조하고 있다. 연담은 시 속에 도를 싣고 있다. ‘시이재도(詩以載道)’이다. 그는 제도만을 강조하지 않았다. 사장(詞章)도 함께 중시했다. 연담은 고향에 대한 생각이 간절했다. 임금을 떠나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신하로서 임금을 생각했다. 임금만을 생각한 것이 아니라 나라의 치란(治亂)을 항상 염려했다. 그는 항상 어지럽고 일 많은 세상을 안정되고 일없는 나라로 만들고 싶었다. 그는 자신의 안위보다는 국가와 겨레의 안녕을 기원했다. 그의 정신 영역은 그만큼 폭이 넓다. 이점을 미루어 보면, 그는 소강지유(小康之儒)가 아니라 대동지유(大同之儒)에 속한다.",
"본고는 이세인의 삶과 시가 어떻게 연결되어 지는가를 고찰할 것이며 이상의 논의를 요약할 것이다. 그의 정신 영역은 폭넓고 대동지유에 속한다. \r\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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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20100709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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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을 둘러싼 성호학파의 갈등 양상과 그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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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호학파 내부에서는 일부학자들은 주자의 대학설을 따르지 않고 고본 대학설에 근거하면서 새로운 주장들을 하기 시작하였는데, 이 글은 이것의 내용을 살펴보고 의미를 따져 보는 것이다. 먼저 성호의 제자 신후담, 이병휴등이 고본 대학설을 제기하였고 여기에 이기양, 권철신 등이 동조하고 이것이 정약용에게 전달되었다. 여기에 대하여 안정복은 고본 대학 설을 비판하면서 주자 대학설을 고수하려고 하였고 그의 제자 황덕길이 동조하였다. 이 고본 대학설을 주장하는 학자들의 논점은 대체로 네 가지로 간추려 볼 수 있다. 첫째, 주자가 새롭게 편제한 것을 따르지 않고, 고본 대학의 편제를 그대로 따랐다. 두 번째는 주자의 격물치지를 왕양명과 같이 완전히 부정하지 않고, 物을 대학 내에 있는 조목으로 한정하여 인정하면서 실천적 의미를 드러내려고 하였다. 세 번째는 明德을 孝弟慈라고 하여 선험적으로 내재적 것으로 보지 않고 후천적 노력으로 얻어지는 것으로 보았다. 네 번째는 대학에서 心身의 문제에 대하여 주자학을 따르지 새로운 개념을 도출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의식들은 양명학 특히 태주학파와 유사한 점이 있을 수 있으나 완전히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여기에는 이들 내부의 자체의 논리가 있었던 것이다. 논자는 이 글에서 이러한 문제를 탐색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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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호학파 내부 일부학자는 주자의 대학설을 따르지 않고 고본 대학설에 근거하며 새로운 주장을 살피고 의미를 따져 본다.고본 대학설 논점은 네 가지로 고본 대학의 편제를 따랐고 物을 대학 내 조목으로 한정하 며실천적 의미를 드러내고 明德을 孝弟慈라 하여 후천적 노력으로 얻어지고 대학에서 心身 문제에 주자학을 따르는 개념을 도출한다. ",
"잘 알려졌다시피 『대학』은 원래 『예기』의 한 편으로 존재하였다. 여기에는 誠意 부분이 중심이 되어 있고, 이 성의를 설명하는 가운데 格物에 대한 간단한 언급이 있었다. 주자는 이 격물을 강조하기 위해 『대학』의 체제를 새롭게 편집해서 격물을 성의 부분에서 독립시킨 다음, 그 격물을 설명하는 장으로 ‘補亡章’을 새롭게 만들었다. 반면에 왕양명은 주자의 보망장을 부정하고 원래 대학의 편차를 따름으로써 거기에서 강조되었던 성의의 체계로 대학을 해석하고, 성의를 강조하는 논리의 연장선상에서 격물의 ‘格’ 자를 ‘正’자로 해석하였다. 따라서 일반적으로 주자가 정한 대학의 편차에 따라 ‘보망장’을 인정하고 그의 격물 해석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주자학이고, 고본 대학을 따르면서 격을 정으로 해석하는 것은 양명학이라는 논리가 통용된다. 그런데 조선 후기 성호학파 내부에서 일부 학자들은 고본 『대학』설을 주장하기 시작하였다. 먼저 성호의 제자 신후담, 이병휴 등이 고본 『대학』설을 제기하였고, 여기에 이기양, 권철신 등이 동조하고 그러한 학설이 정약용에게 전달되었다. 여기에 대하여 안정복은 고본 『대학』설을 비판하면서 주자 『대학』설을 고수하려 하였고, 그의 제자 황덕길이 이러한 입장에 동조하였다. 이 고본 대학설을 주장하는 학자들의 논점은 크게 네 가지로 간추려 볼 수 있다. 첫째는 주자가 새롭게 편제한 대학의 순서를 따르지 않고, 고본 대학의 편제를 그대로 따른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주자의 ‘격물치지’를 왕양명과 같이 완전히 부정하지 않고, 대학 내에 있는 ‘物로 한정하여 실천적 의미를 드러내려고 한다는 것이다. 세 번째는 ‘明德’을 孝弟慈과고 하여 선험적으로 내재적인 것으로 보지 않고, 후천적 노력으로 얻어지는 것으로 본다는 것이다. 네 번째는 대학에서 心身의 문제에 대하여 주자학을 따르지 않고 새로운 개념을 도출한다는 것이다.",
"『대학』은 『예기』의 한 편으로 존재하였고 주자가 정한 대로 편차에 따라 보망장을 인정하는 것은 주자학이며, 격을 정으로 해석하는 것이 양명학이다. 조선 후기 성호학파 내부에서 고본 『대학』설을 일부 학자들은 주장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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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20100709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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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의 의미망을 통해 본 야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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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가족 이야기를 통해 야담의 성격을 파악하기 위하여 씌어졌다. 야담집에는 현대 의미의 가족은 존재하지 않는다. 가족은 당시 이데올로기의 한 방편으로만 존재했다. 실제 야담집에서 가족의 의미를 담은 용어는 가인(家人)인데, 이 말은 크게 두 형태로 쓰였다. 그 하나는 한 집에 거주하는 모든 사람이며, 다른 하나는 친족의 개념이 강한 가문이다. 야담집에 쓰인 가족은 이 두 가지 의미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그렇지만 이 둘은 이원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당시 사회에서 가구와 가문은 서로 떨어져서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야담집에서 가족으로 편입하기 위해서는 애정보다 가문의 번성을 위한 조건이 더 중시된다. 따라서 가족으로 편입되기 위해서는 가문을 빛내야 하는데, 그 양상의 중심은 과거에 급제하는 것으로 요약된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야담에서 애정은 부정의 대상이 된다. 따라서 야담집에서 애정 이야기 역시 애정 이야기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과거 등을 통한 현달에 의해서만 비로소 가문에 복귀하는 형태로 나타난다. 이러한 양상은 패설과 일정한 차이가 있다. 패설은 정을 긍정하기 때문에 가상의 상황을 설정하는 것이 보통이다. 이는 현실을 부정하는 데서 나온 것이다. 반면 야담은 현실을 긍정하는 측면에서 이야기를 전개하기 때문에 현실성이 강하게 나타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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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이야기로 야담의 성격을 파악하려 씌어졌고 야담집에 가족 의미 용어는 가인(家人)인데, 하나는 한 집에 거주하는 모든 사람이며, 다른 하나는 친족 개념이 강한 가문이다. 가족으로 편입되려면 가문을 빛내야는데, 양상 중심은 과거 급제로 요약되고 야담에서 애정은 부정의 대상이며 패설과 일정한 차이가 있고 패설은 정을 긍정하여 가상의 상황을 설정한다.",
"가족이란 무엇인가? 이 물음에 대해 한쪽에서는 우리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인간적 유대를 형상화한 전통적인 가치를 가진 것이라고 말한다. 다른 한쪽에서는 가부장제의 불미스러운 면을 보여주는 것으로 이해하기도 한다. 가족은 정의할 수 있는 실재가 아니라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제각각으로 해석될 수 있는 상상적인 존재로 보기도 한다. 가족은 누가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는가에 따라 전혀 다른 목소리로 나타나고 있는 셈이다. 실제 가족 문제에 접근하는 방법도 다양하다. 외부인의 시각에서 어느 한 가족을 조사할 수도 있고, 그와 달리 내부인의 입장에서 가족 구성원의 특성을 이야기할 수도 있다. 물론 어떠한 위치에서 가족을 보든 그 결과가 객관적인 형태로 동일하게 나타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보다는 오히려 연구자의 목적에 따라 그 결과가 달리 나타날 개연성이 더 크다. 실제로 사회학·심리학·법학·생물학·여성학 등의 학문 분야에서 제시된 수많은 의견은 오히려 가족을 얼마만큼 다양한 층위로 해석할 수 있는가를 반증한다. 또한 가족의 범위를 어떻게 정할 것인가에 따라 논의의 대상도 가구, 가정, 가계, 친족, 가문 등으로까지 확장될 수 있다. 이처럼 가족은 어느 시각으로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에 따라 다양한 형태의 얼굴을 드러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가족은 해석하는 사람에 따라 다분히 자의적이며 주관적으로 정의되는 개념이며, 그에 따라 가족은 존재하면서도 존재하지 않는 그 무엇일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닌가? 가족이 지닌 이러한 특수성 때문에 이익집단에서는 자신들의 이익에 맞춰 가족은 어떠한 모습이어야 한다는 당위적인 가치를 제기하고, 그 가치에 대해 다양한 반론과 대립이 지금까지도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가족은 어떤 시각에서 바로바는가에 따라 다른 목소리로 나타나며 실제 문제에 접근하는 방법도 다양하다. 그러나 연구자의 목적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가능성이 가장 크며 가족의 범위를 정하는 것 역시 다양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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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20100709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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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가족제도의 변화와 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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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는 여성들에게 커다란 변화의 시기였다. 고대 이래 유지되어 오던 양계적 가족제도가 부계적인 가족제도로 변화했기 때문이다. 이 변화 속에서 조선의 여성들은 딸에서 며느리로 자신의 주된 정체성이 바뀌는 것을 경험한다. 이때에 물론 여성들은 ‘시집살이’와 같은 갈등을 겪었지만 점차 상황에 적응하는 방법들을 찾아냈다. 제도에 자신을 적응시키면서 갈등을 해소하는 방법들을 찾았고, 또 다른 영역에서 자신들의 권리를 확보하고자 노력하였다. 총부 혹은 종부로서의 권한을 인식하고 그 역할에서 주체성을 발휘한 것이나 열녀되기에 집중했던 것 등은 그러한 노력의 증표들이다. 그리고 대상자로서 주어진 도덕을 수용하는 정도에서 점차 그것을 체득하고 주체적으로 실천하는 쪽으로 변화해 갔다. 그 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성리학 자체를 연구하여 자신의 의식세계를 넓혔다. 즉 여성들은 성리학 중심의 기존 질서에 적극적으로 적응할 뿐만 아니라 그 질서의 원리에 대해서도 깊은 인식을 가지게 되었던 것이다. 여성들이 이렇게 적극성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오랫동안 양계적 가족제도의 전통 속에 살아오면서 비교적 여성으로서는 강한 자기 주체성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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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는 여성들에게 큰 변화의 시기였다. 양계적 가족제도가 부계적 가족제도로 변화했고 제도에 자신을 적응시키며 갈등 해소 방법을 찾고 자신들 권리를 위해 노력하였고 여성들이 이렇게 적극성을 가질 수 있었던 건 양계적 가족제도 속에서 비교적 여성으로 강한 자기 주체성을 가졌기 때문이다.",
"왕건은 부인이 29명이었다. 왜 그토록 많은 부인이 필요했을까? 흔히 이는 호족세력에 대한 회유 또는 연합책이라고 말해진다. 그런데 이를 다른 말로 하면 처가의 역할 혹은 지원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사실을 뜻한다. 처가는 곧 자식의 외가로 이어진다. 즉 고려에서 혼인은 두 집안이 강한 공조 관계를 이루고 있다는 것을 의미했고, 나아가 부계와 모계가 함께 영향력을 미치는 친족 구조가 유지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고려에서는 친가, 외가, 처가의 가족망이 거미줄처럼 얽혀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대개 고려의 가족은 부부와 미혼자들로 이루어졌지만, 여기에 미성년의 친척을 포함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이 경우 부계만이 아니라 처계와 모계 등 다양한 계보의 친척들이 함께 살았다. 가령 정도전의 아버지 운경은 일찍이 어머니를 여의고 이모 집에서 자랐으며, 이공수는 매부 집에서 자랐고 허공은 처제의 딸을 양육하였다. 節婦 조씨는 열세 살에 출가했다가 과부가 되어 언니에게 의탁하였는데, 딸이 혼인하자 딸에게 의지하고, 다시 딸이 아들 하나와 딸 하나를 낳고 일찍 죽자 손녀와 함께 살았다. 이처럼 고려의 가족 구성은 부계 일변도가 아니었으며 처계나 모계친과 매우 가까웠음을 알 수 있다.",
"왕권은 호족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29명의 부인을 두었는데 이는 고려에서 혼인으로 두 집안이 강한 공조 관계를 맺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고려의 가족 구성원은 처계, 모계친과도 아주 가까웟음을 알 수 있다. \r\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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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20100709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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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의 禮에 대한 Complex(Ⅱ) ― 선악 개념을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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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 판단은 어떤 행위 및 행위자의 선악에 대한 가치판단이다. 다시 말하면 일체 모든 행위가 도덕 판단의 대상이 되는 것이 아니다. 예를 들면 도움의 행위 혹은 만취한 사람의 행위 심지어 어린 兒의 행위는 도덕 판단의 대상이 아니다. 어떤 행위의 도덕 판단에 있어서, 도덕 판단의 최후 대상은 엄밀히 말하면 행위의 결과 혹은 행위 자체가 아니라, 행위자의 동기 혹은 근본 목적에 있다. 만약 행위의 결과가 선이지만, 동기가 선이 아니거나 혹은 선악과 무관한 것이라면, 이러한 행위는 선한 행위라고 할 수 없다. 따라서 행위자는 善人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러면 선악 판단의 기준은 무엇인가? 정통 유가에서 선악판단의 근거는 道德心이다. 이에 반해 순자는 선악판단의 근거를 ‘禮’에 두었다. 동양사회는 ‘고맥락’ 사회에 속한다. 이러한 사회 속에서 한 개인은 개인이 속한 사회질서로 인해, 그 사회질서가 옳은 것인지 그른 것인지 규명되기도 전에 권리가 보류되기도 한다. 맹자 순자 당시의 사회는 지금보다 더 엄격한 ‘고맥락’ 사회에 해당된다. 이러한 ‘고맥락’ 사회를 지배하는 이념은 다름이 아닌 禮다. 禮에 어긋나면 惡이고 禮에 부합하면 善이다. ‘禮’란 ‘고맥락’ 사회의 질서체계다. 질서체계를 유지하기 위해 유가적 전통이라는 명목 하에 개인의 권리가 보류될 수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만약 보류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이 소위 말하는 ‘禮 complex’다. 현재의 관점에서 맹자 순자를 비판해서는 안 된다. 단 만인의 행복을 위한다는 목적으로 제정된 ‘禮’라는 질서체계 때문에 한 개인, 혹은 한 집단이 희생되어서는 더욱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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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 판단은 행위 및 행위자의 선악 가치판단이고 최후 대상은 행위의 결과 혹은 자체가 아니라, 행위자의 동기 혹은 근본 목적에 있다. 정통 유가에 선악판단 근거는 道德心인 반면 순자는 선악판단 근거를 ‘禮’에 두었다. ‘고맥락’ 사회를 지배하는 이념은 禮이고 ‘禮’란 ‘고맥락’ 사회의 질서체계다. 질서체계를 유지하려면 유가적 전통이라는 명목 하에 개인 권리가 보류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만약 보류될 수 있다면 그것이 ‘禮 complex’다. ",
"“여성들이 체제에 의해서 남성들이 갖는 많은 사회적 기회와 자원들을 원천적으로 갖지 못한 사회가 있다고 하자. 이런 사회에서 남성들은 여기에 뭔가 잘못이 있다는 점을 의식하지 못할 수 있으며, 심지어 그 체제에서 사회적 차별을 받는 여성들조차 이 점을 의식하지 못할 수 있다. 이것은 전통적인 가치들을 내면화시켰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있어서 여성들이 잘 산다는 것은 여성이 남성들에게 내조를 잘하고, 순종하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이런 사회에서 여성을 억압하는 남성은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으며, 자신이 우려하는 주변 사람들―주로 남성들―의 나쁜 평판에 시달릴 필요도 없다. 그는 자신의 눈에, 그리고 친구들 눈에, 심지어 여성들의 눈에 비추어 보아도 잘살고 있는 사람일 수 있다.” 이상은 케임브리지 대학 철학 교수 Siomon Blackburn이 사례로 든 가상의 억압적인 사회다. Siomon Blackburn은 가상 사회의 사례라고 했지만, 한국 조선시대 여성이 처한 상황과 유사한 것 같다. 유가의 가르침 즉 儒敎 이데올로기가 지배한 사회 속에서 선은 무엇이고 악은 무엇인가? 이런 사회에서 禮에 부합하는 행위는 또 무엇인가?",
"전통적인 가치들을 내면화시킴으로 여성에게 부당한 사회를 남성과 여성 모두 인식하지 못할 수 있다. Siomon Blackburn이 만든 가상 사회를 보면 조선시대 여성이 처한 상항과 비슷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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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20100709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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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양명학 연구현황과 새로운 모색 - 강화학 연구의 필요성과 접근방법을 중심 논제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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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한국유학사의 한 단면을 당당히 이어 왔던 ‘양명학’에 대하여 그 연구사 검토와 함께 향후 ‘한국양명학 연구’에 있어서 논의되어야 할 주제들을 밝혀놓은 것이다. 그동안 한국 유학의 사상계는 다양성의 전철을 밟아 왔음에도 불구하고, 식민사관의 망국론에 기초한 주자 일존주의의 학풍으로 일관하였다는 오해와 오류에서 벗어나, 묻혀왔던 양명학사의 새로운 연구 방법론을 모색하였다. 그러나 조선 왕조의 건국과 함께 건국 이데올로기로서 역할을 십분 발휘했던 주자학의 그늘 하에 있었던 양명학을 한국에서 조명하는 것은 그리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한국 양명학에 대한 선행 연구들은 이러한 사안들을 발굴하는 작업으로부터 이루어져 왔으며, 이제 이 분야에서 연구하는 학문 후속 세대들은 한국양명학의 한 획을 점철하고 있었던 ‘강화 양명학파’의 연구에 주력해야 함을 피력해야만 할 것이다. 그럼으로써 한국의 사상사가 주자학을 한국화하는 과정의 연속이 아니라, 다양한 사상계의 자유로움과 왕성한 학술적 활동이 이루어졌던 사실을 보여줘야 한다. 본 논문은 기존의 발상에 있어서 도식적 파악과 왜곡된 흔적들에 대한 재검토, 혹은 역비판의 필요성을 통감하며 한국 철학계의 전반적인 구조와 흐름을 명시할 수 있는 새로운 학문분야 - 강화학 - 의 기초 자료 및 영역에 대한 연구가 필요함을 역설한 것이다. 한국유학 사상계는 주자학 이외에도 獨創的이고도 理智的인 많은 학설들이 산출되었을 것이고, 중국에서와 마찬가지로 한 시대를 풍미했었던 양명학의 유입과 관심이 미약하게나마 엄연하게 그 궤적을 찾아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한국철학사와 한국지성사 속에서 양명학의 위상과 자리매김은 일제 식민사관의 성리학 망국론에 기초한 왜곡경직된 한국사상계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기회 마련은 물론이고, 다양한 한국 사상계의 복원을 기대하는 학문 후속세대들에게 또다른 연구과제를 제시함으로써, 향후 우리 한국사상계의 흐름과 정체성을 바로 하는 데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이 한국양명학에 대한 연구는 그 출발과 기획에서부터 貶下와 浮沈의 연속이었다. 향후 한국양명학을 연구하는 학자들에게 더 이상의 시행착오와 인식의 오류를 범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양명학과 관련한 모든 자료들을 발굴하여, 한국양명학 연구의 토대를 마련해 줄 수 있는 명실상부한 강화 양명학 연구가 필요함을 밝혀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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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유학사 단면을 이어온 ‘양명학’ 연구사 검토와 향후 ‘한국양명학 연구’에 논의되야 할 주제들이다. 선행 연구는 사안을 찾아 연구하는 학문 후속 세대들은 한국양명학을 점철한 ‘강화 양명학파’ 연구에 주력하고 도식적 파악과 왜곡된 흔적들 재검토, 역비판 필요성을 통감하며 한국 철학계 구조와 흐름을 명시하는 새 학문분야 - 강화학 - 의 기초 자료, 영역 연구가 필요하다. 양명학 위상과 자리매김은 일제 식민사관 성리학 망국론에 기초한 왜곡경직된 한국사상계에서 벗어나고, 한국 사상계 복원을 기대하는 학문 후속세대들에게 연구과제를 제시하여, 한국사상계 흐름과 정체성을 바로 하고 한국양명학 연구는 출발과 기획에 貶下와 浮沈의 연속이었다. ",
"한국 양명학에 대한 연구는 소위 양명학의 발흥지라 할 수 있는 중국과 비견할 수 없을 정도로 미약하다. 그러나 지정학적 위치와 정치적 상관성을 고려해 볼 때, 중국과 한국의 학술·문화 교류가 不斷하게 연계되어 왔음은 否認할 수 없는 사실일 것이다. 중국 殷 왕조 이후의 箕子朝鮮 학설과 한국 고유의 단군 및 고조선 학설 논쟁은 중국과 한국의 역사·철학적 관심이 古代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상호 영향력의 관계 속에서 발전과 갈등을 거듭하고 있다는 단적인 例라고 할 수 있다. 東洋思想의 주류인 儒·佛·道의 한국 전래와, 전래된 유·불·도 사상의 한국적 특징으로의 발전양상은 마치 공식과 같은 경로를 거치면서 성장과 반목의 시련을 겪었고, 마침내 가장 한국적이며 독창적인 학파와 학설들을 양상시키기도 하였다. 중국 宋代 이후 儒學의 르네상스라 할 수 있는 朱子學의 유행은 학술적으로나 문화적으로 한반도에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하였고, 高麗 말엽의 혼란한 역사적 상황하에 조선왕조 개국에 일조하기에 이르렀다. 14세기 후반 朝鮮의 건국과 함께 나라의 지도이념으로 채택된 儒學 -‘주자학’-은 이후 약 500여 년 동안 조선의 역사와 맥을 함께 하며 성장하였다. 당시 조선에서 수용한 유학은 주자에 의해 집대성된 중국 宋代의 성리학이다. 조선 초기의 유학은 새로운 왕조의 정당성을 확보하고 새로운 국가의 維新된 면모를 부각시키기 위한 측면에서 연구되었고 실생활에 적용되어 나갔다.",
"한국 양명학의 연구는 중국과 비교가 어려울 정도로 미약하나 중국과 한국의 학술·문화 교류가 不斷하게 연계되어 왔음은 사실이다. \r\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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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2010070917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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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장편소설과 여성의 효의식 -과 을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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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대부분의 고전 장편소설을 보수적 지배 이념의 옹호 또는 선양이라는 시각으로 바라보는 선입견에 대한 검토와 반성을 위해 마련되었다. 이를 위해 당대의 대표적 지배 윤리인 효를 주요 요소로 삼으면서도 여성의 효에 대해서는 다른 시각을 보이는 <유효공선행록>과 <옥원재합기연>을 논의의 대상으로 삼았다. 유교적 가부장제 하에서 남성에게 종속된 존재로 인식되었던 여성의 효의식이 어떻게 형상화되는지를 통해 작품의 지향성을 파악할 수 있으리라 여겨지기 때문이다.<유효공선행록>에서는 남주인공 위주의 서사 진행을 통해 절대적 효를 부각시키는 가운데 여성의 효가 철저히 시댁 중심의 것으로 그려지고 있다. 여성의 입장에 대한 배려나 여성 내면에 대한 묘사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는 유교적 가부장제의 논리를 옹호하고, 지배 질서에 입각한 수직적 인간관을 중시하는 작품의 지향의식과 연관된다. 반면 <옥원재합기연>에서는 여주인공의 고난을 부각시키는 가운데 여성의 입장에 대해서도 관심과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특히 여성의 효의식이 제도적이고 규범적인 차원에서 시부모에게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자연적이고 보편적인 감정으로서 친정부모에게도 해당되는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 여성의 효에 대한 공정한 시각은 이 작품이 지향하는 보편적 인간 이해 속에서 가능했던 것이라 보인다. 이러한 연구를 통해 동일한 시대적 윤리에 다르게 반응하는 소설들의 실례를 살펴봄으로써 이 소설군에 대한 다양한 접근 가능성을 제시하였다. 외면적으로 비슷해 보이면서도 내적 차별성을 보이는 많은 작품들에 대해 다면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앞으로도 다양한 시각에서의 접근과 분석이 필요하리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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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장편소설을 보수적 지배 이념의 옹호 또는 선양으로 보는 선입견의 검토와 반성을 위해 효를 주요 요소로 삼고 여성의 효에 다른 시각을 보이는 <유효공선행록>과 <옥원재합기연>을 논의 대상이고 유교적 가부장제에 남성에 종속된 여성의 효의식이 어떻게 형상화되는지 작품 지향성을 파악하고 동시대적 윤리에 다르게 반응하는 소설의 실례를 살펴보고 소설군에 다양한 접근 가능성을 제시하였다. 외면적으로 비슷하나 내적 차별성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 접근과 분석이 필요하다.",
"17세기에 창작되기 시작하여 18세기 이후 성행한 것으로 짐작되는 다수의 고전장편소설은 여러 가지 면에서 주목을 받아왔다. 이런 작품군이 성립될 수 있었던 작품 외적 사실들에 대한 관심과 더불어 작품 내적 측면에 대해서도 다양한 연구가 이루어졌다. 특히 이 장편소설들은 방대한 분량 속에 인간사의 다양한 모습들을 담아내고 있기 때문에 기존의 다른 소설 양식들에 비해 당대인의 생활과 의식을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이 소설군은 주로 가문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는 가운데 충효열 등 당대의 지배 이념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에 강한 보수성을 지니는 것으로 파악되어 왔다. 이러한 보수성은 상당 부분 이 작품들이 생산된 시대의 보수적 이념과 작품을 창작하고 향유했던 담당층의 계층적 보수성에 기인한다. 즉 보수적 이념이 극대화되던 조선 후기에 그 이념의 전파에 있어 중심적 역할을 했던 상층의 향유물로서 이 소설들이 태생적인 보수성을 지니고 있었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품의 실상은 이 작품군을 보수성이라는 동일한 기준으로 파악하는 것을 어렵게 한다. 시대적 특수성으로서의 보수성 이면에 다양한 편폭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지배 이념에 대한 열렬한 옹호 아래 이를 교훈적 목적으로 활용하려는 작품들뿐 아니라 교조화된 이념이 인간의 자율적 의지를 억압하는 기제가 될 수도 있다는 비판적 시각을 담아내는 작품들이 공존한다. 특히 고전장편소설의 경우 주독자층이 여성들이었으며 여성작가가 존재했을 가능성도 있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당대에 여성은 남성에게 종속된 존재로 치부됨으로써 보수적 유교 이념의 피해자이기도 했음을 고려할 때 그들이 당대의 지배이념을 추수하도록 교육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남성과는 다른 시각에서 이를 받아들이고 형상화했을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18세기 이후 흥행한 다수의 고전장편소설은 여러 측면에서 주목을 받아왔으며 작품의 외적 사실과 내적 측면에 대한 다양한 연구가 이루어졌다. 특히 당대 생활과 의식을 자세하게 살펴볼 수 있는 기능을 하였고 특히 충효열 등 당대의 지배 이념을 강조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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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2010070917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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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 시대 기생 연구(Ⅱ) -‘기생조합’의 성격을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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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공적사적 연회에서 여악(女樂)을 담당했던 기녀집단은 신분적 성적 타자인 여성의 몸이 어떻게 제도 속에 다각적으로 활용되었는지를 보여준다. 이러한 기녀는 근대 시기에 관기 제도가 해체되는 과정에서 공창제와 같은 일본의 식민정책과 자본주의적 유흥산업의 침투 속에서 재배치되면서 존재방식의 변화를 겪게 된다. 무엇보다도 기생조합이라는 새로운 관리시스템을 통해 재구성된 기생집단은 식민권력의 통제 하에 갖가지 관제적 행사에 동원되는 한편, 요리집과 같은 상업적 공간에서 기예를 상품화하는 과정에서 유흥공간의 접대부로서의 성격이 강화된다. 하지만, 이러한 기생조합 내부의 기생들은 일제의 지배력에 온전히 포섭되지 않으려는 대항의식과 민족 내부에서의 기생을 부정하는 시선과 이중으로 충돌하면서 예인으로서의 자신들의 사회적 입지를 모색한다. 또한 조합 내의 경영진이나 요리집과 같은 조직과의 갈등 속에서 동맹 파업과 같은 행위를 통해 자신들의 권익을 확보하려는 집단적 대응양상을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조합 내의 기생들의 조직적인 자치 활동은 식민지 당대 사회주의 운동과 긴밀히 관련 맺은 노동조합의 역사에서 소외되어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제도의 주변부에서 다각적으로 활용되면서 그 존재가치를 부정당했던 기생들이 스스로 모색한 자기 확인 작업과 대사회적 목소리는 근대 공적 공간 속에 등장한 여성 집단의 존재방식과 아울러 그들이 행한 기업(妓業)을 여성 노동의 한 형태로서 새롭게 문제 제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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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공적사적 연회 시 여악을 담당한 기녀집단은 신분적 성적 타자인 여성의 몸이 제도 속에 활용되었는지 보여주고 조합 내 기생들 조직적 자치 활동은 식민지 당대 사회주의 운동과 관련 맺은 노동조합 역사에서 소외되었지만, 제도의 주변부에 활용되며 존재가치를 부정당한 기생들이 모색한 자기 확인 작업과 대사회적 목소리는 근대 공적 공간 속에 여성 집단 존재방식과 기업을 여성 노동의 한 형태로 문제 제기한다.",
"조선시대 기녀 집단은 궁중 연향 및 각종 연회에서 가무를 담당한 여악에서부터 지방 관아의 잡일이나 관리의 수청 변방 군사를 위한 성적 봉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층위의 노동을 직역의 형태로 요구받았다. 당대 ‘여악’은 일차적으로 조선조 예악정치를 구현하는 일원으로서 예(禮)의 원리 속에 예(藝)가 구현되는 공적 영역 속에 자리한다. 하지만 이들은 양반 남성들의 다양한 사적 연회에 동원되어 사대부의 풍류를 진작시키는 보조적 기능을 하였다. 이러한 ‘기(妓)’의 존재는 전근대 신분제 사회에서 천민 여성의 몸이 제도 속에서 갖가지 유희적 욕구를 매개하면서 다각적으로 활용되는 구조를 보여준다. 이는 바로 통치 권력이 제도의 운용을 통해 여성의 몸을 전유하는 역사적인 형식을 제기한다. 그런데 이러한 기녀집단은 한말을 거쳐 식민지 시대에 이르러 사회체제의 변화 속에서 존재론적 전이를 겪는다. 새로운 통치 권력인 일제는 전근대 관기제도를 폐지하고 조합의 형식으로 기생집단을 재구성하면서 상업적인 구조 속에서 기예를 상품화하는 일본식의 관리 시스템이 도입된다.",
"조선이대 기녀는 여악에서부터 지방 관아의 잡일 등 다양한 노동의 직역을 요구받았으며 이들의 존재는 다각적으로 활용된다. 그러나 일제는 기생집단을 재구성하였고 기예를 상품화 하는 일본식 관리 시스템이 적용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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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2010070917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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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홍 설화에서 살펴본 세계 인식의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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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비설화 가운데는 역사적 사건을 소재로 하여 형성되고 전승되는 경우가 많다. 역사적 사건을 소재로 하는 만큼 거기에는 설화 전승자들 특유의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이 깔려 있다. 정인홍 설화는 인조반정이 소재가 되었다. 이 연구는 인조반정에서 정인홍이 역적의 누명을 쓰고 참형을 당했다고 하는 사실에 대하여, 설화 전승자들이 어떤 방식으로 접근하고 있는지를 알아보는 데 목적이 있다. 실제 행적으로 보아 정인홍은 당쟁의 중심에 서 있었던 인물이다. 따라서 정인홍 설화는 인간관계의 문제가 중요한 의미망을 이룬다. 그리고 이 문제는 그 자체로서 중요할 뿐 아니라 역사 인식의 문제와도 밀접한 관계를 가진다. 실제로 이 설화는 올바른 인간관계의 실현이라는 간단치 않은 문제를 심각하게 제기하면서 몇 가지 기준을 제시하였으며, 특히 능력 있는 사람에게서 나타나는 일종의 병통으로 과격하고 강직한 처신을 경계하였다. 또 설화에서 부각된 정인홍의 허구적 형상과 그의 실제 행적이 긴밀히 상통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으며, 이로써 설화 전승자들의 역사 이해 방식이 역사를 일상으로 환원해서 이해하는 것, 환언하면, 구체적인 일상적 상황과 역사적 상황을 일관된 관점에서 투시하는 것이라는 점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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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조반정에 정인홍이 역적 누명을 쓰고 참형을 당한 사실은 설화 전승자들이 어떻게 접근하는지를 알아보고 정인홍 설화는 인간관계 문제가 중요한 의미망이다. 설화 전승자들의 역사 이해 방식이 역사를 일상으로 환원해서 이해하는 것, 환언하면, 구체적인 일상적, 역사적 상황을 일관된 관점에서 투시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정인홍의 실제 행적은 설화에 부각된 허구적 형상과 그 맥락이 상통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사람이든 짐승이든 한번 똑바로 쳐다보기만 해도 죽어버릴 만큼 눈에 정기가 흘렀다고 하고, 이 때문에 새들이 벼 이삭에 매달린 채 죽었다거나, 구렁이가 득천하지 못하고 땅에 떨어져 죽었다거나 하는 허구 속의 정인홍과, 남명선생의 수제자가 되고 산림 영수로서 추앙을 받는 한편, 과격하고 강직한 성품으로 당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조정의 여러 중신들에 대한 비판, 탄핵을 서슴지 않았던 역사 속의 정인홍은 별개의 존재가 아니다. 우리는 여기서 설화 전승자들 특유의 역사에 대한 접근법, 역사 이해의 방식을 살필 수 있다. 그것은 역사를 일상으로 환원해서 이해하는 것이다. 설화 전승자들은 구체적인 일상적 상황과 역사적 상황을 일관된 관점에서 투시하고 있다. 일상적인 일에서 보여주는 인물의 성격이나 됨됨이, 처신과 행위가 바로 역사를 움직이는 동력이 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사소한 듯이 보이는 일상에서의 처신이나 행위가 실은 사소한 것이 아니며, 역사는 이와 같은 일상적인 삶의 연장 선상에 놓여 있다는 것이다. 일상적 삶은 역사의 축도이며, 역사는 일상적 삶의 확대판이다. 이렇게 일상의 삶을 통해서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은 이 설화가 갖는 또 하나의 중요한 의의라 하겠다.",
"우리는 여기서 설화 전승자들 특유의 역사에 대한 접근법, 역사 이해의 방식을 살필 수 있으며 그것은 역사를 일상으로 환원해서 이해하는 것이다. 설화 전승자들은 구체적인 일상적 상황과 역사적 상황을 일관된 관점에서 투시하고 있고 일상적인 일에서 보여주는 인물의 성격이나 됨됨이, 처신과 행위가 바로 역사를 움직이는 동력이 된다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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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2010070917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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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자 김태희의 문학의 생활화에 대한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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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관련학계에서는 ‘문학의 생활화’가 많이 거론되고 있다. 이는 문학을 삶의 일부로 여기고 문학과 함께 일상의 삶을 영위해 나가는 것을 뜻한다. 필자가 설화를 채록하면서 만난 김태희는 어깨 너머로 한글을 익힌 83세 할머니이다. 풍부한 독서 경험이 바탕이 되어 고소설 및 설화의 강독, 구연, 외워 쓰기 활동을 오랫동안 해 왔고, 요즘은 생활문 중심의 글쓰기를 활발하게 하는 등 문학의 생활화를 통해 노년의 풍요로운 삶을 누리고 있다. 필자는 김태희의 개인사를 살펴보고, 그의 문학적 활동의 여러 가지 내용, 삶과 문학적 활동과의 관련 양상을 구명(究明)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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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생활화가거론되는데 김태희의 개인사를 보고, 문학적 활동의 여러 내용, 삶과 문학적 활동과 관련 양상을 구명헸다.",
"해가 다 가구 너물너물 넘어 가는디 중놈이 하는 말이 저기 저 맏딸 애기 지성임내 맏딸 애기 주무시는 마루 밑에서라두 자고 간다는 겨 중이. 그러니 사위 되리라 했으니 그 의미를 생각해봐. 그저 작은 아씨 주무시 는 마루 밑에서라두 자구 내가 자구 가겄습니다. 그래서 인저 거기서 잔다구 들어가서 있는디 안가. 그러더니 조촘조촘 마루에 올라와서 마루 위에서라두 좀 자구 가겄디야 그래두 못 자게 해두 안 되여. 그러다 인저 애기씨님 애기씨님 주무시는 평풍 밑에라두 좀 자야겠대. 중놈이 사위 되리라 했으니께. 그 의미가 거기 다 들어 있잖여. 그래서 참 그 놈이 쫓아 들어와서 자게 됐어. 그래 가지구서 아닌게 아니라 아 참 애기가 있슈. 그 놈이 중놈이 와서 아 평풍 밑에서 잤으니께 아 전기가 다 통했지. 사위가 되리라 했으니까 안 되겠어? 사위가 되리라 했는 걸. 그래 그 놈이 사위가 됐아 그런게 어머니 아버지두 안 계시구 어른두 없구 그 방에 찾아와 갖구. 그래 갖구 애기가 있어 인저 차차 차차 배가 불러나는디 인저 오라버니들 작은오라버니 큰오빠들이 다 올 때가 되고 어머니 아버지두 올 시간이 됐는디 큰일 났지. 앞산은 불르구 참 뒷산은 펑퍼짐하구 이거 큰일 났어.",
"조촘조촘 마루에 올라와서 마루 위에서라두 좀 자구 가겄디야 그래두 못 자게 해두 안 되여. 그러다 인저 애기씨님 애기씨님 주무시는 평풍 밑에라두 좀 자야겠대. 중놈이 사위 되리라 했으니께. 그 의미가 거기 다 들어 있잖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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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2010070917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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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더니즘의 현실인식 -50년대 모더니스트의 현실인식을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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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후의 모더니즘은 특히 시론을 중심으로 30년대 모더니즘을 비판하고, 전통 서정시를 부정하면서 새로운 모더니즘 운동을 표방하게 된다. 당대 사회에 대한 시대 의식, 전통 서정시에 대한 대타성, 30년대 모더니즘의 극복이라는 현실적 성격을 띠고 있으면서 또한 방법이었다. 이러한 입장에서 그들은 구세대 문학에 대해 비판적이었다. 그 비판의 근거로 두 가지를 들 수 있는데 하나는 역사적 경험의 편차에서 오는 체험의 이질성이며, 다른 하나는 ‘현대’라는 보편적 시대에 대한 의식의 차이였다. 여기에서 그들은 모더니스트를 자처하면서도 신영토를 개척하지도, 내면성과 전통의식을 가지지도 못했던 30년대 모더니스트들과 ‘청록파’ 등의 전통 서정시를 비판하면서 새로운 문학을 주장한다. 모더니즘의 새로운 방법과 현실 비판적 성격은, 조향의 ‘데빼이즈망(depaysement)의 미학’으로 대표될 수 있는 초현실주의적인 기법에 의한 형식 실험, 김경린의 ‘이데오프라스티(ideoplaty)’의 세계로 대표되는 이미지와 메타포의 활용을 통한 언어적 기능과 운용의 확대, 송욱의 산문적 리듬, 지성의 중시, 그리고 이봉래, 김규동, 김수영 등 현대의 불안과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생활’과 ‘시대정신’의 강조 등에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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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후의 모더니즘은 시론을 중심으로 30년대 모더니즘을 비판하고, 전통 서정시를 부정하며 새모더니즘 운동을 표방하며 비판의 근거로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역사적 경험 편차에서 오는 체험의 이질성, 다른 하나는 ‘현대’라는 보편적 시대 의식의 차이였다. 30년대 모더니스트들과 ‘청록파’ 등의 전통 서정시를 비판하며새로운 문학을 주장한다.",
"뉴컨트리파는 1930년대 영국 시단에 부각되기 시작한 일단의 모더니즘 시인들로 Wystan Hough Auden이나 Steven Spender, Louis McNiece, Cecil Day Lewis 등을 가리킨다. 이들이 뉴컨트리파라 불리게 된 계기는 자신들의 시를 모아 『New Signature』(1932)와 『New Country』(1933)이라는 공동시집을 내면서 비롯되었다. 이들의 좌장 역할을 한 오든의 이름을 따서 ‘오든 그룹’ 이라고도 한다. 이들은 바로 앞세대인 엘리어트의 모더니즘에 가장 큰 영향을 받았지만, 엘리어트가 현대문명에 대한 비한적인 자신의 사상을 카톨릭에 귀의하는 것으로 해소시킨 것과는 다른 성격을 보인다. 당시 영국인에게 큰 영향을 끼쳤던 마르크스주의와 그에 기반한 계급혁명에 크게 고무되어, 현대 시는 이러한 일련의 사회적이며 정치적인 상황을 직접 표현하고, 시인 역시 이러한 정치적 현실에 뛰어듦으로써 현대 시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 오든 그룹에 속하는 시인들은 각자 독특한 시적 개성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들이 영국 시단에서 주목받기 시작했던 1930년대에는 이러한 현실관이나 정치의식, 또는 모더니즘에 대한 인식을 공통적으로 지니고 있었던바, 바로 이 시기의 시와 시론이 1950년대 한국 모더니스트들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 것이다.",
"뉴컨트리파는 1930년대 영국 시단에 부각된 일단의 모더니즘 시인들로 Wystan Hough Auden이나 SLouis McNiece, teven Spender, Cecil Day Lewis 등을 가리키며 이들은 바로 앞세대인 엘리어트의 모더니즘에 가장 큰 영향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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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2010070926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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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문학 담론의 탈형이상학적 지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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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국에서 인문학의 위기가 심각한 문제로 제기되고 있다. 비교적 견고한 학문적 권력을 유지하고 있는 국문학에서도 위기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위기는 국문학 담론 자체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국문학 초창기로부터 국문학 담론에 깊이 각인되어 온 기억들은 이제 독사의 형태로 수많은 담론들을 재생산해낸다. 그러나 그러한 독사들은 그것이 갖는 본질주의적 함의로 인해 급변하는 현실의 상황과 여러 가지 균열을 일으킨다. 알게 모르게 국문학의 담론을 지배해온 여러 전제들에 대해 누구도 의심하지 않는 동안, 새로운 상황에 적응하는 새로운 담론의 생산은 지체될 수밖에 없었다. 패러다임이 바뀌지 않는 한, 독사들은 늘 그 모습 그대로 국문학 담론에 출몰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독사들은 마치 담론 이전에 어떤 형이상학적 본질이 있는 것처럼 전제한다. 그러나 이제 우리 주변의 언어들은 그 자체로 계속 담론의 망을 형성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이 시대의 새로운 언어적 상황이다. 이제는 본질이 아니라 관계의 망으로 엮어진 담론이 문제되는 것이다. 보다 실용적이고 구체적인 사유를 위해 탈형이상학적 기획이 요구되는 것도 바로 이 지점에서이다. 이 글은 국문학 담론에서 이러한 탈형이상학적 기획을 실천하기 위해, 기존의 국문학 담론에 출몰해 온 독사들을 하나하나 해체하고, 이를 통해 국문학 담론에서의 근본적인 패러다임의 전환을 모색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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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인문학 위기가 심각한 문제이고 비교적 견고한 학문적 권력 유지하는 국문학에서 위기의 조짐이 있고 관계의 망으로 엮어진 담론이 문제이다 . 국문학 담론에서 탈형이상학적 기획 실천을 위해, 기존 국문학 담론에 출몰한독사들을 해체하고, 국문학 담론에서 근본적인 패러다임의 전환을 모색하고자 한다.",
"최근 국문학을 전공하겠다는 연구자들이 부쩍 줄어들었다. 이는 대학원에 진학하여 국문학을 전문적으로 연구하겠다는 희망을 갖는 젊은 세대가 줄었다는 것을 말한다. 그 이유를 이른바 대학에서 실시하는 학부제에 돌리는 것은 단견에 불과하다. 국문학 연구가 필요하고 그러한 연구가 이 사회에서 쓸모가 있다면, 학부에서 어떤 제도를 실시하든 국문학의 연구 인력은 계속 충원될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학부에서의 국문학 전공 역시 최근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다. 문예 창작, 미디어나 문화 콘텐츠 관련 전공이 국문학 전공을 대체하는 사례들이 나타나고 있다. 이는 아마도 국문학을 전공하여 실제 사회에서 그 지식을 활용하기가 쉽지 않음을 말하는 듯하다. 생각해보면, 국문학 시간에 공부한 향가, 설화, 고전 소설들에 관한 지식을 딱히 무엇에 어떻게 활용할지가 떠오르지 않는다. 아무리 대학이 이론을 공부하는 아카데미즘의 산실이라 하더라도, 이론이나 지식이 단지 학습자의 인지 체계에 머무는 것이라면, 그것은 그야말로 특별한 쓸모를 찾기 어려운 것이 되고 말 것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대학에서 국문학의 연구는 이러한 인지 체계 속에 머무는 지식들을 산출하는 데 주력해 왔다.",
"국문학 연구가 필요하고 그러한 연구가 이 사회에서 쓸모가 있다면, 학부에서 어떤 제도를 실시하든 국문학의 연구 인력은 계속 충원될 것이나 그렇지 못한 것이 현실이며 학부에서의 국문학 전공 역시 최근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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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2010070926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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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의 緣起的 관념 구성 교육 방향 탐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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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에서는 읽기 교육을 불교 철학의 관점에서 바라보았다. 불교 철학은 여러 갈래가 있지만 여기서는 용수의 공사상(空思想)을 바탕으로 읽기 교육을 논의해 보았다. 용수의 중관 철학의 기본 관점은 사물은 자성(自性)을 갖지 않아 공(空)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물들은 연기적(緣起的) 관계를 통하여 작용을 드러낸다고 본다. 공사상의 관점에서 보면, 텍스트와 독자와 읽기가 모두 공(空)하다. 독서는 독자와 텍스트와 읽음이 연기적으로 이루어지는 하나의 작용이다. 독자와 텍스트, 읽음 또한 여러 구성 요소들의 연기적 결합에 의하여 존재한다. 독서와 독서를 이루는 요인들은 본래 그래야 한다는 자성을 가지고 있지 않다. 자성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다른 요인들과 상호의존적 관계를 이루게 됨으로써 그 작용을 드러낸다. 그러므로 독자의 중요한 요인인 읽기 주체와 관념도 모두 공하다. 읽기 교육에서 읽기 주체와 관념이 공하다는 관점을 수용할 필요가 있다. 읽기 주체의 공성을 인식하고, 관념의 연기적 구성을 통하여 독자의 생각과 마음의 변화를 꾀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읽기 주체와 관념의 공성은 이들의 연기적 결합을 통하여 독자의 생각과 마음의 근본적인 변화를 추구할 수 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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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 교육을 불교 철학의 관점에서 보고 불교 철학은 용수의 공사상으로 읽기 교육을 논의했다. 읽기 교육에 읽기 주체와 관념이 공하다는 관점을 수용하며 읽기 주체 공성을 인식하고, 관념의 연기적 구성으로 독자의 생각과 마음의 변화를 꾀한다. 읽기 주체와 관념의 공성은 연기적 결합을으로 독자의 생각과 마음의 근본적 변화를 추구한다.",
"그동안의 읽기 교육의 관점에서 보면, 독자가 독서를 통하여 구성된다고는 인식하지 않았다. 텍스트 중심 접근에서는 텍스트의 의미를 독자가 수용해야 한다고 보았다. 그리고 독자 중심 접근에서는 독자가 주도적으로 구성한다고 보았다. 전자는 독자의 수동적 관념 수용을 강조하였고, 후자는 적극적 관념 구성을 강조했다. 이들은 관념의 수용이나 구성에 초점을 둠으로써 독자의 발전적 자기 구성에 대해서는 관심을 갖지 못했다. 독서를 관념의 수동적 수용이나 주도적 구성으로 봄으로써 독자의 연기적 관념 구성을 통한 자기 발전의 문제를 소홀히 한 것이다. 수용이나 구성의 관점은 독자가 정보를 수용하고, 처리하는 기계적 속성으로 인식한 면이 없지 않다. 독자가 텍스트 읽기를 통하여 자신의 생각이나 마음의 발전을 이루어야 한다는 전제가 무시된 것이다. 그 결과 독자는 텍스트 정보처리자로 인식되기까지 한다. 독자 중심 읽기 교육에서 독자는 관념을 구성할 뿐이지 그 관념이 독자의 마음을 이루게 하지 못하고 있다. 읽기 능력 향상은 의미 생성 능력의 향상일 뿐 생성한 관념으로부터 독자가 자신의 생각과 마음을 새롭게 하는 능력은 아니다. 읽기 능력은 단지 읽기 주체의 관념 구성의 효율성에만 관련되어 있을 뿐이다. 독자의 정신과 마음을 키워주는 관념의 작용에는 관여하지 않는다. 이 논의에서는 불교의 용수의 空思想을 기초로 읽기 주체와 관념의 연기적 특성에 대한 논의를 통하여 독자의 변화를 추구하는 읽기 교육의 방향을 탐구하여 본다. 독자의 공성(空性)을 논의하고, 이를 기초로 읽기 교육을 비판적으로 살피고, 공사상에 기초한 읽기 교육의 방향을 논의하여 본다.",
"독자 중심 접근에서는 독자가 주도적으로 구성한다고 보았거 전자는 독자의 수동적 관념 수용을 강조하였고, 후자는 적극적 관념 구성을 강조했다. 독자 중심 읽기 교육에서 독자는 관념을 구성할 뿐이지 그 관념이 독자의 마음을 이루게 하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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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2010070926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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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과 ‘그려쓰기’ 교수·학습 방법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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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의 목적은 후기문자시대의 변모된 쓰기 문화 양식에 터하여 지금-여기-우리 아이들의 쓰기 문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함으로써, 당대의 문화적 맥락을 쓰기 수업에 구체적으로 연계시키는 활동을 제안함에 있다. 전자언어시대에는 글과 그림이 의사소통의 대표적 표현 수단이 되며, 이들은 따로 떨어져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어린이들은 그들의 표현 활동에서 그리는 것과 쓰는 기능을 같은 표현기능으로 인식하고 있다. 이에 연구자는 그림과 시각기호들을 쓰기의 범주 안에 적극적으로 들여와 활용하는 글쓰기 방법의 하나로 ‘그려쓰기’라는 새로운 쓰기 교수학습 방법을 제시하였다. 그리고 현행 교과서의 학습 과제들을 세심히 살펴본 결과를 토대로 교과서에서 어린이들에게 제공되고 있는 매체의 종류를 그림, 사진, 몸짓, 만화, 글그림(이모티콘), 광고로 나누고 각각의 그려쓰기 유형을 제시하여 실제 교실에 적용해 보았다. 본고에서의 ‘그려쓰기’는 좁은 의미와 넓은 의미로 나뉜다. 먼저 좁은 의미의 ‘그려쓰기’는 시각적 매체를 활용하여 글을 쓰는 것을 의미한다. 다음으로 넓은 의미의 ‘그려쓰기’는 ‘전자 문화’라 일컬어지는 ‘후기문자시대’에 표출된 징후, 가령 문자와 이미지가 서로를 향해 열려 있는 다양한 도상기호, 이모티콘, 아바타, 블로그 등을 활용한 글쓰기라 정의하였다. 연구에서는 위의 두 개념을 아우르는 개념으로 사용하였으며, 글과 그림의 얽매임에서 벗어나 각각의 장르가 해체되어 서로를 향해 열려있는 오늘날의 ‘장르 가로지르기’ 현상을 반영한 글쓰기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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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문자시대 변모된 쓰기 문화 양식에 우리 아이들 쓰기 문화를 수용하여 문화적 맥락을 쓰기 수업에 연계시켰다. 그림과 시각기호들을 쓰기의 범주에 활용하는 글쓰기 방법으로 ‘그려쓰기’ 교수학습 방법을 제시했고 현행 교과서 학습 과제들을 살펴보고 교과서에 어린이들에게 제공되는 매체의 종류를 나눠 그려쓰기 유형을 제시하여 교실에 적용글과 그림 얽매임에 벗어서로에게 열려있는 ‘장르 가로지르기’ 현상을 반영한 글쓰기다.",
"곳곳에서 발견되는 다양한 시각 기호들은 문자와 이미지가 대화적 관계로 서로를 향해 열려있는 ‘도상 텍스트’로서, 이는 디지털 미디어 시대를 맞이하여 언어표현이 점차적으로 전자화되어가고 있음을 가늠케 하기에 충분하다. 이에 비추어보면 전자 언어능력을 한껏 향유하고 있는 요즘 아이들의 삶을 적극적으로 끌어안고 교육적으로 초월하는 쓰기 교육이 필요함을 알 수 있다. 전자 언어 시대에는 글과 그림이 의사소통의 대표적 표현 수단이 되며, 이들은 따로 떨어져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아이들도 그들의 표현 활동에서 그리는 것과 쓰는 기능을 같은 표현 기능으로 인지하고 있다. 이에 본고에서는 지금의 쓰기 교육에서 다루어지지 않거나 문자의 보조 수단에 그치고 마는 그림과 시각 기호들을 쓰기의 범주 안으로 적극적으로 들여와, 그리기와 쓰기를 함께 활용하는 글쓰기 방법을 제안하고자 한다. 본고에서는 이를 ‘그려 쓰기’라고 하는 새로운 쓰기 교수 학습 방법의 하나로 교실 수업에서 실제적으로 실천할 수 있을 것이라는 가설을 전제로 구체적 전략과 실천 방법을 모색해 보고자 한다. 또 ‘그려 쓰기’의 유형과 그 구체적 전략들을 실제 교실 수업에 적용해 봄으로써 ‘지금-여기’ 우리 아이들이 보다 자유롭게 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자 한다.",
"전자 언어능력을 한껏 향유하고 있는 요즘 아이들의 삶을 적극적으로 끌어안고 교육적으로 초월하는 쓰기 교육이 필요함을 알 수 있고 전자 언어 시대에는 글과 그림이 의사소통의 대표적 표현 수단이 되며, 이들은 따로 떨어져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아이들도 그들의 표현 활동에서 그리는 것과 쓰는 기능을 같은 표현 기능으로 인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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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2010070917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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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ㆍ중사상 비교 연구방법 시론?조선학자와 나흠순 학설의 비교 연구성과를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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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상은 중국사상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발전해 왔다. 한국사상을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중국사상과의 비교 연구가 수행되어야 한다. 비교 연구를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방법론 모색이 필요하다. 그동안 많은 학자들의 노력 덕분에 한중사상에 관한 연구가 많이 이루어져 왔다. 그러나, 한국사상과 중국사상을 효과적으로 비교 연구하기 위한 방법론에 대한 성과는 매우 미흡하다. 본 논문에서는 나흠순(羅欽順)과 조선학자들을 비교 연구한 성과들을 중심으로 ‘한중사상 비교 연구방법’을 모색하고자 한다. 나흠순은 주자학을 부흥시키고자 노력한 중국 명나라의 학자로, 그의 학설이 조선에 전해지자 조선의 학자들은 조선 전기부터 후기까지 그의 학설을 깊이 있게 논의되었던 인물이다. 본 논문에서 제시하고 있는 ‘한중사상 비교연구 방법론’은 세부적인 연구방법과 보편적인 연구방법으로 나누어져 있다. 세부적인 연구방법은 다음과 같다. 시대를 상황을 고려한 비교 연구, 내재된 사상의 특징을 고려한 비교 연구, 원전 분석을 기초로 한 비교 연구, 외연적 확대를 통한 비교 연구, 명확한 주제 설정을 통한 비교 연구, 공통점을 중심으로 한 비교 연구, 인접 학문과의 연계를 통한 비교 연구, 새로운 사상적 흐름과 관련된 비교 연구. 보편적 연구방법은 다음과 같다. 분석적 방법과 종합적 방법, 리와 기를 나누어 보는 방법(離看)과 합쳐서 보는 방법(合看), 기의 측면에서 리를 말하는 방법(氣上言之)과 리의 측면에서 기를 말하는 방법(理上言之). 보편적 연구 방법중의 두 번째와 세 번째는 조선시대의 학자들이 사용하던 용어를 현대적 방법론으로 확장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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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상을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 중국사상과 비교 연구가 수행되어야 하고 많은 학자들의 노력으로 한중사상 연구가 이루어져 왔으나, 한국과 중국사상을 비교 연구하기 위한 방법론 성과는 매우 미흡여 나흠순(羅欽順)과 조선학자들을 비교 연구한 성과를 중심으로 ‘한중사상 비교 연구방법’을 모색하고 ‘한중사상 비교연구 방법론’은 세부적인 연구방법과 보편적인 연구방법으로 나누었다.",
"나정암은 양명학이 창궐하던 시기에 주자학을 옹호하고 그 전통을 재확립하고자 노력한 학자이다. 그 과정에서 나정암은 양명학에 대해 비판을 가하는 동시에, 주자학의 학설을 일부 교정하고자 하였다. 그는 양명학의 良知說을 비판하고, 이일분수설을 강조하여 “그 말이 지극히 간단하지만 미루어 보면 천하의 이치를 다하지 않은 바가 없다.”라고 하며 주자 학적 입장을 충실히 따르고자 하는 입장을 취하기도 하였지만, 이와 기를 나누는 나누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하며 주자학에 내재된 이와 기를 분별 하는 ‘理氣決是二物’적 사유를 제거하고자 하는 의도성을 가지고 있었고 이러한 그의 사유는 독특한 理氣一物論으로 이어졌다. 나정암은 성론에서도 본연지성과 기질 지성을 두 성으로 나누어서는 안 된다고 하였으며, 道心과 人心을 체와 용의 관계로 보고, 도심을 未發에 인심을 已發에 배속시켰다. 나정암의 학설은 정통주자학자들인 조선의 학자들의 시각에서 보았을 때 매우 독특한 것이었다. 나정암의 학설이 조선에 소개되자 조선의 학자들은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조선의 학자들은 크게 보아 긍정, 일부 수용, 반대 등의 입장을 취했으며, 이 과정에서 타 학자의 학설을 나정암의 학설과 비교하여 논의하는 일군의 학자들이 생겨났다.",
"나정암은 양명학에 대해 비판을 가하는 동시에, 주자학의 학설을 일부 교정하고자 하였고 나정암의 학설은 정통주자학자들인 조선의 학자들의 시각에서 보았을 때 매우 독특한 것이었으므로 조선에 소개되자 조선의 학자들은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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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2010070917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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周代 上帝意識과 儒學思想의 形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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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周代의 상제의식이 유학사상의 형성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가 하는 것을 밝히는 것을 목적으로 서술하였다. 공자의 사상은 문 무를 憲章하였기 때문에, 주나라의 문화를 계승하는 것을 그 이상으로 여겼다는 사실은 주지하는 사실이다 . 그렇다면 공자는 왜 문 무를 헌장하게 되었던 것일까. 공자는 부모에게 효도하고 형제 사이에는 서로 존경하고 사랑하는 것을 가르치고자 하였다. 공자의 정신이 이와 같았던 것은 주나라의 시조부터 주 나라가 이루어질 때까지의 과정이 부모에게 효도하고 형제 사이에 사랑과 존경이 있었기 때문에 이를 보았기 때문이다. 공자는 자신을 수양하고 집안을 다스리고 나아가 나라를 다스리고 세상을 다스리고자하였다. 이와 같은 가르침은 모두가 주나라의 시조부터 주나라를 건국하였던 문왕과 무왕에 이르기까지가 모두 자신을 수양하고 집안을 다스리고 나라와 세상을 다스려 가는 과정이었기 때문에 그와 같은 가르침을 베풀었다. 그렇다면 주 나라 사람들은 어떻게 하여 그와 같은 방법을 알고 그렇게 실천하여 갈 수 있었을까. 그 까닭은 上帝의 명령이 있었기 때문이다. 상제의 명령은 주 나라의 시조 后稷을 태어나도록 한 것이 上帝였고 그의 후손들을 융성하게 발전하도록 한 것도 상제였다. 이 논문에서 특별하게 서술하려고 한 것은 주 나라의 시조부터 건국까지는 독립적이고 고유한 문화 전통을 가지고 발전하였다는 것이며 夏 나라와 殷 나라와는 전혀 다른 국가로서 독립적으로 이루어진 것이라는 사실이다. 공자는 이와 같은 주나라의 역사와 문화를 보고 그것들을 자기의 이상으로 삼아서, 공자사상을 이루게 되었다는 것이 이 논문의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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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周代의 상제의식이 유학사상 형성에 어떤 영향을 밝히고 공자의 자신을 수양하고 집안과 나라와 세상을 다스리고자한 가르침은 주나라 시조부터 주나라를 건국한 모두 자신을 수양하고 집안을 다스리고 나라와 세상을 다스려 가는 과정이었기 때문에 가르침을 베풀었고 주 나라 사람들이 방법을 알고 실천할 수 있었던 이유는 上帝의 명령이 있었기 때문이다. 주나라 역사와 문화를 보고 자기 이상으로 삼아 공자사상을 이루게 되었다.",
"주 나라의 예악과 제도가 형성되기까지에는 그들의 시조였던 후직, 그리고 그 증손으로 알려진 공류, 공류 이후 9대를 내려와 기산으로 천도한 고 공단보, 왕계 문왕 무왕 주공 등 많은 사람들의 노력에 의하여 마침내 주의 탄생을 이룬 것이었다. 그러나 그와 같은 발전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언제나 천명에 대한 믿음으로부터 수신 제가 치국평천하를 이루어 가는 과정이었으며, 명덕을 통하여 친민하고 止於至善에 이르는 것이었다. 이 논문에서 확인하고자 하는 것은 이와 같은 과정에서, 부족 국가 시대를 거쳐서 주 나라가 건국되기까지 천명은 어떻게 작용되었으며, 나아가 이와 같은 천명 의식은 유학 사상의 형성에 어떤 영향을 주어 유학의 학문적 실체로서 어떻게 정립되었던가 하는 점이다. 이는 주족의 형성, 이른바 生民으로부터 부족국가의 형성과 문왕 무왕의 건국에 이르기까지 모든 과정이 어떻게 전개되었으며, 그사이에 천명은 어떻게 나타났던가가 문제되어진다. 그러므로 강원으로부터 후직, 공류의 천도와 고공단보의 기산 정착, 그리고 왕계 문왕 무왕에 이르러 주나라가 건국할 때까지 천명 의식은 어떻게 발전하였는가. 그리고 그와 같은 천명은 어떻게 제도로서 정립되었으며, 공자는 왜 이를 수용하고자 하였던가 하는 것들이 올바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주족의 형성, 이른바 생민으로부터 부족국가의 형성과 문왕 무왕의 건국에 이르기까지 모든 과정이 어떻게 전개되었으며, 그사이에 천명은 어떻게 나타났던 가가 문제되므로 강원으로부터 후직, 공류의 천도와 고공단보의 기산 정착, 그리고 왕계 문왕 무왕에 이르러 주나라가 건국할 때까지 천명 의식은 어떻게 발전하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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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2010070917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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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와 민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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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헌팅턴은 민주주의와 문화의 관계를 논하면서 유교는 민주주의에 대해 적대적이라고 하면서, ‘유교민주주의’(Confucian democracy)는 한마디로 ‘용어상 모순’(contradiction in terms)이라고 주장하였다. 필자는 이 논문에서 유교는 이론과 실천 측면에서 민주주의와 합치할 수 있는 다양한 요소들을 가지고 있으며 이를 발전시킬 때 ‘유교민주주의’는 가능하다는 것을 보이고자한다. 즉 ‘유교민주주의’는 모순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 요지는 먼저 공자가 궁극적 도덕원리로서 제시하고 있는 서(恕)의 원리는 민주주의의 철학적 기반이 되고 있는 자유와 평등의 이념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서(恕)의 원리가 제시하는 도덕적 선택의 방식은 자유롭고 평등한 개인들이 자연상태에서 각자의 이익을 위해 합의를 도출하는 방식과 그 논리적 구조에서 합치한다. 다음으로, 이 서(恕)의 원리를 정치분야에 적용하면 다양한 민주주의의 이상 또는 철학적 기초가 형성될수 있는데, 중국유학 속에서 이러한 요소들을 다수 발견할 수 있다. 맹자의 민심(民心)이 곧 천심(天心)이라는 사상은 서(恕)의 원리가 정치적 의사결정에 적용된 것으로서, 로크의 ‘주권재민’사상과 그 내용에 있어서 합치한다. 마지막으로, 이념적 차원에서 뿐만 아니라 유교의 현실 운용차원에서도 풍부한 친민주주의적 요소들을 찾아볼 수 있다. 첫째로 과거제도를 들 수 있다. 둘째, 권력견제를 위해 도입된 다양한 제도를 들 수 있다. 셋째, 유교사회에서의 언론자유전통을 들 수 있다. 넷째, 유교의 교육에 대한 강조를 들 수 있다. 다섯째, 유교가 가지고 있는 관용성(tolerance)이다. 이상의 논의를 통해 볼 때, 유교의 정치이념과 역사적 전개과정 속에는 민주주의의 철학적 기반이나 현대 민주주의적 제도로 발전될 수 있는 요소들이 넘치도록 많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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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는 이론과 실천 측면에서 민주주의와 합치 가능한 여러 요소를 가지고 이를 발전시킬 때 ‘유교민주주의’는 가능하다는 것을 보이고자한다. 서(恕)의 원리는 민주주의의 철학적 기반이 되는 자유와 평등의 이념을 갖고 서(恕)의 원리를 정치분야에 적용하면 민주주의의 이상 또는 철학적 기초가 형성유교의 현실 운용차원에서 친민주주의적 요소들을 찾아볼 수 있으며 유교의 정치이념과 역사적 전개과정 속에 민주주의의 철학적 기반이나 현대 민주주의적 제도로 발전될 수 있는 요소들이 넘치도록 많다.",
"오직 하나의 진리만이 있다는 절대적 보편주의와 유토피아적 이상주의가 지배하는 사회가 역사적으로 보여준 종교적ㆍ정치적ㆍ사회적 억압과 폭력을 반성해볼 때, 다원주의를 지향하는 철학적 태도와 문화는 이러한 폐해를 치유할 수 있는 대안으로서 옹호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유교 역시 이러한 현실적 요구에 부응하지 못한다면 철학적ㆍ문화적 생명력을 유지할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하다. 문화 다원주의가 주장하는 것처럼 문화적 배경을 달리하는 다양한 문화공동체가 서로를 존중하면서 보다 큰 단위의 집단을 이루며 살아갈 때, 집단적인 결단을 내리고 행동을 결정해야 할 경우 내부적 갈등은 피할 수 없다. 그러므로 문화 다원주의는 최소한의 사회적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불가피한 갈등을 합리적으로 해결하는 절차가 필요하다. 이러한 장치가 없을 경우 건강한 다원주의도 극단으로 흘러 전반적 회의주의와 상대주의가 가져오는 혼란에 빠질 위험성을 갖고 있다. ‘민주주의’는 전체주의와 권위주의를 배격하고, 모든 구성원들의 의견을 동등하게 존중하는 것을 그 목표로 한다는 점에서 다원주의 사회가 지향하는 정치적 의사 결정의 모범이 되는 제도라고 생각된다.",
"문화 다원주의는 최소한의 사회적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불가피한 갈등을 합리적으로 해결하는 절차가 필요하며 ‘민주주의’는 전체주의와 권위주의를 배격하고, 모든 구성원들의 의견을 동등하게 존중하는 것을 그 목표로 한다는 점에서 다원주의 사회가 지향하는 정치적 의사 결정의 모범이 되는 제도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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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2010070926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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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화 제재를 통한 듣기·말하기 지도의 한 방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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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설화가 본래 구비전승되는 문학이라는 점에 착안하여, 설화 제재를 통해 듣기•말하기 교육을 효과적으로 수행하는 방안에 대해 탐구한 것이다. 첫째, 듣기말하기 교육의 기초 작업으로 유화를 추출하는 방법과 서사구조 찾기에 대해 논의하였다. 유화를 추출하여 그 이야기 유형의 의미를 파악하여 효과적인 지도를 꾀하고, 문제의 발생과 해결이라는 측면에서 서사구조를 찾는 방법을 모색하였다. 둘째, 듣기말하기 교육을 위한 설화구연 활동에 대해 논의하였다. 여기에서는 뒷이야기 완성하기 활동을 통하여 온전한 설화 한 편을 구연하도록 한 후, 이야기를 들으면서 배경, 인물, 사건 등을 중심으로 한 핵심어를 찾아내어 그 핵심어를 근간으로 다시 이야기를 해보는 활동이 모색되었다. 끝으로, 핵심어를 대체하여 재화(再話)하는 활동을 하도록 하였는데, 이 활동을 통하여 학생들은 해로운 이야기가 창출되는 과정을 확인하였고, 문학적 표현이 살아남은 물론 청중에 따라 적절한 내용을 구사하는 방법을 체득할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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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화가 구비전승 문학이라는 점에서 설화 제재로 듣기•말하기 교육을 효과적으로 수행하는 방안을 탐구한 것이며 듣기말하기 교육의 기초 작업으로 유화를 추출하는 방법과 서사구조 찾기의 논의, 듣기말하기 교육의 설화구연 활동을 논의하였고 핵심어를 재화(再話)하는 활동을 하도록 하였다.",
"그렇다고 해서 설화를 듣고 다시 구연하게 하는 단순한 행위만으로 듣기ㆍ말하기 교육이 이상적으로 실현된다고는 볼 수 없다. 이는 예전의 설화 구연 현장을 떠올려보는 것만으로도 명백히 드러난다. 물론, 어떤 설화 작품을 듣고 곧바로 다른 사람에게 구연하기도 하지만, 실제로는 여러 사람에게서 비슷한 내용을 담은 여러 변이형의 이야기들을 들을 후, 혹은 들어가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자신 있게 구연하게 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현재의 문화여건은 그렇지 못하다. 학생들에게는 어쩌면 교과서에 나오는 설화가 그 이야기군(群) 의 유일한 각편(各篇, version)으로 인식되는지도 모른다. 이러한 난점들을 극복하고 설화가 갖는 특장을 살려 듣기ㆍ말하기 교육에 일조하는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이다. 따라서 이 논문에서는 우선, 설화를 통해 듣기ㆍ말하기 교육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기초작업을 펼칠 것이다. 여기에서는 설화의 유화(類話)를 추출하여 이야기의 기본적인 의미를 파악한 후, 간단하게 서사구조를 찾을 수 있는 지도 방법을 탐구한다. 다음으로, 그러한 기초작업을 토대로 하여 구체적인 지도 방안을 찾아보기로 하는데 설화 구연 활동을 체계화하는 방안에 대해 검토할 것이다. 여기에서는 서사구조에 비추어 뒷이야기의 줄거리를 완성하는 활동에서부터 이야기를 듣고 핵심어를 찾아내어 전체 이야기를 구연하는 활동을 거쳐, 핵심어의 대체를 통해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활동까지가 다루어진다.",
"설화를 듣고 다시 구연하게 하는 단순한 행위만으로 듣기∙말하기 교육이 이상적으로 실현된다고는 볼 수 없으며, 이 논문에서는 우선, 설화를 통해 듣기∙말하기 교육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기초작업을 펼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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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20100709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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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 교과서를 구성하는 텍스트들의 유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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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국어과 교과서가 어떤 텍스트들로 구성되며 그것을 어떻게 유형화할 수 있는가를 살펴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를 위해 먼저 국어과 교과서에 실리는 텍스트들이 지니는 특성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그 텍스트들을 크게 안내를 주 목적으로 하는 메타 텍스트, 학습 내용에 대한 직접적인 설명을 주 목적으로 하는 직접적 자료 텍스트, 학습 요소를 간접적인 방식으로 표상하고 있는 간접적 자료 텍스트, 그리고 활동을 지시하는 활동 텍스트로 구분하였다. 메타 텍스트는 다시 교과서 전체에 대한 안내, 단원에 대한 안내, 자료에 대한 안내, 활동에 대한 안내를 하는 텍스트로 나누었다. 직접적 자료 텍스트는 다시 개발형과 선택형, 연역형과 귀납형으로 구분할 수 있었다. 간접적인 자료 텍스트는 매체, 장르, 주제, 역할, 상태, 구성 체제, 출처 등에 따라 다양하게 분류하였다. 마지막으로 활동 텍스트 역시 지향성, 사고 층위, 학습 순서, 수준, 통합성 등의 기준에 따라 여러 가지 유형으로 나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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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 교과서 텍스트와 어떻게 유형화하는지 보고 텍스트 안내를 하는 메타 텍스트는 학습내용을 직접 설명하는 직접적 자료 텍스트와 학습요소를 간접 방식으로 표상하는간접적 자료 텍스트와 활동을 지시하는 활동 텍스트로 나눈다. ",
"그런 와중에도 국어과 교과서에 대한 연구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닌데, 그들 대개는 당장의 교과서 개발이라고 하는 현실적인 필요에 부응하는 것들로 판단된다. 교과서 개편 시점과 때를 맞추어 기존 교과서의 문제점을 분석하고 개선점을 찾으려는 연구들이 이러한 연구 경향의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국어과 교과서의 바람직한 단원 구성 체제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국어 교과서에 어떤 제재들이 실려 있는지, 외국의 자국어 교육을 위한 교과서들은 어떻게 편찬되어 있는지 등을 살펴본 연구들도 이러한 경향과 멀지 않다. 그러나 국어과 교과서에 대한 연구가 이러한 현실적인 필요에 즉자적인 대응만을 하는 것으로 그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좋은 국어 교과서를 개발하기 위해서는 그 토양을 튼튼히 할 수 있는 기초 연구가 바탕이 되어야 할 것이다. 국어과 교재가 무엇이고 어떤 자질을 가져야 하는지, 국어과 교과서가 어떤 모습으로 존재하고 교육 현장에서 어떻게 작용하는지 등에 대한 탐구가 이러한 기초 연구의 예가 될 것이다. 이 글은 국어과 교과서가 어떤 모습으로 존재하는지를 살펴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구체적으로 국어과 교과서가 존재하는 양상을 텍스트라는 측면에 서 살펴볼 것이다. 국어과 교과서가 어떤 특성을 지닌 텍스트들로 구성되는지를 살펴봄으로써 국어과 교과서에 대한 이해를 넓힐 수 있을 것이며, 궁극적으로는 국어과 교과서가 지향해야 할 이상적인 모습을 그려 볼 수 있는 하나의 실마리를 제공해 줄 수 있지 않을까 한다.",
"국어과 교과서에 대한 연구가 이러한 현실적인 필요에 즉자적인 대응만을 하는 것으로 그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기에 이 글은 국어과 교과서가 어떤 모습으로 존재하는지를 살펴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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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20100709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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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 ‘에서’의 문법 범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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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주어인 단체 명사(구)에 결합하는 조사 ‘에서’의 문법 범주를 어떻게 규정할 수 있을지 살펴보는 데 목적이 있다. ‘에서’의 문법 범주를 규정하는 일은 ‘에서’ 결합 명사구(‘NP에서’)의 문법적 지위를 어떻게 볼 것인지 하는 문제와 무관하지 않다. ‘NP에서’는 처격의 부사어이고 문장의 주어는 ‘그 단체에 속해 있는 누군가’ 정도인 것이 감추어져 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단체에 속한 누군가’를 가정하기 어려운 문장도 있다는 점에 주목하여 본 연구에서는 ‘NP에서’는 문장의 주어라고 본다.‘에서’는 격(주격)과 관련된 문법 범주라기보다는 의미역(주체)과 관련된 문법 범주로 볼 수 있다. 이는 주어 명사구가 ‘행위의 주체’ 역할을 하는 타동사 서술어 문장과 일반 자동사 문장에서는 그 주어 명사구의 핵이 단체 명사인 경우 ‘에서’가 자유롭게 결합하지만, 주어 명사구가 ‘행위의 대상’ 역할을 하는 ‘이다’ 문장, 형용사 서술어 문장, 피동사 서술어 문장에서는 그 주어 명사구의 핵이 단체 명사라고 하더라도 ‘에서’의 결합이 제약된다는 사실로부터 확인해 볼 수 있다. 이에 따라 본 연구에서는 ‘에서’를 ‘주체 표시’의 보조사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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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체 명사(구)에 결합하는 조사 ‘에서’의 문법 범주 규정을 보고 명사구가 타동사 서술어 문장과 일반 자동사 문장에이 단체 명사일때 ‘에서’가 결합하나, ‘행위의 대상’ 역할인 ‘이다’ 문장, 형용사 서술어 문장, 피동사 서술어 문장에서 단체 명사이더라도 ‘에서’ 결합이 제약되어 ‘주체 표시’의 보조사로 본다.",
"위에서 알 수 있듯이 일반 자동사 서술어 문장에서는 ‘에서’가 단체 명사인 주어에 결합할 수 있지만 피동사 서술어 문장에서는 ‘에서’의 결합이 제약된다. 두 문장이 차이는 (29ㄱ)의 주어인 ‘민주노총’은 ‘참여하는’ 행위의 주체이지만 (29ㄴ,ㄷ)의 주어인 ‘고등교육기관, 법사 위원회’는 주체가 아니라 ‘불신당하는, 열리는’ 대상이라는 것이다. 본 연구에서의 입장과 다르기는 하지만 이익섭·임홍빈(1983), 이광호(1984), 이윤하(1988), 최재희(2004) 등 ‘그 단체에 속한 누군가’ 정도의 주어를 가정할 수 있을 때에만 단체 명사에 ‘에서’가 결합할 수 있다고 본 연구나 ‘NP에서’ 구문을 ‘ x가 NP에 있어’ 구문의 변형으로 본 박양규(1975)도 단체 명사에 ‘에서’가 결합하는 것을 주체와 관련시켰다는 점에서만 보면 본 연구와 다르지 않다. 감추어진 ‘그 단체에 속한 누군가’ 혹은 ‘ x가 NP에 있어’의 x는 문장의 주어가 되는 동시에 서술어에 의해 표현되는 행위의 주체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단체 명사에 결합하는 ‘에서’는 격(주격)에 관련된 문법 범주라기보다는 의미역 (주체)에 관련된 문법 범주로 볼 수 있는 가능성이 크다. 이에 따라 본 연구에서는 ‘에서’의 문법 범주를 단체 명사(구)에 결합하여 그것이 주체임을 나타내는 ‘주체 표시’의 보조사로 보기로 한다.",
"단체 명사에 결합하는 ‘에서’는 격(주격)에 관련된 문법 범주라기보다는 의미역 (주체)에 관련된 문법 범주로 볼 수 있는 가능성이 크기에 본 연구에서는 ‘에서’의 문법 범주를 단체 명사(구)에 결합하여 그것이 주체임을 나타내는 ‘주체 표시’의 보조사로 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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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201007090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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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노트급 활주형선의 저항성능 개선을 위한 부가물 부착에 관한 실험적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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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knots급 활주형선의 저항성능을 개선하고자 고속 활주선형의 나선(bare hull)상태와 부가물 부착후의 저항시험을 수행하였다. 나선상태 모형시험에대한 검토결과 트림 및 침하가 크게 나타났으며, 이는 트림탭이나Wedge등의 트림제어장치를 부착한다면 트림 및 침하량을 감소시킬 수 있는 여지가 있고 이로 인한 저항 감소도 예상되어 부가물 부착 모형시험을 수행한 결과, 깊이 12.5mm의 수 직 wedge가 전반적으로 만족한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또한 개발된 선형은 50knots급에서 유효마력이 5636(ps)인 것으로 추정되었다. 이러한 모형시험 결과를 종합적으로 분석해 본 결과 부가물(wedge)을 부착했을 때 고속역에서 트림 및 침하량을 감소시켜 저항이 개선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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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속 활주선형 나선ㅡ상태와 부가물 부착 후 저항시험을 수행모형시험 결과를 분석해보니 부가물 부착 시 고속역에서 트림 및 침하량을 감소시켜 저항이 개선되었다.",
"활주형선은 선체와 수면 사이의 동적 압력에 의해 선체가 부양되어 수면위를 활주함으로써 저항을 감소시키도록 고안된 선형으로, 선체 자세의 변화와 spray에 대한 저항 발생은 이론적으로 해석하기 어려워 일반적으로 활주형선의 선형설계는 경험적인 방법이나 모형시험에 의한 방법에 의존하고 있다. 선박의 저항성능을 예측하기 위해서는 가능한 척도효과가 작은 대형 모형선을 이용하여 예인 수조에서 실험을 수행하는 것이 일반적인 관례이나 선형개발을 위해 반복적으로 모형시험이 수행되는 경우나 Froude 수가 커서 조파저항이 지배적 영향을 미치는 선형의 경우에는 비교적 작은 소형 모형선을 이용하여 회류 수조에서 실험을 수행하는 것이 실험 비용 면에서 예인 수조에 비하여 매우 경제적이다. 이 경우 예인 수조에서의 모형시험보다 정량적인 실선의 저항성능 예측에는 다소 정도가 떨어진다 할지라도 정성적인 저항성능 예측은 충분히 가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본 논문에는 조선대학교에서 개발한 50knots급 고속 활주 선형을 서일본 유체 기술연구소(WJFEL)에서 모형선을 제작하였고 고속 회류 수조를 이용하여 나선(bare hull) 상태와 부가물 부착 후의 저항시험을 수행하였다.",
"예인 수조에서의 모형시험보다 정량적인 실선의 저항성능 예측에는 다소 정도가 떨어져도 정성적인 저항성능 예측은 충분히 가능한 것이며 본 논문에는 조선대학교에서 개발한 50knots급 고속 활주 선형을 서일본 유체 기술연구소에서 모형선을 제작하였고 고속 회류 수조를 이용하여 나선 상태와 부가물 부착 후의 저항시험을 수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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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201007090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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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거리체(體) 노래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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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지금까지 이루어진 달거리체(體) 노래에 대한 연구들 중 민요 자료에 대한 연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점에 착안하여, 민요 자료를 중심으로 달거리체 노래의 기능과 형식과의 관계에 대해 살펴보았다. 논의 결과를 달거리 양식을 중심으로 살펴보면, 세시의식요로 분류되는 액맥이타령은 달과 세시일과의 관계가 액을 막자고 하는 목적에 의해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데, 하나의 달과 그 다음달의 세시일 그리고 액을 막자는 권유가 연속되는 형태가 있는가 하면, 세시일 다음에 그 세시일에 대한 서술이 삽입된 형태도 있었다. 가창 유희요인 달거리에서 사용되는 달거리체(體)는 액맥이타령과 같이 달과 세시일이 연속되나 액을 막자는 권유가 없는 대신 가창자의 심회 표현이 노래되었다. 그 형태는 달과 세시일만이 연속되는 것도 있고, 달과 세시일, 세시일과 관련된 서술과 가창자의 심회의 순서로 노래된 것도 있었다. 화투뒤풀이는 달거리체(體)가 기존의 다른 형식과 결합되어 구연되었다. 화투뒤풀이는 달과 화투풀이, 그리고 가창자의 심회로 구성되었다. 서사민요인 범벅타령 내 달거리체(體)는 지금까지 살핀 달거리체(體) 노래들과는 달리 서사민요에 삽입되어 일정한 기능을 담당하였다. 이 소리에서 쓰인 달거리체(體)는 하나의 달과 그 달에 따른 세시일로 구성되지 않고 달과 범벅이 연속되며 구연되었다. 여기서의 형식은 형태상으로 보면 가장 단순한 형태이지만 분위기가 가장 고조된 부분에서 불린다는 점에서 지금까지 살핀 노래들과는 다른 측면에서 언어 유희적 목적을 확보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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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거리체(體) 노래들 중 민요 자료 연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민요 자료로 달거리체 노래 기능과 형식 관계에 대해 살펴보았고 세시의식요로 분류되는 액맥이타령은 달과 세시일 관계가 액을 막자고 하는 목적에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데, 하나의 달과 그 다음달의 세시일과 액을 막자는 권유가 연속 형태로 있고 세시일 다음에 그 세시일의 서술이 삽입된 형태도 있었다",
"장정룡은 한국과 중국의 세시 풍속과 세시 가요를 비교하여 민속과 문학과의 관계를 유기적으로 해석하기 위해 시조, 가사, 민요의 세시 가요를 다루었다. 그는 각각의 소리들에 대해 농가월령가계는 세시풍속과 역법이 대등하나 역법이 주기능이고, 달거리 연모계는 세시 풍속이 보조 기능이고 역법이 순응하고 있으며, 풍속가요계는 세시풍속이 주기능이라 하였다. 앞서도 말하였듯이, 그의 연구목적은 세시가요를 통한 민속 과 문학과의 연관성을 밝히는 것에 있다 보니 정작, 소리 자체에 대한 분석이나 각 자료간의 내적 연관성에 대한 논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였다. 앞서, 박준규의 논문을 살필 때에도 지적되었듯이, 그 역시도 의식요인 액맥이타령과 유희요인 각설이타령을 같은 풍속가요계 항목에 분류하고 있다. 기존에 이루어진 구전으로 전승되는 달거리체(體)자료들에 대한 연구 들을 보면, 민요로 전승되는 달거리체(體)자료들에 대한 연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시조, 가사, 민요 등으로 존재하는 달거리체(體)자료들 중 민요 자료가 가장 많은 것을 감안한다면 가장 기본적인 단위에 대한 연구가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셈이다. 그 결과 다양한 양상을 보이는 민요 자료들에 명칭 및 분류 등이 각 연구자의 연구 시각에 따라 자의적으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었다.",
"기존에 이루어진 구전으로 전승되는 달거리체 자료들에 대한 연구 들을 보면, 민요로 전승되는 달거리체 자료들에 대한 연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알 수 있으며 가사, 시조, 민요 등으로 존재하는 달거리체 자료들 중 민요 자료가 가장 많은 것을 감안한다면 가장 기본적인 단위에 대한 연구가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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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201007090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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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과 재회의 양상과 의미 -과 의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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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에서는 고전 문학인 <춘향전>과 현대소설인 <뱀장어 스튜>를 두 소설의 비슷한 구조인 이별과 재회의 견지에서 비교한다. 이별은 떠나는 사람과 뒤에 남겨지는 상대방이 있다는 것이 전제된다. <춘향전>에서 고난을 견디면서 애인을 기다리는 것은 춘향이고, <뱀장어 스튜>에서 각자의 집에서 여자를 기다리는 것은 애인과 남편이다. 표면적으로 보았을 때 <뱀장어 스튜>에서 그 여자는 떠나고 돌아옴으로써 주도적인 역할을 쥐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두 소설에서 두 여성인물들은 남성 중심의 이데올로기를 내면화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춘향이 정절을 지키고 고난을 겪으면서 이상화된 여성성을 완수하는 반면에 여성성에 대한 전통적인 개념에 사로잡힌 그 여자는 변화된 환경 때문에 이상적인 여성의 역할을 할 수 없다. 과거에 그녀를 버렸지만 지금 다시 관계를 계속하는 애인은 그녀를 오직 성적인 대상물로서만 대하고, 일이 없는 그녀의 남편은 가장으로서의 역할을 하지 못한다. 마지막으로 춘향은 이 몽룡과 재회하고 결혼한다: 반면에 그 여자는 이별과 재회의 같은 구조 속에 갇혀있다. 즉, 춘향에게 이별은 결실 있는 관계를 위한 전제 조건을 의미한다: 그 여자에게 이별은 중단될 수 없는 같은 관계의 끝없는 순환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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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문학인 <춘향전>과 현대소설인 <뱀장어 스튜>를 두 소설을 이별과 재회의 견지에서 비교하고 두 소설에서 두 여성인물들은 남성 중심 이데올로기를 내면화하고 있다. 춘향에게 이별은 결실 있는 관계를 위한 전제 조건 이고 그 여자에게 이별은 중단될 수 없는 관계의 끝없는 순환을 뜻한다.",
"<춘향전〉의 내용은 춘향과 이몽룡의 만남과 이별, 춘향이 이몽룡을 이별한 이후의 신관 사또로부터의 수청 요구와 춘향의 거절에 의해서 춘향의 고난과 역경, 이몽룡에 의해서 춘향의 구출과 재회, 춘향과 이몽룡의 결합으로 이루어져 있다. 여기서는 만남 • 이별 • 재회 • 결합을 중심으로 단락(가)(나)(다)(라)로 각각 나누었다. 춘향과 이몽룡의 관계는 이별과 재회를 중심으로 사건이 구획되고 변화되면서 개인적이고 사적인 영역에 있던 개인의 은밀한 행위가 공개되고 거부와 인정을 받으면서 공인되어가는 과정을 변화되는 모습을 드러낸다. 춘향의 신념이 무시되고 용인되는 것은 작동하는 남성 중심 이념에 의해서이다. <뱀장어 스튜>는 중편소설이다. 이 소설은 6장으로 되어있다. 6장에 대한 번호가 붙어 있지 않지만 번호를 붙이면 1 • 3 • 6장에서는 소설의 서술자인지 남편인지 여자 자신인지 애매하게 1인칭으로 여자의 행위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특히 3장에서는 1인칭 서술에서 3인칭 서술로 전이되는 모습이 나타난다. 2 • 4 • 5장에서는 3인칭으로 그녀의 삶에 대해서 서술하고 있다. 이 소설에서 주인공은 여자이다. 그 여자의 삶에 대해서 2 • 5장에서는 그녀가 프랑스의 파리에서 남편이랑 살 때의 이야기이고, 4장에서는 그녀가 서울에 와서 애인과 지내는 일이 위주이다. 4 장에서 파리에서 살 때의 경제적 궁핍과 남편과의 싸움, 남편의 편지 등이 나오지만 주로 애인과 관련된 이야기들이다.",
"<춘향전>의 내용은 춘향과 이몽룡의 만남과 이별, 춘향이 이몽룡을 이별한 이후의 신관 사또로부터의 수청 요구와 춘향의 거절로 춘향의 고난과 역경, 이몽룡에 의해서 춘향의 구출과 재회, 춘향과 이몽룡의 결합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여기서는 만남 • 이별 • 재회 • 결합을 중심으로 단락으로 각각 나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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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201007090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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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T(American Ballet Theater) 아카데미 예술 교육 프로그램 사회 활성화 방안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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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이 요구하는 사회교육에 대한 관심에 부응하여, 최근 예술기관의 교육프로그램 기능은 더욱 강조되고 있다. 이러한 시대적 흐름에 편승하여 예술인구 저변확대와 대중을 위한 문화촉매자로서의 올바른 예술문화정착을 위해 다양한 예술교육 프로그램으로 대중과의 거리를 좁히고 모든 국민의 문화향수권리를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움직임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예술을 통한 인성교육은 이미 중요한 사회적 기능 가운데 일부이다. 대중이 예술문화를 향유하고 이를 통해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은 예술기관에 주어진 의무이며 사회 교육적 기능의 핵심이 된다. 이에 대중과의 거리차를 좁히고 일부 제한된 계층의 수용을 지양하며, 더 많은 국민이 고루 예술문화를 접할 수 있도록 예술 교육 프로그램을 효과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오늘날 공연예술단체와 그 작품이 실연되는 공연장은 대중의 문화활동을 활성화시켜주는 복합문화공간으로서의 기능이 요구되고 있다. 이러한 경향에 따라 최근 그들의 문화향수권리를 충족시키기 위하여 다양한 컨텐츠와 공간 그리고 예술작품을 제공하고 있다. 이에 일반인과 전문 인력을 대상으로 하는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 운영함으로써 사회교육기능을 부각시키고 있으며 아울러 공연예술 관객을 위한 시설 및 서비스 공간, 예술정보기능을 보강하여 관객에게 편리하고 다양한 양질의 문화체험을 만족시키기 위한 새로운 공간으로 거듭나고 있다. 이는 공연예술단체의 역할과 기능변화의 능동적 움직임으로 해석할 때, 대중의 이러한 미적 향수를 위한 예술교육 프로그램의 존재는 해외 경우 이미 시작되었고 하나의 긍정적인 문화사업으로 성장하고 있는 추세이다. 따라서 현재의 공연기관은 공연물 관람, 공연사진이나 비디오 전시 관람, 워크샾 예술 강좌(교육 프로그램) 수강 등의 다양한 활동을 위한 장소로 변모되었다. 이처럼 공연단체 및 기관은 과거와는 달리, 적극적으로 끊임없이 발전하려는 경향을 지닌 유기체로 볼 수 있다. 예술기관이 대중의 정서함양을 위한 바람직한 문화영역으로 활용되고 전문 인력의 체계적인 양성을 도우며 더 많은 잠재고객을 공연기관으로 흡수할 수 있도록 예술교육 프로그램의 기획안에 대하여 다각적으로 연구하고 발전방안을 모색함이 본 논문의 목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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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기관이 대중의 정서함양 문화영역으로 활용되고 전문 인력의 체계적 양성과 잠재고객을 공연기관으로 흡수하게 예술교육 프로그램의 기획안을 연구하고 발전방안을 모색하려고 문화향수권리를 충족시키기 위한 컨텐츠와 공간, 예술작품을 제공하며 일반인과 전문 인력 대상의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 운영하여 사회교육기능을 부각시키고 공연예술 관객을 위한 시설 및 서비스 공간, 예술정보기능을 보강하여 편리하고 다양한 양질의 문화체험 공간으로 거듭나고 있다. 공연기관은 공연물 관람, 공연사진, 비디오 전시 관람, 워크샾 예술 강좌 수강 등 여러 활동 장소로 변모되었고 공연단체 및 기관은 계속 발전하는 유기체로 본다. ",
"ABT의 교육프로그램은 크게 네 가지로, 어린이반(Programs for Schools), 무용수반(Programs for Dancers), 교사반(Programs for Teachers), 가족반(Programs for Families)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다음 표와 같다. ABT의 경우는 교육 대상이 광범위한데, 교육 목적에 맞게 훌륭한 안무가들로 성장할 수 있는 안무가 대상 프로그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대체로 ABT의 전문가들이 선정한 12세에서 16세 사이의 무용수들을 대상으로 한다. 그 외의 무용단의 경우에는 6세에서부터 18세 정도의 어린이와 청소년을 대상으로 입학시켜 교육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ABT의 경우에는 청소년과 가족 프로그램이 개설되어 있으며 이것은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무용에 대한 이해를 확산시키고자 교육하고 있는 것이며, 어린 이와 가족들이 무용을 감상하고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목적으로 가족 프로그램이 개설되어 있다. ABT 교육의 특징 중 하나는 예술 기획과 예술 행정에 대한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특징은 현시대의 공연예술에 대한 이 해를 정확히 하고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현대의 공연예술은 단지 작품을 만드는 것에만 그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작품을 기획하고, 행정을 잘 처리하는 것도 중요한 요소로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ABT의 교육과목에 기획과 행정이 첨가된 것은 시대의 흐름을 반영한 중요한 사례가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장점은 한국의 발레계에서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보다 긍정적인 검토를 거친 후 시행의 단계를 거쳐야만 국내 발레의 질적 양적 향상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긍정적인 변화는 발레를 전공하는 사람은 물론 행정이나, 교육 정책가들의 적극적인 연구를 통해서 비로소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ABT의 경우는 교육 대상이 광범위한데, 교육 목적에 맞게 훌륭한 안무가들로 성장할 수 있는 안무가 대상 프로그램이 있는 것으로 보이고 ABT 교육의 특징 중 하나는 예술 기획과 예술 행정에 대한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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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20100709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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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의 문학교육적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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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신화의 문학교육적 의미에 대해 탐구한 것으로, 먼저 신화를 보는 시각에 대해 살핀 후, 문학교육에서 유의할 사항 등에 대해 논의했다. 신화를 보는 시각은 대체로 역사적 접근, 제의적 접근, 구조적 접근, 심리적 접근으로 나뉘어졌으며, 그에 따라 신화의 문학교육적 의미로 상징적 해석 능력 확장, 정체성 찾기, 서사구조의 학습 등이 도출되었다. 첫째, 신화를 상징적으로 해석하기 위해서는 신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언어의 내적 의미를 파악해야만 한다. 흔히 신화에서 인격체나 자연현상, 동식물로 나타나는 많은 것들이 특수한 신성 체험과 관련되는 것들이다. 이런 상징적인 해석능력을 키우이 위해서는 설명을 시도하기보다는 학습자들이 주체적으로 탐구해 보도록 유도하는 일이 중요한 과제이다. 둘째, 신화 주인공은 신비 체험을 거친 후 완전히 거듭나는 것이 일반적이며, 이 과정에서 자신의 과업을 깨닫는데 그것이 바로 정체성 확인이다. 학습자가 먼저 신화 내용을 잘 파악한 후, 신화 주인공에 동일시하고 자신의 삶을 가다듬도록 한다면 특히 성장기의 학생들에게 주는 교육적 의미가 크다. 이 정체성은 성적(性的) 정체성이나 집단적 정체성까지 확장될 수 있다. 셋째, 신화 역시 서사문학이라는 점과 특히 유사한 내용의 작품이 많다는 점에 착안하여, 서사구조를 좀 더 효율적으로 학습하도록 할 수 있다. 신화를 비교하는 과정을 통해, 신화가 현세에 없는 질서를 희구하고 그 질서가 처음으로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핵심적 내용을 지식으로 일러주기보다는 다양한 학습활동을 통해 깨닫도록 유도하는 편이 효과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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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의 문학교육적에 대해 탐구하여 신화를 보는 시각을 살핀 후, 유의할 사항을 논의했다. 신화를 보는 시각은 역사적 접근, 제의적 접근, 구조적 접근, 심리적 접근으로 나눴고 신화를 상징적으로 해석하려면 신화에서 등장하는 언어의 내적 의미를 파악한다. 신화 주인공은 신비 체험을 거쳐 거듭나고 신화도 서사문학과 유사한 내용이 많다. 신화를 비교하여 현실에 없는 질서를 희구하고 질서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여준다.",
"물론 신화를 보는 시각은 참으로 다양하기 때문에 어떤 시각에서 접근하든 신화의 본질을 크게 훼손하지는 않을 것이다. 문학, 역사, 철학, 심리학 등등의 여러 학문 분야에서 신화를 연구대상으로 삼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적어도 신화가 ‘텍스트’로 국어 교과의 ‘읽기’나 ‘문학’ 영역에서 다루어질 때는 이 영역 내에서의 독자성이 드러나야만 한다. 신화가 사료(史料)로 쓰이기도 하고 사유방식(思惟方式)의 원형으로 읽히기도 하지만, 신화에서 역사적 사실을 묻고 인과관계를 따지게 하는 행위만으로는 문학교육의 본령에 닿을 수는 없다. 자칫하면 수업 시간에 신화를 읽히고 신화를 가르치지만 ‘신화 문학’에 근접하지 못하고 주변만 맴돌 위험이 다분한 것이다. 이 논문은 이런 점을 염두에 두고 신화의 문학 교육적 의미에 대해 탐구해보기로 한다. 이를 위해서 먼저 신화를 보는 시각을 몇 가지로 조망한 후, 거기에서 문학 교육적 접근 방법을 모색해 볼 것이다. 다음으로, 그 결과를 토대로 문학 교육적 입장에서 신화가 갖는 의미를 찾아보는 순서를 취하며, 취택되는 신화 작품이나 문학교육에서의 활용 사례 등은 현재 학교 교육 현장에서 쓰이는 자료를 중심으로 하여 필요에 따라 그 외의 자료를 첨가하기로 한다.",
"신화가 ‘텍스트’로 국어 교과의 ‘읽기’나 ‘문학’ 영역에서 다루어질 때는 이 영역 내에서의 독자성이 드러나야만 하며 이를 위해서 먼저 신화를 보는 시각을 몇 가지로 조망한 후, 거기에서 문학 교육적 접근 방법을 모색해 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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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20100709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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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동화의 장르적 성격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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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동화는 ‘환상’과 ‘동화’를 조합한 장르 이름이다. 따라서 환상동화의 장르적 성격은 ‘환상성’과 ‘동화성’에서 규명할 수밖에 없다. 한편 ‘동화성’은 ‘서사성’과 ‘어린이 친연성’으로 다시 나눌 수 있다. 동화는 어린이가 즐길 수 있는 서사로 정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환상동화의 서사라면 마땅히 환상을 매개로 하여야 한다. 이러한 이유에서, 환상동화의 장르적 성격은 환상성, 환상적 서사성 그리고 어린이 친연성으로 구체화하였다. 환상성의 본질은 초현실성 또는 비현실성이다. 그러나 서사를 이끄는 환상이라면 그 성격에 명료성과 제약성이 포함되어야 한다. 한편, 환상적 서사성의 본질은 문제적 상황성과 재귀성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환상석 서사가 궁극적으로는 현실적 의미를 구현하는 데 기여하여야 하므로 현실성 또한 그 성격의 하나로 제안하여야 한다. 이 결과, 환상동화의 장르적 성격은 다음과 같이 규정되었다. 환상동화는 현실세계와 다른 자연 법칙 또는 인간 법칙으로 창안한 환상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환상 논리로 제기된 문제를 해결한다. 이에 대한 어린이의 경험은 어린이의 현실적 삶을 풍요롭게 한다. 물론 어린이 친연성을 획득한 환상동화라야 그러한 현실적 의미를 구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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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동화는 ‘환상’과 ‘동화’를 조합한 장르여서 환상동화의 장르적 성격은 ‘환상성’과 ‘동화성’에서 규명하고 ‘동화성’은 ‘서사성’과 ‘어린이 친연성’으로 나누고 환상동화 장르적 성격은 환상동화는 현실세계와 다른 자연 법칙 또는 인간 법칙의 환상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환상 논리로 제기된 문제를 해결하여 어린이의 현실적 삶을 풍요롭게 한다. ",
"동화는 크게 현실 동화와 환상 동화로 나눌 수 있다. 현실 동화는 우리가 살고 있는 바로 이 세상에서 일어날 법한 사건을 이야기로 꾸민 동화이고, 환상 동화는 이 세상이 아닌 딴 세상에서나 일어날 법한 사건을 이야기로 꾸민 동화이다. 그러니까 현실 동화는 현실 세계에 관한 동화이고 환상 동화는 현실 세계가 아닌 딴 세계, 즉 환상 세계에 관한 동화라는 것이다. 현실 세계에 관한 동화는 현실 세계를 모방하는 동화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환상세계에 관한 동화는 모방할래야 모방할 대상이 없다. 따라서 환상 동화는 그 나름의 고유한 환상세계를 새로 창조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데 인간의 창조란 언제나 ‘어떤 있음’을 ‘또 다른 어떤 있음’으로 바꾸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즉, 환상 세계는 현실 세계를 자르고 붙이고 비틀고 부풀리고 오그라뜨리고 뒤집고 비틀어서 창조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전도이다. 이 결과, 현실 동화와 환상 동화는 이야기 대상의 측면에서는 ‘현실 세계-환상 세계’로 대립하고, 이야기 기법의 측면에서는 ‘현실 세계의 모방-현실 세계의 전도’로 대립한다고 말할 수 있다.",
"현실 동화는 현실 세계에 관한 동화이고 환상 동화는 현실 세계가 아닌 딴 세계, 즉 환상 세계에 관한 동화라는 것이며 즉, 환상 세계는 현실 세계를 자르고 붙이고 비틀고 부풀리고 오그라뜨리고 뒤집고 비틀어서 창조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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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20100709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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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정별 쓰기 전략과 쓰기 결과의 상관성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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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는 과정 중심 쓰기 상황에서 어떤 전략이 학습자가 쓴 완성글과 상관성이 높은지를 분석하고, 각각의 쓰기 전략이 쓰기 결과물에 반영되고 수용되는 양상을 밝히는 데에 그 목적이 있다. 연구의 결과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과정별로 사용한 전략 중 생각묶기 과정의 다발짓기 전략이 쓰기 결과물의 질을 높이는 데 특히 많이 기여한 것으로 나타났다. 둘째, 쓰기 전 단계의 전략 사용이 쓰기 결과물에 미치는 영향을 질적으로 분석해 본 결과, 생성한 아이디어를 완성글에 그대로 옮겨 놓는 경우보다는 아이디어를 새롭게 조직하고 첨가하며 필요에 따라 아이디어를 삭제하고 변형한 학생의 경우에 쓰기 결과물의 수준도 높았다. 셋째, 쓰는 중 단계에서는 동료 협의하기를 한 집단의 쓰기 결과물 수준이자기 수정을 한 집단보다 더 높았다. 협의하기를 한 경우, 동료의 조언을 자기조정과정을 거쳐 반영하였을 때 쓰기 결과물의 질이 더 높았다. 그러나 협의하기 결과가 우수하더라도 문체나 낱말 수준에서만 수정한 경우에는 쓰기 결과물의 평가 결과가 초고쓰기의 평가 결과와 달라지지 않았다. 협의하기를 하지 않은 경우, 쓰기 능력이나 자기조정 능력이 뛰어난 학습자는 협의하기를 하지 않았어도 쓰기 결과물의 수준이 높았으나 그렇지 못한 학습자는 쓰기 전 단계의 전략들을 수정, 보완하지 않고 그대로 나열하는 수준에 머무는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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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정 중심 쓰기 상황에 학습자 완성글과 상관성이 높은지 분석하고, 쓰기 전략이 쓰기 결과물에 반영, 수용되는지 밝히고 협의하기 결과가 좋지만 문체나 낱말 수준에 수정한 경우 결과가 초고쓰기 평가 결과와 바뀌지 않았다. 협의하기를 안하면 쓰기 능력, 자기조정 능력이 뛰어난 학습자는 협의하기를 안해도 쓰기 결과물 수준이 높았으나 그렇지 못한 학습자는 쓰기 전 단계 전략을 나열하였다.",
"결과 중심 접근에 비해 과정 중심 접근은 쓰기 행위를 일련의 문제 해결 행위로 보고 학습자들 각자가 쓰기 과제, 독자, 과정별 전략 등 다양한 문제에 접하여 이를 해결해 나가게 하였으며 그 과정에서 동료나 교사와 협의를 하기도 하고 협동을 통해 공동작품을 완성하게도 한다. 이처럼 과정 중심 접근은 쓰기 능력이 단순히 반복적인 연습에 의해 길러지는 기능이 아니며, 쓰기 행위는 필자의 역동적인 의미구성 행위라는 점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쓰기 교육에 대한 인식을 바꾸고 현장 쓰기 교육을 개선하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그러나 제도적 측면이나 체제상의 변화만큼 현장 쓰기 교육에서 과정 중심 접근의 본질과 지향에 다가서고 있는가 하는 물음에는 선뜻 답하기가 쉽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교과서에 제시된 흐름을 따르면 자연스레 쓰기를 잘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은 생겼을지 몰라도, 쓰기의 과정 접근이 지닌 의미가 무엇인지, 글의 특성에 따른 최적화된 과정별 전략이 무엇인지, 과정과 결과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해야 하는 것인지, 학생의 쓰기 결과물을 어떻게 다음 쓰기 학습에 환류시키고, 경우에 따라 어떤 진단과 처방을 내려야 할 것인지 등등에 대하여 많은 현장 쓰기 교육 관련 당사자들이 여전히 확신을 갖지 못하고 있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과정 중심 접근은 쓰기 능력이 반복적 연습으로 되는 기능이 아니며, 쓰기 행위는 필자의 역동적인 의미구성 행위라는 것을 강조하는 점에서 쓰기 교육에 대한 인식을 바꾸고 현장 쓰기 교육을 개선하는 데 기여했으나 제도적 측면이나 체제상의 변화만큼 현장 쓰기 교육에서 과정 중심 접근의 본질과 지향에 다가가는가 하는 물음에는 선뜻 답하기가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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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20100709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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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쓰기 수업 관찰 연구 -6학년 설득하는 글 쓰기 수업을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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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정 중심의 쓰기 수업은 단선적으로 이루어지는 결과 중심의 쓰기와는 다르게 쓰기 동기를 유발하고, 배경 지식을 활성화하여 쓸 거리를 찾아내는 활동, 아이디어를 생성하고 조직하는 과정에서 협의하기 등의 과정으로 구성원의 공동 사고 활동, 쓰기 중 또는 쓰기 후 쓴 글에 대한 평가를 통하여 다시 쓰기의 다른 과정으로 돌아갈 수 있는 회귀적 과정을 가져야 한다. 이 글에서는 초등학교 쓰기 수업 관찰과 교사와 학생과의 심층 면담을 중심으로 한 과정 중심 쓰기 수업 내용을 살펴보았다. 쓰기 전 활동은 쓰기에 대한 흥미 유발을 위한 관문 활동(gateway activity)으로 배경 지식을 활성화하고 동기를 유발할 수 있는 수업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협의하기 과정은 소집단 구성원들끼리 돌아가면서 간단한 자기 의견만 제시하여, 다른 학생들에게 호응을 얻기 힘들었으며 다른 사람의 사고를 자극하거나 쓸 내용에 보탬이 되는 내용이 잘 나타나지 않았다. 그리고 발표 활동도 자신의 글 내용에 도움이 되는 활동으로 인식하는 학생들이 거의 없었다. 수업 관찰 내용과 쓰기 교과서 구성을 볼 때, 총 9차시 동안 학생들이 완성해야 할 글은 총 6편이었다. 그리고 6편의 글을 완성하는 동안 같은 유형의 수업 과정을 반복하였으며, 학생들이 써야 양이 많아서 지겨움을 느꼈다. 또한 글을 쓰고 난 후 평가 과정이 부실하고, 한 번 쓰고 나면 끝난다고 인식하였다. 결론적으로 교실 현장에서의 쓰기 수업은 쓰기 전 활동, 쓰는 중 활동, 쓰기 후 활동이 유기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며, 회귀적이고 반성적 과정을 가지는 과정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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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쓰기 수업 관찰과 교사와 학생과 심층 면담을 한 과정 중심 쓰기 수업 내용은 쓰기 전 활동은 쓰기 흥미 유발의 관문 활동으로 배경 지식 활성화와 동기 유발 수업이 이루어졌다. 협의하기 과정은 소집단 구성원들끼리 간단한 자기 의견만 제시하여, 다른 학생들에게 호응을 얻기 힘들었고 다른 사람의 사고를 자극하거나 쓸 내용에 보탬이 되는 내용이 잘 나타나지 않았고 발표 활동도 자신의 글 내용에 도움이 되는 활동으로 인식하는 학생들은 없었다",
"이러한 과정 중심의 쓰기의 특징을 가진 것이 ‘설득하는 글쓰기’라 고 볼 수 있다. 설득하는 글을 쓰기 위해서는 글을 읽을 사람(독자)을 분석하게 되고, 다른 구성원들과의 협의를 통하여 의미를 공동으로 구성한다. 그리고 설득한다는 것은 어떠한 문제에 대한 해결의 과정으로 볼 수 있으며, 설득을 위해서는 한 번 쓴 글을 다시 쓰거나 쓰기 과정으로 되돌아가기도 하는 회귀적(recursive) 과정을 거쳐야 되기 때문이다. 이 연구에서는 실제로 초등학교 6학년 교실 수업 중, ‘설득하는 글쓰기’ 과정에서의 쓰기 수업이 아이디어를 생성하고 조직하는데 다른 소집단 구성원들과 협의하기 과정을 통한 공동 사고를 통하여 협동적으로 이루어지는지를 알아보고, 글을 쓰는 중이나 쓰고 난 후에 다시 쓰기 계획을 세우거나 고쳐 쓰는 과정으로 다시 회귀할 수 있는 쓰기 수업이 이루어지는지를 알아보려고 한다. 또한, 과정 중심의 쓰기 수업이 이루어질 때의 쓰기 전, 쓰기 중, 쓰기 후 모습은 어떠하고, 수업 과정의 특징은 무엇인지 알아보려고 한다.",
"과정 중심의 쓰기의 특징을 가진 것이 ‘설득하는 글쓰기’라 고 볼 수 있고 설득한다는 것은 어떠한 문제의 해결 과정으로 볼 수 있으며, 설득을 위해서는 한 번 쓴 글을 다시 쓰거나 쓰기 과정으로 되돌아가기도 하는 회귀적 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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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20100709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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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이전 호남지방의 장로교 확산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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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종교의 역할은 기존의 문화지역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기 보다는 오히려 기존의 문화지역을 유지하는 것 중 하나로서 작용하는 것 같다. 호남 문화지역에서 가장 큰 변화는 장로교의 확산과 관련이 있다. 본 논문은 1894~1940년 동안 호남지방에서 장로교가 확산되는 과정을 설명하여 장로교의 특성을 이해하고자 한 것이었다. 호남지방의 장로교 확산과정은 3단계로 구분되었다. 첫째, 정착단계, 선교사가 도착하여 선교기지를 구축하는 1894~1904년의 11년의 기간으로, 항구와 연계되는 수로를 따라 서부 평야지대를 중심으로 장로교는 확산되었다. 그래서 교회는 포구 및 수로변에 설립되었다. 둘째, 확산단계, 문화, 행정 등의 상징적인 도시인 전주에 교두보가 확보되고 주요지역에 교회가 설립되는 1905~1923년의 약 18년의 기간으로, 전주, 광주, 나주 등을 교두보로 내륙지방, 해안지방으로 인접효과, 계층효과, 누적효과의 원리로 장로교가 확산되었다. 셋째, 정체단계, 3ㆍ1 독립운동 이후 일제의 교회탄압, 선교부의 재정악화 등으로 인해 교회설립수가 감소되는 1924~1942년의 시기로 동부 산간지대와 도서지방으로 장로교가 지체 또는 정체를 보이며 변화를 느끼지 못할 만큼 확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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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교 역할은 문화지역을 변화시키기 보다 기존의 문화지역을 유지하는 것으로 작용한다. 호남 문화지역에 가장 큰 변화는 장로교의 확산과 관련이 있고 1894~1940년 호남지방에서 장로교 확산 과정을 설명하여 장로교 특성을 이해하는 것이었고 호남지방 장로교 확산과정은 3단계로 구분했다.",
"호남지방은 충청도나 경상도에 비해 개신교 전래가 늦었음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으로 빠르게 확산되어 오늘날 한국 장로교 인구의 약 30%를 점유하는 가장 큰 교단을 형성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종교적 특징과 관련해 호남지방의 주요 종교 간의 분포실태와 변화추세를 파악하고자 하는 연구라든가 종교가 사회통합에 미치는 영향과 문제점들을 분석하고자 하는 연구, 선교사적 관점에서 개신교가 어떤 과정을 거쳐 한국에 수용되었고 교회가 설립되었는지의 연구들은 축적되어 있다. 이러한 연구들은 개신교의 상황을 이해하는 데 의의가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시기별, 교단별, 지역별 차이에 관한 실증적인 분석, 역사적 사실의 규명, 지역 교회사에 대한 이해 등 추가적인 설명이 요구되고 있다. 특히 지역 교회사를 다루는 연구들은 현재의 모습으로 나타나게 된 원인들의 설명에는 한계를 보이며, 개신교 성장요인을 다룬 연구들도 토대가 되는 각 지방의 수용과 전파에 관한 체계적 검토가 소홀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이와 같은 한계점을 보완하기 위하여 호남지방을 사례로 장로교의 확산과정을 연구하고자 한다.",
"호남지방의 주요 종교 간의 분포실태와 변화추세를 파악하는 연구라든가 종교가 사회통합에 미치는 영향과 문제점들을 분석하는 연구, 선교사적 관점에서 개신교가 어떤 과정을 거쳐 한국에 수용되었고 교회가 설립되었는지의 연구들은 축적되어 있어 개신교의 상황을 이해하는 데 의의가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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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20100709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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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주삼의 생명과 자연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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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주삼은 자연의 순환을 법칙으로 이해하는 전제를 한다. 그러나 그 법칙적 순환은 결코 자연의 원리나 항구적으로 되어진 운행질서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총, 혹은 피조세계에 대한 한없는 사랑에 의한 것이라는 지극히 기독교적인 결론을 내린다. 그리고 이러한 자연은 인간의 노력에 의해 긍정적으로 개척되어야 하고 그것이 인류문명과 인간의 윤택한 복락을 위해 이용되어야 함 또한 은총의 최종단계로 보았다. 그의 과학이해는 근대 과학의 발견이나 성과를 일단 최대한 긍정하였다. 더구나 기독교사의 과장 속에 위대한 과학적 발견, 예를 들어 코페르니쿠스나 갈릴레이,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 나아가 다윈의 진화론까지, 교회가 핍박하고 반대한 행적을 고백적으로 비판하는 입장에 섰다. 이러한 양주삼의 입장은, 당시 과학만능주의의 현실에서 종교와 과학, 특히 기독교 신앙과 과학적 사고가 충돌하지 않고 공존하며, 인류 번영에 참여해야 한다는 시대적 요구가 반영된 것으로 보여진다. 다만 문제는 진화론에 대한 태도이다. 진화론적 이해의 한 이론인 ‘우승열패론’을 인간에게 적용시키는 것에 대한 반대 입장을 통해 부분 부정의 입장을 취했다. 다만 그 반대의 이유도 창조질서 자체가 진화론적 과정을 경유해서가 아니라 이 이론을 인간에게 적용했을 때 오는 ‘당위’나 ‘가치’의 문제를 염려한 입장이어서 지극히 제한적이다. 한편 ‘유물론’에 대한 반대 견해는 보다 명확한 것으로 보인다. ‘마음’과 ‘물건’, ‘사상’과 ‘지위’, ‘눈’과 ‘볼 것’이라는 대비적 비유를 들어 어느 것이 더욱 중요하며, 어느 것이 존재가치에서 우위인 지를 예로 든 이론을 이용하여 철저히 반대하는 의견을 견지하였다. 이러한 양주삼의 자연, 과학, 유물론에 대한 이론은 그의 ‘지상천국론’을 지지하는 기반이 된다. 그의 모든 자연이해와 과학론은 긍정적 테제를 지니고 있고, 이는 현실의 부정이나 내세피안의 희구라는, 그와는 반대적인 신학경향의 흐름과는 달리, 인간의 노력과 선의에 따라 바로 이 땅 위에 천국이 건설될 수 있다는 낙관적 태도임을 알 수 있다. 다만 이러한 그의 자연이해, 나아가 지상천국론이 역사이해의 부분에서는 어떻게 해석되고 정리될 수 있는지는 또 다른 연구주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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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주삼의 입장은, 과학만능주의의 현실에서 기독교 신앙과 과학적 사고가 공존하며, 인류 번영에 참여해야 한다는 시대적 요구가 반영된 것으로 보여진다. 이러한 양주삼의 이론은 그의 ‘지상천국론’을 지지하는 기반이 된다. 그의 모든 자연이해와 과학론은 긍정적 테제를 지니고, 현실의 부정이나 내세피안의 희구라는 신학경향의 흐름과는 달리, 인간의 노력과 선의에 따라 이 땅 위에 천국이 건설될 수 있다는 낙관적 태도임을 알 수 있다. 다만, 지상천국론이 역사이해의 부분에서 어떻게 해석, 정리될 수 있는지는 또 다른 연구주제가 될 것이다.",
"이 글만으로 보면, 자연의 순환이나 인생의 선악을 법칙적, 혹은 ‘인과응보’(因果應報)적으로 보는, ‘자연적 자연관’의 일단을 나타내기도 한다. 다만 ‘봄기운’을 ‘하나님의 사랑’으로 비유한 것과 같은, 그 ‘법칙’이나 ‘인과성’ 자체가 하나님의 사랑이며, 운행하시는 섭리로 보는 고백이 녹아들어 있다. 이것이야말로 지극히 기독교적인 자연관이며, 역사관이 아닐 수 없다. 즉 봄ㆍ여름ㆍ가을ㆍ겨울이나, 꽃이 피고 짐과 같은, 철저히 법칙적인 순환이나 윤번의 질서 같은 것도 그것이 기적과 같은 하나님의 사랑이나 은총이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전제가 있다면 이는 기독교의 자연이해에 근거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이와 같은 양주삼의 자연이해 안에는 시대적 상황 안에서 역사의 수난을 경험하고 있는 이들에게 ‘섭리적 희망’을 제시하고 있다는 적극적인 해석이 가능하게도 보인다. 이러한 양주삼의 자연관은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현상 이해와 함께 자신의 조국, 곧 한국의 자연과 환경에 대한 애정 어린 평론으로 진전된다. 이는 자연관과 더불어 나타나는 역사적 이해이며, 당시 자신이 처한 역사적 환경에 대한 극복과 희망을 되살리고자 하는 의미도 함축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양주삼의 자연관은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현상 이해와 함께 자신의 조국, 곧 한국의 자연과 환경에 대한 애정 어린 평론으로 진전되고 이는 자연관과 더불어 나타나는 역사적 이해이며, 당시 자신이 처한 역사적 환경에 대한 극복과 희망을 되살리고자 하는 의미도 함축된 것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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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20100709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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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산온의 교육선교 활동과 신사참배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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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1905년에 내한해서 1936년 신사참배문제로 미국으로 출국해야 했던 평안도 지역의 대표적 선교사였던 맥큔(George S. McCune, 尹山溫) 선교사를 다루었다. 윤산온은 파크대학의 설립자의 딸과 결혼했고 그 자신이 파크대학 출신이자 교수로 일을 했다. 그는 한국에 교육선교사로 와서 파크대학의 자조부처럼 일과 학업을 병행하는 제도를 평안도 지역의 교육기관에 접목시켰다. 처음에는 선천의 신성학교에 후에는 평양의 숭실학교와 숭실전문학교에 이것을 소개했다. 이러한 일과 학업의 병행은 당시의 평안도의 지역적 특성, 즉 자주적이고 위계질서가 강하지 않은 중산층문화에 하나의 촉매작용을 해서 후일 이 지역에서 사업가들이 많이 나오게 하는데 일조했다. 그의 신학적 입장은 보수적이었지만 그가 1912년에 있었던 데라우치 암살미수사건 혹은 105인 사건의 주모자로서 일본인들에게 알려져 있었던 데서 보듯이 그는 한국인들의 민족주의적 열정에 일정한 공감을 가졌다. 물론 그것이 그가 늘 반일적이었다는 것은 아니다. 그의 활동에서 보듯이 근본적으로 교회의 확장과 기독교 교육에 그의 삶은 집중되었지만 30년대 중반 점점 더 강화되어가는 일제의 전체주의 체제에서 그의 의지와 상관없이 종교의 자유 때문에 식민지 당국과 충돌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이른바 1935년 말에서 1938년까지 진행된 신사참배문제였다. 윤산온은 그 사건의 한 가운데 있었는데 당시 미국영사관과 일본 지역의 선교사들은 평양 지역의 북장로교의 이러한 입장에 동조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추방은 바로 미국과 일본 당국의 갈등의 시작을 알리는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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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내한해서 1936년 신사참배문제로 미국으로 출국했던 평안도 지역의 선교사였던 맥큔(尹山溫) 선교사를 다루었다. 그는 교육선교사로 와서 파크대학의 자조부처럼 일과 학업을 병행하는 제도를 교육기관에 접목시켰다. 윤산온은 그 사건에 있었는데 미국영사관과 일본의 선교사들은 평양 지역의 북장로교의 입장에 동조하지 않았다. 그의 추방은 미국과 일본의 갈등의 시작의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잘 알려져 있듯이 그는 1935년부터 시작된 신사참배 문제의 중심인물이다. 당시 이 문제에 대한 윤산온의 내적 입장이 어떠했는가에 대한 것과 신사참배 문제를 둘러싼 갈등을 한국인 대 일본인만이 아니라 선 교사들 사이 그리고 한국인들 사이에 복잡한 대립선이 존재했다는 것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 한편 신사참배 문제에 대해 선교사들 입장과 달리 당시 서울에 있었던 미국영사관 측의 반응에 대해서는 기존에 거의 알려져 있지 않았다. 왜 윤산온이 단숨에 추방될 수 있었는가는 미국영사관의 태도와도 관련이 있다. 신사참배는 신사에 봉안된 천황의 선조와 명치 천황을 예배하는 문제로서 결국 일본의 천황제를 평가하는 문제이기 때문에 이 문제에 대한 미국 측의 반응은 전후 일본 천황제에 대한 미국 정책의 한 단면을 이해하게 한다. 이 문제와 관련해서 미국 무성 극동국과 서울 영사관 사이에 오고 간 문서들과 평양지역 선교사들과 북장로교 해외 선교부 사이에 오고 간 문서들이 최근 한국학계에 소개되었는데 이것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윤산온의 내적 입장이 어떠했는가에 대한 것과 신사참배 문제를 둘러싼 갈등을 한국인 대 일본인 뿐 아니라 선교사들 한국인들 사이에 복잡한 대립선이 존재했고 한편 신사참배 문제에 대해 선교사들 입장과 달리 당시 서울에 있었던 미국영사관 측의 반응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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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20100709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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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시기 기독교 외원단체의 구호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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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이 시작되면서 구호를 필요로 하는 전쟁 난민들이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1952년 3월 통계에 의하면, 전쟁으로 집을 잃은 피난민, 전쟁으로 물자상실이나 지원수단이 파괴되어 고통을 받는 전쟁 이재민, 빈곤과 인플레이션으로 괴로움을 받는 지방 빈민이 남한 인구 21,000,000명 가운데 절반이나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외국의 대규모 원조가 시작되었으며, 원조단체 중에서도 외국의 기독교회와 구호단체들은 한국교회에 다량의 구호금품을 보내거나 직접 구호활동가들을 보내 구호활동에 나섰다. 이 단체들은 40여 개에 달했으며, 민간 구호단체의 대부분을 차지하였다. 이 글은 한국전쟁 시기 및 전쟁 직후 활동한 기독교 외원단체들의 내한과 구호활동 과정을 살펴보고 그 중에서도 미국과 유럽 프로테스탄트 교회의 구호사업을 대변했던 기독교세계봉사회의 활동을 정리하는 데 목적이 있다. 전시에 내한한 외원단체들은 한국교회와 밀접한 관련을 맺어 온 미국교회에 속한 단체가 가장 많았다. 교파는 장로교, 침례교, 나사렛교회, 메노나이트, 퀘이커, 동양선교회, 감리교, 안식교, 유니테리언교회, 루터교, 천주교 등 다양했다. 구호품을 가장 많이 전달하고 구호활동을 가장 활발히 전개한 기독교 외원단체는 미국 가톨릭교회가 운영하는 가톨릭구제위원회와 미국기독교교회협의회에 속한 기독교세계봉사회였다. 기독교세계봉사회는 세계교회협의회(WCC)의 구호활동도 대행하였다. 기독교세계봉사회의 한국 책임자는 헨리 D. 아펜젤러 목사였다. 기독교 외원단체들은 제한된 자원과 구호의 긴급성 때문에 응급한 구호사업을 중심으로 활동했으나 보건사업에도 손을 대었다. 기독교세계봉사회는 피난민들을 위한 사업과 아동, 전쟁미망인, 부상자 등을 위한 구호사업에 역점을 두었다. 전시의 구호활동은 사회적 약자들을 보호하는 사업이었다. 이 시기에 외국 기독교 외원단체들을 통해 전개된 구호 및 복구 활동은 한국사회에 대한 봉사의 양과 규모에서 한국교회 초기에 있었던 외국교회들의 교육과 의료활동을 훨씬 능가하는 것이었으며 한국사회에 대한 대규모 봉사의 재현이었다. 외원단체들은 구호 활동을 통해서 한국인들에게 사회봉사의 중요성을 알려주는 사회교육의 기능도 담당하였다. 기독교 외원단체의 영향은 여러 분야에서 다양했으며 부정적인 영향도 있었다. 미국으로부터의 엄청난 양의 원조는 미군의 참전과 함께 전후의 한국인들에게 미국이 일종의 구원국가로 보이게까지 했으며 이러한 인식은 외원단체의 최대의 수혜자였던 교회에 아직까지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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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한국전쟁 및 직후 활동한 기독교 외원단체들의 내한과 구호활동 과정을 살펴보고 미국과 유럽 프로테스탄트 교회의 구호사업을 대변했던 기독교세계봉사회의 활동을 정리하고 있다. 구호품을 가장 많이 전달하고 가장 활발히 전개한 미국 가톨릭교회의 가톨릭구제위원회와 미국기독교교회협의회에 속한 기독교세계봉사회였다. 이 시기에 외국 기독교 외원단체들의 구호 및 복구 활동은 봉사의 양과 규모에서 한국교회 초기에 있었던 외국교회들의 교육과 의료활동을 능가하는 것이었으며 한국사회에 대한 대규모 봉사의 재현이었다.",
"한국전쟁이 시작되면서 많은 사회 문제들이 발생하였다. 군인만 아니라 무고한 양민들이 목숨을 잃거나 다치는 일이 비일비재하였다. 부모를 잃은 고아들이 거리를 헤매고 전쟁으로 남편을 잃은 수많은 주부, 독립적인 생활능력을 상실한 전상자들이나 장애인들, 그 밖에도 삶의 터전을 잃고 굶주림에 시달리는 전쟁 난민들도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1952년 3월 통계에 의하면, 전쟁으로 집을 잃은 피난민이 2,618,000명, 전쟁으로 물자상실이나 지원수단이 파괴되어 고통을 받는 전쟁 이재민이 3,420,000명, 전쟁과 관계는 없으나 가난과 인플레이션으로 괴로움을 받는 지방 빈민이 4,368,000명, 합해서 10,406,000명이 구호대상자였다. 이 숫자는 한국인의 절반이 구호를 필요로 하는 상황에 처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1951년 당시 남한의 전체 인구는 약 21,000,000명이었다. 그러나 한국 정부나 민간단체는 그런 상황에 적절히 대응할 수 있는 여력이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외국의 대규모 원조가 시작되었으며, 이 원조는 국가 차원에서, 국제연합 차원에서 그리고 민간 원조단체의 차원에서 이루어졌다. 민간 원조단체 중에서도 외국의 기독교회와 구호 단체들은 어느 단체들보다도 더 활발히 한국교회에 다량의 구호 금품을 보내거나 직접 구호 활동가들을 보내 구호 활동에 나섰다. 이 단체들은 40여 개에 달했으며, 민간 구호단체의 대부분을 차지하였다. 그중에서도 전쟁 이후 가장 많은 구호 활동을 펼친 단체는 미국 가톨릭 복지위원회 산하의 가톨릭구제위원회(Catholic Relief Service)와 미국 기독교교회협의회에 속한 기독교세계봉사회(Church World Service)였다.",
"한국전쟁이 시작되면서 많은 사회 문제들이 발생하였고 군인만 아니라 무고한 양민들이 목숨을 잃거나 다치는 일이 비일비재하였다. 민간 원조단체 중에서도 외국의 기독교회와 구호 단체들은 어느 단체들보다도 더 활발히 한국교회에 다량의 구호 금품을 보내거나 직접 구호 활동가들을 보내 구호 활동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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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20100709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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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시모 사건’의 경위와 성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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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시모 사건'은 한국기독교사상 가장 불미스러운 사건의 하나이다. 하지만 그동안 이 사건은 실제보다 과장되어 알려져 왔다. 허시모가 화학약품으로 소년의 얼굴에 ‘도적’이라는 글씨를 쓴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염산이 아닌 초산은이었고, 영원히 자국을 남기려는 의도는 아니었다. 그 동안 이 사건의 경위에 대해서는 별다른 연구가 없었다. 당시 신문에는 관련 기사가 많이 실려 있는데, 이 글에서는 이를 통해 사건의 진상을 살펴보고 그 영향과 반향, 그리고 재판과정을 알아보고자 했다. 이 사건은 허시모 개인은 물론 그가 소속되어 있는 안식교, 나아가 선교사들과 한국교회를 궁지에 몰아넣었다. 사건이 불거졌을 때 허시모가 솔직히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했다면 그 파장이 그렇게 크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몰래 피해자측과 만나 합의를 본 것으로 사건을 마무리하려 했고, 합의와 관계없이 이 사건은 도덕적윤리적 문제, 나아가 인종차별문제로 비화되었다. 여러 언론과 사회단체에서 그를 성토했고, 일본의 우익들도 그를 비난했다. 1920년대 들어와 터져 나온 선교사들의 비행과 추문은 은연중 그들이 품고 있던 백인우월주의를 보여준다. 그리고 이 사건은, 세계각처에 파송되는 한국 선교사들이 가슴에 새겨야 할 반면교사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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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시모가 화학약품으로 소년의 얼굴에 ‘도적’이라는 글씨를 쓴 사건은 허시모 개인 및 소속된 안식교, 나아가 선교사들과 한국교회를 궁지에 몰아넣었다. 하지만 그는 몰래 피해자측과 합의를 본 것으로 사건을 마무리하려 했고, 합의와 관계없이 도덕적윤리적 문제, 인종차별문제로 비화되었다. 이는 세계각처에 파송되는 한국 선교사들이 반면교사로 새겨야 한다.\r\n",
"허시모의 진술은 법정에서 영어를 일어로 통역했고 이를 다시 국어로 번역한 것이며, 판결문은 일어로 된 것을 국어로 번역했을 것이다. 따라서 통역과 번역 과정에서 내용이나 표현이 약간 바뀌었을 가능성도 있어, 전적으로 정확한 것이라고 단언하기는 주저된다. 어쩌면 이 내용들은, 허시모와 김명섭의 어머니 사이에 있었던 대화의 중간 과정이 생략된 결과만일 수도 있다. 조심스러운 가정이지만, 위의 자료들이 일단 모두 정확하다고 간주하면 다음과 같이 추리할 수 있다. 허시모는 불려온 김명섭의 어머니에게, 경찰서에 고발하지는 않을 테니 5원을 내거나 두 뺨에 글씨를 쓰거나 택일하라고 한다⑴. 어머니는 돈이 없다고 하자, 허시모는 5원을 2원으로 깎아주고 대신 2주일 동안 소년에게 노동을 시키겠다는 제안을 한다⑵. 그러나 어머니는 2원마저 낼 형편이 안 된다고 했고⑶, 일체의 금전적 배상을 받지 못하게 된 허시모는 최후의 수단으로 소년의 두 뺨에 글씨를 쓰겠다고 한다. 소년의 어머니는 글씨가 2주쯤 뒤면 없어진다는 허시모의 말을 믿고 그렇게 하도록 한다⑶. 글씨가 지워지지 않자 허시모를 찾아간 김명섭에게 허시모는 1주일 동안 노동을 시키려 했다고 했지만⑴ 실제로 노동은 하지 않았다.",
"허시모의 진술은 법정에서 영어를 일어로, 이를 다시 국어로 번역한 것이며, 판결문은 일어를 국어로 번역했기에 통역과 번역 과정에서 내용이나 표현이 약간 변형될 가능성도 있어, 전적으로 정확한 것이라고 단언하기는 주저된다. 어쩌면 이 내용들은, 허시모와 김명섭의 어머니 사이에 있었던 대화의 중간 과정이 생략된 결과만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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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20100709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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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식민지시기 문학검열과 원본 확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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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식민지 시기 한국문학이란 검열당국, 인쇄자본, 작가, 독자 등 다양한 주체들의 다양한 의도와 노력의 상호 영향관계 속에서 형성된 것이었으며 그 다양한 의도는 텍스트들에 명백하게 또는 숨어있는 채로 나타나 있다. 당시의 텍스트들은 원고, 편집본 원고, 교정쇄 검열본, 납본물, 검열전 발송본, 검열결과의 발매본, 재검열본 등 생성단계에 따라서 다양하다. 같은 작품이라고 하더라도 어느 판본이냐에 따라서 조금씩 다르다. 이 편차들은 다양한 주체들의 상호작용이 다양하게 변주된 결과이며, 따라서 면밀한 대조연구가 필수적이다. 또한 복수의 판본이 남아있지 않은 경우라 하더라도, 그 판본이 어느 단계에 있는 것인가를 염두에 둔 채로 연구를 수행해야 한다. 당대에는 서너 사람밖에 읽을 수 없는 텍스트가 있는가 하면, 검열을 거부한 채로 출판된 텍스트도 있고, 처음에는 허용되다가 나중에는 금지된 텍스트도 있기 때문이다. 이 논문에서는 원본확정을 위한 기초적 작업으로서 인쇄된 텍스트를 검열본(교정쇄 검열본 및 납본 검열본), 시중 유통본, 영인본, 해외본으로 나눠 살폈다. 그 결과 가장 믿을 수 없는 것은 영인본임에도 실제의 연구에서는 이를 주로 활용하고 있음을 문제로 제기하였다. 또한, 가장 중요한 자료는 국립중앙도서관에 주로 소장되어 있는 검열본임을 밝힐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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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식민지 시기 한국문학이란 검열당국, 인쇄자본 등 다양한 주체들과 의도, 노력의 상호 영향 속에서 형성된 것이었으며 그 의도는 텍스트들에 명백하게 또는 숨어 있다. 이 편차들은 다양한 주체들의 상호작용이 변주된 것이며, 대조연구가 필수적이다. 또한 복수의 판본이 남아있지 않더라도, 어느 단계에 그 판본이 있는 것인가를 염두에 둔 채로 연구를 수행해야 한다.",
"식민시기 일제는 조선의 사상통제를 위해 다양한 수단을 동원했다. 그 중에서도 문학연구와 관련하여 가장 중요한 것은 검열이었다. 총독부 경무국도 서과에서 주로 담당한 검열을 거치지 않고서는 어떤 출판물도 공식적으로 출간될 수 없었다. 따라서 작가들은 검열을 의식하여 작품을 미리 조정하지 않을 수 없었으며, 또한 검열의 결과에 의해 이리저리 변형된 것이 매우 많다. ‘내 작품의 3분의 1쯤은 검열 때문에 잃어버렸다’는 김동인의 술회는 다소 과장의 기미가 있긴 한대로 그 단적인 표현이다. 채만식은 “(내 작품의 )가장 정확한 독자의 수는 나 자신과 문선 직공한 사람과 교정보는 이 한 사람과 검열관 한 사람 총합 네 사람”에 불과하다고 야유하고 있으며, 이태준은 방정환의 죽음을 애도하면서 “이젠 그대에겐 검열 난의 고통도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굳이 유명짜한 문인들의 말을 빌려올 것도 없이, 검열의 흔적을 “벽돌 신문”, “마마자국” 등으로 비유하는 은유가 폭넓게 쓰였음만 보더라도 저간의 사정은 짐작할 수 있다. 게다가 구비문학이 문자로 정착되는 과정에서도 일제의 검열체제가 작동한 측면이 적지 않다고 보아야 할 것이며, 또한 문예나 학술이 정치 부문에 비해 상대적으로 융성하게 된 중요한 까닭 역시 신문지법과 출판법의 구분에 의해 ‘정치 및 시사’ 부문을 억압했던 검열정책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문학연구와 관련하여 가장 중요한 것은 검열인데 작가들은 검열을 의식하여 작품을 미리 조정하지 않을 수 없었으며, 또한 검열의 결과에 의해 이리저리 변형된 것이 매우 많다. ‘내 작품의 3분의 1쯤은 검열 때문에 잃어버렸다’는 김동인의 술회는 다소 과장의 기미가 있긴 한대로 그 단적인 표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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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20100709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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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ML의 주체 기반 암호화를 이용한 콘텐츠 패키지의 접근 제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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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ML 문서가 웹 문서의 표준으로 자리 잡음에 따라 많은 정보들이 XML 문서 형식으로 표현되면서 XML 문서의 보안에 관한 요구도 커지고 있다. 현재까지의 XML 보안에 관한 연구는 암호화와 전자 서명 같은 통신상의 보안에 관한 연구가 중심이 되었으나 XML 문서가 방대해지고 복잡해짐에 따라 XML 문서에 대한 통신상의 보안뿐 아니라 관리적인 보안이 필요하게 되었다. 하지만 XML 문서의 암호화는 단순한 통신상의 보안만을 제공할 뿐 관리적 보안 요소인 다양한 사용자와 다양한 접근 권한 정책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본 논문에서는 XML 문서의 보안을 위해 주체별 권한 정책을 반영한 접근 제어를 보장하는 주체 기반 XML 문서의 암호화 기법을 제안한다. 접근 제어를 보장하는 암호화를 수행함으로써 다양한 사용자의 다양한 권한 정책을 반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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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까지는 XML 보안 연구는 암호화와 전자 서명이 중심이 되었으나 XML 문서가 방대하고 복잡해져 통신상의 보안뿐 아니라 관리적인 보안이 필요하게 되었다. 하지만 암호화는 통신상의 보안만을 제공할 뿐 관리적 보안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XML은 웹 환경에서 데이터를 표현하기 위한 마크업 언어이다. 이러한 XM은 SGML에서의 복잡성을 제거하고, HTML에서의 고정된 태그의 한계에서 벗어나 사용자가 문서 구조를 정의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장점 때문에 W3C에서는 XML을 웹 데이터의 표준으로 제정했다. XML의 표준화 이후 많은 데이터가 XML로 표현되기 시작했고, 현재는 웹상에 정부나 기업 등의 다양한 XML 데이터가 존재하고 있다. 웹상에 존재하는 XML 문서의 정보는 네트워크를 통해 분산되고 공유되므로 XML 문서 정보의 유출을 막기 위한 기밀성 보장이 매우 중요한 보안의 요구 사항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기밀성의 보장은 많은 응용에서 중요한 부분이다. 본 논문은 암호화와 접근 제어를 통합함으로써 전송 계층 상의 보안뿐만 아니라 사용자의 차별적 접근을 허용하는 관리상의 보안 요구 사항을 만족시키고자 한다. 암호화에 접근 제어 정책을 반영하는 방법은 문서에 모든 권한을 반영하여 주체에 따른 접근 권한에 따라 같은 주체에게 허용된 문서의 부분들을 하나의 키로 암호화한다. 이렇게 주체 기반 암호화를 수행하게 되면 기존의 노드 단위 암호화로 발생했던 문제점인 키의 생성과 암호화 회수를 단축할 수 있다. 또한 권한의 평가가 사용자가 요청한 후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암호화 수행 과정에서 이루어지므로 기존 접근 제어의 복잡하고 반복적으로 수행되었던 권한 평가의 비용을 줄일 수 있다.",
"웹상에 존재하는 XML 문서의 정보는 네트워크를 통해 분산되고 공유되므로 XML 문서 정보의 유출을 막기 위한 기밀성 보장이 매우 중요한 보안의 요구 사항으로 자리 잡게 되었으며 암호화에 접근 제어 정책을 반영하는 방법은 문서에 모든 권한을 반영하여 주체에 따른 접근 권한에 따라 같은 주체에게 허용된 문서의 부분들을 하나의 키로 암호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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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20100709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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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회의 전후 한국 독립운동 진영의 대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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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회의에 임하는 한국 독립운동자들의 태도는 단일하지 않았다. 이승만을 필두로 하는 민족주의 기호파 세력은 워싱턴회의에서 한국 독립에 유리한 결정이 채택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들은 한국 대표단 파견을 주도했다. 안창호가 이끄는 서도파 세력은 달랐다. 워싱턴회의가 한국 독립에 큰 힘이 되지 못하리라고 보았다. 그들의 예측은 좀더 냉정했고 실제에 가까웠다. 그들은 대표단 파견 전술을 후원하는 데에 머물렀다. 사회주의 세력들은 워싱턴회의에 대하여 아무런 기대를 갖지 않았다. 하지만 상해파 고려공산당 국내부 세력은 달랐다. 그들은 한국의 독립에 도움이 된다면 소비에트 러시아와 미국 양쪽 다 두루 활용할 수 있다는 실용적인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들은 다른 사회주의자들에게서 격렬한 비난을 받았다. 워싱턴회의가 끝난 뒤 한국 독립운동은 퇴조기에 접어들었다. 이로인해 독립운동자들은 운동 방향을 바꿔야 했다. 민족주의 기호파 세력과 상해파 공산당은 문화운동을 표방했다. 이 운동은 한때 큰 각광을 받았다. 그러나, 상해파 이외의 사회주의 세력들은 문화운동론을 타협적, 기회주의적이라는 이유로 비난했다. 급기야 1922년 이후에는 사회주의 운동의 주도권이 상해파로부터 다른 그룹으로 옮겨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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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을 필두로 민족주의 기호파 세력은 워싱턴회의에서 한국 독립에 유리한 결정이 채택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안창호의 서도파는 한국 독립에 큰 힘이 되지 못하리라 보았으며, 사회주의 세력들은 아무런 기대를 갖지 않았다. 하지만 상해파 고려공산당 국내부 세력은 독립에 도움이 된다면 러시아와 미국 다 활용할 수 있다는 실용적인 생각을 갖고 있었다.",
"보기를 들어보자. 워싱턴회의 개막 당일인 1921년 11월 11일에 동아일보』 는「화성돈회의에 寄하노라」라는 사설을 실었다. 이 사설에는 워싱턴회의를 바라보는 한국인의 기대감이 완곡한 표현에 실려서 잘 드러나 있다. 이 사설의 키워드는 ‘평화였다. 사설은 워싱턴회의가 극동의 평화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을 뜨겁게 기대한다고 썼다. 이 사설에 따르면 극동의 평화 보장은 현상 유지와는 양립할 수 없는 일이다. 극동의 현상을 그대로 유지하고서는 평화를 도모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질병의 원인을 남겨둔 채 신체의 건강을 바랄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한다. 극동의 평화는 극동 각 민족의 경제적 • 정치적 권리가 침해받지 않는 데에서 찾을 수 있으며, 각 민족의 ‘국가의 독립’과 ‘민족의 자결’이야말로 평화를 보장하는 기초라고 결론 맺었다. 식민지 통치 당국의 검열을 피하느라고 빙빙 에둘러 말하고 있음이 역력하다. 그러나, 무엇을 얘기하는지 파악하는 데에는 지장이 없다. 검열 환경에 익숙해 있던, 그 당시의 독자들은 알아차렸을 것이다. 이 사설의 지은이가 식민지 한국의 독립이야말로 극동 평화의 관건이라고 힘주어 말하고 있음을 간파할 수 있었을 것이다. 위 사설은 자신의 의도를 교묘하게 전달하는 데에 성공했다. 검열의 눈길을 피하면서도 자기 의사를 제대로 밝히는 일이 어찌 쉬운 일이겠는가. 하지만 식민지 저널리스트들은 그런 기법을 하나쯤 갖추고 있었던 것 같다.",
"검열 환경에 익숙해 있던, 그 당시의 독자들은 알아차렸을 것이고 이 사설의 지은이가 식민지 한국의 독립이야말로 극동 평화의 관건이라고 힘주어 말하고 있음을 간파할 수 있었을 것이다. 위 사설은 자신의 의도를 교묘하게 전달하는 데에 성공했고 검열의 눈길을 피하면서도 자기 의사를 제대로 밝히는 식민지 저널리스트들은 그런 기법을 하나쯤 갖추고 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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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20100709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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奇正鎭의 理一元論 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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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성리학에서 지속적으로 주요하게 논쟁되었던 심성의 문제는 사단칠정과 인물성동이론에서 리기의 문제, 즉 주리(主理)와 주기(主氣)의 논쟁으로 드러났다. 이 문제에 있어서 기정진은 철저하게 주리의 입장을 견지하면서도 이전의 주리론과는 차원이 다른 리일원론의 입장으로 체(體)와 용(用), 리(理)와 기(氣), 형이상(形而上)과 형이하(形而下), 미발(未發)과 이발(已發), 인성(人性)과 물성(物性)의 문제를 논하였다. 그는 리일분수(理一分殊)의 개념을 리일(理一)이 일관됨으로 해석하고 그러한 관점을 인간 심성의 미발과 이발, 그리고 선악의 문제에까지 견지하였다. 그러므로 그에게 있어서 단지 만물은 하나의 근원을 가지는 것이므로 리의 본연에는 인성과 물성의 차이가 없지만, 현실의 분수의 성은 거기에 주어진 리[개별적 리]에 편전의 차이가 있게 된다. 그러나 그의 리일원론은 모든 일원론의 사상이 안고 있는 형이상과 형이하의 본질적 차이의 문제에 대한 해답을 여전히 내려주지 못하고 있다. 즉 그가 말하는 일리(一理)와 기중지리(氣中之理)가 질적으로 어떠한 차별이 있는가, 순수하게 선한[純善] 사단과 선악을 겸하는 칠정의 관계, 선악의 근거로서의 리의 의미 등의 문제를 여전히 남겨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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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정진은 주리의 입장을 견지하면서도 이전의 주리론과는 다른 리일원론의 입장으로 체와 용, 리와 기, 형이상과 형이하, 미발과 이발, 인성과 물성의 문제를 논하였다. 그의 리일원론은 일원론의 사상이 안고 있는 형이상과 형이하 차이의 문제에 대한 해답을 내려주지 못하고 있다.",
"성리학에서 리(理)는 현상세계의 변화와 운동의 원리의 의미로서 자연 적 현상의 법칙과 사회의 윤리 규범의 의미를 모두 포괄하는 개념이다. 불변의 일정성(一定性), 항상성으로 논리적인 근원의 의미를 지니고 있는 이 리(理)는, 리가 현상으로 드러나는[發現] 질료이며 실질적 힘의 의미를 지니고 있는 기(氣)와 상대적인 개념으로서, 송대 성리학에 이르러 존재론과 가치론을 망라하는 철학적 사유의 근본 개념으로 정립되었다. 그러므로 심성론(心性論)을 중심으로 전개된 한국 성리학에서 인간의 심성을 연구함에 있어서도 리(理)와 기(氣)의 관계를 규명하는 것이 우선적 과제가 되었다. 흔히 한국 성리학의 양대 사상전통을 주리(主理)와 주기(主氣)로 구분한다. 불변의 원리라는 리의 일반적인 의미와 달리 리의 능동성을 강조한 이황의 관점은 사단(四端)과 칠정(七情)을 리의 능동적 발현이라 설명하였고, 이에 반대하여 사단과 칠정은 모두 기의 발현이라고 하면서 리의 능동성을 부정한 기대승과 이이는 이황에 비해 상대적으로 기의 역할을 중시하였다. 이러한 입장의 차이는 리의 능동성 여부뿐만 아니라, 사물에 내재한 리인 성(性)의 “성즉리(性卽理)”적 측면과 “기중지리(氣中之理)”의 측면, 즉 본연지성(本然之性)과 기질지성(氣質之性)의 관계, 리 기와 선악의 관계 문제에 있어서도 서로 다른 관점을 드러내었다.",
"성리학에서 리는 현상세계의 변화와 운동 원리의 의미로서 자연 적 현상의 법칙과 사회의 윤리 규범의 의미를 모두 포괄하는 개념이며, 심성론을 중심으로 전개된 한국 성리학에서 인간의 심성을 연구함에도 리와 기의 관계를 규명하는 것이 우선적 과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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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20100709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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霞谷 鄭齊斗의 人物性異論 硏究 -知覺說을 中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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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곡은 그의 일생을 통해 주자학적인 요소와 양명학적인 요소를 적절히 결합시켜 자신만의 독자적인 학문세계를 펼쳐나갔다. 하곡은 당시 양명학에 심취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주자학에 대한 평가는 대체적으로 긍정적이었다. 다만 주자의 격물치지에 대한 해석에 대해서 비판하고 있으니 곧 물리에 대한 부정이다. 이와 더불어 하곡은 양명학이 지니고 있는 ‘任情縱欲’의 폐단에 대해서도 지적하고 이를 극복하고자 노력하였다. 하곡은 그의 지각설을 통해 양명학의 폐단을 지적하며, 양지와 지각을 철저하게 구분하고 있다. 하곡은 지각(知覺)과 지(智)의 차이로 인해 인물이 다르게 됨을 강조하고 인성과 물성, 성인과 범인의 차이에 대해 물리, 생리, 진리로서 설명하고 있다. 하곡은 물리, 생리, 진리의 구분을 통해 인물성동이, 성범심동이 문제를 설명하고 있으니, 물리와 생리의 구별을 통해 인물성이론을, 생리와 진리의 구별을 통해 성범심이론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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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곡은 양명학에 심취해 있음에도 주자학에 대해 긍정적이었다. 하곡의 지각설을 통해 양명학의 폐단을 지적하며, 양지와 지각을 구분한다. 하곡은 물리와 생리의 구별로 인물성이론을, 생리와 진리의 구별로 성범심이론을 펼치고 있다.",
"이와 같이 볼 때, 호락논쟁은 사단칠정 논쟁이 이발처의 사단과 칠정을 어떻게 규정하고 설명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데 비해, 상대적으로 이발처의 정의 문제보다는 미발처의 심과 성을 어떻게 규정하고 설명할 것인가의 문제가 중심을 이루고 있다. 이 글에서는 정제두의 사상 가운데 미발 심성 논쟁에 관한 부분을 중심으로 하여 당시 호락논쟁에 대한 정제두의 견해를 살펴보도록 하겠다. 대체적으로 정제두가 양명학자라는 견해에 대해서는 반론이 있을 수 없으나, 양명학자로서의 정제두 역시 그 당시 학계의 주된 논쟁 사항이었던 인물 성동이 논쟁이나 성범 심동이 논쟁 등을 비롯한 호락논쟁과 완전히 동떨어져서 사상을 형성했다고는 볼 수 없다. 이는 하곡이 그의 나이 40대에서 50대까지 주요 논쟁대상의 하나였던 민언휘의 사상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하곡은 당시 호락논쟁의 기초를 형성했던 당사자인 김창협과 민언휘 사이의 논쟁에서 비롯된 지각과 지의 관계를 비롯하여 인성과 물성의 동이점, 성인과 범인의 차이점 등에 대해 민언휘와의 서신 왕래를 통해 자신의 견해를 피력하고 있으니, 이러한 왕복 서신을 중심으로 하여 미발 심성 논쟁에 대한 정제두의 생각을 고찰해 보도록 하겠다.",
"정제두의 사상 가운데 미발 심성 논쟁에 관한 부분을 중심으로 하여 당시 대체적으로 정제두가 양명학자라는 견해에 대해서는 반론이 있을 수 없으나, 양명학자로서의 정제두 역시 그 당시 학계의 주된 논쟁 사항이었던 인물 성동이 논쟁이나 성범 심동이 논쟁 등을 비롯한 호락논쟁과 완전히 동떨어져서 사상을 형성했다고는 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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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20100709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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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당 한원진의 인물성론과 그 정치적 성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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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호락논쟁을 통해서 18세기 성리학 심화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했던 南塘 韓元震(1682-1751)의 인물성론을 검토하고, 그의 이론이 당시 정치적 상황에서 어떠한 성격을 가지는가 하는 점을 살펴보았다. 호락논쟁의 주요 논제들은 주희 때 이미 그 단초가 드러나고 기초적인 논의가 있었던 것들이나, 17세기 말에서 18세기 초에 걸쳐 주로 老論系의 湖西學者들과 洛下學者들 간에 人物性 同異, 聖凡心 同異, 未發心體 純善여부 등의 논제를 놓고 본격적으로 전개된다. 이 논쟁은 그 사유의 집중력과 논리적 치밀함 등에 있어 한국 유학의 특성을 극명하게 보여주기 시작한 16세기의 사단칠정 논변의 전통을 계승하여 그 이론 연구의 심화를 이룬 것이었다. 湖洛論爭이 단순한 사상적철학적 논쟁에 국한되었다면 200여 년간의 시간을 두고 논의되지 못했을 것이다. 한원진은 사회, 정치운영의 실제를 의리의 실현문제로 보고 그 근거논리를 이기심성론의 정리를 통해서 찾아내려고 하였으며, 性三層說은 그러한 논의의 이론적 근거로 작용하였다. 그 논의는 사람의 본성은 全善한 것이므로 善惡을 겸하고 있는 기질지성을 변화시켜서 그 本然性을 회복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 기초작업에 해당하는 人物性異論은 ‘人獸無分’의 혐의가 있는 李柬의 이론에 대한 비판이었으며, 이는 곧 ‘華夷無分’에 대한 비판을 준비하는 것이었다. 즉 한원진은 인물성이론을 통해 세계의 질서를 사람과 생물 사이의 차별 뿐만 아니라, 문명인과 오랑캐라는 사람과 사람의 차별상으로 파악하고, 이를 통하여 사회가 上下, 尊卑, 貴賤이라는 사회적, 도덕적 차등관계로 일관되어야 할 당위론에 충실하고자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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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호락논쟁을 통해 성리학 심화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했던 南塘 韓元震의 인물성론을 검토하고, 당시 정치적 상황에서 어떠한 성격을 가지는가를 살펴보았다. 호락논쟁은 한국 유학의 특성을 보여주기 시작한 16세기의 사단칠정 논변의 전통을 계승하여 심화를 이룬 것이었다. 한원진은 인물성이론을 통해 세계 질서를 사람과 생물 사이의 차별, 문명인과 오랑캐도 사람의 차별상으로 파악하여 사회적, 도덕적 차등관계로 일관되어야 할 당위론에 충실하고자 한 것이다.",
"조선조에서 활발히 논의된 性理學의 연구 방향은, 성립과 발전과정을 겪었던 宋代의 경우와는 달리, 이미 정립되어진 성리학의 체계를 통해 인성론에 대한 관심의 심화가 그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연구 경향은, 조선 사회에서 점차적으로 절대화되어 가는 성리학의 지위와 연관 시켜 볼 때, 인간 심성에 대한 탐구를 바탕으로 하는 인간 수양의 이론적 뒷받침을 제공하는 계기가 되었다. 결국 우주 자연에 대한 이해보다는 인간 심성에 대한 이해가 보다 핵심적인 부분으로 인식되었다. 유학에서 탐구하고 있는 우주 자연은 그 자체로서는 그다지 관심의 대상이 되지 않고 있지 않았다. 의식과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객관적 자연의 의미로 사용된 예를 성리학에서 찾아보기 힘든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조선 초부터 인간의 성정에 관심을 기울이고 심성의 올바른 발현 가능성을 이론적으로 탐구하며 성리학적 이상사회를 건설하고자 했던 조선 성리학자들은, 인간의 성정이 우주 만물 사이에서 어떻게 구성되고 현실 속에서 어떻게 작용하는지에 관해 깊은 탐구를 진행하였다. 이러한 탐구의 결과 16세기 후반에 전개되었던 사단칠정 논쟁은 조선 성리학의 독자적 전개를 가늠하는 결정적 계기를 마련하였으며, 그 이어 18세기에 들어 본격적으로 전개된 人物性同異論爭은 성리학 내의 논의의 대상과 깊이를 보다 확장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조선 사회에서 점차적으로 절대화되어 가는 성리학의 지위와 연관 지어 볼 때, 인간 심성에 대한 탐구를 바탕으로 하는 인간 수양의 이론적 뒷받침을 제공하는 계기가 되었고 결국 우주 자연에 대한 이해보다는 인간 심성에 대한 이해가 보다 핵심적인 부분으로 인식되었고 유학에서 탐구하고 있는 우주 자연은 그 자체로서는 그다지 관심의 대상이 되지 않고 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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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2010070910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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王廷相 철학에서 도덕규범 실천의 근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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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주제는 ‘왕정상은 도덕 규범의 실천 근거를 어떻게 확보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왕정상은 변화하는 기에 리를 종속시켜 리의 변화를 이끌어냄으로써, 제도 개혁의 이론적 당위성을 확보한다. 그러나, 그는 이 때문에 규범의 근거로서 리의 역할을 잃어버린다. 또, ‘본성은 리’라는 주희의 명제와는 달리, 본성이 기에서 나왔다고 보는 왕정상의 이론은 기의 순선을 담보하지 못함으로써, 본성에 선과 악이 모두 존재함을 인정하게 된다. 이 때문에 왕정상은 도덕 규범 실천의 근거를 인간성 내부에 정초하지 못하고 객관적으로 외화된 규범으로서 예와 형법에 의존하게 되며, 그것을 강제할 근거도 성인의 권위에 의존하게 된다. 그 결과 왕정상은 사상사적으로는 순자에 접근하는 면모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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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정상의 이론은 기의 순선을 담보 못해, 본성에 선과 악이 모두 존재함을 인정하게 된어 도덕 규범 실천의 근거를 객관적으로 외화된 규범으로서 예와 형법에 의존하게 되며, 강제할 근거도 성인의 권위에 의존하게 된다. ",
"한편, 국내의 왕정상 연구는 그야말로 손에 꼽을 정도이다. 안병주는 1972년에 왕정상의 생애와 저작을 소개하고, 왕정상의 ‘기’철학을 ‘元氣一元論으로 명명하면서, 선진 문헌에 보이는 ‘기’의 용례나 서경덕 • 이이 등의 구절을 왕정상의 진술과 비교하여 개괄적으로 검토한 적이 있다. 안병주는 그의 글에서 왕정상 철학에 대한 관심의 환기’라는 의도를 분명히 밝혔지만, 이후로도 오랫동안 왕정상에 대한 연구 성과는 나오지 않았다. 왕정상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는 이규성에 의해 수행되었는데, 그는 왕정상의 철학은 ‘통치를 위한 체계’이지만, 왕정상의 실천은 “변혁의 의미에서의 실천이 아니라 변혁에 대한 역운동의 행동이다”라고 평가한다. 특히 이규성은 이 연구에서 왕정상과 순자 철학 사이의 구조적 유사성을 제기하는 통찰을 보여준다. 이후 김득만은, 수명-청 사이의 사상적 연속성을 기론의 측면에서 포착하기 위한 일련의 작업 중에 왕정상을 하나의 사례로서 제시한다. 그는 왕정상의 “전 사상 체계가 기일원론이라는 체계로 수미일관하게 이루어져 ” 있으며, “송대의 초월론적 기론이 명말 청초의 내재론적 기론에로 넘어가는 선구자적 지위표 왕정상의 철학을 자리매김할 수 있다고 본다.",
"안병주는 그의 글에서 왕정상 철학에 대한 관심의 환기’라는 의도를 분명히 밝혔지만, 이후로도 오랫동안 왕정상에 대한 연구 성과는 나오지 않았으며 특히 이규성은 이 연구에서 왕정상과 순자 철학 사이의 구조적 유사성을 제기하는 통찰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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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2010070910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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藏書閣 所藏 福泉寶藏의 署名과 문서위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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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한국학중앙연구원 藏書閣에 소장되어 있는 福泉寶藏의 署名을 통해 古文書學의 문서 감정 방법론을 試論한 것이다. 복천보장은 조선초기에 작성된 勸善文으로 비슷한 성격의 문서가 여러 점 남아 있어 그 비교가 상대적으로 쉽다. 복천보장에 있는 세조와 여러 대군들의 서명은 다른 문서에 보이는 동일인의 서명과 상이하다. 그것은 복천보장이 위조되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사실을 암시하는 것이다. 법주사에서 소장하고 있는 福泉庵事蹟에는 御題와 御題後記(또는 福泉寺記라고도 함)만 傳寫되어 전할 뿐 복천보장은 전사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본래부터 복천보장은 복천암에 세전되어 오던 문서가 아니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형태에 있어서도 복천보장은 다른 異本이 존재하고 있다. 현재 알려진 것만도 모두 세 점이 있으며, 그 중 두 점은 형태가 거의 유사하다. 이처럼 조선초기의 문서임에도 문제점이 많을 수밖에 없는 것은 당시의 위조 관행과 무관하지 않다. 조선초기는 왕실에서 적극적으로 불교를 옹호하였기 때문에 이와 관련한 문서들이 상당수 만들어졌다. 대부분 佛事를 위한 자금을 확보하는 것이 목적이었는데, 이와 같은 경제적인 목적은 다분히 문서의 위조 행각에 까지 발전될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하였다.實錄에는 이와 관련한 기사가 상당수 보이는데, 국왕이 내린 문서를 위조할 경우 斬刑에 처해진다는 法典 조항이 있음에도 위조 행각은 꼬리를 물고 일어났다. 이와 같이 문헌과 실물을 통해서 상당수의 위조문서가 발견되기 때문에 고문서의 진위 감정론을 시급히 정립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향후 우리나라 고문서학에 있어서 문서의 서명서체지질문체 등의 형식 요소를 아우르는 종합적인 문서 감정 방법론이 정립되기를 기대하며, 이를 위한 시론으로써 본 논문은 나름의 의미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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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천보장은 조선초기의 勸善文으로 비슷한 문서가 여러 점 있어 비교가 상대적으로 쉽다. 법주사에 소장된 福泉庵事蹟에는 御題와 御題後記만 傳寫되어 전할 뿐 복천보장은 전사되지 않아서 복천암에 세전되던 문서의 가능성이 크다. 조선초기는 왕실에서 불교를 옹호하였기 때문에 관련한 문서들이 상당수 만들어졌다.",
"논문으로 발표된 것은 아니지만, 천혜봉 교수는 이미 「복천보장」에 관련하여 상세한 내용을 파악하고 있었다. 특히 藏書閣本은 眞本에 대한 模寫本일 확률이 크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리고 진본의 소재 역시 파악하고 있었으며, 비록 3×5size의 흑백이지만 진본으로 여기고 있는 사진도 가지고 있었다. 필자는 한국학중앙연구원 안승준 전문위원의 도움으로 천혜봉 교수로부터 이 흑백 사진을 실견할 수 있었다. 장서각에 소장된 「복천보장」의 문서 성격은 세 가지 정도로 압축될 수 있다. 먼저 천혜봉 교수의 시각과 같이 원본에 대한 모사본으로 정의할 수 있다. 어찌 되었건 공개되지 않은 이른바 원본이 세간에 있으니 이렇게 보는 시각은 한층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두 번째는 장서 각본을 진본으로 보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진본으로 보기에는 문서의 격이 떨어지는 편이다. 세 번째는 僞造文書로 보는 것이다. 사실상 문서의 진위를 가려낼 수 있는 기준이 많지 않은 상황에서 위조문서라고 단정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최근 우리나라 고문 서학의 연구 성과는 위조문서의 개념을 확증할 수 있는 충분한 방법론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논문으로 발표된 것은 아니지만, 천혜봉 교수는 이미 「복천보장」에 관련하여 상세한 내용을 파악하고 있었으며 천혜봉 교수의 시각과 같이 원본에 대한 모사본으로 정의할 수 있으나 현실적으로 진본으로 보기에는 문서의 격이 떨어지는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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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2010070910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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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奴·主 紛爭의 한 사례 연구― 조선후기 변화된 사회상과 관련하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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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후기를 막론하고 노비와 상전 사이에는 분쟁이 끊임없이 있어 왔는데 필자가 본고에서 살펴보려고 하는 奴主間의 소송도 이러한 분쟁 가운데 하나이다. 영조 36년(1760)에 전라도 부안현의 우반동에 살던 金得文(1732~1767)은 자기 집안의 傳來 納貢婢인 春丹의 아들 崔斗明을 잡아다 仰役시키려는 과정에서 불손하게 대어드는 춘단을 곤장으로 몇 대 때렸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집으로 돌아간 춘단이 며칠 후 사망하자 崔斗明은 김득문이 부당하게 어미를 때려 殺傷하였다고 관에 고발하였다. 그래서 奴主間인 김득문과 최두명 사이에 소송이 시작되었다. 이 소송은 얼핏 보기에는 우연히 일어난 것 같지만 사실은 그 시대의 사회경제적인 추세와 그 가문이 처한 여러 환경 등과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는데 대략 다섯 가지 측면에서 이를 고찰해 볼 수 있다. 첫째, 노비에 대한 정부와 양반들의 통제력이 조선 전기에 비해 크게 약화되었다는 점이다. 특히 왜란과 호란 같은 외환과 각종 민란 등 내란을 거치면서 노비들에 대한 통제력이 크게 약화되었다. 둘째, 雇工의 등장과 노비의 재생산과도 관련이 있다. 조선 중기 이후 양반들은 노동력을 점차 고공으로부터 제공받았으며 살아갈 방도가 없는 양인들이 자신이나 자신의 처자를 노비로 파는 일이 성행하였다. 셋째, 양반들에 의한 노비 추쇄와 이 과정에서 발생한 갈등이 이 소송의 한 배경이었다. 김득문의 선조들 중에는 노비 추쇄에 큰 노력을 기울인 인물들이 있었으며 이러한 추쇄 과정에서 상전과 노비간의 갈등이 잠재해 있었다. 넷째, 입양과 그로 인한 재산 관리상의 공백을 원인의 하나로 손꼽을 수 있다. 김득문이 입양될 당시의 나이가 겨우 13세에 불과하였기 때문에 養家의 재산을 파악하고 관리하는 데에 커다란 어려움이 뒤따랐으며 노비들에 대한 장악력 등도 크게 떨어졌다. 다섯째, 영조의 형정제도의 정비와 이로 인한 백성들의 자의식 향상이 가장 중요한 배경이 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영조는 즉위한 직후부터 형정제도 정비에 남다른 관심을 가지고 惡刑과 濫刑 등을 금지하도록 강력히 명령하였다. 이러한 명령들은 당시 관리들에게는 공정하게 법을 집행하도록 유도하는 촉매제가 되었으며 힘없는 백성들의 자의식을 제고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따라서 최두명이 이전과 같으면 감히 상상할 수도 없었던 상전과의 소송을 감행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러한 당시의 분위기와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이 소송 사건이 부안김씨가에 심대한 영향을 끼쳤다. 이 소송이 마무리 된 후 김득문의 후손은 세거지인 우반동을 떠나게 되었는데 그것은 옥바라지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우반동의 토지와 가옥 등을 방매하여야 했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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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에 노비와 상전 사이에는 끊임없이 분쟁이 있었는데 奴主間의 소송도 이러한 분쟁 중 하나이다. 이 소송은 우연히 일어난 것 같지만 사회경제적인 추세와 그 가문이 처한 환경 등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조선 전기에 비해 노비에 대한 정부와 양반들의 통제력이 약화되었다는 점, 雇工의 등장과 노비의 재생산, 양반들에 의한 노비 추쇄와 이 과정에서 발생한 갈등, 입양과 그로 인한 재산 관리상의 공백, 영조의 형정제도의 정비와 이로 인한 백성들의 자의식 향상의 요인들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이 소송이후 김득문의 후손은 세거지인 옥바라지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우반동을 떠나게 되었는데 그것은 토지와 가옥 등을 방매하여야 했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기존의 연구 성과가 재검토되어야 하는 두 번째 이유는 연구 시각과 관련이 있다. 김득문과 최두명 사이에 벌어진 이 소송은 조선 후기 納貢奴牌와 상전과의 관계뿐만 아니라 그들의 주변에 있는 양인이나 노비들의 존재 방식이나 처지와도 밀접한 연관이 있다. 그런데 위 연구에서는 이에 대해서 주목하지 않았다. 이 소송은 춘단을 납공노비의 후손이라고 주장하는 김득문과 先祖가 비록 고공살이를 하였지만 신분은 엄연한 양인이라고 주장하는 최두명 사이의 소송이었다. 따라서 이 소송을 명확하게 이해하려면 당시 납공노비와 양인 들의 존재 방식과 그들의 사회경제적 여건 등도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러나 기존의 연구에서는 이러한 측면이 소홀하게 취급되었다. 김득문과 최두명 사이의 소송을 재검토해야 하는 세 번째 이유는 이 소송이 일어나게 된 데에는 당시의 시대적 배경이나 정국의 흐름과 관련이 있는데 기존의 연구에서는 이에 대해 별다른 관심을 갖지 않았다는 점이다. 당시의 국왕이었던 영조는 즉위한 직후부터 힘없는 백성들 소위 ‘小民’의 권익 보호에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으며 재임 기간 내내 이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최두명이 김득문을 고발할 수 있었던 것이나 김득문이 소송 과정에서 체포되어 한동안 옥살이를 하게 된 것도 모두 이러한 시대적 흐름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따라서 기존의 연구에서 소홀히 다루었던 당시의 시대적 배경이나 흐름에 대해서도 마땅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최두명이 김득문을 고발할 수 있었던 것이나 김득문이 소송 과정에서 체포되어 한동안 옥살이를 하게 된 것도 모두 이러한 시대적 흐름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기에 기존의 연구에서 소홀히 다루었던 당시의 시대적 배경이나 흐름에 대해서도 마땅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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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2010070910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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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수령과 관찰사의 행정마찰과 처리방식 - "嘉林報草"를 중심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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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수령과 관찰사의 관계를 살피기 위한 시도로 그간 법제적 이해에 집중되었던 지방행정의 체계와 운영의 실제를 파악하기 위한 일단을 마련하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 본고는 수령과 관찰사의 관계 중 행정마찰 사례를 분석함으로써 정책적으로 제시된 행정체계 속에서 행정단위간에 발생한 문제에 대한 수령과 관찰사의 대응방식과 해소과정을 고찰하였다. 사례는 18세기 임천군수가 작성한 첩정이 정리된 嘉林報草를 중심으로 분석하였다. 嘉林報草는 1738년(영조 14) 7월부터 1740년(영조 16) 윤 6월까지 임천군수가 작성한 공문서가 정리되어 있는데 총 197건으로 종류는 牒呈이 181건으로 가장 많고 그 외 下帖이 11, 傳令이 4, 考音이 1이다. 이 중 첩정은 대부분 관찰사에게 올린 경우로 첩정만의 내용도 중요할 뿐만 아니라 관찰사가 첩정 끝에 붙인 題辭의 내용에서 수령과 관찰사의 입장과 의견을 구체적으로 연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되는 사료이다. 이런 이유로 嘉林報草를 통해 임천군수와 충청도관찰사가 어떤 행정체계에 묶여 있었으며 어떤 단위와 사안에 마찰을 겪었는지 그리고 어떤 방식을 통해 소통하며 이를 해소하였는지를 살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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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수령과 관찰사의 관계를 법제적 이해에 집중되었던 지방행정의 체계와 운영의 실제를 파악하기 위한 일단을 마련하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 행정마찰 사례를 정책적으로 제시된 행정체계 속에서 행정단위간에 발생한 문제에 대한 대응방식과 해소과정을 고찰하였다. 그리고 어떤 방식을 통해 소통하며 이를 해소하였는지를 살폈다.\r\n",
"첩정을 받은 관찰사는 첩정을 접수하고 이를 검토하여 ‘題辭’를 써서 수령에게 下送 하였다. 때문에 첩정과 ‘題辭’의 분석을 통해 수령이 관찰사로부터 어떤 행정적 통제를 받았는지, 수령과 관찰사의 입장차이와 갈등이 어떠했는지를 구체적으로 살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수령과 관찰사의 관계가 실제로 어떠했는지를 고찰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그런데 본고는 수령과 관찰사의 관계 중 특히 행정 마찰을 중심으로 살피고자 한다. 행정 마찰은 각각의 행정단위가 갖는 입장차이로 인해 발생한다. 그리고 이런 갈등은 개인적인 마찰이 아닌 국가 업무와 관계되므로 해소를 전제로 하는 경우에 해당한다. 이와 같은 행 정적 마찰은 수령과 관찰사 간에, 수령과 중앙이, 혹은 道內 여러 행정단위 즉 병사 • 수사 • 인접 수령들 사이에도 있었는데 구체적으로 임천군과 충청지역의 사례에 주목하고자 한다. 이 사례를 통해 본고는 법으로 정해진 행정체계가 순행되지 못하고 맞부딪칠 때 지방행정의 운영자였던 수령과 관찰사는 어떤 행정체계를 통해 어떤 방식으로 상호 의사를 전달하였는지 그리고 어떻게 해결하였는지 등의 과정을 추적하고자 한다. 이는 수령과 관찰사의 관계를 고찰하기 위함이고 나아가 18세기 지방행정 운영의 구체적 실체에 접근하기 위함이다.",
"본 고는 법으로 정해진 행정체계가 순행되지 못하고 맞부딪칠 때 지방행정의 운영자였던 수령과 관찰사는 어떤 행정체계를 통해 어떤 방식으로 상호 의사를 전달하였는지 그리고 어떻게 해결하였는지 등의 과정을 추적하고자 하며, 이는 수령과 관찰사의 관계를 고찰하기 위함이고 나아가 18세기 지방행정 운영의 구체적 실체에 접근하기 위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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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2010070910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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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후반~20세기 전반 金塘島 車牛里 木契의 조직과 기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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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19세기 후반~20세기 전반 金塘島 車牛里 木契冊의 회계기록을 분석하여 목계의 조직과 운영, 기능을 검토한 사례연구이다. 18세기 금당도에 封山이 설치되어 있었다. 봉산은 黃腸木과 船材木 등 國用 木材를 조달하기 위해 조성되었다. 그런데 1761년(영조 37)에 금당도 봉산은 소나무 배양지로 부적합하다는 판정을 받고 革罷된다. 즉 木材를 벌목하려는 중앙세력들에 의해 금당도 봉산이 선점되었던 것이다. 19세기 말엽에 금당도 차우리 주민들은 자체적으로 洞山을 마련하고 木契를 조직하였다. 현전하는 차우리 木契冊에는 1870년부터 1986년까지 木契錢의 세입세출내역이 기록되어 있다. 이를 통해 차우리 목계의 조직과 운영을 재구성하였다. 즉 木契員은 금당도의 東部圈에 거주하는 車牛里飛見島許牛島 주민들이었고, 木契錢은 계원들의 殖利錢에 의해 증식되었다. 한편 차우리 마을회관에는 19세기 말엽에 조직된 洞契 자료가 소장되어 있다. 동일한 시기에 조직된 목계와 동계의 지출내역을 비교한 결과, 洞契錢은 차우리의 行政과 주민들의 賦稅 등 對民業務를 총괄하는데 지출되었고, 木契錢은 洞中烟役을 지원하는데 집중되어 있었다. 즉 목계는 동계 운영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해 주는 창구였다. 그런데 일제강점기에 차우리 동계가 해체되자, 목계가 동계의 기능을 계승하였다. 이후 목계는 차우리 주민들의 경제생활을 총괄하는 마을 공동체 조직으로써 그 기능을 수행한 것으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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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19세기 후반~20세기 전반 金塘島 車牛里 木契冊의 회계기록을 분석하여 목계의 조직과 운영, 기능을 검토한 사례연구이다. 금당도 차우리 주민들은 洞山을 마련하고 木契를 조직하였다. 동일한 시기에 조직된 목계와 동계의 지출내역을 비교한 결과, 洞契錢은 行政과 賦稅 등 對民業務를 총괄하는데 지출되었고, 木契錢은 洞中烟役에 집중되어 있었다.\r\n\r\n",
"다음으로 都祭 역시 목계전에서 매년 지출되고 있는 항목이었다. 都祭란 차우리 소속자 연촌 주민들이 해마다 정월에 지내는 마을 제사이다. 즉 차우리 소속 자연촌 주민들은 매년 정월에 각 마을을 단위로 洞祭를 모셨다. 일명 ‘都祭 • 禱祭 • 山祭 • 堂山祭 • 堂祭’ 등이 그것이다. 예를 들면 원차우마을 주민들은 1월 6일에 마을 뒷산과 마을 앞 공터에서 당산제를 지낸다. 그리고 다음 날인 1월 7일에 차우리 주민 모두가 목계 모임에 참석한다. 또 울포마을 주민들은 1월 7일 오전 차우리 목계 모임에 참석하고, 당일 저녁에 마을 앞 선창가 공터에서 龍王神에게 헌식을 올리는 의례를 행한다. 또 세포마을 주민들은 1월 15일 마을 입구에 위치한 당집에서 당 할머니께 제사를 올리며, 飛見島 주민들은 1월 14일 저녁에 마을 뒷산에서 UJ祭를 모신다. 이와 같이 차우리 소속 자연촌 주민들은 매년 정월 초에서 보름 사이에 각 마을에서 堂 祭를 지낸 다음 차우리 목계 모임에 참여했던 것이다. 이러한 마을 의례에 소용되는 경비를 차우리 木契錢에서 지출하였다는 것은 차우리 주민들의 목계 가입이 의무적이었음을 입증해 주고 있다. 때문에 차우리 주민들은 洞山의 산판 작업에 공동으로 참여하였고, 그 이익금을 마을 공공기금으로 사용할 수 있었던 것이다.",
"마을 의례에 소용되는 경비를 차우리 목계전에서 지출하였다는 것은 차우리 주민들의 목계 가입이 의무적이었음을 입증해 주고 있기 때문에 차우리 주민들은 동산의 산판 작업에 공동으로 참여하였고, 그 이익금을 마을 공공기금으로 사용할 수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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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2010070910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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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토닌으로 투과성을 높인 Vero 76 세포의 포스포리파제 D 특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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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의 활성은 세포막 교란을 포함한 다양한 세포신호전달 체계를 통해 조절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본 연구에는 Vero 76 세포(원숭이 신장 상피세포)의 포스포리파제 D에 대한 디지토닌 영향을 검토하였다. Vero 76 세포의 포스포리파제 D는 디지토닌 농도가 30g/mL 조건에서 세포를 37oC에서 30분간 배양했을 때 그 활성이 약 9배 정도 증가하였다. 이 조건하에서 디지토닌에 의한 세포막의 투과성 증가는 형광 현미경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디지토닌에 의해 유도된 포스포리파제 D의 활성은 EGTA에 의해 70%이상 저해됨을 발견하였으며, 이와 함께 각종 단백질 키나제 저해물질들을 선처리 했을 때 PD98059 와 Ro32-0432의 경우 디지토닌에 의해 야기된 포스포리파제 D의 활성이 크게 저해됨을 관찰할 수 있었다. 이들 저해물질의 결과는 단백질 키나제 C의 관여를 암시하며, 이는 PMA로 24시간 동안 처리한 세포에서 디지토닌의 영향이 상당 부분 막힌다는 것으로 재확인 할 수 있었다. 그 외 디지토닌 존재 하에서 Vero 76 세포의 생존능력을 조사했으며, 포스포리파제 D1와 D2를 Vero 76 세포에 발현시켜 그 포스포리파제 D에 대한 디지토닌의 영향을 검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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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의 활성은 세포막 교란등 세포신호전달 체계를 통해 조절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Vero 76 세포의 포스포리파제 D에 대한 디지토닌 영향을 검토하였다. 디지토닌 농도가 30g/mL 조건에서 세포를 37oC에서 30분간 배양했을 때 포스포리파제 D의 활성이 약 9배 정도 증가하였고, 세포막의 투과성 증가도 확인할 수 있었다.\r\n\r\n",
"PLD는 여러 형태의 세포 밖 자극에 의해 활성화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가장 널리 알려진 활성화 경로는 G-protein과 연결된 수용체 티로신키나제가 있다. 두 번째 경로에 의한 PLD 활성은 그 조절과정에 protein kinase C(PKC)와의 연계성을 시사하고 있다. 또 다른 조절과정은 phospholipase C(PLC)를 발현시켰을 때 생성된 diacylglycerol과 PKC가 함께 PLD 활성을 증가시키고 있다. 최근에는 PLD의 활성이 PKC에 의한 인산화가 아니라 PKC와 PLD가 직접 상호작용으로 가능하리라는 보고가 있다. 이미 지적했듯이 디지토닌은 세포막을 교란시키므로써 여러 가지 세포 생리현상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본 연구에서는 X-ray에 의해 민감하게 PLD가 활성화되는 Vero76 세포주를 대상으로 디지토닌의 영향을 좀 더 체계적으로 접근하고자 한다. 실험 방법으로 PLD 활성도 측정은 방사성동위원소를 이용해 감도를 높였고, 가능한 세포 신호체계를 탐색하기 위해 각종 PKC 저해제를 검토하였다. 예측한 대로 Vero76세포는 디지토닌에 의해 상당한 PLD 활성을 보여주었으며 신호체계에는 PKC가 관여하는 것으로 추정되었다.",
"본 연구에서는 실험 방법으로 PLD 활성도 측정은 방사성동위원소를 이용해 감도를 높였고, 가능한 세포 신호체계를 탐색하기 위해 각종 PKC 저해제를 검토하였고 예측한 대로 Vero76세포는 디지토닌에 의해 상당한 PLD 활성을 보여주었으며 신호체계에는 PKC가 관여하는 것으로 추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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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2010070910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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雪齋書院 소장의 조선초기 羅州鄭氏 고문서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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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전남 나주시 노안면에 소재한 雪齋書院에 소장되어 있는 조선초기 羅州鄭氏의 고문서를 바탕으로 작성한 것이다. 설재서원에는 현재 13건의 조선초기에 나주정씨 鄭有, 鄭自臣, 鄭軾 3인에게 발급된 고문서 13건이 소장되어 있다. 이들 고문서 가운데는 전반적으로 관직 임명과 관련된 고문서가 압도적으로 많아 타 가문의 고문서 소장 경향과 크게 다르지 않다. 특이한 것은 조선초기 지방관이 권농병마와 함께 학교를 진흥시키는 管學의 임무를 겸하고 있는 것이 눈에 띤다. 조선초기에 지방관들이 권농과 함께 군사의 임무를 겸하고 있는 문서는 있었지만, 관학의 임무까지 겸하고 있는 문서는 지금까지 발견된 것 가운데 이것이 처음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러한 면에서 이 문서의 가치는 그만큼 높다고 할 것이다. 나주정씨는 고려 후기에 鄭可臣이 세자를 陪行하여 원에 다녀오는 등 친원파로 활약하여 그 당시 최고관직인 첨의중찬에까지 올랐으며, 이러한 명성으로 명문 집안의 반열에 올랐다. 그러나 그 후손에 이르러서는 별 활약이 없었으나, 조선초기에 이르러 공신 집안과 혼인하고 세조 대에는 정식이 세조의 찬탈에 가담하여 공신에 책봉되면서 가문의 문지를 굳건히 다져갔던 것으로 보인다. 이 가문에 소장되어 있는 고문서는 이러한 사실과 관련된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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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전남 나주시 노안면에 소재한 雪齋書院에 소장된 조선초기 羅州鄭氏의 고문서를 바탕으로 한 것이다. 설재서원에는 조선초기에 나주정씨 鄭有, 鄭自臣, 鄭軾에게 발급된 고문서 13건이 소장되어 있다. 나주정씨는 조선초기에 공신 집안과 혼인하고 세조의 찬탈에 가담하여 가문의 문지를 다져갔다. 소장되어 있는 고문서는 이러한 사실과 관련된 것들이다.\r\n",
"정식은 정가신의 5세손으로 그의 아버지는 鄭自新이었다. 그는 1407년(태종 7)에 태어나 25세 때인 1432년(세종 14)에 문과에 급제한 이후 요직을 두루 거쳤다. 1446년(세종 28) 昭憲王后의 상에는 國葬都監 判官이 되어 일을 잘 처리하여 세종의 인정을 받았다. 議政府 檢詳과 舍人을 거쳐 知司諫院事가 되었으며, 승정원 同副承旨, 右副承旨를 거쳐 咸吉道觀 察使가 되어 야인을 정벌하는 데 공을 세워 資憲大夫로 超資되었다. 세조의 찬탈을 도와 좌익 원종공신 3등에 봉해졌으며 사후 景武라는 시호을 받았고, 정가신과 함께 신증동국여지승람 전라도 나주목 인물 조에 올랐다. 설재서원에 소장되어 있는 고문서의 대부분은 정식에게 발급된 것이다. 설재서원에 배향된 인물 가운데 他姓을 가진 유일한 인물인 신장은 고령인으로, 참판 申 包翅의 아들이다. 그는 1402년(태종 2)에 문과에 급제한 뒤 成均館 司藝를 거쳐, 集賢殿 副 提學, 工曹參判을 지냈다. 신장은 정자신의 아버지 鄭有의 사위로 정자신과는 처남남매 사이였다. 그가 1430년(세종 12)에 정가신의 행장을 쓴 것은 바로 이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가 설재서원에 추배된 것도 이러한 인연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신장은 생몰 연대와 활동 시기가 정자신과 비슷하였다. 신숙주는 바로 그의 아들이다.",
"신장은 정자신의 아버지 정유의 사위로 정자신과는 처남남매 사이였고 그가 1430년에 정가신의 행장을 쓴 것은 바로 이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가 설재서원에 추배된 것도 이러한 인연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며 신장은 생몰 연대와 활동 시기가 정자신과 비슷하였다. 신숙주는 바로 그의 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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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2010070910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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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중의 고문헌 관리와 보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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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晉州 晉陽河氏 丹池宗宅 사례를 중심으로 문중의 고문헌 관리의 보존의 실제를 구명하는데 목적이 있다. 문중 소장 고문헌에 대한 연구는 개별 고문헌을 중심으로 진행되어 왔으며, 가문 형성 과정과 소장 고문헌의 현황을 기술하는데 중점을 두었다. 본고는 이러한 문제 의식 속에서 단지종택 고문헌에 있는 종손들의 다양한 기록들을 통해 단지종택 고문헌의 형성 및 보존의 역사를 밝혔다. 그 결과 藏書記는 서책의 소장 내력을 알려줌과 동시에 후손들에게 보존의 중요성을 인식시키는 매개체로 작용함을 알 수 있었다. 하정근은 단지종택의 관리와 보존의 전통을 발전시킨 인물로 고문서를 정리하여 先蹟類編 4冊으로 편철하였으며, 선조의 유고를 모아 12代 문집인 池上世濟錄을 刊行하였다. 類別로 모아 세대순으로 엮은 선적류편의 편철 방법은 단지종택 소장 고문서의 고유한 내적 구조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다. 또한 단지종택의 지상세제록 간행은 자료의 형태 보존에서 한 걸음 나아가 완전한 선조의 世系를 복원하였다는데 큰 의의가 있다. 문중의 고문헌 관리와 보존은 문중의 성장 배경이나 종손들의 입지에 따라 차별화될 수 밖에 없다. 본 논문을 통하여 문중의 소장 고문헌 관리와 보존을 조명하는 연구가 활성화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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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중 소장 고문헌에 대한 연구는 가문 형성 과정과 소장 고문헌의 현황을 기술하는데 중점을 두었다. 하정근은 종택의 관리와 보존의 전통을 발전시킨 인물로 先蹟類編 4冊으로 편철하였으며, 선조의 유고를 모아 池上世濟錄을 刊行하였다. 문중의 소장 고문헌 관리와 보존을 조명하는 연구가 활성화되기를 바란다.",
"이상으로 진주 진양하씨 단지종택 사례를 중심으로 문중의 고문헌 관리와 보존에 대해 살펴보았다. 본고는 단지종택 고문헌의 내적 요인들을 가지고 고문헌의 형성과 보존의 역사를 서술하였다. 단지종택의 고문헌 관리와 보존에 영향을 주었던 외적 요인으로는 지역과 혈연으로 근접해 있어 항상 선의의 경쟁 상대였던 진주 단목 진양하씨 槍洲後孫家와, 17세기와 20세기를 전후한 문중의 흐름을 들 수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의 비교 연구는 개별 문중의 특성에 대한 연구가 축적된 연후에 가능하리라 보며 앞으로의 과제로 남겨 두고자 한다. 문중의 고문헌 관리와 보존에 있어 단지종택이 여타 문중과 차별되는 특성을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첫째, 단지종택의 고문헌에는 종손들이 남겨 놓은 다양한 기록들이 있어 단지종택 고문헌의 형성 과정 및 보존의 역사를 추적할 수 있다. 둘째, 서책에 쓰여진 장서기는 소장 내력을 알려주는 동시에 후손들에게 보존의 중요성을 인식시키는 매개체로서 작용하였다. 셋째, 후손들이 보관과 보호에 편리하도록 고문서를 『선적류편』 4책으로 편철한 하정근에게는 자료보존론의 보관·보호 개념이 형성되어 있었다.",
"본 고는 단지종택 고문헌의 내적 요인들을 가지고 고문헌의 형성과 보존의 역사를 서술하였다. 비교 연구는 개별 문중의 특성에 대한 연구가 축적된 후에 가능해서 앞으로의 과제로 남겨 두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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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20100709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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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庵 金淨의 文學思想 -「十一箴」을 中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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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묘명현 중 충암 김정과 그의 십일잠을 통해 문학사상을 탐토하고자 한 이유는 조광조와 함께 김굉필의 학맥을 직계한 정통사림이자, 핍당의 문풍으로 목릉의 성세를 앞서 솔선한 당대 문원의 선각이었기 때문이며, 잠(箴)이란 자아실현의 지표, 혹은 인간다운 자기 경영의 지향, 곧 화자의 가치관사상의 집적물이자 포괄적 인간학의 표출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십일잠에 내재한 학문적 기저는 유가의 경전을 기본으로 백가의 잠언 경구가 조화롭게 인증된, 이른바 거경궁행(居經躬行)의 실천적 행동강령임을 논증했다. 예컨대, 1) 언잠은 성인의 화평중정(和平中正)한 언어생활을 다짐한 수신장임을 밝히고, 그 사상적 기저는 시경 백규장과 민자건의 고사, 나아가 논어의 이인 학이편을 준거했으며, 2) 행잠 역시 의에 근거한 적선 및 신독(愼獨) 장으로 떳떳한 군자행의 다짐편이니, 주역 곤괘의 문언전(文言傳) 소학 가언 및 중용, 맹자 양혜왕장에 근거하고 있다. 3) 지잠은 ‘시적 주체의 함양된 인격’을 읽을 수 있는 장이라 규정하고, ‘마음에 비춰진 사물의 미추에 따른 호오(好惡)를 제어할 수 있는 덕이 있어야 인간 감정을 절제할 수 있다’고 전제하며, 부서질지언정 형을 바꾸지 않는 불굴의 지절(志節)을 돌의 수성(守性)에 비유해 결구했다. 역시 대학 명덕장과 탕(湯)의 반명盤銘을 규감으로 행동강령을 삼고 있다. 4) 용잠은 만용이 아닌 대범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중화의 도를 익힌 군자의 용기, 그런 용기를 가진 군자이고자 다짐했다. 그 이상형은 물론 논어의 ‘松柏에 비할 수 있는’, 그러므로 누지(陋地)가 없는 ‘떳떳함’을 살고자 했다. 5) 논어 위령공편을 기저로 한 우잠은 목전의 하찮은 이익보다 심원(心遠)한 미래 설계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6) 일락잠은 불후의 철인 의지를 스스로에게 권면한 장이다. 사상적 기저는 좌전 양공편에 근거한 의지의 표현으로 읽을 수 있다. 7) 우구잠은 인간적 숙명을 천명으로 승화함으로 천인동심론(天人同心論), 나아가 초탈한 군자상을 각인시켰다. 8) 욕잠은 '범인도 무욕할 수 있다'하므로 자못 성인의 경지를 지향한 의지의 표출이다. 9) 용의잠은 ‘명절(名節)과 용지(容止)를 중시해야 명철보신할 수 있다’는 논리로, 자중해서 용의를 닦고자 한 자계장이라 했다. 10) 분한잠은 논어의 충서(忠恕)에 근거해 천인동심의 군자도를 궁행하고자 서맹한 장이다. 11) 호오잠은 군자의 인간 관계에 대한 다짐장임을 논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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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묘명현 중 충암 김정과 십일잠을 통해 문학사상을 탐토하는 이유는 김굉필의 학맥을 직계한 정통사림이자, 핍당의 문풍으로 당대 문원의 선각이었기 때문이며, 잠(箴)이란 자아실현의 지표, 인간다운 자기 경영의 지향, 곧 화자의 가치관사상의 집적물이자 포괄적 인간학의 표출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언잠은 성인의 화평중정(和平中正)한 언어생활을 다짐한 수신장임을 밝히고, 논어의 이인 학이편을 준거했으며, 의에 근거한 행잠 역시 적선 및 신독(愼獨) 장으로 군자행의 다짐편이니, 주역 곤괘의 문언전소학 가언 및 중용, 맹자 양혜왕장에 근거하고 있다.\r\n",
"중종반정(中宗反正) 이후 새로운 훈구세력으로 등장한 반정공신(反正功臣)들의 소아적 당위론과, 신진사림들의 지치(至治)를 향한 급진적 이상론이 첨예하게 대립하던 중 중종의 개혁의지 마저 명분론에 그쳐 급기야 기묘의 비극적 참화는 명현이란 허울로 장식된 채 청사를 붉게 물드렸다. 워낙 사장을 ‘무용지췌언(無用之寶言)’으로 폄하한 학인(學人)들이라지만, 이제껏 이들 기묘명현의 문학에 대한 논의는 실로 영성했다. 따라서 본 고는 우리의 정치 · 사상사적 측면에서 일군의 신선한 이상론자, 혹은 사회심상이 공분하고 희구한 새로운 문화 패러다임의 모형을 간과할 수만은 없기에, 그들이 추구하고 구가한 삼대의 이상적 인간형, 그리고 그 가치관을 탐색할 필요를 느낀다. 언제나 미완의 사실(史實)은 오늘을 돌아보며, 내일의 암묵적 설계도일 가능성이 상존하기 때문이다. 물론 ‘기묘 사림의 문학관’은 이미 상논된 바 중언의 필요를 요치 않는다. 그러나 굳이 이 시대의 대표적 작가로 충암 김정을 다루고자, 하는 이유는 조광조와 함께 김굉필의 학맥을 직계한 정통사림이자, 핍당(遠唐)으로 목릉문풍을 앞서 솔선한 당대 문원의 선각이었기 때문이다.",
"중종반정(中宗反正) 이후 사장을 ‘무용지췌언(無用之寶言)’으로 폄하한 학인(學人)들이라지만, 기묘명현의 문학에 대한 논의는 실로 영성했다. 그렇기에 본 고는 우리의 정치 · 사상사적 측면에서 일군의 신선한 이상론자, 혹은 사회심상이 공분하고 희구한 새로운 문화 패러다임의 모형을 간과할 수만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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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20100709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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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국어 문장종결형식의 구조-청유문 종결형식의 형성과정을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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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는 청유문 고유의 종결형식 ‘-자, -자고, -자꾸나’, ‘-읍시다’, ‘-세’, ‘-드라고’의 형성 과정을 모색하고, 이를 바탕으로 이들의 공시적 구조, 화용적 기능의 특징을 해명하고자 하였다. 언어는 역사적 변화의 산물이므로 공시태의 기술에서도 통시태를 외면할 수 없다.‘-자’는 중세국어의 서술문 종결형식 ‘-져’에서 발달한 것으로서, ‘-어’를 구성 요소로 지니고 있다. 그러므로 ‘-자’는 기본적으로는 해체(이른바 반말체) 종결어미이다. ‘-자고’의 ‘-고'는 ‘-자꾸나’의 ‘-구’와 동일한 것으로서, 감탄 종결어미로 보인다. 감탄 종결어미 ‘-고’의 존재는 강조되어야 할 사실이다. ‘-자꾸나’의 형성에 밀접한 영향을 끼친 것은 ‘-?Y고야’라고 생각되는데, 그렇다면 ‘-자꾸나’의 구조는 ‘-자+ㅅ+구(감탄 종결어미)+으나(보조사)’로 이해된다. ‘-읍시다’는 ‘-사이다’의 발달형으로서, ‘읍+사+으이+다’로 분석된다. 이 중 ‘-사-’는 [청자의 참여 요구]를 나타내는 청유법 표지로 보이고, ‘-으이-’는 청자 존대 표지이다. 현대국어 청자 존대 표지 ‘-으이-’가 외면당하고 있는 것은 음운 축약에 따른 문자의 환영(graphic illusion)에 불과하다. ‘-세’는 ‘-사이다’에서 종결어미 ‘-다’가 탈락함으로써 이루어진 종결형식으로서, ‘사+으이’의 구조로 기술할 수 있다. ‘-세’의 형성 과정에 따른다면, ‘-새’로 표기하는 것이 더 옳았을 터인데, ‘ㅐ’가 ‘ㅅ’에 동화되어 전설모음화한 ‘ㅔ’로 실현되는 현실이 표기법에 반영된 것이라 생각된다. ‘-세’가 하게체를 담당하게 된 것은 종결어미로 재구조화한 ‘-으이’ 때문이다. ‘-드라고’는 16세기의 명령 종결형식 ‘-오여/오듸여’에서 발달한 종결형식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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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는 청유문 종결형식 ‘-자, -자고, -자꾸나’, ‘-읍시다’, ‘-세’, ‘-드라고’의 형성 과정을 모색하고, 이들의 공시적 구조, 화용적 기능의 특징을 해명하고자 하였다. ‘-세’는 ‘-사이다’에서 ‘-다’가 탈락함으로써 종결형식으로서, ‘사+으이’의 구조로 기술할 수 있고, ‘-세’가 하게체가 된 것은 종결어미로 재구조화한 ‘-으이’ 때문이다.",
"이 글의 목적은 청유문 종결형식 ‘-자, -자고, -자꾸나’, ‘-세’, ‘-읍시다’, ‘-드라고’의 형태 구조를 통시태에 기대어 밝히는 것이다. 이른바 반말체의 ‘-지, -어’도 청유문에 쓰이지만, 이들은 여러 문체법에 두루 쓰일 수 있는 청자 대우 표지이다. 대부분의 다른 문장종결형식과 같이 청유문 종결형식도 융합(confusion)을 거쳐 이루어진 것이다. 그러므로 이들의 형태 구조를 통시적 측면에서 규명하는 것은 형태론적인 면에서도 필요하고, 각 종결형식의 화용적 특징을 이해하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통시적 접근법은 현대국어 종결형식의 구조적 설명에 특히 유용하다. 일반적으로 ‘-자, -세, -읍시다’ 각각이 하나의 형태소로 간주되고 있는데, 이들은 청유법뿐 아니라 청자 대우를 나타내기도 한다. 한 형태소가 둘 이상의 기능을 가진다고 보는 것은 공시적인 관점 또는 교육적인 관점에서는 타당한 면이 있다고 할 수도 있겠으나, 교착어인 국어의 특성에 비추어 볼 때 정당하다고 할 수 없다. 공시적 관점만으로는 그 구조를 알기 어려운 복합어미들도 통시적 관점에서 보면 그 모습을 비교적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청유문 종결 형식도 융합을 거쳐 이루어진 것이기에 형태 구조를 통시적 측면에서 규명하는 것은 형태론적인 면에서도 필요하고, 각 종결형식의 화용적 특징을 이해하기 위해서도 필요하며 통시적 접근법은 현대국어 종결형식의 구조적 설명에 특히 유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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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20100709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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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조 1893 세계박람회에 대한 기술상 오류문제에 관한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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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카고 콜럼비아 세계박람회는 1893년 5월 1일부터 10월 30일까지 183일간 시카고 미시건 호반의 젝슨 공원, 미드웨이 프레잔스, 워싱턴 공원 686acres에 콜럼버스 아메리카 발견 4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하여 열렸다. 우리나라를 위시하여 47개국이 참가하고 2700여명이 관람한 세계박람회이다. 박람회장은 200여개의 건물이 있었으나 그중에 대표적인 것은 총무원, 농산물 전시관, 원예 전시관, 가축 전시관, 어류 전시관, 광물 전시관, 기계 전시관, 수송 전시관, 제품 전시관, 전기 전시관, 예술 전시관, 교양 전시관, 박물관, 목재 전시관, 여성 전시관이다. 우리나라는 제품 전시관 서남부에 한국관을 짓고 출품대원 정경원, 수원 최문현, 수원 안기선, 국악사 10명 도합 13명을 현지에 보내고 출품하였다. 출품목록을 보면 물종은 5종이고 출품자는 21명이다. 벤크로프트는 우리나라의 진열품이 장남감 같다고 악평한 반면 프린은 조선의 출품은 예술 전사관까지 매력적이고 값어치 있는 도자기가 유명하다고 호평하여 대조를 이루고 있다. 한국관은 출품대원 정경원을 주축으로 오리토리움 호텔 7층 지금 간즈 기념관에서 향연을 베풀었다. 이 향연은 우리나라가 미국에서 베푼 2번째 국제적 향연이다. 10월 9일에는 미국이 연 국제향연에 참가하여 우리나라 사람이 쓴 갓에 모인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정경원은 박람회를 끝내고 고종에게 건청궁에서 귀국보고를 하였다. 신문물에 대한 호기심을 갖고 있었던 고종은 많은 것을 정경원에게 물어 보았는데 그중에 고종은 m법을 사용하면서 한국관의 크기를 묻자 정경원은 한국척으로 8간 정도라고 답하였다. 2005 아이치 국제 엑스포가 2005.3.25-9.25까지 185일간 일본에서 열렸다. 이 박람회는 새천년에 들어서서 하노버 세게박람회에 이어 2번째로 열리는 세계박람회이다. 따라서 세계인의 이목이 집중된 세계박람회이다. 그런데 간판격인 홈페이지 한국관 구성에 내용상 오류가 눈에 띄는 것이 있어 유감스러운 일이기에 차후를 위하여 먼저 오류문제를 짚어 보았다. 우리나라가 인정 박람회인 93 대전 엑스포를 치른 경험은 있다고 하지만 등록박람회를 치른 경험은 없다. 그래서 전남 여수시가 중심이 되어 2010 등록박람회 유치직전을 폈으나 실패한 경험이 있다. 이에 여수시는 2012년 인정박람회 개최에 도전을 시도하고 있다. 욕심 같아서는 2012년의 3년 뒤 2015년 등록박람회 도전이 바람직한 것은 사실이다. 어떻든 여수시나 여수대하교 및 추진위원회의 홈페이지는 오류가 있어 유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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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카고 콜럼비아 세계박람회는 1893년에 열렸으며 우리나라는 서남부에 한국관을 짓고 출품대원 정경원, 수원 최문현, 수원 안기선, 국악사를 현지에 보내 출품하였다. 한국관은 지금의 간즈 기념관인 오리토리움 호텔 7층에서 향연을 베풀었다. 우리나라가 93 대전 엑스포 경험은 있지만 등록박람회를 치른 경험은 없다. 2010 등록박람회 유치에 실패하였고, 이에 여수시는 2012년 인정박람회 개최에 도전을 시도하고 있다.\r\n",
"1882년 중국의 권도에 따라 한국이 한미수호통상조약을 체결하였으나, 도리혀 중국의 한국에 대한 종주권이 흔들리게 됨에 불안을 느낀 중국은 한미수호통상조약의 별도조회문에 의거 하여 속방론을 강화하기에 이르렀다. 그래서 중국은 우선 한국과 수륙무역 장정을 맺으면서 우리나라에 손을 데자 정한론을 펴온 일본이 불안을 갖고 한국 진출에 관심을 갖어 중일이 한국을 사이에 두고 첨예하게 대립하였다. 그러던 중 갑신정변을 통하여 중국이 일본의 대한(對韓) 진출의 기를 꺾고 중국은 대한 속방론을 강화하는데 성공 하였다. 중국의 속방책은 청일전쟁기까지도 수그러들지를 않았다. 그래서 일찍부터 개화 의지를 갖고 있었던 고종은 속방책을 물리치고 독립국가로써의 기반을 다지기 위하여 세계박람회에 한국관을 짓고 출품하였다. 한국은 일본 중국과 어깨를 껴누어 출품하였으니 이는 한국 역사의 이변이었다. 더구나 한국이 처음 출품하였던 박람회에 중국이 출품을 중도에 포기하였으니 이것은 청일전쟁 전의 중국의 쇄잔한 모습을 비쳐주는 한 증좌였다. 결국은 청일전쟁의 댓가를 통하여 중국은 세계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말았다. 1893년 박람회 한국관 건립과 출품은 한국의 독립의지의 한 표출이었던 것이다.",
"갑신정변을 통하여 중국이 일본의 대한(對韓) 진출의 기를 꺾고 중국은 대한 속방론을 강화하는데 성공 했으나 개화 의지를 가진 고종은 속방책을 물리치고 독립국가로써의 기반을 다지기 위해 세계박람회에 한국관을 짓고 출품하였다. 한국이 최초 출품한 박람회에 중국이 출품을 중도 포기하여 청일전쟁 전 중국의 쇄잔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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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20100709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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退溪의 「周易繫辭釋義」에 對한 繼承發展을 爲한 硏究(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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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退溪.1501~1570名은 滉)는 주자학(朱子學)이 조선조에 절대적인 위력으로 전래 되었는데 이를 한국적으로 수용전개하여 우리의 사상과 문화의 기반을 튼튼히 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주희(朱熹, 號, 朱子(1130~1200)는 철학의 조종(祖宗)이라고 할 수 있는 주역(周易)연구를 하여 동양의 역학사상사(易學思想史)에서 한당이래(漢唐以來)로 상수역학파와 의리역학파간의 심한 논쟁을 지양하고 합일(合一)시킨 저작인 역학계몽(易學啓蒙)을 한국의 퇴계가 재연구하여 계몽전의(啓蒙傳疑)를 계승발전시켰다. 그 중에서 퇴계가 철학의 보고(寶庫)라고 할 수 있는 주역계사전석의(周易繫辭傳釋義)로 공자의 역학을 올바르게 계승발전 시키려고 연구 한 것을 본 연구자가 재연구하여 계승하여 더욱 발전시키기 위하여 금번의 주요 연구대상으로 삼았다. 이에 본 연구자는 퇴계(退溪) 선생이 의도한 목표를 이루기 위하여 퇴계역학(退溪易學)의 높은 수준을 널리 이해시키고 이를 계승하고 재연구하여 더욱 발전시켜 한국철학을 높은 산봉오리로 올리며 퇴계학(退溪學)이 국제학(國際學)으로 널리 전개되는 터에 세계적으로 널리 전개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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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희는 주역연구를 하여 상수역학파와 의리역학파간의 합일시킨 역학계몽을 퇴계가 재연구하여 계승발전시켰다. 그 중에서 퇴계가 주역계사전석의로 공자의 역학을 계승발전 시키려고 연구 한 것을 본 연구자가 재연구하여 더욱 발전시키기 위하여 금번의 주요 연구대상으로 삼았다.\r\n\r\n",
"송대 성리학(宋代 性理學)의 형성이 근본적으로 역용(易唐)에 있는 만큼 동양철학 연구에 있어서 『주역(周易)』연구의 중요성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더욱이 성리학자들은 『주역』의 「계사전」과 여기에서 근거한 「태극도설(大極圖說)」을 ‘이학(理學)의 본원(本源)’으로 추숭하고 있다. 오늘날 퇴계의 철학이 국제학(國際學)으로 널리 전개되는 마당에 본연구가 퇴계학 연구의 궁극적 원두처를 새로운 차원에서 마련되는 계기가 되길 진심으로 바란다. 공자는 세상사람들이 모두 잘 아는 시중성인(時中聖人)이라고 말하는데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계왕성개래학(繼往聖開來學)한데 있다. 여기에서 계왕성(繼往聖)의 성인(聖人)은 복희(伏義), 문왕(文王), 주공(周公)의 3대 성인을 말하며 개래학(開來學)은 삼대 성인에 이어서 공자가 『주역(周易)』을 집대성(集大成)하고 후세인들이 역(易)을 이해하기 쉽게 십익(十翼)을 달아 놓아 우주대자연의 이치와 인간학(人間學)의 궁극처를 활짝 열어 보인 공적은 인류사상사적, 철학사상사적으로 볼 때에 공자의 위대한 공적을 지칭한다고 하겠다.",
"송대 성리학(宋代 性理學)의 형성이 근본적으로 역용(易唐)에 있는 만큼 동양철학 연구에 있어서 『주역(周易)』연구의 중요성은 재론의 여지가 없으며, 오늘날 퇴계의 철학이 국제학(國際學)으로 널리 전개되는 마당에 본 연구가 퇴계학 연구의 궁극적 원두처를 새로운 차원에서 마련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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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20100709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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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학문으로서 비판적 사고의 개선방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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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의 전통적인 사명 중에 하나가 모든 학문에 대한 기초학문의 역할이다. 이러한 사명을 실천하고 있는 분야 하나가 ‘비판적 사고’이다. 폴과 김영정이 제시한 비판적 사고의 요소와 기준을 검토해 보면, 이것들은 특히 비판적 글쓰기에서 개선될 필요가 있다. 이에 이 논문은 텍스트 영역에 속하는 것으로 문제, 주장, 근거, 개념을, 콘텍스트 영역에 속하는 것으로 목적, 관점, 맥락을 제시한다. 그리고 특히 비판적 글쓰기는 언어의 문제와 독자·청중의 문제를 심도 있게 고려해야 ‘글쓰기’로서의 보편성을 획득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를 위해 최근에 학계에 다시 주목받고 있는‘수사학’이 제공하고 있는 설득의 3대 요소 로고스, 에토스, 파토스를 비판적 글쓰기와 결합한다. 그리고 비판적 글쓰기의 요소를 네 개의 범주, 즉 사고, 언어, 세계, 타자로 나누고, 이들의 관계망에 대한 설명을 통해 비판적 글쓰기의 다섯 개의 기준, 즉 중요성, 정당성, 명확성, 공감성, 윤리성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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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과 김영정의 비판적 사고의 요소와 기준을 보면, 비판적 글쓰기에서 개선될 필요가 있으며, 비판적 글쓰기는 비판적 글쓰기의 요소를 사고, 언어, 세계, 타자로 나누고, 언어의 문제와 독자·청중의 문제를 고려해야 ‘글쓰기’로서의 보편성을 획득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언어는 사실상 맥락 및 타자와 깊은 관계가 있다. 혹자는 ‘사고는 자신과의 의사소통이고, 글 읽기, 글쓰기는 타자와의 의사소통’이라고 생각하고 큰 차이가 없다고 말할지 모르지만 이 둘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여기에서 타자란 나와 생활세계가 다른 글쓴이, 독자를 말한다. 나의 개념을 정리하는 언어는 나의 언어이어서 개념과 언어 사이에 큰 괴리가 없다. 하지만 예를 들어 책을 읽을 때 타자의 개념을 나타내는 언어가 곧바로 나에게 동일한 개념을 표상하지 않을 수 있으며, 내가 말하고자 하는 개념을 나타내는 언어가 곧바로 타자에게 동일한 개념을 표상해 주지 않을 수 있다. 따라서 자신의 사고를 검토하는 비판적 사고와는 달리 타자의 의미를 읽어내는 비판적 읽기와 타자에게 나의 의미를 전달하는 비판적 글쓰기는 결코 동일한 요소와 기준을 가질 수 없다. 여기에서 우리는 타자, 즉 글쓰기에 있어서 독자가 어떤 독자를 말하는지, 특히 특수한 독자인지 보편적 독자인지를 생각해 봐야 하는 어려움을 갖는다. 보편 독자는 시간과 공간, 그리고 수에 한정되어 있지 않아 글쓰기에 있어서 정당성을 획득하기 쉽지만 과연 보편 독자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기준을 상정하기 쉽지 않다는 단점을 갖고 있다. 그래서 정당한 보편 독자는 다시 형이상학적 전제라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 구체적 독자에게는 효력 있는 글쓰기를 하기에는 용이하지만 보편성을 갖기 힘들다는 단점이 있다.",
"나의 개념을 정리하는 언어는 나의 언어이어서 개념과 언어 사이에 큰 괴리가 없지만 우리는 타자, 즉 글쓰기에 있어서 독자가 어떤 독자를 말하는지, 특히 특수한 독자인지 보편적 독자인지를 생각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보편 독자는 시간과 공간, 그리고 수에 한정되어 있지 않아 글쓰기에 있어서 정당성을 획득하기 쉽지만 누가 보편 독자인지 기준을 상정하기 쉽지 않다는 단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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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20100709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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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철학에서 확장된 인간중심주의에 대한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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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철학의 이념은 환경 공동체의 다수가 동의할 수 있게 설득력이 있어야 한다. 반면에 환경이념이 지나치게 높은 도덕성을 요구하는 경우에는 환경문제가 공동체 전체의 문제가 아니라 특별히 도덕적인 사람만의 문제로 외면되기 때문에 오히려 생태위기를 악화시킬 수도 있다. 환경철학에서 확장된 인간중심주의는 그동안 공약 불가능한 것으로 여겨져 온 ‘속좁은 인간중심주의’와 ‘생태중심주의’의 타협점을 시도한다. 만일 ‘확장된 인간중심주의’와 ‘생태중심주의’가 생태계 보존에 대한 동일한 결론에 도달할 수도 있다면, 불필요한 가정들을 요구하는 생태중심주의라는 새로운 틀을 제시하기보다는 기존의 인간중심주의를 정교화하고 확장하는 편이 더 설득력 있을 것이다. 확장된 인간중심주의는 지속가능한 삶을 위해서는 다른 생명체들과 생태계 전체를 잘 관리해야 하며, 생태계 보전의 책무는 생태적 깨달음을 얻은 생태중심주의자들만의 것이 아니라 모든 인간의 책무라는 것을 주장한다. 환경철학에서 확장된 인간중심주의가 좀더 체계화된다면, 환경과 생태계를 보전하는 데 실질적인 기여를 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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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철학에서 ‘속좁은 인간중심주의’와 ‘생태중심주의’의 타협점을 시도한다. 이 두 이념이 동일한 결론에 도달할 수도 있다면, 기존의 인간중심주의를 정교화하고 확장하는 편이 더 설득력 있을 것이다. 확장된 인간중심주의는 생태계 전체를 잘 관리하며, 생태계 보전의 책무는 모든 인간의 책무라는 것을 주장한다.",
"온생명론에 따르면, 온생명 안에서 인간의 위치는 마치 우리 몸에서 중추신경계와 같다. 즉 온생명 안에서 그 어떤 낱생명도 온생명을 인식하지 못했는데, 인간이 비로소 온생명을 인식하고 더 나아가 자신이 온생명의 일부라는 것을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인간중심적 사고에 머물러 나머지 보생명들의 안위는 무시한 채 인간의 안위만을 추구한다면, 인간은 뇌종양과 같은 존재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온생명론을 인간 혐오주의라고 비난할 필요는 없다. 우리가 다른 낱생명들을 인간에 대한 보생명으로 인정하더라도 그것들이 인간과 동등한 지위를 지닌다고 볼 수는 없다. 왜냐하면 인간이 온생명의 중추신경계에 해당한다면, 온생명이 위급한 경우에는 중추신경계에 해당하는 인간에게 다른 낱생명들에 우선하는 지위를 부여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온생명론에 따르더라도 인간 생명과 다른 생명체들 사이에 존엄성이 충돌할 때 온생명의 중추신경계에 해당하는 인간 생명을 우선한다는 입장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온생명이 위급한 경우에는 중추신경계에 해당하는 인간에게 다른 낱생명들에 우선하는 지위를 부여할 수도 있기 때문에 온생명론에 따르더라도 인간 생명과 다른 생명체들 사이에 존엄성이 충돌할 때 온생명의 중추신경계에 해당하는 인간 생명을 우선한다는 입장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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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20100709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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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버 공간의 존재론적 특성과 정보윤리학의 철학적 토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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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정보기술의 발달이 가져다준 새로운 공간인 사이버 공간의 존재론적 특성 규명을 통해 정보윤리학의 철학적 토대를 마련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먼저 필자는 정보윤리학을 역사적으로 개괄하면서, 다원론적 입장에 따라, 정보윤리학을 전통 윤리학의 단순한 응용 내지 변형에 불과한 도덕문제뿐 아니라 전혀 새로운 도덕문제까지 포함하기 때문에 하나의 폭 넓은 스펙트럼을 그리는 것으로 파악하였다. 사이버 공간과 직접 연관된 사이버 윤리학 역시 다원론적이다. 사이버 공간에서 지켜야 할 윤리가 무엇인가를 묻기 전에, 우리는 “사이버 공간에도 윤리가 적용되어야 하는가?”를 물어야 한다. 이 물음은 첫째, “사이버 공간에 대한 현재의 윤리 적용이 과연 그 철학적 토대를 지니는가”라는 존재론적 차원과, 둘째, “사이버 공간에의 윤리 적용이 윤리적으로 바람직한가?”라는 윤리학적 차원을 지닌다. 이 물음은 사이버 공간에 대한 존재론적 물음을 낳는다. 사이버 공간은 결코 하나의 단일체가 아니라 다층 구조를 지닌 복합체이다. 특히 순수 사이버 공간에서는 인격적 존재가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필자는 순수 사이버 공간이 ‘도덕자유 지대’(moral-free zone)로 존재하는 것이 윤리적으로 바람직하다고 제안하고자 한다. 정보화 시대에는 사이버 공간의 존재론적 특성에 맞게 새로운 종류의 도덕적 인격체가 필요하다. 다중인격체는 도덕적 결함이 아니다. 오히려 사이버 공간에서의 자아정체성과 현실 세계에서의 자아정체성을 혼동하지 않으면서, 아무런 인격적 장애 없이 두 세계를 자유롭게 왕래하면서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도덕적 품성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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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버 윤리학은 존재론적 차원과, 윤리학적 차원의 다원론적이다. 사이버 공간이 ‘도덕자유 지대’로 존재하는 것이 윤리적으로 바람직하다고 제안한다. 정보화 시대에는 새로운 종류의 도덕적 인격체가 필요하다. 다중인격체는 사이버 공간과 현실세계에서의 자아정체성을 혼동하지 않으면서, 두 세계를 왕래하면서 살 수 있는 도덕적 품성이 요구된다.",
"정보사회를 가져다준 결정적 계기는 컴퓨터의 개발이다. 정보윤리학 역시 컴퓨터 윤리학에서 발전된 개념이다. 이 용어를 처음 사용한 월터 매너(Walter Maner)에 따르면, 컴퓨터 윤리학은 철학적인 윤리 이론을 컴퓨터기술에 의해 새롭게 심화된 윤리적 문제에 적용하는 것을 의미하였다. 소프트웨어 무단 복제, 프라이버시 침해, 컴퓨터 범죄 등이 여기에 속한다. 1990년대 중반에 이르러 제2세대 컴퓨터 윤리학이 등장하게 되었다. 2세대 컴퓨터 윤리학은 개념적 기초를 형성하고 더욱 정교하게 만드는 가운데 실천적 행동을 이끌어낼 수 있는 준거틀을 개발함으로써 정보통신 기술을 적용하는데 있어서 예측하지 못한 영향과 사회적 부작용을 감소시키는 데 관심을 두었다. 이를 학자들은 1세대와 구분하여 전 지구적 정보윤리학(global information ethics)이라고 부른다. 제2세대 컴퓨터 윤리학자들은 1세대와 달리 윤리이론을 정보기술 관련 윤리문제에 단순히 응용하는 차원을 넘어서 정보윤리학의 고유성을 강조한다. 예를 들어, 크리스티냐 고니액(Krystyna Goniak)은 텔레커뮤니케이션, 가상현실, 원격진료, 사이버교육, 사이버섹스 등이 가능한 정보통신 사회가 도래하였기 때문에, 이러한 사회를 올바르게 인도할 수 있는 새롭고도 강력한 윤리체계가 요구된다고 주장한다. 2000년대에 들어서 정보윤리학자들의 관심 영역은 사이버 공간으로 확대되기 시작하였으며, 그 결과 사이버 윤리학(Cyber Ethics)이 태동 되었다. 사이버 윤리학이란 주로 사이버 공간에서 발생하는 도덕적 문제를 철학적으로 탐구한다. 예를 들어, 인터넷의 관리와 규제, 표현의 자유와 게시물 통제, 사이버 테러 등이 사이버 윤리학의 주제적 물음이다.",
"2세대 컴퓨터 윤리학은 개념적 기초를 형성하고 더욱 정교하게 만드는 가운데 실천적 행동을 이끌어낼 수 있는 준거틀을 개발함으로써 정보통신 기술을 적용하는데 있어서 예측하지 못한 영향과 사회적 부작용을 감소시키는 데 관심을 두었고 2000년대에 들어서 정보윤리학자들의 관심 영역은 사이버 공간으로 확대되기 시작하였으며, 그 결과 사이버 윤리학(Cyber Ethics)이 태동 되었다.\r\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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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20100709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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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 프롬의 『자유로부터의 도피』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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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외부 권력으로부터의 자유, 즉 소극적 자유의 신장에 매혹되어, 자유와 그것의 전통적인 적들에게 대항해 얻은 승리의 의미를 훼손할 수 있는 내적인 억압, 강제, 두려움이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고 있다. 그 결과 우리는 자유의 문제란 오로지 근대사의 과정에서 얻은 소극적 자유를 훨씬 더 많이 얻는 문제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리고 그런 자유를 부정하는 힘들에 대항해서 자유를 지키는 것이 필요한 전부라고 믿는 경향이 있다. 우리는 이제까지 쟁취한 자유 모두가 최대의 힘으로 지켜져야 하지만, 자유의 문제는 양적인 문제일 뿐만 아니라 질적인 문제이기도 하다는 것을 잊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전통적인 자유를 지키고 늘려가야 할 뿐만 아니라 새로운 종류의 자유, 즉 우리 자신의 개인적인 자아를 실현하고 이 자아와 삶을 믿을 수 있게 해주는 자유도 획득해야만 한다는 것을 잊고 있다. 따라서 나는 소극적 자유의 실현뿐만 아니라 적극적 자유(개인적 자아실현)의 실현을 위해, 프롬(Fromm, E.)이 분석한 자유로부터의 도피심리와 사회현상을 살펴보고, 프롬이 말한 ‘적극적 자유’의 의미는 무엇이며, 또한 적극적 자유의 개념은 문제점이 없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이를 위해 벌린(I. Berlin)의 “자유의 두 개념”에 대해서도 살펴보고자 한다. 또한 현대인들이 왜 그렇게 신흥종교에 매료(자유로부터의 도피 수단)되는지를 분석한 앨빈 토플러(Albin Toffler)의 생각도 살펴보고자 한다. 나는 이러한 일련의 작업이 보다 나은 자유 민주주의 시민을 형성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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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자유의 문제란 근대사 과정의 소극적 자유를 얻는 문제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리고 전통적인 자유를 지키려 할 뿐만 아니라 개인적인 자아를 실현하고 삶을 믿을 수 있게 해주는 자유도 획득해야만 한다는 것을 잊고 있다. 따라서 나는 프롬(Fromm, E.)이 분석한 자유로부터의 도피심리와 사회현상을 살펴보고, ‘적극적 자유’의 의미와 개념은 문제점이 없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프롬은 양심(conscience)을 권위적인 것과 인본적인 것으로 구별하였다. 권위적 양심은 행동을 지시하는 외부 권위가 내면화된 것을 말한다. 권위는 부모나 국가, 혹은 다른 어떤 집단에 있을 수 있으며, 권위가 지시하는 도덕률을 어겨 처벌을 받을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행동이 규제를 받는다. 만약 그 도덕률에 위배되게 행동했다면(혹은 그러한 행동을 생각만 해도) 죄의식을 경험하게 된다. 그러므로 사고와 행동의 결정자는 자아의 외부에 있으며, 자아가 충분한 기능을 발휘하고 성장하는 것을 방해하는 역할을 한다. 권위적 양심은 생산적 삶에 정반대인 격이다. 인본적 양심은 진정한 자아의 소리이지 외부의 소리를 대행하는 것이 아니다. 행동으로 이끄는 건강한 성격의 지침은 내적이며 개인적이다. 그런 사람은 자아가 완전한 기능을 하고 성격의 지침은 내적이며 개인적이다. 그런 사람은 자아가 완전한 기능을 하고 성격이 완전히 발휘하는 것과 일치된 행동을 하게 되고, 따라서 그 행동은 인정받는 느낌과 아울러 자기 내부로부터 느끼게 된다. 이 사람은 실제로 ‘나는 부모나 문화의 요구에 의해서 억지로 이 행동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나 스스로 하고자 하기 때문에 하려는 것이다.’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므로 생산적인 건강한 성격은 자아 지시적이고 자율적이다.",
"권위적 양심은 행동을 지시하는 외부 권위가 내면화된 것을 말하며 사고와 행동의 결정자는 자아의 외부에 있으며, 자아가 충분한 기능을 발휘하고 성장하는 것을 방해하는 역할을 한다. 권위적 양심은 생산적 삶에 정반대인 격이며 인본적 양심은 진정한 자아의 소리이고 생산적인 건강한 성격은 자아 지시적이고 자율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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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20100709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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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수실현, 국지적 논변 그리고 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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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수실현가능성논변의 참된 취지가 환원주의의 적설성을 손상시키지 않으며 오히려 강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주장하는 새로운 형태의 동일론은 바로 김재권이 주장하는 기능적 환원주의(Functional Reductionism)이다. 이 논변의 핵심은 국지적 환원이 환원주의의 적절성을 변호하는데 충분하다는 것이다. 필자는 이 논문에서 김재권의 기능주의적 동일론을 차례로 검토하고 그가 충분한 환원이라고 주장하는 국지적 환원은 환원의 적절성을 보이기에는 약하다고 주장하겠다. 이것이 성공한다면 그것은 최소한 기능주의의 취지를 설득력있게 수용하지 못하는 이미 주장되었던 유형동일론을 추인하는데 그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여기서 더욱 더 신중하게 고려해 봐야 할 것은 다수실현가능성논변과 국지적 환원논변과의 관계이다. 다수실현논변의 주장과 국지적 환원논변이 충돌되지 않고, 국지적 환원이 오히려 다수실현의 취지를 발전시킨 것에 불과할지 모른다는 가능성이 설득력 있게 제기 된다면 기능적 환원주의는 별 대단한 논변이 아닌 것으로 간주될 수 있을 것이다. 환원을 주장하고 그것의 적절성이 검증되기 위해서는 단순히 국지적 논변이 아니라 총체적인 일반적 정신속성들의 환원가능성을 보여야할 것이다. 이 논문에서 필자는 그의 국지적 논변의 지위와 그것의 다수실현가능성 논변과의 관계를 문제 삼았다. 그의 환원적 설명의 모델 자체를 문제 삼는다는 말이다. 필자가 틀리지 않았다면 김의 기능적 환원주의가 표방하는 설명적 힘으로는 환원주의가 반드시 적절하게 보여주어야 하는 부분을 담당할 수 없다는 결론으로 이끌어지는 것 같다. 더 나아가서 이러한 견해들과 논변들의 차이 위에서는 환원주의와 비환원주의를 구별하는 것 자체가 오히려 논쟁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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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수실현가능성논변의 참된 취지가 환원주의의 적설성을 강화시킨다고 주장하는 동일론은 김재권의 기능적 환원주의이다. 이 논문에서 김재권의 기능주의적 동일론을 검토하고 국지적 환원은 환원의 적절성을 보이기에는 약하다고 주장하겠다. 다수실현논변의 주장과 국지적 환원논변이 충돌되지 않고, 국지적 환원이 다수실현의 취지를 발전시킨 것이라면 기능적 환원주의는 대단한 논변이 아닌 것이다.",
"기능주의는 정신적 속성들이 그들의 인과적 역할들에 의해서 열거되는 이차적인 기능적 속성들이라고 주장하는 견해이다. 기능주의의 변호인들은 물리적 속성들과 정신적 속성들 사이의 관계를 기술하는 주요한 개념으로 동일성이 아니라 실현(realization)이라는 개념을 사용한다: 정신적 속성들이 물리적 속성들에 의해서 실현되지만 그 반대는 아니라는 주장이다. 그 이유는 물리적 속성들의 존재론적 우위(ontological primacy)를 믿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물리적 기능주의라고 불려질 수 있다. 기능주의 자체는 오직 정신적 속성들이 어떻게 하든지 실현되어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견해이다. 물리적 기능주의는 정신적 속성들이 만약 실현되어져야 한다면 물리적 속성들에 의해서만 실현되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어떠한 정신적 속성들도 비물리적인 속성들에 의해서 실현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들의 주장이 물리실현 논제에 기초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물리실현 논제는 다음과 같이 정규화될 수 있다:",
"기능주의의 변호인들은 물리적 속성들과 정신적 속성들 사이의 관계를 기술하는 주요한 개념으로 동일성이 아니라 실현이라는 개념을 사용한며 정신적 속성들이 물리적 속성들에 의해서 실현되지만 그 반대는 아니라는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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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20100709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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譚嗣同의 仁學과 佛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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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사동은 근대 중국에서 가장 저명한 사상가이자 혁명가 중 한 사람이다. 그의 주된 관심은 어떻게 봉건을 비판하고 사회적 속박에서 벗어날 것인가 이었다. 담사동은 중국 사회의 변혁을 강조했다. 담사동은 그의 주저인 <인학>에서 철학적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 우리가 인학을 읽어보기만 한다면 그가 불학에 기반하고 있음을 발견할 것이다. 선종, 화엄, 그리고 유식학은 담사동 불학의 핵심적인 부분이다. 그는 불교 유심론을 근대사회를 개조하는 데 적용했다. 불교 유심론을 통해서 그가 부정한 세계는 도저히 뚫을 수 없을 것 같은 현실이다. 그것을 수용한다면 혁명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는 먼저 그것을 전면적으로 부정했다. 그래서 그의 불학은 중국 근대에서 독특한 사유이자 혁명이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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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사동은 <인학>에서 철학적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 담사동 불학의 핵심적인 부분은 선종, 화엄, 그리고 유식학이다. 그래서 그의 불학은 중국 근대에서 독특한 사유이자 혁명이론이었다.\r\n\r\n",
"‘인’은 공자의 대표적 개념이다. 그것은 유가윤리를 대표하기도 한다. 탄스통은 이런 유가 윤리의 개념을 자신의 방식으로 변형하고자 한다. 원과 무만으로는 사실 인의 실체는 명확하지 않다. 하지만 인이 가지는 다분히 윤리적 경향이 철학적 경향으로 전이하고 있음을 쉽게 파악할 수 있다. 탄스통은 인을 본원적 개념으로 상승 내지 전환하고 있다. 원과 무는 ‘근원’과 ‘무궁’을 가리킨다. 무는 본체론적 의미라기보다는 인의 속성에 더 가깝다. 탄스통은 이어서 “인의 공용은 궁극적으로 무에 도달한다.”고 말한다. 탄스통은 바로 이 ‘인’을 실천하고자 한다. 그가 그리는 모범적 인간상도 그것을 완벽하게 실천하는 인물이다. 이런 점에서 탄스통의 인학 체계는 매우 강력한 실천의식을 동반하고 있다. 실천의 결정적 계기는 ‘무아’이다. 량치차오는 인학서 에서 탄스통의 의도를 헤아리면서 이런 점을 언급한다. “중생의 폐단 가운데 유아의 견해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가장 심각하다.” 탄스통이 보기에 이런 폐단을 극복한 이들이 성인이다. 그가 동서고금의 사상가들보다는 종교가들에 기운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그는 부처, 공자, 예수를 전형으로 내세운다. 하지만 여기서 탄스통은 위계를 설정한다. “부처는 공자와 예수를 통괄한다.”고 말한다. 이 이야기는 공자와 예수가 인을 실천하는 방식이 다르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부처는 저들의 상이한 방식을 관통할 수 있다고 말한 격이다.",
"탄스통은 유가 윤리의 개념을 자신의 방식으로 변형하하여 인을 본원적 개념으로 상승 내지 전환하고 “인의 공용은 궁극적으로 무에 도달한다.” 주장하며 실천하고자 한다. 그가 그리는 모범적 인간상도 그것을 완벽하게 실천하는 인물이다. 이런 점에서 탄스통의 인학 체계는 매우 강력한 실천의식을 동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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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20100709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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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방언의 홀소리 체계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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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경남 방언의 홀소리 체계 변화에 대한 종전의 연구가 통시적으로는 언어 내적인 요인으로 설명되고 있으면서도 지역적 차이는 언어 외적인 요인으로 설명된다는 불합리성에서 출발하고 있다. 일정한 언어 체계의 어휘 변별력은 해당 언어가 가지고 있는 음운 체계의 변별력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즉, 닿소리와 홀소리 그리고 덧음소가 가지는 변별력의 합이 어휘를 변별하는 힘이다. 만일 닿소리 체계가 부족하면 홀소리체계가 발달하고 또한 이러한 음소체계가 부족하면 덧음소 체계가 발달하는 등, 한 언어 체계 안에서 각각의 음운 체계는 유기적인 관련을 맺어 언제나 전체 합은 일정하게 유지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경남방언의 홀소리 체계의 변화는 어휘 변별력이라는 보편적 언어 특성에 따른 자연스런 변화이다. 즉, 경남방언의 홀소리 체계는 높낮이가 변별 기능을 유지할 때 조음상 구분이 어려운 홀소리들이 그 변별력을 잃고 통합되었다가 높낮이의 변별력이 상실하자 이에 대한 보상으로 다시 분화되는 것이다. 이렇게 분화되는 홀소리는 좁힘점이 같은 /ㅔ/, /ㅐ/보다 좁힘점이 다른 /ㅡ/, /ㅓ/의 분화가 더 빠르게 진행된다. 결국 경남 방언에서 음운 체계 변화의 내적 요인은 높낮이의 변별력인데, 높낮이의 변별력이 제 기능을 발휘할 때는 홀소리가 통합되어 6홑홀소리체계로 안정된 구조를 유지하다가 높낮이가 그 변별력이 약화되어 가자 이에 따른 어휘 변별력의 보상으로 안정된 구조를 깨고 통합된 홀소리를 7홑홀소리로 분화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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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휘 변별력은 해당 언어가 가지고 있는 음운 체계의 변별력과 관련을 맺고 있다. 만일 닿소리 체계가 부족하면 홀소리체계가 발달하고 음소체계가 부족하면 덧음소 체계가 발달하는 등, 음운 체계는 유기적인 관련을 맺어 전체 합은 일정하게 유지된다. 경남방언의 홀소리 체계의 변화는 이러한 관점에서 보편적 언어 특성에 따른 자연스런 변화이다.",
"언어 체계의 변화는 변화의 결과와 대상 중에서 어느 것이 더 바람직한 체계인가를 판단하기 어렵다. 그래서 언어체계의 변화는 어느 것이 더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구조인가를 판단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앞서 지적한 대로 경남 방언의 7홀소리로의 체계 변화 원인을 국어 교육과 대중 매체, 특히 텔레비전의 보편화에 의한 것으로 보는 것은 언어의 약화 및 간편화의 경향에 따른 세대간의 언어 발전 양상으로 보고 교육적인 교정의 힘으로 본 것은 홀소리 변화의 한 면만을 다룬 것이다. 한 방언의 언어체계 변화를 단순히 국어의 체계의 변화에 의존하는 것보다 방언 내부의 구조에서 해결해야 한다. 특히 경남지역의 방언은 높낮이에 의한 변별이 기본적인 전제가 되지 않고서는 전체적인 맥락에서 설명될 수 없다. 먼저 홀소리 체계가 변화하는 요인은 홀소리 음가의 변이에 따른 위치의 조정이다. 이른바 미는 사슬과 당기는 사슬과 같은 구조의 압력이다. 그러나 이러한 구조의 압력을 야기하는 것은 홀소리의 음가 변화인데, 이러한 홀소리의 음가 변화의 기저에는 어휘 변별력이라는 측면에서 해당 언어의 덧음소적 요인 즉, 높낮이의 변화와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중세국어의 홀소리의 변천과 성조의 변천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언어 체계의 변화는 변화의 결과와 대상 중에서 어느 것이 더 바람직한 체계인가를 판단하기 어렵기 때문에 언어체계의 변화는 어느 것이 더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구조인가를 판단하는 것이 합리적이며 한 방언의 언어체계 변화를 단순히 국어의 체계의 변화에 의존하는 것보다 방언 내부 구조에서 해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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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20100709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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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달 목적 화행의 유형 설정에 대한 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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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형식은 말할이의 의도에 따라 화행을 나타낸다. 이러한 화행의 유형 설정은 외국의 많은 학자들에 의해 시도되었으나, 화행의 유형은 각 언어마다의 독특한 특성에 따라 달리 설정되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우리말에서 화행의 유형 설정에서의 첫 번째 기준을 말할이의 의도로 보고, 말할이의 의도를 전달에만 의도가 있는 경우와 들을이의 변화까지 의도하는 경우로 나눈다. 전달에만 의도가 있는 경우는 말할이에 관한 경우와 그렇지 않는 경우로 나누고, 말할이에 관한 경우는 다시 말할이의 행위에 관한 경우와 생각에 관한 경우로 나눈다. 말할이의 행위의 경우는 들을이에 대한 행위에서의 의무의 유무로 나누고, 말할이의 생각의 경우는 다시 들을이와의 관련 여부로 나누어서, 들을이와 관련되는 내용인 경우에는 들을이에 대한 친교의 목적, 들을이에의 부담, 평가의 여부로, 그리고 친교에 목적이 없는 경우는 평가의 여부에 따라 화행이 나누어 진다. 따라서 이와 같은 기준에 따라 유형을 설정하면, 전달에만 의도가 있는 화행에는 약속 화행, 알림 화행1, 사과 화행, 칭찬 화행, 인사 화행, 비판 화행, 반감 화행, 진술 화행, 알림 화행2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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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형식은 말할이의 의도에 따라 화행을 나타낸다. 이 글에서는 화행의 유형 설정의 첫 번째 기준을 의도로 보고, 전달에만 의도가 있는 경우와 들을이의 변화까지 의도하는 경우로 나눈다. 전달에만 의도가 있는 경우는 말할이에 관한 경우와 그렇지 않는 경우로, 말할이에 관한 경우는 행위에 관한 경우와 생각에 관한 경우로 나눈다.\r\n\r\n",
"그렇다면 대화 상황에서 대화의 참여자들은 상대방의 발화에서 화행을 어떻게 파악할 수 있는 것일까? 발화의 화행은 표면적인 형식만으로는 섣불리 판단할 수 없는 것이지만, 우리가 쉽게 발화를 주고받을 수 있는 것은 화행의 유형을 구분할 수 있는 요소가 이미 대화 참여자들의 인식 속에는 들어있다는 것을 가정할 수 있다. 그래서 이 글에서는 다음을 고려하여 화행의 유형을 설정하고자 한다. 먼저, 화행의 전반적인 모습을 살피기 위해, 발화를 선행 발화와 후행 발화로 나누어서 다루고자 한다. 그리고 화행의 유형 설정을 위해 우선 말할이의 의도가 무엇인가를 고려하여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발화를 하는 것은 내부적이든 외부적이든 간에 자극에 대한 반응을 나타내는 것으로서, 발화는 자극에서 비롯되는 앞으로의 상태가 말할이가 원하는 것이 되도록 하려는 의도에서 생겨나는 것이기 때문에 말할이가 무엇을 원하는가 하는 것은 발화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대화에서 화행의 유형을 파악하고자 할 때는 발화자의 의도를 반드시 살펴야 한다.",
"화행의 전반적인 모습을 살피기 위해, 발화를 선행 발화와 후행 발화로 나누고 말할이의 의도가 무엇인가를 고려하여 화행의 유행을 설정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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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201007091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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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열의 신문 칼럼에 대한 비판적 담화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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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페어클러프(N. Fairclough)가 새로운 언어학적 분석 방법의 하나로 제시한 ‘비판적 담화분석(critical discourse analysis)’을 검토하여, 이문열의 신문 칼럼 ‘서울의 바벨탑’을 중심으로 분석한 글이다. 페어클러프는 담화분석을 텍스트, 담화적 관행(discourse practice), 사회?문화적 관행(sociocultural practice)의 세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문열의 칼럼텍스트는 텍스트 차원에서 부정적 어휘의 사용, 어휘화, 재어휘화의 기법을 주로 사용하여 글쓴이의 의견에 동의하기를 바란다. 담화적 관행 차원에서 유명한 소설가가 생산하고, 중앙의 일간지가 배포하며, 그 신문을 구독한다고 판단되는 우리 사회의 주요 독자들에 의해 소비되므로, 우리 사회가 갖고 있는 계층 이데올로기에 근거하여 이 칼럼텍스트가 주는 담화의 힘(force)을 확인할 수 있다. 분명한 상호 텍스트성의 표지를 사용하여 자신의 주장이 객관적이고, 사회적으로 공론화 된 것처럼 보이게 하려는 이데올로기가 드러난다. 이 텍스트는 ‘어떤 경제인의 기고’와 상호텍스트의 관계를 맺고 있으나, 논거로서의 객관성, 신빙성, 적합성에서 문제가 발생하여 칼럼텍스트의 의미를 약화시킬 수밖에 없다. 사회,문화적 관행 차원에서 성장제일주의, 중앙중심주의 사고를 가진 계층의 헤게모니를 발전시키기 위한 강력한 이데올로기를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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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어클러프는 담화분석을 텍스트, 담화적 관행, 사회,문화적 관행의 세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담화적 관행 차원에서 소설가가 생산, 일간지가 배포, 우리 사회의 주요 독자들에 의해 소비되므로, 계층 이데올로기에 근거하여 이 칼럼텍스트가 주는 담화의 힘을 확인할 수 있다. 상호 텍스트성의 표지 사용으로 주장이 객관적이고, 공론화 된 것처럼 보이게 하려는 이데올로기가 드러난다.",
"대중매체 가운데 신문은 우리 주변에서 새롭게 일어나는 사건, 사실들을 언어형태로 독자에게 전달하는 매체로서 공적인 텍스트이다. 신문은 어떤 정보 매체보다도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기본적이고 고전적인 미디어로서 문자언어를 바탕으로 소통이 이루어지는 매체이다. 현대 사회가 높은 정보화 사회로 바뀌면서 다중매체 시대에 인터넷으로 인한 종이신문의 위기론이 등장하기도 하지만, 신문은 여전히 많은 독자들에게 총체적 매체로서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 새로운 대중매체가 등장하고, 더욱 다양하게 매체가 발달할수록 신문을 읽는 일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그것은 다중매체를 바탕으로 쌍방향 지향적인 소통 방식을 의사소통의 수단으로 사용하는 세대들은, 의사소통의 욕구를 문자언어로만 충족하는 신문의 소통 방식이 충분하지 않기 때문인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다행히 이런 매체 환경 속에서도 신문을 바탕으로 한 국어교육의 방법은 다양하게 모색되고 있다. 이 글은 신문의 칼럼 텍스트를 분석하여 의사소통 과정에서 어떻게 신문 칼럼을 읽어야할 것인가에 관한 방법을 제시해 보려는 논의이다.",
"새로운 대중매체으로 신문을 읽는 일이 점점 줄어들고 있지만 신문을 바탕으로 한 국어교육의 방법은 다양하게 모색되고 있으며 이 글은 신문의 칼럼 텍스트를 분석하여 의사소통 과정에서 어떻게 신문 칼럼을 읽어야할 것인가에 관한 방법을 제시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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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201007091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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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마스 언어철학의 전체론적 특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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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하버마스가 실천적 영역의 철학의 기초를 새로이 수립하기 위하여 도입한 언어철학의 특성을 연구한 것이다. 하버마스는 처음에는 보편화용론의 기획을 수립하였으나, 이 기획의 기본적 전제들에 변화의 필요를 느끼면서 형식화용론의 기획으로 전환을 하였다. 하버마스의 소통행위이론은 형식화용론의 기초 위에 수립이 된다. 이러한 전환은 명시적으로는 4개의 타당성요구 주장에서 3개의 타당성 요구 주장으로의 전환과, 생활세계 개념의 도입이라는 두 가지 점에서 명백하지만, 이러한 전환의 배후에는 한 언명의 문자적 의미의 존재에 대한 인정의 문제와 언어 이해의 배경 지식에 관한 문제가 깔려 있다. 그리고 이러한 전환과 더불어 하버마스의 언어철학은 전체론적 성격을 갖게 되는데, 이 점은 하버마스가 하이데거와 가다머, 찰스 테일러 등의 언어철학에 대한 비판을 수행하면서 가졌던 입장과 상당한 긴장을 드러낸다. 그리고 하버마스 언어철학의 전체론적 성격은 그의 사상이 형이상학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으며, 오히려 언어의 형이상학적 특성을 더욱 드러낸다는 테일러의 주장과 연결된다. 이 논문에서는 하버마스가 언급한, 소통적 언어사용과 전략적 언어사용과 관련된 4개의 테제, 즉 파생 테제, 기생 테제, 우선성 테제, 내재적 목적 테제 등이 어떻게 정당화되는지를 하버마스의 ‘언표내적’, ‘언표수반적’ 등의 개념을 활용하여 입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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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마스의 소통행위이론은 형식화용론의 기초 위에 수립이 된다. 이러한 전환은 4개에서 3개의 타당성 요구 주장으로의 전환과, 생활세계 개념의 도입에서 명백하지만, 배후에는 한 언명의 문자적 의미의 존재에 대한 인정의 문제와 언어 이해의 배경 지식에 관한 문제가 깔려 있다. 하버마스 언어철학의 전체론적 성격은 언어의 형이상학적 특성을 드러낸다는 테일러의 주장과 연결된다.\r\n\r\n",
"이 논문에서는 먼저 하버마스의 보편화용론에 대한 설명 가운데 하버마스 자신이 나중에 문제로 생각하고 입장을 변경한 부분이 무엇인지를 살펴보고 이러한 문제점들을 해결하기 위해 『소통행위이론』에서 전개된 형식화용론의 기획이 보편화용론의 기획과 어떻게 다른지를 검토할 것이다. 나아가 이러한 형식화용론의 기획에서 나타난 전체론적 성격을 검토해 보고 그 대표적인 요소인 소통적 언어사용과 전략적 언어사용의 관계를 나타내는 파생 테제, 기생 테제, 우선성 테제, 내재적 목적 테제 등을 적시하면서 이러한 테제들이 하버마스에 의해 어떻게 정당화되는지를 살펴볼 것이다. 이어 우리는 이러한 하버마스 언어이론에서의 변화를 더욱 잘 보여주는 시각을 찾기 위해 그의 하이데거와 테일러에 대한 비판을 간단히 살펴본 뒤, 1980년대에 전개한 하버마스의 의미이론적 작업을 검토할 것이다. 이 논문에서는 보편화용론에서 형식화용론으로 전환을 하면서 나타난 특징들이 의미이론적 작업에서도 어떻게 등장하는지를 점검하는 수준으로 수행할 것이지만, 하버마스 언어철학 전반적으로 어떠한 변화를 겪는지를 세세히 설명하고 그것이 사회철학적 입장에 어떤 변화를 초래하는지를 자세히 주장하는 것은 이 논문의 한계를 벗어나는 일로 다음 과제로 삼게 될 것이다.",
"이 논문에서는 하버마스의 『소통행위이론』에서 전개된 형식화용론의 기획이 보편화용론의 기획과 어떻게 다른지를 검토하고 소통적 언어사용과 전략적 언어사용의 관계를 나타내는 테제들이 하버마스에 의해 어떻게 정당화되는지를 살펴볼 것이다. 이어 하이데거와 테일러에 대한 비판을 살펴본 뒤, 1980년대에 전개한 하버마스의 의미이론적 작업을 검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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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201007091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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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와 국가는 천성산과 뜻통하기에 성공했는가 - 하버마스 논변이론으로부터 보편화가능성요인의 추출과 자연의 권리 이론 및 당사자적격론에 입각한 생태적 의사소통형태의 개발가능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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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부고속철도 천성산 터널 관통 공사의 문제점을 전국적 차원으로 비화시킨 지율 스님의 단식은 단순한 생태문제뿐만 아니라 한국 국가와 사회의 의사소통구조에 심대한 문제가 있음을 노출시켰다. 본 연구는 하버마스 의사소통행위론에 바탕을 둔 논변모델을 역진적으로 분석하여 한 행위가 그 사회에서 보편적으로 동의되기 위한 ‘실질적 보편화가능성 요인들’을 요소적으로 추출하여 한국 국가와 사회의 의사소통 구조의 문제점을 지적하였다. 이 때 추출된 요인으로는 크게 전제요인(이해가능성, 진리성, 진실성, 정당성) 논변구성요인(당사자 규정, 논변절차 설정, 논변참여의 양과 질, 동의의 양과 내용), 보편화요인(비강제성, 의제의 이해상관성, 동의의 부작용)이 있다. 이 분석에 따르면 한국 국가와 사회의 의사소통구조는 공적 차원에서의 합리적 논변 절차가 결여되어 있으며, 권리 주장 당사자의 의사소통 시도에 대한 수용성이 극히 부족한 것으로 드러나 문제제기과정에서 문제폭을 감소시키기는커녕 확대시키는 것으로 판명된다. 이 분석 과정에서 본 필자는 천성산이 여러 가지 현행법률들에 의해 그 산이 응당 있어야 할 상태에 관한 보장을 확인함으로써 구제받아야 할 각종 권리를 이미 확보한 법적 정체성을 가진 준인격임을 확인하고, 바로 그 상태에서 그 권리를 대변할 인적 집단의 확보가 충분히 가능함을 들어 당사자 적격성이 있음을 증명하였다. 이럴 경우 의사소통행위모델은 아무런 논리적 유보 없이 그대로 생태적 의사소통모델로 확대된다는 것이 확인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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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하버마스 의사소통행위론에 바탕을 둔 논변모델을 역진적으로 분석하여 보편적으로 동의되기 위한 ‘실질적 보편화가능성 요인들’을 추출하여 국가와 사회의 의사소통 구조의 문제점을 지적하였다. 공적 차원에서의 논변 절차가 결여되었으며, 수용성이 부족한 것으로 드러나 문제제기과정에서 문제폭을 확대시키는 것으로 판명된다.",
"인간존엄성이란 개념은 인권개념보다 더 우선적이고 근원적인 것이다. 슈패만에 의하면 인간존엄성이란 말은 정의할 수 없는, 단순한 성질(Qualität)이므로 개념적으로 파악하기 힘들다. 이 개념은 인권개념의 근거지음을 내포한다. 우리는 이 개념을 개념적으로 파악하기는 어렵지만, 예를 들어보면 직각적으로 이해하기 쉽다고 한다. 이 개념은 어떤 인물이나 동물, 식물과 관련될 때 그 의미가 명확하게 드러날 수 있다. 예를 들면, 왕, 사자, 수백 년 묵은 참나무와 관련하여 이 개념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슈패만은 복수심, 증오, 광신 따위는 직각적으로 존엄성에 대립되는 태도이며, 고의적으로 약자를 깎아내리는 것도 강자 앞에서 설설 기는 것처럼 존엄성이 없는 행위라고 말한다. 존엄성은 존재의 위엄(Seinsmächtigkeit)과 관계있고, 그것은 이 위엄의 표현이다. 슈패만에 의하면 인간존엄성은 인격적 개인의 절대성에 뿌리내리고 있다. 그는 아우구스티누스의 말을 빌어, 인격이 자신을 멸시하는데 까지 하느님을 사랑할 수 있다(Amor Dei usque ad contemptum sui)고 한다. 이러한 가능성에 근거하여 인격은 절대적인 자체목적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인간존엄성이란 개념은 인권개념보다 더 우선적이고 근원적이다. 슈패만에 의하면 인간존엄성이란 말은 정의할 수 없는, 단순한 성질이므로 개념적으로 파악하기 힘들다. 또한, 인간존엄성은 인격적 개인의 절대성에 뿌리내리고 있으며 인격은 절대적인 자체목적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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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201007091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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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법 사상과 생태계 윤리에 관한 연구-Robert spaemann의 윤리사상을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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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현대 독일철학자인 로베어트 슈패만의 자연법 사상과 생태계 윤리사상을 소개하려고 한다. 그의 사상은 주로 아리스토텔레스의 윤리학과 정치철학 사상에 의거하여 전개된다. 자연, 자연법, 목적론등의 주요개념을 축으로 하여 이루어지는 그의 윤리사상은 서양 근세 이후에 등장하여 현대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기능주의에 반대한다. 그 이유는 기능주의적 사유방식이 인간과 자연 사회의 본질을 잘 못 이해하여, 결과적으로 인간존엄성과 생태계의 파괴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슈패만은 근대사상에 뿌리를 둔 무한진보의 사상과 과학주의에도 반대하면서 우려를 표명한다. 오늘날 절실히 요구되는 것은 근대성에 대한 비판적 성찰과 생태계 윤리의 건설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새로운 자연법을 구상함으로써 그에 대한 이론적 토대를 마련해야 한다. 슈패맨은 만물의 존재의 근원을 해명하는 종교(그리스도교)를 강조한다. 따라서 윤리학은 형이상학적(metaphysical) 존재론적(ontological) 바탕을 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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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독일철학자인 로베어트 슈패만의 자연법 사상과 생태계 윤리사상을 소개하려고 한다. 주요개념인 자연, 자연법, 목적론을 축으로 그의 윤리사상은 서양의 기능주의에 반대한다. 오늘날 요구되는 것은 근대성에 대한 비판적 성찰과 생태계 윤리의 건설이다.\r\n\r\n",
"자연개념을 인간과 관련하여 이해할 경우, 슈패만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인간에 관한 정의를 기본으로 삼는다. 널리 알려져 있다시피,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을 말하는 존재. 이성적 존재 및 정치적 문제되고 정의한다. 인간은 본성적으로 그와 같은 존재하는 뜻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고자 한 것은 인간이 ‘본래적’으로 있는 바대로 되어버린다면, 이성적으로 말 하고 자유시민의 사회공동체 안에서 산다는 것이다. 인간이 이러한 삶을 위해 남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는 것은 그의 사회공동체적 본성이 증명한다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에 있어서 ‘자연’과 ‘인간’은 상보적인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자연’이란 말은 우리(인간)가 만들지 않은 것을 뜻한다. 슈패만은 자연법을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 ‘자연’개념에 ‘자유’개념을 연결한다. 여기서 자유는 일반적으로 ‘자연’에 관하여 언급할 수 있기 위한 전제가 된다. 그래서 좁은 의미의 자연법은 자유가 그 자연조건들과 명백하고 존중하며 조절하는 관계를 맺어야 한다는 요청을 내포한다. 이것은 환경세계인 자연과 인간적 자연 모두에 타당하다.",
"자연개념을 인간과 관련하여 이해할 경우, 슈패만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인간에 관한 정의를 기본으로 삼으며 자연법을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 ‘자연’개념에 ‘자유’개념을 연결한다. 그리고 이것은 환경세계인 자연과 인간적 자연 모두에 타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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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201007091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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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안적 민주주의 모델로서 '종합적.포괄적 민주주의'-비판적 검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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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기존의 ‘자유(주의적) 민주주의’를 개인의 권리와 이익에 초점을 맞춘 ‘개인중심의 민주주의’로 규정하여 그것의 제한성과 난점을 드러내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정치철학적 기획의 일환으로서, ‘종합적포괄적 민주주의’를 대안적(代案的) 민주주의 모델로서 새롭게 개념적으로 정립하고자 시도하는, 인간중심철학의 ‘민주주의 정치론’을 비판적으로 검토해 보는데 일차적 목표를 두고 있다. 이를 위해 이 글에서는, 한편으로 개인적 존재이자 집단적 존재인 인간의 ‘존재방식’과 관련하여, 인간을 개인적 측면에 주안점을 두어 인지함으로써 개인의 자유와 권리, 이익을 우선시하는 개인주의적 민주주의가 마치 민주주의의 ‘전부’인양 간주해 온 지금까지의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방식을 넘어서고자, ‘집단중심의 민주주의’의 성립 가능성을 제시하고 이어 그것의 한계를 비판적으로 적시하면서, 개인중심의 민주주의와 집단중심의 민주주의를 변증법적으로 통합한 ‘종합적 민주주의’를 새롭게 정립하려는 정치철학적 시도에 관해 비판적 고찰이 수행된다. 다른 한편으로 민주주의를 정치적 영역에 한정된 협애한 것으로 간주해온 이제까지의 민주주의에 대한 인식 관행을 벗어나 민주주의를 개념적으로 확장하여, 정치적 차원을 넘어 경제적문화적 영역까지 아우르는 그야말로 인간 삶의 모든 영역에 대한 기본적 규제 원리로서의 민주주의, 곧 ‘포괄적 민주주의’를 정초하려는 정치철학적 기획에 대해 비판적 검토가 시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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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자유(주의적) 민주주의’를 제한성과 난점을 드러내고 ‘종합적포괄적 민주주의’를 새롭게 개념적으로 정립하고자 시도하는 ‘민주주의 정치론’을 비판적으로 검토해 보는 목표를 두고 있다. 민주주의를 개념적으로 확장하여, 경제적문화적 영역까지 아우르는 인간 삶에 대한 기본적 규제 원리로서의 ‘포괄적 민주주의’를 정초하려는 기획에 대해 비판적 검토가 시도된다.",
"인간중심의 사회역사관은 민주주의를, ‘인간의 근본요구’와 ‘사회발전의 근본요구’를 구현하고 있는, 인간의 사회생활과 사회적 운동을 규제하는 근본원리로서 인정하고 있으며 그에 따라 민주주의는 정치적 영역뿐 아니라 경제생활 분야와 사상 문화생활 분야 등 사회생활의 모든 분야에 확대 구현되어야 할 기본 원리로서 간주한다. 다시 말해 인간중심철학이 전개하는 민주주의 정치론은 민주주의를 단지 정치적 영역에 한정된 형식적인 정치적 제도나 절차로서 간주하기보다는, 사회에서 차지하는 인간의 지위와 역할을 끊임없이 고양하기 위해 모든 인간 삶의 영역에서 구현되어야 할 ‘실질적 원리’로서 바라보고 있다. 이런 점에서 인간중심의 민주주의론은 보다 ‘포괄적인 민주주의의 이념’을 제시하고 있는 셈이다. 또한 ‘국가/시장’ 혹은 ‘정치/경제’의 근대적 분화를 필연적이며 되돌릴 수 없는 것으로서 받아들이면서, 그 각각의 영역에는 고유한 자립적 논리가 작동하고 있는 까닭에 그 각각에 다른 논리가 개입되어서는 안 된다는 식으로 사유하는 민주주의 입론들의 소극적이며 방어적인 전략의 한계를 뛰어넘어서는 보다 적극적이며 능동적인 ‘공격적 민주주의론’을 제기한다. 즉 경제의 영역은 그 고유성이 존중되어야 하는 까닭에, 정치의 논리가 개입되어서는 안되며 그러한 외적 논리가 개입하는 순간 경제 자체의 원활한 작동 자체가 훼손되거나 멈추게 될 뿐 아니라 자립적 고유 논리를 왜곡시키는 ‘비민주적인 처사’로서 간주하는 ‘시장 근본주의 (market fundamentalism)'에 기초한 민주주의 입론들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하면서, 정치의 논리가 보다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경제의 메카니즘을 보다 인간의 지위와 역할을 고양하는데 기여하는 방식으로 조정 · 지도하는 것을 보다 높은 차원의 민주주의 방식으로 해석하는 민주주의론이 바로 인간중심철학의 민주주의 정치론이다.",
"인간중심철학이 전개하는 민주주의 정치론은 인간중심의 민주주의론은 보다 ‘포괄적인 민주주의의 이념’을 제시하고 있으며 보다 적극적이며 능동적인 ‘공격적 민주주의론’을 제기하며 정치의 논리가 보다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경제의 메카니즘을 보다 인간의 지위와 역할을 고양하는데 기여하는 방식으로 조정 · 지도하는 것을 보다 높은 차원의 민주주의 방식으로 해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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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201007091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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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핵과 유사한 심근경색, 뇌경색을 동반한 심낭 화농성 방사균증 1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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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들은 흉통과 전신쇠약감을 주소로 내원한 34세 남자 환자에서 결핵과 유사한 방사균증에 의해 드물게 화농성 심낭액과 심근경색, 뇌경색이 동반한 경우로 조직생검을 통해 진단 및 치료를 실시한 예로서 문헌고찰과 함께 보고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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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통, 전신쇠약의 남자 환자에서 화농성 심낭액과 심근경색이 보인 예이다.",
"심낭액을 원인에 따라 감염성, 비감염성, 과민성 혹은 자가면역성 질환에 의한 것으로 나눌 수 있다. 그중 국내에는 결핵, 바이러스, 암성 심낭액이 많다. 결핵성 심낭액은 고위험군(후천성 면역결핍증, 결핵이 많은 지역), 다른 장기에 결핵이 동반되었을 때, 심초음파상 심낭액을 가로지르는 두꺼운 침상모양(spiculation)시 의심한다. 심낭액은 삼출액이며 림프구가 많은 것이 특징이며 배양에서 30% 정도 나오나 심낭 조직검사가 도움이 된다. 본 예는 심초음파상 침상모양(spiculation) 동반하여 국내에서 흔한 결핵성 심낭액으로 생각하고 7일간 항결핵제를 투여했으나 큰 효과가 없었고, 이후 수술 검사에서 심낭액 검사상 호중구가 우세한 점, 결핵균 염색과 폴리머라제연쇄반응상 음성인 점으로 결핵에 의한 심낭액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바이러스성 심낭염은 주로 호흡기감염 선행 후 미열, 흉통 등의 증상을 나타내며 심전도의 변화를 일으킨다. 임상경과는 증상이 자연 소실되거나 비스테로이드 항염증제 등으로 조절되는 질병이다. 본 예는 바이러스 선행질환이 확실치 않고 임상경과, 심장초음파소견 등으로 미루어 바이러스성 심낭염은 아니다. 암성 심낭액에 암세포는 존재할 때가 있으며 폐암, 유방암, 림프종이 75%를 차지하고 삼출액을 나타낸다. 심낭액은 점액성, 출혈성이며 세포검사에서 진단되는 경우가 많으나 림프종이나 중피종에서는 위음성이 나올 수 있다. 본 예에서 일차적 암 부위가 없고, 심낭액 세포검사에서도 음성이고, 호중구가 우세한 것으로 암성 심낭액이 아니다.",
"심낭액을 원인에 따라 감염성, 비감염성, 과민성 혹은 자가면역성 질환에 의한 것으로 나눌 수 있으며 결핵성 심낭액은 고위험군, 다른 장기에 결핵이 동반되었을 때, 심초음파상 심낭액을 가로지르는 두꺼운 침상모양시 의심한다. 바이러스성 심낭염은 주로 호흡기감염 선행 후 미열, 흉통 등의 증상을 나타내며 심전도의 변화를 초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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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201007091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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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남선과 국민문학론의 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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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남선의 국민문학론의 핵심은 시조가 조선심과 향토성을 표현한 국민문학의 중심 장르이며, 그러한 조선의 국민문학은 세계문학 일반의 수준을 지닌다는 그의 주장에 있다. 이러한 주장은 ‘시조’를 서양의 ‘Literature’나 ‘Poetry’의 동의어로 보고, 나아가 시조를 중국의 詩經, 萬葉集과 대등한 위치에 두고자 하는 인식으로부터 비롯했다. 또한 그것은 메이지기 일본 국문학의 ‘시이카’, ‘국민시가’ 담론의 발전과정을 참조한 결과이다. 그리고 최남선은 단군 중심의 역사학, 국토순례를 통해 얻은 단군 중심의 민족 이념을 백팔번뇌를 통해 문학적으로 구현하고자 했다. 그러한 최남선의 시조는 민족적 동일성을 기억이 아닌 현존의 실체로 재현하는 방법이었던 것이다. 최남선이 굳이 시조를 선택했던 이유는 바로 시조의 형식을 통해서 조선인이 단군 중심의 민족 이념에 자발적으로 복무하고 자신의 운명을 일치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남선의 이러한 문학적 인식은 당시의 문학자들이 구어자유시를 지향하고 있었던 사정과도 분명한 대조를 이룰 뿐만 아니라, 근대시의 이상과도 거리가 먼 것이다. 한편 최남선의 문학론은 국민이나 국민국가가 존재하지 않는 조선에서, 국민문학을 상상하는 모순 또한 지니고 있다. 이것은 조선의 국민문학론이 지닌 모순이면서, 식민지 조선 지식인의 운명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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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문학론의 핵심은 시조가 국민문학의 중심 장르이며, 세계문학 일반의 수준이라는 최남선의 주장에 있다. 최남선이 시조를 선택한 이유는 단군 중심의 민족 이념에 자발적으로 복무하고 운명을 일치시킬 수 있는 가능성 때문이다. 한편 최남선의 문학론은 국민이나 국민국가가 존재하지 않는 조선에서, 국민문학을 상상하는 모순 또한 지니고 있다.",
"최남선이 국민문학의 개념을 제시하고, 그 중심 갈래로서 시조를 선택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는 시조야말로 조선심을 표상할 수 있는 유일한 방편이었던 것이다. 그의 역사학 · 인류학 · 민속학의 연구성과들은, 주로 문헌을 통한 고증의 방법과 어원론적 유추의 방법에 중점이 놓여있으며, 그러한 방법은 영성한 사료와 객관성을 갖추기 어려운 어원론의 속성상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뿐만 아니라 유럽이나 일본에서 유행하던 문화사관에 근거한 최남선의 연구성과들은, 조선민족의 개별성보다는 「불함문화론」(1925) 이후의 일련의 단군론을 통해서 알 수 있듯이, 동북아시아의 샤머니즘의 일반성을 규명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던 만큼, 그의 역사학과 민속학의 성과들만으로 조선심의 실체를 규명하기란 쉽지 않았을 터이다. 한편 그의 기행문은 철도와 신문이라는 근대적 교통기관과 언론매체를 통해 오랫동안 지역의 경계를 넘나들이 어려웠던 조선인들에게 교통(Communion)의 이미지를 제공했다는 점에서는 민족이라는 공동체를 상상했다는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그의 답사와 기행이, 조선총독부 고적조사위원회의 고고학 발굴성과에 절대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었던 사정이나, 또한 조선총독부의 고고학 발굴성과가 궁극적으로 일선동조론을 증빙하기 위한 것이었던 사정으로 인해, “조선의 역사적 유적과 유물이야말로 민족의 정신적 양식이 저장되어있는 실물의 저장고”임을 규명하기란, 그 자체로 지난한 일일 수밖에 없었을 터이다. 요컨대 최남선은 역사학이나, 기행문만을 통해서는 온전히 드러낼 수 없는, “현금의 민족성 그대로가 과거의 역사”라는 신념이, 오로지 시조를 통해서 온전히 드러낼 수 있다고 보았던 것이다.",
"최남선의 역사학 · 인류학 · 민속학의 연구성과들은, 주로 문헌을 통한 고증의 방법과 어원론적 유추의 방법 때문에 영성한 사료와 객관성을 갖추기 어려운 어원론의 속성상 한계가 있었으며 유럽이나 일본에서 유행하던 문화사관에 근거한 그의 연구성과들은 그의 역사학과 민속학의 성과들만으로 조선심의 실체를 규명하기 어렵다. 그러므로 최남선은 “현금의 민족성 그대로가 과거의 역사”라는 신념이, 오로지 시조를 통해서 온전히 드러난다고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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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201007091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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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근대 문학과 ‘민족’(民族)이라는 상상 공동체-민족주의적 정열, 혹은 한국 근대문학 형성의 주동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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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근대문학 형성의 주된 동력이 ‘민족’ 공동체를 불러일으키는 상상의 힘으로 주어졌다는 베네딕트 앤더슨의 『상상의 공동체』이론에 입각하여 한국 근대 문학의 초창기 상태를 짚어본 것이다. 『상상의 공동체』이론에 의하면, ‘민족’이라는 상상의 공동체를 지각케 함에 있어서 근대소설을 위시한 근대문학의 장치들, 넓은 의미에서 인쇄 자본주의의 기제가 효과적으로 기능한 것으로 파악되며, 한국 근대문학의 경우에도 이 사정은 예외가 아니었다. 가령 이광수의 「무정」이나, 염상섭의 「만세전」 등 한국 근대 소설사의 대표 작품들을 따져볼 때 그러하며, 주요한, 한용운, 김소월, 이상화, 정지용 등 초창기 한국 근대 시사의 대표 시인들 경우를 따져볼 때 또한 그러하다. 한국 근대 비평의 경우에도 그 과도기적 초석자의 역할을 수행했다고 할 수 있는 신채호의 경우를 따져볼 때 마찬가지로 그러하다. 본고에서 구체적으로 점검하지는 않았지만, 한국 근대 희곡의 경우에도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처럼 근대문학이란 본질적으로 민족 공동체를 상상케 하고, 지각케 하는 힘을 바탕으로 성장하였거니와, 작가와 독자, 그리고 연구자를 포함한 문학 공동체 전체의 상황 속에서 ‘근대문학’이란 말하자면 일종의 기호 공동체, 혹은 해석 공동체의 성격으로서 문화적 공모의 성질을 짙게 발현하는 의미체의 기제임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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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딕트 앤더슨의 『상상의 공동체』이론에 입각해 한국 근대 문학의 초창기 상태를 짚어보았다. 이론에 의하면, 근대문학의 장치들, 인쇄 자본주의의 기제가 ‘민족’이라는 상상의 공동체를 지각케 함에 효과적으로 기능하였다. 한국 근대 비평의 경우에도 신채호의 경우를 따져볼 때, 과도기적 초석자의 역할을 수행했다고 할 수 있다.",
"‘민족주의는 (이제) 반역’이라는 명제가 제기되는 실정이지만, 사실 '민족주의’만큼 끈질긴 생명력과 뿌리를 지니고 문화 형성에 작용하는 힘, 이념도 드물 것이다. ‘저항 민족주의’라는 저 오래된, 낯익은 이념적 표상은 실상 한국의 근, 현대 역사 형성 전체의 이념적 동력으로조차 작용해 왔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나의 청춘은 나의 조국”이라고 시인(정지용)은 갈파했었거니와, 조국을 향한 열정은 언제나 청춘의 뜨거운 피만큼 시인, 작가의 이념을 덥혀왔다. 나라를 잃어버린, 조국을 빼앗겼던 시대의 그 시적, 문화적 열정을 새삼 상기하지 않더라도, 오늘 현재 분단체제 극복을 위한 통일 사업의 현장에서도 그 피의 이름, 즉 ‘민족’이라는 대명사는 여전히 뜨겁다. 결국 모든 역사는 '민족사’에 다름 아니라는 명제를 여기서 상기하게 된다. 지식의 한 영역으로서 ‘세계사’에 상도할 때, 혹은 오늘날과 같은 국제화, 지구화 환경을 염두에 둘 때, ‘탈민족주의’의 가치 역시 필연적이라 하겠지만, 이와 같은 일회적 기치로서 민족주의적 정열이 쉽게 파기되거나 단념되지 않는다는 것을 역사는 증언한다. 그 필요성을 인정하든 옹호하든, 혹은 비판하고 부정하든, 이에 대한 면밀한 학적 관심과 이론을 가지고 이 현상을 투시해 보아야 할 필요성은 이 현실성, 역사적 현실성에서 주어진다. 이성적인 것은 현실적이고, 현실적인 것은 이성적이라고 철학자는 또한 갈파하지 않았던가.",
"‘민족주의는 (이제) 반역’이라는 명제가 제기되는 실정이지만, 사실 '민족주의’만큼 끈질긴 생명력과 뿌리를 지니고 문화 형성에 작용하는 힘, 이념은 드물며, ‘저항 민족주의’라는 저 오래된, 낯익은 이념적 표상은 실상 한국의 근, 현대 역사 형성 전체의 이념적 동력으로조차 작용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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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2010070911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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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육사 시의 텍스트주의적 연구 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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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이육사 시의 기원 텍스트를 추적하고 그를 통해 텍스트를 확정하는 작업, 즉 일차적인 텍스트주의적 연구의 일환으로 쓰여진 것이다. 본고에서는 텍스트를 연구의 축으로 인식하고 검증된 텍스트를 기반으로 분석과 해석을 이끌어내는 연구 방법을 텍스트주의라 명명하고, 그것을 두 가지의 의미로 제한하였다. 첫째는 텍스트의 발굴 및 그 텍스트의 진위와 오류 등을 검증하는 것이며, 둘째는 분석과 해석의 중심에 텍스트를 두는 것이다. 텍스트주의적 접근을 통해 여러 기원텍스트를 검토한 결과 몇 가지 텍스트 상의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었다. 먼저 단순한 대조를 통해 해결할 수 있었던 것은 ‘령비인→텅비인’(「서울」), ‘이국소년 둘→이국소녀 둘’(「소공원」), ‘상금조→호금조’(「편복」), ‘다썩은 들보와 성채의 너덜로' (「편복」) 등이다. 다음으로 문맥을 통해 교정할 수 있었던 것은 ‘정정(情情)이→음음(愔愔)이’(「황혼」), ‘맑은 넋 이에→맑은 넑시(넑)에’ (「소년에게」), ‘넋이 가치 휩쓸려→넋이가치(넋처럼) 휩쓸려’(「해후」) 등이다. 그러나 이육사의 시에는 「아미」, 「해후」, 「초가」처럼 그 의미를 정확히 알 수 없는 구절들을 포함한 시들이 꽤 있다. 앞으로 이런 부분에 대한 명쾌한 해석이 필요하며, 그런 해석을 통해 이육사 시의 시학에 대한 해명으로 나아가는 일이 남은 과제라 할 수 있다. 텍스트주의가 여전히 유효함은 이런 과제들이 잘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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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이육사 시의 기원 텍스트를 추적하고 이육사를 통해 일차적인 텍스트주의적 연구의 일환으로 쓰여진 것이다. 텍스트를 연구의 축으로 검증된 텍스트를 기반으로 분석과 해석하는 연구 방법을 텍스트주의라 명명하며, 두 가지의 의미로 제한하였다. 여러 기원텍스트를 검토한 결과 몇 가지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었다.",
"텍스트는 텍스트 확정에 이르기 위해 존재하는 여러 판본의 ‘기원 텍스트’와 그로부터 출발하여 여러 과정을 거쳐 최종적으로 도달하게 되는 ‘확정 텍스트’로 나눌 수 있다. 기원 텍스트는 확정 텍스트 이외의 모든 텍스트를 말한다. 그리고 확정 텍스트는 기존의 텍스트 중 하나일 수도 있고, 기존의 텍스트와 전혀 다른 새로운 텍스트일 수도 있다. 확정 텍스트는 성격상 확정적이지 않다. 확정에 대한 기준이 연구자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하나의 텍스트에 사용된 어휘나 문장이 지극히 자연스러워 모든 연구자들의 이의가 제기되지 않는 경우는 별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한두 개의 오자나 탈자 등이 존재하거나 문맥상 절대적인 부자연스러움이 발견되는 경우 연구자는 그것에 대한 수정을 가하고 확정 텍스트를 내놓게 된다. 그러나 그런 수정에 모든 연구자가 동의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런 동의를 얻기 위해서는 실증적인 뒷받침뿐 아니라 그것에 대한 해석의 보편성이 필요하다. 텍스트 확정 작업이 쉽지 않는 것은 해석의 문제와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는 텍스트 주의의 두 번째 작업과 관련된다. 분석과 해석의 중심에 텍스트를 두는 두 번째 작업은 첫 번째 작업이 완료된 후에 혹은 동시에 이루어지는 작업이다. 문학 연구의 대부분이 이 두 번째 작업과 밀접한 연관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이 작업은 거꾸로 이 작업의 과정 속에서 확정 텍스트의 면모를 다르게 만들 수도 있다. 그리고 이차적 의미의 작업은 작품의 일부를 오려내어 연구자가 가지고 있는 어떤 이론적 틀에 끼워 맞추어 해석하는 연구 관행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내포하고 있다. 그래서 텍스트 자체에 주목하고 그것을 꼼꼼하게 분석하는 작품론이 이 범주에 들어가게 된다.",
"텍스트는 텍스트 확정에 이르기 위해 존재하는 여러 판본의 ‘기원 텍스트’와 그로부터 출발하여 여러 과정을 거쳐 최종적으로 도달하게 되는 ‘확정 텍스트’로 나눌 수 있으며 기원 텍스트는 확정 텍스트 이외의 모든 텍스트를 말하며 확정 텍스트는 기존의 텍스트 중 하나일 수도 있고, 기존의 텍스트와 전혀 다른 새로운 텍스트일 수도 있다. 확정에 대한 기준이 연구자마자 다르기 때문에 확정 텍스트는 성격상 확정적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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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201007091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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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 시의 ‘눈’과 매개된 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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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윤동주의 시를 대상으로 상징이 주체의 자기 인식을 매개하는 과정을 고찰한 작업이다. 이는 개별 상징의 의미, 원형 상징과의 관련성을 규명한 기존 연구의 제한에서 벗어나 그러한 상징이 윤동주 시의 주체 인식과 결부되는 의미상의 구조를 규명함으로써, 윤동주 시의 상징이 존재론적 특성과 맺는 연관관계를 살펴보는 작업이다. 이를 위해 이 논문은 인간의 유한성을 결정짓는 조건으로서의 ‘몸’ 가운데 존재성을 대표하는 ‘눈’을 대상으로, 그것이 형성하는 의미구조가 매개를 통한 주체의 간접적 자기 인식이라는 존재론적 특성과 맺는 관계를 규명하였다. 이는 기존 연구의 ‘들여다보기’ 혹은 ‘바라보기’를 통한 윤리적 반성과 맥락을 같이 한다. 그러나 그러한 반성이 내면 작용이 아니라, ‘눈’이라는 구체적 장소의 매개를 통한 자기 인식이라는 사실을 텍스트의 실증적 분석을 통해 규명하였다는 점에 이 논문의 의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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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상징이 주체의 자기 인식을 매개하는 과정을 윤동주의 시를 대상으로 고찰하였다. 이는 상징이 윤동주 시의 상징이 존재론적 특성과의 연관관계를 살펴보는 작업이다. 의미구조가 매개를 통한 주체의 간접적 자기 인식이라는 관계를 규명하였다.",
"‘몸’은 현존을 넘어설 수 없는 인간존재의 유한성을 입증하는 조건이다. 비의지적으로 부여된 신체를 나타내는 상징은 현존의 유한성을 의지적으로 온전히 타개할 수 없는 주체의 고뇌를 매개해준다. 이때 상징은 모방, 반영으로서의 재현이 아니라 표현이다. 따라서 윤동주 시의 주체상을 밝혀내기 위해서는 그 인간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표현’하는 상징을 찾아내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한다. 여기에서 ‘눈’이라는 구체적 몸 상징의 형태를 통해 윤동주 시의 주체상을 규명하려는 시도는 그와 같은 연유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이러한 특성을 지닌 윤동주 시의 주체는 의식의 우위에 대한 공격을 나타낸, 새로운 의미를 가지는 개인으로서의 주체이다. '눈’ 상징의 매개작용을 통한 주체의 객관적이고 엄중한 자기반성은 근대의 자기 규율과 맥락을 같이 하지만, 스스로의 자율성에 의해 존재성을 담보 받는 근대적 개인의 모습이 아니라 자신의 불완전성을 감지한 개인이 그러한 유한성의 조건을 매개로 존재의 의미를 탐구해가는 과정이었다. 그러나 자기 인식의 확실성을 부정하면서도 주체의 해체를 부르짖지도 그 중요성을 간과하지도 않는다는 점에서 윤동주의 시는 데카르트적 주체에 대한 포스트모던 철학자들의 비판과 거리를 둔다.",
"윤동주 시의 주체상을 밝혀내기 위해서는 그 인간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표현’하는 상징을 찾아내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하며 ‘눈’이라는 구체적 몸 상징의 형태를 통해 윤동주 시의 주체상을 규명하려는 시도는 그와 같은 연유에서 비롯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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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20100709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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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론적 해석학에 대한 역사철학적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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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하이데거의 해석학을 존재론적 해석학으로 이해하면서 이것을 역사철학적인 맥락에서 살펴본 연구이다. 하이데거의 존재론을 굳이 존재론적 해석학으로 이름하는 것은 동어반복의 성격이 짙다. 그 까닭은 하이데거의 존재론이 이미 존재해석학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이 연구에서는 현대 해석학의 방향을 텍스트에 대한 해명이나, 인식론의 한 변형으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하이데거 철학의 중심인 존재의미와 기초존재론적 이해에 근거하여 정초하려는 의도에 따른 것이다. 또한 그 해석학의 원리는 선험적인 존재나 최고의 존재자에서 유래되는 것이 아니라, 존재의 시간성에 따라 철저히 역사철학적으로 이해하려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역사철학이란 객관적 대상으로서의 역사에 대해 철학적 반성을 수행하는 분과학문으로서의 역사철학이 아니라, 존재의 시간성이 드러나는 역사의 본질에 근거하여 해석학의 작업을 이해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이러한 연구는 현대철학을 문화철학이나 문학학, 또는 철학의 종말과 해체주의 등으로 이끌어가려는 여러 사조에 대해 철학 본연의 과제는 존재론에 기반한 해석학임을 밝히고, 의미와 이해의 위기에 처한 현대문화 안에서 올바르게 이해되는 존재이해의 철학을 위한 기반을 제공하려는 의도에서 시도되었다. 이 연구의 성공여부와는 별개로 이러한 문제의식을 담고 있는 이 논문은 그래서 한편으로는 하이데거의 해석학과, 가다머의 해석학적 변형과 발전, 나아가 현대철학의 경향 안에서 지니는 존재론적 해석학과 철학의 자리에 대해서도 논구하고 있다. 예를 들어 해체주의와 해석학의 연계를 말하는 부분은 논란의 여지와 함께 여전히 완성되지 않은 것이지만 다음의 연구를 위한 주제로 논의될 여지는 많을 것이다. 이 논문은 이러한 전체적 문제의식과 논의를 전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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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하이데거의 해석학을 존재론적 해석학으로 이해하면서 역사철학적인 맥락에서 살펴본 연구이다. 현대 해석학의 방향을 존재의미와 기초존재론적 이해에 근거하여 정초하려는 것이다. 역사철학이란 존재의 시간성이 드러나는 역사의 본질에 근거하여 해석학의 작업을 이해한다는 것이다. 하이데거의 해석학과, 현대철학의 경향 안에서 존재론적 해석학과 철학의 자리에 대해서도 논구하고 있다.",
"존재론적 해석학은 근대의 인식론과 관념론을 넘어 존재론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철학을 새롭게 규정하고자 한다. 그것은 존재자의 존재의미에 근거하여 철학을 존재해석학으로 규정한 뒤, 그에 따라 현대의 생활세계를 해석하려는 노력을 담고 있다. 특히 근대 철학과는 달리 인간의 해석학적 작업이 존재이해에 근거하여 철학적으로 수행되는 것이다. 이러한 철학적 작업은 명백히 2,500년에 걸친 서구 본질철학의 전통과 범주를 벗어나 있을 뿐 아니라, 근대 철학이래의 인식론적 경향과도 상반되는 것이다. 그러기에 그 철학은 일차적으로 근대의 인식론적 철학과 그 이성이해, 도구적 이성의 한계를 넘어 존재한다. 여기서 말하는 존재론적 해석학은 바티모의 철학적 전개에서 보듯이 하이데거의 기초존재론과 해석학적 현상학에 기반하여, 가다머의 역사해석학을 넘어 로티에로 발전된 근대성 극복의 해석학으로 이해된다. 그러기에 이러한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아직 그 내용과 의미가 올바르게 규명되지 못한 존재론적 해석학의 내용을 분석하기 이전에 그 배경과 역사적 맥락을 밝히는 작업은 매우 중요하다 하겠다.",
"존재론적 해석학은 하이데거의 기초존재론과 해석학적 현상학에 기반하여, 가다머의 역사해석학을 넘어 로티에로 발전된 근대성 극복의 해석학으로 이해되기에 내용과 의미가 올바르게 규명되지 못한 존재론적 해석학의 내용을 분석하기 이전에 그 배경과 역사적 맥락을 밝히는 작업은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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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20100709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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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데거 존재사유의 구조적 내용에 대한 고찰- 트라클 해석과 유비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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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데거 철학을 도식적으로 표현하면, 그의 사상은 전회 전이나 후나 일정한 구조를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것은 존재자->무->존재라는 구조로 표현될 수 있다. 본 논문에서는 이러한 하이데거의 존재론의 구조를 트라클 시와 비교하면서, 하이데거의 고유한 언어가 트라클의 시어와 유비적으로 어떠한 관계를 지니는지 살펴보았다. 그리고 이러한 시도를 위해 이중적인 하이데거의 글쓰기 방식의 차이를 분석하고, 트라클 해석 뒤에 숨어있는 하이데거의 의도를 드러냄으로써, 하이데거의 존재론에 문학적 줄거리를 대입시켜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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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사상은 일정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존재자->무->존재로 표현될 수 있고, 유비적으로 트라클 시와 비교하면서, 어떠한 관계를 지니는지 살펴보았다. ",
"가령 하이데거의 직접적인 글쓰기 방식 안에서 독자는 누가 화자인지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이 경우, 하이데거의 작품 속에서 말하고 있는 화자는 분명히 하이데거 자신이다. 그러나 특히 시를 다루는 그의 글쓰기 방식에서는, 화자가 누구인지 단순하고 명백하게 드러나지 않기도 한다. 왜냐하면 이때 하이데거는 횔덜린이나 트라클과 같은 시인들 뒤에 숨기도 하고, 혹은 그렇게 숨은 가운데 자신의 말을 건네는 방식을 쓰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글쓰기의 차이에 의하여, 동일한 주제가 어떤 경우에는 동일인(저자= 화자)에 의해 직접적으로, 다른 경우엔 차이를 지닌 두 인물(저자/화자)에 의해 간접적으로 다뤄지는 것이다. 그리고 저자인 하이데거가 때때로 화자 뒤에 숨는 것은, 자신의 직접적인 글쓰기 방식보다는, 부재의 현전이란 간접적인 방식이 말해지지 않은 존재론적 세계를 드러내는데 더 적합하다고 여겼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글쓰기의 차이, 그리고 저자와 화자의 차이는 궁극적으로 하이데거가 그리는 세계가 존재자의 세계가 아니라, 존재의 세계라는 점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그의 글쓰기의 차이는 “존재론적 차이”를 보다 선명히 드러내기 위한 전략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존재론적 차이”란 무엇인가?",
"하이데거의 직접적인 글쓰기 방식 안에서 독자는 누가 화자인지를 쉽게 발견할 수 있으나 특히 시를 다루는 그의 글쓰기 방식에서는, 하이데거는 횔덜린이나 트라클과 같은 시인들 뒤에 숨기도 하고, 혹은 그렇게 숨은 가운데 자신의 말을 건네는 방식을 쓰기도 하기 때문에 화자가 누구인지 단순하고 명백하게 드러나지 않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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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20100709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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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예인론-악사 김성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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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조선후기 예술인 중 대표적 한 사람인 악사 김성기(1649~1724)의 삶과 예술에 대해 살펴봄으로써 그의 예술이 조선후기 예술사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온전히 자리매김하고자 한 것이다. 타고난 성격이 음률을 좋아했으며 음악에 대한 열정이 남달랐던 김성기는 각고의 노력 끝에 악공이 되었지만, 그는 이 악공의 삶에 만족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악공으로서의 삶은 예속적인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는 서호 은거의 길을 택하게 되고 거기서 예인으로서 누릴 수 있는 자유를 만끽하게 된다. 그는 결국 서호가에서 생을 마감하게 되는데, 이런 그의 삶은 그 자체로 예술적이다. 김성기는 악사로서 당대 최고의 명성을 누렸다. 그리하여 ‘김성기의 새 악보’가 유행하였다. 이 ‘김성기의 새 악보’에 대해서는 기존에 익히 주목한 바 있었지만 그 의미가 충분히 부각된 것은 아니었다. 이에 이 글에서는 김성기와 관련된 여러 자료들을 통합하여 체계적으로 분석하고, 기타 참고 자료를 활용하여 이것에 대한 정당한 평가를 내리고자 하였다. 이 과정에서 김성기가 고조(古調)의 계승과 재창작에 상당한 애착을 가졌음을 알 수 있었다. 따라서 그가 추구한 음악은 단순히 신조신성신곡으로 볼 수는 없으며, 고조를 충분히 마스터한 상태에서 당대 음악의 변화를 적절히 접목시켜 완전히 새로운 경지를 개척한 것으로 봐야 한다는 결론을 얻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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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조선후기 악사 김성기의 삶과 예술에 대해 살펴봄으로써 예술사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자리매김하고자 한 것이다. 타고난 성격이 음률을 좋아했으며 음악에 대한 열정이 남달랐던 김성기는 각고의 노력 끝에 악공이 되었지만, 이 악공의 삶에 만족할 수 없었다. 결국 서호가에서 생을 마감하게 되는데, 그의 삶은 그 자체로 예술적이다.",
"김천택은 청구영언 편찬을 위해 김성기의 작품이 반드시 필요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서호의 김성기를 방문하지 않았다.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는 대목이다. 마음만 먹으면 금방 찾아갈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방문하지 않고 중간에서 김중려를 통해 작품을 구하고 있다. 이는 선배 예인에 대한, 그리고 당대 최고의 경지로 인정받고 있던 독보적 존재에 대한 각별한 예우였음이 분명하다. 또 청구영언 ‘여항육인’을 보면 장현, 주의식, 김삼현, 김유기 등에 대해서는 모두 이름을 밝혔으나 유독 김성기만은 ‘어은’이라는 호로 표기하고 있다. 호가 있을 경우 이를 내세워 작가를 표기하는 청구영언의 원칙을 따랐다고 볼 수도 있지만 김유기의 경우와 견주어 보면 그렇게 볼 수도 없다. 김유기의 경우는 작품 뒤 발문에서 ‘대재’라는 말을 사용하였음에도 이를 작가 표기로 내세우지 않았다. ‘여항육인’ 중 작가 표기로 호를 내세운 것은 김천택 자신인 ‘남파’를 제외하면 ‘어은’ 김성기가 유일한 것이다. 이 또한 같은 여항인이지만 감히 범접하기 어려울 정도로 당대 최고의 경지를 이룩한 대음악가에게 바친 그의 남다른 존경심의 표현일 것이다.",
"김천택은 청구영언 편찬을 위해 김성기의 작품이 반드시 필요했으나 당대 최고의 경지에 대한 각별한 예우로 서호의 김성기를 방문하지 않았으며, 청구영언 ‘여항육인’에서 장현, 주의식, 김삼현, 김유기 등에 대해서는 모두 이름을 밝혔으나 유독 김성기만은 ‘어은’이라는 호로 표기함으로 남다른 존경심의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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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20100709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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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선화음가 이본의 계열상과 그 여성사적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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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복선화음가> 이본의 계열상을 파악하고, 계열 형성의 문학사적 의미가 무엇인가를 시론적(試論的)으로 탐색해 본 것이다. <복선화음가>의 초기 형태는 화자의 시집살이 실체험에 계녀훈을 얹는 형태의 계녀형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 후에 괴똥어미 사적을 끌어들인 <김씨계녀>(국립도서관 소장) 같은 형태의 <복선화음가> 표준형이 마련되고, 이로부터 다양한 계녀형 <복선화음가>의 이본들이 산출되어 나갔고, 이러한 계녀형 변용의 샛길에서 전기형의 각 이본들이 산출되어 나왔을 것으로 추정된다. 계녀형 <복선화음가>에서 특별히 주목해야 할 것은 포장과 실질 사이의 편차다. 화자의 치산 행적이나 괴똥어미의 패가 사적은 그자체로만 볼 때는 ‘항산(恒産)’을 확보해야만 된다는 뼈저린 교훈이다. 그런데도 이러한 사적들로부터 이끌어내는 귀착점은 ‘승순구자’나 ‘효봉구고’와 같은 덕목이다. <복선화음가>는 그 인식의 단호함이며 결단의 과감성, 그리고 재부(財富)의 위력에 대한 증언의 맥락 등을 통해 본다면 구태의연한 판박이 계녀훈을 비판하거나 부정해야 마땅할 터인데도 이와는 다르게 전통에 기대어 인습적 계녀훈을 복창(復唱)하고 있다. 그리고 마침내는 ‘효봉구고’나 ‘승순구자’ 등 계녀훈을 이루는 것이 복선(福善)의 길이요, 그것을 저버리는 것이 화음(禍淫)의 구렁텅이라고 단안(斷案)하여 표제(標題)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포장과 실질, 표제와 내용, 관념적 덕목과 체험적 실감의 어색한 동거는 전기형 <복선화음가>에 이르러 대부분 깨어지게 된다. 교술성이나 교훈적 목적을 서사 자체에 대한 흥미와 관심으로 대체하거나 아예 그러한 교훈을 전복시켜 탄식가의 형태로 변용하기도 한다. 서사 자체에 대한 흥미와 관심은 대개 자기서사의 팽창 확대로 실현되지만, 홍씨본 <복선화음가>와 같이 가문서사로 확산되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탄식가적인 변용을 보이는 국립도서관 소장의 <복션화음녹이라>와 같은 경우는 시집살이 서사민요와도 같은 정조를 담뿍 머금고 있다. 이러한 변용을 거치면서 다양한 이본을 낳은 <복선화음가>는 하나의 대하와도 같아서, 경화벌열층에서 향촌사족층을 거쳐 시정 평서층과 농촌 평서층에 이르기까지 당대 전계층 부녀의 삶을 총체적으로 반영하는 다기한 스펙트럼을 지니게 되었다. 애초에는 향촌사족층 의 현실적 처지에서 발원한 것이었지만, 계녀형으로부터 전기형에 이르는 동안 다양한 방식으로 변용이 되면서 여성 어문생활의 다양한 실험과 성취를 이루게 되었다. 향촌사족층 부녀의 삶의 조건을 냉철하게 인식하고 체면과 인습을 벗어 던지고 솔선하여 곤경의 타개에 나서는 과감한 여성의 형상을 부조해 내고 있다는 점 또한 특기하여 평가할 만한 점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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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복선화음가> 이본의 계열상을 파악하고, 문학사적 의미를 시론적(試論的)으로 탐색해 본 것이다. 괴똥어미 사적을 끌어들인 <김씨계녀>(국립도서관 소장) 같은 형태의 <복선화음가> 표준형이 마련되고부터 다양한 계녀형 <복선화음가>의 이본들이 산출되었고, 이러한 변용의 샛길에서 전기형의 각 이본들이 산출되어 나왔을 것으로 추정된다. 전기형 <복선화음가>에 이르러 포장과 실질, 표제와 내용, 관념적 덕목과 체험적 실감의 어색한 동거는 대부분 깨어지게 된다. 애초에는 향촌사족층 의 현실적 처지에서 발원한 것이었지만, 계녀형으로부터 전기형에 이르는 동안 다양한 방식으로 변용이 되면서 여성 어문생활의 다양한 실험과 성취를 이루게 되었다.",
"필자가 이제까지 <복선화음가> 이본들의 계열상과 그 지향을 짚어 본 것은 이러한 연구사적 요청을 염두에 둔 것이었다. 서론에서도 전제하였듯이 필자의 섭렵 범위는 그리 넓지 못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작업을 강행해 나온 이유는 단일 텍스트 중심의 단선적 해석을 어느 정도는 보완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이제 그 결과를 토대로 이러한 계열상과 주제적 관심의 지향이 의미하는 바를 역사 지평으로 옮겨 탐색해 보고 논의를 마치고자 한다. 굳이 ‘여성사’라 하는 이유는 페미니즘적 화두에 조금이나마 다가서 보고자 하는 소박한 바람에서다. 이 또한 필자의 역량이 미치기 어려운 영역이지만, <복선화음가>의 연구사가 페미니즘적 화두와 밀착되어있기 때문에 피해 갈 수는 없어 보인다. 흔히 역사란 현재의 역사, 현재적 요청의 역사가 있을 뿐이라고 한다. 그리고 진정한 여성사란 ‘남성 중심적 인식의 낡은 틀을 뛰어넘어 여성해방의 문제의식을 공유할 때’만 비로소 가능해진다고도 말하고 있다. 비록 지나가는 논의라 해도 여성사 논의를 표방하는 이상 이러한 문제들 또한 피해 가기가 어려울 것이다. 솔직히 고백을 하자면, 필자는 이러한 측면에서 여성사를 논의하기에는 더더욱 미흡하다. 하지만 ‘30년 동안에 300년의 역사체험을 했다’고도 볼 수 있는 ‘한국전쟁 베이비 붐 세대의 일원’으로서, ‘흐름의 관성’에 입각한 생활사적 여성사 이해는 어느 정도 가능하리라 믿어 주로 생활사의 국면에 초점을 맞춰어 논의를 열어 보기로 한다.",
"필자는 여성사를 논의하기에는 미흡하지만 ‘30년 동안에 300년의 역사체험을 했다’고도 볼 수 있는 ‘한국전쟁 베이비 붐 세대의 일원’으로서, ‘흐름의 관성’에 입각한 생활사적 여성사 이해는 어느 정도 가능하리라 믿기에 생활사의 국면에 초점을 맞춰어 논의를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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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20100709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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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틀의 존재양상과 의미 - 전승론의 一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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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부경남 해안지역에 전승되는 <해녀 노 젓는 소리>를 조사하던 중 문틀이란 용어를 발견하게 되었다. 이 지역의 해녀들은 오래 전부터 문틀의 개념을 공유해오고 있었다. 문틀은 <해녀 노 젓는 소리>를 포함한 해녀노래 전반, 이 지역과 제주를 포함한 해안지역 대부분의 해녀들 사이에 보편화된 양식개념의 하나다. 로드가 제시한 공식어구(공식구-공식적 표현-공식적 표현단락)의 의미범주와 <해녀 노 젓는 소리> 문틀의 그것은 개념상 부합한다. 따라서 문틀은 가창자들의 기억단위, 전승단위, 더 나아가 작시단위로까지 간주될 수 있다. 제보자들은 모두 <해녀 노 젓는 소리>의 의미적구조적 단위로서의 문틀을 체득한 상태였다. 슬픈 문틀도, 기쁜 문틀도, 원망하는 문틀도 있고, 수 백수 천 개의 문틀이 있다는 그들의 말을 미루어 보면, 문틀의 다양성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그 형식적 측면은 매우 단순하다. 이 노래들은 노 젓는 행위와 뗄 수 없는 기능적 요인을 지니므로, 문틀의 내용이야 무엇이든 궁극적으로는 노 젓는 노동에 기여한다. 문틀의 형성에는 선택과 환유, 확장, 차용 등 몇 가지 원리들이 작용한다. <해녀 노 젓는 소리>는 원래 ‘단순한 것’에서 ‘복잡한 것’으로 발전되어 왔다. 그 과정에서 ‘일과 관계되는 부분/일과 무관한 개인정서’가 하나의 구조 속에 통합된 것이다. 이 노래들이 지속되는 한 문틀 또한 계속 만들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그것은 통시성을 지니는 실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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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부경남 해안지역의 해녀들은 문틀의 개념을 오래 전부터 공유해왔다. 문틀은 <해녀 노 젓는 소리>등 해녀노래 전반, 제주를 포함한 해안지역 해녀들 사이에 보편화된 양식개념이다. 로드가 제시한 공식어구의 의미범주와 <해녀 노 젓는 소리> 문틀의 그것은 개념상 부합한다. 제보자들은 의미적구조적 단위로서의 문틀을 체득한 상태였다. 이 노래들은 노 젓는 행위 요인을 지니므로, 노 젓는 노동에 기여한다.",
"구절이 생성되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기존의 구절들을 기억하는 것이 그 하나이고, 기존의 구절들을 유추함으로써 새로운 구절들을 만들어 내는 것이 다른 하나이다. ‘기억하는 것’과 ‘만드는 것’은 노랫말을 필요로 하는 가창자가 취할 수 있는 기본 행위들이다. 그래서 가창자들은 구절 만드는 법, 즉 작시법을 반드시 배워야 한다. 가창을 하면 할수록 그런 구절들은 더욱 필요하게 되고, 그것들은 결국 창자의 마음속에 자리를 잡게 된다. 가창자는 수시로 이것들을 이용하게 되고, 그때 비로소 공식구는 성립된다. 물론 가창자에 의해 기억된 구절들은 노래에서 공식일 수 있지만, 그가 노래를 통해 정기적으로 사용하여 정착될 때까지는 공식으로서의 자격을 부여할 수 없다. 가창자의 초보 시절에는 자신이 만든 구절들보다 다른 가창자들로부터 얻어들은 것들이 훨씬 더 많지만, 점점 스스로가 만드는 구절들이 늘어나면서 다른 사람들로부터 얻어들은 구절은 줄어들게 된다. 말하자면 구절의 창작이 계속되면서 상대적으로 고정적인 공식구의 활용보다 스스로가 만들어내는 재주가 가창자로서의 능력 여부를 결정하게 되는 것이다. 그 공식구가 바로 <해녀 노 젓는 소리>의 문틀과 같은 것이다. 공식은 역사적 · 사회적 · 문화적 산물로서 공동체가 공유하는 것이지만, 그 학습 · 변개 · 활용 · 재창조는 특정 구비시인 개인 차원의 일이다. <해녀 노 젓는 소리>의 문틀은 해녀사회 공유의 전승단위이자 작시단위이며, 개개 해녀들의 재창조를 위한 자료이기도 하다. 이러한 문틀은 해녀들의 기억 속에 저장되었다가 가창의 현장에서 적절히 변개 · 활용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구절의 창작이 계속되면서 상대적으로 고정적인 공식구의 활용보다 스스로가 만들어내는 재주가 가창자로서의 능력 여부를 결정하게 되는 것이며, 그 공식구가 바로 <해녀 노 젓는 소리>의 문틀과 같은 것이다. <해녀 노 젓는 소리>의 문틀은 해녀사회 공유의 전승단위이자 작시단위이며, 개개 해녀들의 재창조를 위한 자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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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20100709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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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승의 계보학과 구술성의 층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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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서왕가>가 구전되어 오다가 기록되었다는 것과 구전과정에서 그 내용이 상당히 변개되었을 것이라는 선학들의 공감대를 전제로 하여 <서왕가> 전승의 계보를 살펴보고, 또 작품의 구술성의 층위를 분석하여 <서왕가>의 원형재구에 대한 가능성을 제시하고자 하였다. 그 결과 현재의 문헌을 중심으로 놓고 볼 때, 상당히 오랜 시간 전에 민요적인 율격으로 구도의 과정을 노래한 득의의 노래, 즉 가능태로서의 ‘서왕가’가 선행텍스트로 자리 잡고 있었을 가능성을 제기하였다. 그리고 문헌에 정착하기 약 100년 전 경부터 서방 극락 왕생과 지옥을 전달하는 교술적인 내용이 첨가되면서 한 편의 <서왕가>로 독립했을 것으로 추정하였고, 이후 구연전승의 과정에서 새로운 단락이 누적적으로 첨가되어 현재 우리가 보는 최초의 <나옹화샹셔왕가>(1704)가 형성된 것으로 보았다. 한편 해봉유기는 이러한 확장과 누적의 현상을 반성적으로 인식하여 간결하고 전아한 <강월존자서왕가>(1776)를 산출하였다. 그러나 이후의 전개 양상은 그의 기대와 달리 타 작품의 삽입과 사설의 부연 및 확장이라는 대중화의 양상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음을 <나옹화상서왕가>(148구. 조선가요집성)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서왕가>는 조선 후기의 염불신앙이 흥성하게 되는 과정을 화석처럼 간직하고 있는 작품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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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서왕가>가 구전되다가 기록되었다는 것과 구전과정에서 내용이 변개되었을 것을 전제로 <서왕가> 전승의 계보를 살펴보고, 구술성의 층위를 분석하여 원형재구의 가능성을 제시하였다. 문헌에 정착하기 약 100년 전 경부터 교술적인 내용이 첨가되면서 독립했을 것으로 추정하였고, 이후 새로운 단락이 누적적으로 첨가되어 현재의 <나옹화샹셔왕가>가 형성된 것으로 보았다.",
"결국 <서왕가>가 한편의 독립적인 가사로서 형성된 것은 임란을 전후로 한 시기, 보우를 이은 청허휴정에 의해 삼문수학이 공인되고 염불신앙이 흥성하게 된 시기로 판단된다. 이 과정에서 기존의 불가의 작가로 전승된 나옹화상의 이름은 염불을 권장하는 노래의 작가로서 다시 활용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후에는 청허의 법맥을 이은 제자들에 의해 적극적으로 활용되었던 것을 현재 전하는 보권염불문 의 각종 판본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아울러 청허의 후예임을 자처한 명연이 채록하고, 상봉정원이 공인한 <나옹화샹셔왕가>는, 청허휴정 이후 명연의 판각에 이르는 약 100년 정도의 전승의 과정에서, 각 단락이 누적적으로 첨가되어 나타난 것으로 결론 내릴 수 있다. 이러한 확장과 누적의 현상은 염불신앙 대중화의 과정에 나타난 현상이며, 1776년에 해봉유기는 이에 대한 반성적 인식에서 다시 간결하고 전아한 <강월존자서왕가>로 편집해 놓았다. 그러나 이후의 전개 양상이 해봉유기의 기대와 달리 사설의 부연이라는 대중화의 양상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음을 <나옹화상서왕가>(148구. 조선가요집성)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서왕가>가 한편의 독립적인 가사로서 형성된 것은 임란을 전후로 한 시기, 보우를 이은 청허휴정에 의해 삼문수학이 공인되고 염불신앙이 흥성하게 된 시기로 판단되며, 이 과정에서 기존의 불가의 작가로 전승된 나옹화상의 이름은 염불을 권장하는 노래의 작가로서 다시 활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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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20100709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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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춘원 시의 기법과 정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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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학계에서 처음으로 李春元의 시에 대하여 본격적인 논의를 개진한 것으로 이춘원의 시에 대한 필자의 두번째 논문이다. 첫번째 논문에서 필자는 이춘원의 생애와 교유, 당대시단에서의 그의 위상, 후대의 평가 등을 검토하고 아울러 그의 시의 의식적 측면 즉 정서적 특질과 관점의 다양성에 대하여 논의한 바 있다. 본고는 이춘원의 시에 대한 보다 깊은 이해를 도모하기 위하여 집필된 후속작업이다. 본고에서 필자는 이춘원 시의 기법적 특성과 그러한 기법적 특성이 조성하는 이춘원시 정취에 대하여 논의를 개진하였다. 그 결과는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기법적 측면에서 보았을 때 제일 먼저 지적할 수 있는 이춘원 시의 특성은 사실적 묘사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마치 그 정경이 눈앞에 실제로 전개되고 있는 듯이 느껴질 정도의 절실한 묘사기법은 그의 시 전반에서 두루 발견되는 현상이지만 특히 古詩의 형식으로 음영된 시편들에서 역량을 십분 발휘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의 사실적 묘사기법은 단순히 정황을 묘사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삶의 중첩적 여러 정황을 함축하는 내포력을 지니고 있으며, 때로는 심리적 내면까지도 묘파해내면서 일의 경위를 시사하기도 하며, 때로는 시간적 공간적 확장력을 가진 묘사력을 발휘하기도 한다. 이춘원의 시가 보여주고 있는 이러한 사실적 기법은 시의 기세를 증폭시키는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 이는 당시풍의 선호 하던 전시기와는 변별되는 17세기 문단의 한 경향이라 할 수 있으며 명시의 영향을 가늠해 볼 수 있는 한 예가 된다고 할 수 있다. 기법적 측면에서 보았을 때 이춘원의 시는 기본적으로 사실적인 묘사를 그 特長으로 하고 있으나, 때로는 적실한 사실적 묘사에 관습적 상투어 혹은 비유어를 결합시키는 묘사방식을 취함으로써 정황을 적실하게 그려내면서 동시에 다분히 환상적인 미려감을 불러일으키는 시적 정취를 조성하기도 하는데 이 또한 이춘원시의 特長이라 생각된다. 이러한 시들은 대체로 앞 시기의 경향 즉 당시풍의 시풍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는 징후로 볼 수 있을 듯하나 삼당 시인들로 대변되는 조선적 당시의 경향 즉 애상과 비감을 주조로 한 경우와는 상당히 변별되는 징후를 보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대비적 정황묘사를 통하여 兩極的 정취를 극도로 고조시킴으로써 강한 隔絶的 정취를 불러일으키는 기법 또한 이춘원 시의 만만치 않은 역량이라 할 수 있다. 이춘원의 시가 구사하고 있는 대비적 격절적 정황묘사는 상호 길항 작용을 유도함으로써 시의 정서적 진폭을 증대시키고 있으며 시 자체의 기운의 범위를 확장시키는 효과를 거두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봄을 소재로 하여 득의의 정경과 쇠락의 정경을 대비시켜 격절적 비감을 고조시키는 방식은 이춘원만이 구사하였던 기법은 아니지만 그 상황설정의 절실도와 격절감의 낙차가 주는 정서적 충격, 정황을 그려내는 치밀하고도 적실한 수사능력 등은 부인할 수 없는 그의 시적 성과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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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에서 이춘원 시의 기법적 특성과 이춘원시 정취에 대하여 논의를 개진하였다. 기법적 측면에서 이춘원 시의 특성은 사실적 묘사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 사실적인 묘사를 그 特長으로 하고 있으나, 때로는 관습적 상투어 혹은 비유어를 결합시키는 묘사방식을 취함으로써 적실하게, 다분히 환상적인 미려감을 불러일으키는 시적 정취를 조성하는데 이 또한 이춘원시의 特長이라 생각된다. 봄을 소재로 하여 득의와 쇠락의 정경을 대비시켜 격절적 비감을 고조시키는 방식은 그 만의 기법은 아니지만 그 상황설정의 절실도와 격절감의 낙차가 주는 정서적 충격, 정황을 그려내는 수사능력 등은 부인할 수 없는 그의 시적 성과라 할 수 있다.",
"기법적 측면에서 보았을 때 제일 먼저 지적할 수 있는 이춘원 시의 탁월성은 사실적 묘사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마치 그 정경이 눈앞에 실제로 전개되고 있는 듯이 느껴질 정도의 절실한 묘사기법은 그의 시 전반에서 두루 발견되는 현상이지만 특히 고시의 형식으로 음영된 시편들에서 역량을 십분 발휘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의 사실적 묘사기법은 단순히 정황을 묘사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삶의 중첩적 여러 정황을 함축하는 내포력을 지니고 있으며, 때로는 심리적 내면까지도 묘파해내면서 일의 경위를 시사하기도 한다. 때로는 시간적 공간적 확장력을 가진 묘사력을 발휘하기도 한다. 치밀하고도 현장적이며 절실감을 느끼게 하는 그의 사실적 수사기법은 그의 시에 기세를 불어 넣는 힘을 발휘하고 있는데 이는 당시풍을 따르던 앞 시기 시단의 경향과는 구분되는 17세기 시단의 새로운 경향을 잘 보여주고 있는 한 예라고 할 수 있겠다. 기법적 측면에서 보았을 때 이춘원의 시는 기본적으로 사실적인 묘사를 그 특장으로 하고 있으나, 때로는 적실한 사실적 묘사에 관습적 상투어 혹은 비유어를 결합시키는 묘사방식을 취함으로써 정황을 적실하게 그려내면서 동시에 다분히 환상적인 미려감을 불러일으키는 시적 정취를 조성하기도 하는데 이 또한 이춘원 시의 기법적 특장이 아닐까 생각된다. 이러한 시들은 대체로 앞 시기의 경향 즉 당시풍의 시풍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는 징후로 볼 수 있을 듯하나 삼당 시인들로 대변되는 조선적 당시의 경향 즉 애상과 비감을 주조로 한 경우와는 상당히 변별되는 징후를 보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기법적 측면에서 이춘원의 시는 기본적으로 사실적인 묘사를 그 특장으로 하고 있으나, 때로는 적실한 사실적 묘사에 관습적 상투어 혹은 비유어를 결합시키는 묘사방식을 취함으로써 정황을 적실하게 그려내면서 동시에 다분히 환상적인 미려감을 불러일으키는 시적 정취를 조성하기도 하는데 이 또한 이춘원 시의 기법적 특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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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20100709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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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의 양식적 독자성과 현재적 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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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시조가 일본의 하이꾸와 대등한 장르이면서도 그만큼 사랑 받지 못하는 요인이 무엇인지 찾아내고 현대시로서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데 목적을 두었다. 그 요인은 시조라는 장르와 양식을 구분하지 못하는 몰이해와, 시조에 대한 사랑이 맹목적-관념적인데 그치고 있음을 지적했다. 시조가 현재적 가능성으로 탄탄한 위상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장르로서의 당대적 가치를 성찰하여 그 운용의 妙와 함께 시조 특유의 미학을 오늘의 현실에 되살려 양식으로서의 형식적-미학적 존재가치를 현재적 의의로 승화해 내는 데 있다고 보았다. 시조의 독자적 미학은 고도의 절제미, 태평스런 유장미, 안정된 균제미, 절도 있는 파격미, 티 없는 담박미의 다섯 가지로 요목화 될 수 있음을 밝혔고, 이를 현대적 감성과 미감에 맞게 응용력을 발휘하는 방법을 탐색하기 위해 현대시조의 여러 형식시도를 검토했다. 그리하여 고전형, 표준형, 세련형, 유사자유시형의 네 가지로 그것을 정리하고, 그 가운데 유사자유시형은 시조의 독자적 미학을 구현해내기에 부적절한 것으로, 세련형은 현대적 미감을 살릴 수 있는 이상형으로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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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가 현재적 가능성으로 위상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장르로서의 가치를 성찰하여 그 운용의 妙와 함께 특유의 미학을 현실에 되살려 형식적-미학적 존재가치를 현재적 의의로 승화해 내는 데 있다고 보았다. 유사자유시형은 독자적 미학에 부적절한 것으로, 세련형은 현대적 미감을 살릴 수 있는 이상형으로 보았다.",
"시조의 정형 틀이 가시화될 수 있는 몇 가지 행 배열의 방식만 현대시조의 형식 틀로 용인될 수 있다는 주장은 너무 추상적 당위론에 그치고 있어 설득력을 갖기 어렵다. 시조형식의 와해로 가는 길을 막기 위해서, 혹은 시조의 자존적 입장을 지켜내기 위해서라는 것이 그 근거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오늘의 시조가 ‘현대시’의 하나인 만큼 현대성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행 배열의 자율성은 얼마든지 용인될 수 있다는 주장도 현대시가 반드시 자유시처럼 개성적이고 창조적이며 자유분방한 쪽으로 가야한다는 일방통행이 아니라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현대의 시대정신이 아무리 그쪽으로 경사된다 하더라도 그러한 시대정신이 초래하는 부작용이나 폐해 또한 만만치 않은 만큼 그것을 제어하고 치유할 반대방향의 시적 지향도 현대에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현대시조의 존립 가치나 지향해야 할 방향은 자유시가 추구하는 쪽이 아니라 그것을 제어하고 보완하는 쪽이어야 한다. 그렇다면 현대시조는 시조의 양식적 독자성을 지켜내는 방향이어야지 개성적이고 자율적인 쪽으로 무작정 가서는 안 된다는 결론이 나온다. 시조의 양식적 독자성을 구현하는 방향은 고시조의 외형적 틀을 기계적으로 지켜내는 것이 아니라 시조만이 갖는 독자적 미학을 오늘에 되살려 현재적 가능성으로 빛을 발하게 하는 것이다. 따라서 시조의 행 배열은 그 기준을 시조의 양식적 독자성이 자랑하는 미덕을 오늘의 미감으로 얼마나 승화시키느냐에 기준을 두어야 할 것이다. 이에 따라 현대시조의 형식 시도의 실제를 검토해 보기로 한다.",
"현대시조는 시조의 양식적 독자성을 지켜내는 방향이어야지 개성적이고 자율적인 쪽으로 무작정 가서는 안 된다. 시조의 양식적 독자성을 구현하는 방향은 시조만이 갖는 독자적 미학을 오늘에 되살려 현재적 가능성으로 빛을 발하게 하는 것이며 시조의 행 배열은 그 기준을 시조의 양식적 독자성이 자랑하는 미덕을 오늘의 미감으로 얼마나 승화시키느냐에 기준을 두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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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201007091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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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곡 향약에 나타난 사회사상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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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곡은 화민성속(化民成俗)을 목적으로 서원향약, 해주향약, 사창계약속, 해주일향약속을 제정, 실시하였다. 율곡은 향민을 근본으로 하지 않는 향약은 향약 본래의 취지를 지닐 수 없다고 보았다. 왜냐하면 형식화된 양민없는 교민(先養民, 後敎民)은 오히려 향약의 목적인 화민성속에 어긋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율곡은 향약을 지역의 특성에 알맞도록 입약하여 실시하였으며, 내용 또한 향민을 위한 4대덕목 중의 하나인 환난상휼 중심의 상호구휼을 중시하였다. 그렇다면 율곡 향약과 사회사상과는 어떤 관계가 있는가? 그리고 율곡 향약에 담긴 그 사회사상은 무엇인가? 한마디로 말하자면, 율곡의 향약은 그의 사회사상에 온전히 담겨 있다고 할 수 있다. 4대덕목 중 덕업상권은 그의 사상을 근본바탕으로 하고 있으며, 예속상교는 교화와 더불어 윤리의식을 지니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과실상규와 환난상휼은 사회사상과 관련된 양민(養民)애민(愛民)의식을 지니고 있다. 본 논고는 율곡 향약에 나타난 사회사상의 일단을 고찰하는데 그 의의가 있다. 그 결과 율곡 향약은 사회사상의 이론적 기반이 되며, 향약론은 사회사상의 일관된 적용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율곡 향약에는 사회개혁을 가능하게 하는 현실인식과 개혁의 논리가 내포되어 있다. 즉 함께 더불어 사는 삶을 강조하고 인간관계를 모든 가치의 근원에 두었으며 공동체의식을 형성할 것을 제시하고 있는 율곡 향약의 사회사상 연구는 큰 의미를 지닌다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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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곡은 화민성속을 목적으로 서원향약, 해주향약, 사창계약속, 해주일향약속을 제정, 실시하였다. 또한 과실상규와 환난상휼은 양민애민의식을 지니고 있다. 더불어 사는 삶을 강조하고 공동체의식을 형성할 것을 제시하는 율곡 향약의 사회사상 연구는 큰 의미를 지닌다고 할 것이다.",
"율곡은 향촌사회에서의 화민성속을 위해 과실상규를 통해 향촌의 질서의식을 고취하려고 노력했다. 향약에 나타난 과실의 상호규제는 오히려 악을 징계하여(懲惡) 선을 권장하는(勸善) 효과를 높이고 있다. 율곡은 과실상규의 강목으로, 덕업의 실천여부를 규계(規戒)하는 것으로 의(義)를 범하는 6가지, 약(約)을 범하는 4가지, 수신하지 않는 5가지를 세밀하게 논하고 있다. 과실상규에 관한 각 향약의 특색은 「서원향약」의 경우, 나이 30이하인 사람으로 글도 배우지 않고 무예도 연마하지 않는 경우에 허물이 있는 경우로 규정하고 모두 「소학」․「효경」․「동자습」 등의 글을 읽게 하며, 읽지 않은 자는 벌줄 것을 논하고 있다. 「해주향약」의 경우 과실을 크게 4가지로 나누고, 자신이 수양하지 않는 허물 5가지를 인정한다는 점에서 특징을 지닌다고 할 수 있다. 「해주일향약속」에서는 과실을 벌의 종류대로 구체적인 기술을 하는데, 벌의 내용이 다른 향약에서와는 달리 신체적인 규제는 없고 연령에 따라 시행의 융통성을 발휘하고 있다.",
"율곡은 향촌사회에서의 화민성속을 위해 과실상규를 통해 향촌의 질서의식을 고취하려고 노력하였고 향약에 나타난 과실의 상호규제는 오히려 악을 징계하여(懲惡) 선을 권장하는(勸善) 효과를 높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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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201007091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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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유교적 마음의 구성에 대한 분석과 이에 기초한 청소년 예교육 모델 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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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본 연구는 한국철학, 문화심리학, 교육학 세 분야의 전공자들이 협동하여 학제간 연구를 진행한 결과이다. 한국철학에서는 한국인의 유교적 마음의 구성에 관련된 심학적 원리를 추출하고, 예교육과 연관되는 학문적 배경 및 원리에 대하여 고찰하였다. 문화심리학에서는 문화에 의하여 인간의 마음은 제각기 구성된다는 이론적 관점을 배경으로 한국인의 유교적 마음의 구조를 심학적 원리에 비추어 정립하고, 이를 설문지 조사(대학생과 청소년)를 통해서 실증적으로 검토하였다. 교육학에서는 한국철학과 문화심리학의 연구 관점을 수용하여 학교 교육에서 필요한 예교육 프로그램을 구성하고, 이것을 실제 학교 교육에 적용하였다. 이상의 연구의 성과를 요약하면, 첫째 한국유학의 전통적 이론과 실천방법론의 유용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둘째 문화심리학과 한국유학과의 학제간 연구를 통해서 유교적 마음의 구조를 모델화하였다. 셋째 현대 한국인의 마음 행태로부터 그 구조를 추출할 수 있는 실증적 검토를 통해 긍정적인 결과를 얻었다. 넷째 전통에 근거한 자생적 교육학 이론을 구성할 수 있는 근거를 예학과 심학 및 문화심리학으로부터 획득하였다. 다섯째 획득된 이론을 실제 교육현장에 적용할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개발하고 그것의 긍정적 결과를 얻었다. 여섯째 한국유학의 개념과 이론을 실제 교육의 효과를 측정하는 기준과 도구로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을 타진하고 그것의 체계화를 시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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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심리학에서는 문화에 의하여 인간의 마음은 제각기 구성된다는 관점을 배경으로 유교적 마음의 구조를 심학적 원리에 비추어 정립하고, 실증적으로 검토하였다. 교육학에서는 한국철학과 문화심리학의 연구 관점을 수용하여 학교 교육에서 예교육 프로그램을 구성하고, 학교 교육에 적용하였다.\r\n\r\n",
"예는 개인의 내면적 도덕 윤리의 문제에서부터 가정과 사회, 그리고 국가의 차원으로 확대되어 전장, 제도, 문물, 법제 등을 제정하는 기준으로 작동한다. 특히 예를 구성하는 원리는 오륜의 방식에서 벗어나지 않는데, 개인적 삶과 사회적 삶의 관건은 바로 이러한 인간관계를 바탕으로 한 신의와 조화 여부라고 보는 것이 유학이다. 유학에서 이처럼 신의와 조화를 관건으로 삼는 것은 가정으로부터 사회의 다양한 영역에 이르기까지 무수히 중첩되어 연결되는 인간관계를 조성하고 유지하는 것이 단지 객관적 규범의 강요만으로 이루어질 수 없다는 공통의 이해가 작용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구성원의 내면에서 발출되어서 외부로 표출되는 일련의 작용들이 예의 체계와 일치되거나 조화되는 것이 필요하다. 그렇다고 할 때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규범을 학습하고 그것과 일치되거나 조화되는 실천의 방법을 익히는 것이 일차적으로 요청되고, 나아가서 예와 부합하는 행위와 사유가 항상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이 궁극의 목표가 된다. 이 과정이 예의 단계별이다. 예를 들어 공자가 “자신의 욕망을 극복하여 예로 돌아가는 것이 인을 실현하는 것”(극기복례위인)이라 하여 안연에게 인을 구현하는 방법으로 언급한 것은 예의 학습과 실천의 단계에서 말한 것이고, 또 칠십이 되어서 마음이 원하는 대로 따라 해도 법도를 어기지 않는다(종심소욕불유구)고 한 것은 자연스러운 실천이 가능한 내면화의 성취단계를 보여준 것이다.",
"유학에서 신의와 조화를 관건으로 삼는 것은 가정으로부터 사회의 다양한 영역에 이르기까지 무수히 중첩되어 연결되는 인간관계를 조성하고 유지하는 것이 단지 객관적 규범의 강요만으로 이루어질 수 없다는 공통의 이해가 작용한 결과라고 할 수 있으며 구성원의 내면에서 발출되어서 외부로 표출되는 일련의 작용들이 예의 체계와 일치되거나 조화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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